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향기 악(惡)한 면만을 보는 것은 악한 사람이다. 욕과 손가락질보다 박수를 치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식당에서였다. 식탁 앞에서 같이 밥을 먹던 노인이 느닷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문재인 그 빨갱이 새끼가 말이야.” 착한 노인이다. 싹싹한 성격에 이웃에도 잘하는 사람이다. 정치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평생 자기 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아온 사람 같다. 그런데 태극기 부대라고 했다.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으면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갔다 오는 열성분자다. 그의 방 벽에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붙여놓고 있는 걸 봤다. 거의 여신으로까지 모시는 느낌이었다. 노인에게 그 반대쪽 성향의 정치인들은 악마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아십니까?” “몰라요” 인터넷 뉴스를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낙향을 한 양산에서 책방을 열었다는 기사를 봤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는 화장실을 짓고 그 청소는 직접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색안경을 끼고 그걸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언론은 권력에 맞서 비판기능을 수행한다. 그 부작용인지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지도자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주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영향으로 대통령을 우습게 안다. 사고만 터지면 뭐든 대통령이 책임을 지라고 한다. 하기야 역사 속에서 천재지변이 일면 왕의 탓으로 돌려 왕을 죽이기도 했었다. 그래도 외국은 이 정도는 아니다. 일본인은 총리 말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도자로 뽑았으면 존중을 해 주는 게 국민적 예의가 아닐까. 역대 대통령마다 존경할 만한 점이 숨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정비서관을 하던 사람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대통령이 강원도 순시를 가시겠다고 해서 내가 한 달 전 미리 가서 그곳 정보과 형사를 데리고 골목골목 직접 다녔죠. 그 지역의 숙원사업을 알아보는 거죠. 묵호에 저탄장이 있어 주민들이 석탄 가루 때문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정확히 써서 대통령에게 올렸죠. 그걸 보고 대통령이 순시 때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말씀하시면서 도지사한테 지시를 하시더라구요. 박정희 대통령은 참 머리가 비상한 분이었어요.” 그 다음은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수석 비서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국민들 사이에 신망이 있던 김상협 고려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려고 할 때였어요. 김상협 총장은 국무총리가 되길 꺼리더라구요. 정통성이 부족한 군사정권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 같았어요. 전두환 대통령이 김상협 총장에게 말하더라구요. 욕은 머리가 나쁘고 군인 출신인 내가 다 먹을 테니까 머리 좋고 훌륭한 정치학자인 김상협 교수님이 총리가 되어 경륜을 마음껏 펴시라고 말이죠. 전두환 대통령은 그런 면이 있었어요.” 노태우 대통령의 정무비서관을 했던 분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을 물이라고들 했는데 내가 그게 아닌 걸 알고 정말 놀란 적이 있어요. 한번은 대통령이 내게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을 했다는 거에요. 자기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키는 건 아닌지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건 아닌지 그게 고민이 되서 잠을 못잤다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충격을 받았어요. 평소 그 정도 그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민주화의 아이콘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의 장점들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수석이었던 분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대단히 똑똑한 대통령이었어요. 유엔에 가서 할 연설도 우리들이 써 준 원고를 받아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인의 평소 소신과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분이니까. 미국에 대해 당당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협조와 애정을 표시했죠. 쉽지 않은 일이에요. 흔히들 미국이 피리를 불면 우리는 춤을 추는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시 한 메이저 일간지의 주필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방엘 갔어요. 병사들이 벙어리장갑을 방한용으로 끼고 있는 걸 보고 자기도 벙어리장갑을 꼈어요. 그러면서 병사들에게 서로 장갑을 낀 채로 악수를 하자고 했죠. 병사들이 한 명 한 명 장갑을 벗으려는 걸 배려하고 막아준 거죠. 그걸 가지고 예쁜 기사 하나를 써도 됐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언론이라는 게 조지는 게 본업이니까요.” 악한 면만을 보는 것은 악한 사람이다. 악한 소문,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건 악마다. 선한 면을 보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고래도 칭찬에 춤을 춘다는 말이 있다. 욕과 손가락질보다 박수를 치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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