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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양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 음 :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
오늘 복음 말씀은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성경 말씀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11,9-10)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귀찮게 졸라대는 친구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받고 얻고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11,8)
어떠한 기도라도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11,13)
이 대목이 그렇게 썩 반갑지만은 않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령도 좋지만 나에게 더 좋은 것 -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명예 따위를 받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지요.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성령과 수백억의 재산 중 어느 쪽을
나에게 주셨으면 하고 바라십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세상 것을 바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늘 기도하면서도
정작 청하는 내용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지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청하는 것과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기도 내용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이기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들만을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시지 않고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백억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생겨나고 있지요.
당첨된 그 사람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도록 뛰는 가슴을 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일손을 놓고 꿈에 부풀어 어쩔 줄 몰라하였지요.
그런데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형제들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구구절절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뿐이었지요.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온갖 사회 시설에서 다 찾아오고
교도소에서까지 도움을 청하는 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은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찾아오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피하고만 싶어졌지요.
그것이 심해지자 그는 이웃도 형제도 등지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 기피증이 생기고 결국 사람들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또 한 이야기는, 옛날에 어느 의좋은 형제가 함께 산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덩어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뛸 듯이 기뻐하며 금덩어리를 똑같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꿈에 부풀어 기분 좋게 길을 가던 형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이 없어졌습니다.
동생은 형의 눈치만 보고 형 또한 동생의 눈치만 살펴볼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형제는 어느 큰 연못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춘 동생이 금덩어리를 꺼내 연못 속으로 멀리 집어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형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얘야, 너 무슨 짓이냐?"
동생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 금덩어리가 생긴 순간부터 형이 없어졌으면 하는 못된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어요,
형님. 그래서 금덩어리를 버렸습니다."
그러자 형이 동생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잘했구나. 나도 그랬단다."
그리고는 자기 몫의 금덩어리를 꺼내 연못 속으로 힘껏 던져버렸습니다.
자, 이 두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중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수백억의 복권에 당첨이 되어 결국 형제들을 등지게 된 사람과
금덩어리를 버리고 형제간의 우애를 택한 사람 중에 누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두 번째보다는 첫 번째를 택한다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보다 의리보다 돈을 더 좋아하게 되고 그 결과 사방에 죽음의 문화가 꽃 피우게 되었지요.
안타까운 상황들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재산, 관리 능력에서 벗어난 재물은
짐이고 재앙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 수백억의 재산을 청해서 바라는 대로 얻게 되었다고 할 때
정말 부모 형제간이나 이웃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욕심 없이 형제들과 나누고 사이좋게 의논해 가며 재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또 수백억의 재산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하느님 안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더욱 노력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많은 재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도 멀어지고,
형제, 이웃과도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속인의 모습이지요.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고
무신론자 같이 되어 돈만을 섬기게 됩니다.
이럴 때 재물은 선물이나 은총이 아니라 도리어 재앙이 되는 것이지요.
현명한 사람은 수백억의 재산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조건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잠언 30,8-9)
우리는 잠언의 이 말씀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성장하기보다는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대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살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 안에서 감사 드리는 마음을 주시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우애와 사랑을 깊게 해주십니다.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해주는 이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내게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곁에 있는 이웃에게 고마움을 나누는 삶,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더 늘릴 방법이 없나 혈안이 되어 다니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 내 것을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하는데
과연 평화가 올 수 있겠습니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끝없는 갈증에 허덕이며,
허황된 것을 꿈꾸는 사람은 현실에 만족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불안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 바로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허황된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재산이나 건강, 출세에 집착하면 할수록 갈증에 허덕일 뿐입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은 소유나 소비가 있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고 나누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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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동 치릴로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루카 11,5-13
하느님은 우리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너무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서 여러 곳에서는 청하면 주신다는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그런데 이 위로의 말씀들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친 기도들이 다 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내 기도가 들어지지 않았을까?
오늘 예수님의 비유처럼 참 끈질지게 기도했는데, 참 귀찮게 졸라댔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왜 주님은 들어주시지 않는 걸까?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 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4,4)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 못 청하고 엉뚱한 것을 청하기에
그리고는 쉽게 포기하기에 응답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 하느님을 깨워서 나의 청을 들어주시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마태 6,8)
기도는 하느님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자신이 바뀌는 길입니다.
기도가 하느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 속에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래 걸리고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새워 기도하셨고 자신이 변화되셨습니다.
어쩌면 내가 변화되어야 하기에 많은 기도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내가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우리는 더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청했던 것보다 더 큰 것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것을 청했는데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은 성령을 받을 준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청하는 것을 하느님에게서 바로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기도하면서 꾸준히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있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기도 안에서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이기적이고 악한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큰 선물을 준비하시고 우리가 마음을 열도록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청을 거절하시지 않습니다.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구대교구 이영동 치릴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