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문명은 선비국(통고사국, 시위국)과 구막한국의 문명
선비국의 중추 종족인 시위국(豕韋國)을 언어학적으로 풀어서 설명
1). 수(隋)는 중국어로 sui가 되며 시(豕-돼지 시)는 shi<쉬)로 쉬는 수이에서 줄인 발음이 ‘쉬’가 된다.
위(韋)는 중국발음으로 Ŵei가 되며 위(衛)는 wēi이고 위(魏)도 wēi가 된다. 그러므로 시위(豕韋)는 shiwēi가 되는 것으로 같은 발음이 된다 할 것이며 다만, 강세가 약간 달라진 것 뿐이다. 이렇게 볼 때 고대의 위나라(衛)는 기원전 11세기 혹은 기원전867년 -기원전209년 사이에 존속한 국가이며, 그 시기에 연(燕)이 있었으며 위(魏)는 전국시대 7웅의 하나로 기원전 403-기원전225이고, 조위(曺魏)는 기원전 220- 기원전 265이며 북위(북조, 北趙)는 서기 386-534로 이어졌으며 다시 수나라(隋, 서기581-618)로 이어지는 왕조이다.
위는 중국발음으로 wei가 되는데 영어의 기록은 Beidi(아버지 머리)가 된다. 실로 wei는 북아프리카의 언어체계로 we, wa, wu, wo는 아버지를 칭하였다. we는 Be, Wu는 Bu가 되며 Wei는 Bei로 표기되어 아버지가 된 것이다. 판단 해보면 시위국의 시에서 수나라 이름이 나왔으며, 위(韋)가 위(衛)와 위(魏)로 한자가 바꾸어지며 연결된 왕조로 본다. 그 지역은 주나라 시대에 북적(北狄-북쪽 오랑캐)의 땅으로 글안, 몽골, 오환(烏桓)의 땅이었던 것이 분명해 진 것이다. 북적의 문명이 홍산문명과 요녕성의 문명으로 된 것이며, 북부 중국은 중국과는 다른 오랑캐의 땅이었다.
고대엔 ‘아버지’를 절대자로 신성시 하였으며, 칸이기도 하였다. 밝은 사람들(광명족)은 태양족이었으며, 광명사상을 가진 이들은 깨우친 사람(gaia)이었으며, 그들은 지도자를 ‘아버지’라 불렀던 것이다. 영어의 표기로 지명이나 국가등에 자주 표기되는 아버지 사람들은 Ban, van, bun, vun, pan, pun으로 불리워 졌다. 빈카문명의 ‘Vinca'에서 빈(Vin)은 아버지족을 의미한 것이며 베네수엘라(Venezuela -위대한 얼 있는 아버지 사람들)에서 벤(Ven)을 아버지족을 말하였다. 몽올(蒙兀)실위(室韋)의 후예는 징기스칸을 베출하였다.
* 시위(豕韋, 室韋, 失韋, Shiwei)의 종족(퉁구스, 선비족)
서양에서 연구된 Shiwei(시위) 종족은 몽골과 Tungusic 민족으로 극동의 거주종족, 몽골 북부, 내몽골, 북부 만주와 오호츠크 해의 해변까지 아우러는 포괄적인 용어이며, 북부웨이(北魏(북위), 중국 북부 - 386-534 ,몽골의 상승까지 몽골, 타타르, 모든 Shiwei부족이 적용된 1206년의 징기스칸 시대이었다.
Mengwu(몽고) 당나라(唐)시대엔 22 시위부족(Shiwei)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요(遼)는 일반적으로 조상으로 간주되었다. 언어학적으로는 일부 Shiwei는 거란과 민족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조사, 연구되었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북위의 자본이 ‘시위족’이었음에 수나라(隋) 또한 시위의 5부족이 중심체로 되었다고 보았으며, 서량(돈항), 서진(西秦 -감숙), 북주, 북위(北魏)가 선비족(시위족)의 왕조이었다. 시위족은 내몽골로부터 티벳 남동부, 산시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살았다. Shiwei 종족을 나열하면
* Dagui -깨우친 머리, Ruzhe, 동부 Shiwei, Hejie
* Huangtou (북위) , Lingxi(零奚), Luozu Shiwei, Luotuo(駱駝-낙타)
* Nali , Nebeizhi(나의 흰 빛나는 아버지), Wusugu(내몽골 부족)
* Powo -티벳의 남동부 보이(Bomē -powo, 중국어: 波密)현
* Sanbei (위대한 사람들의 아버지), 산시성의 45% -황토고원의 중심)
결론적으로 내몽골에서 극동에 이르는 광역의 지역에 분포되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여진(후에 금나라를 창시함),물길(勿吉 도 같은 종족 그룹이었다.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시위족(선비족)을 보면(북사, 구당서, 문헌통고의 실위전)
室韋= 古部族也 居於黑龍江及額爾古納河之畔, 民以獵爲生, 分五部: 南室韋, 北室韋, 大室韋, 鉢室韋, 深末怛室韋, 自北朝以降 唐分二十二部, 嶺西室韋, 山北室韋, 黃頭室韋, 大如者室韋, 小如者室韋 婆窩室韋, 納北支室韋, 駱駝室韋, 烏素固, 蒙固室韋 “置室韋都督府通之. 後爲契丹所倂. * 額爾古納河는 흑룡강의 남쪽 수원이며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를 이룬다. *문헌통고:1254-1323, 마단림(馬端臨)이 348권 저술(통전을 기초-상고부터 송의 영종까지) 에 대한 역사서 이다.
해설: 실위는 고대 부족으로 흑룡강 근처에 기거하였으며 고대의 납하(納河)의 경계에 살았다.(환인 12분국의 사납아국이 흑룡강 일대에 분포된 것을 유추할 수 있으며 고대의 납하가 흑룡강 주변인 것으로 파악한다.)백성들은 수렵으로 생활하였으며 5부족으로 나누었다. 즉, 남실리, 북실리, 대실리, 발실리, 심말달실리이었다. 그들은 북조시대에 내려왔으며 당시대엔 22부족으로 형성되었다. 몽골실리를 포함한 다양한 실리는 ‘실리’라는 도독부의 통제를 받았으며 훗날 거란과 병합되었다.
2) 선비족에 대한 문헌을 보면(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 342> )
鮮卑(선비): 古部族也, 東胡一部, 漢初居於遼東, 東漢移居匈奴故也, 勢漸盛, 晉初分數部, 以慕容, 拓拔氏建國號魏(위), 是爲北朝, 隋興以後, 融合於中原漢人.
선비는 고대의 부족이며 동호(동쪽 오랑캐)의 일부이다. 한나라 초기에 요동에 거주하였으며 동한에 이르러 고대의 흉노가 되었다. 세력이 점차 강성하여 진(晉)초기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졌고 모용,탁발씨는 위나라를 건국하였으며 그로서 북조를 열게 되었다. 수의 흥성 이후에 중원의 한인에 융합되었다. *밑줄친 이 부분은 후세에 위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3) 선비족의 가계도(家系圖)) - 문헌통고 342
(1) 선비족의 단(段)씨 가계도는 단왕육권, 단무목진, 단섭복진 단말파, 단호요, 단업(段業), 단근(段勤)으로 나누어 진다.
(2) 모용연(慕容燕) 집안으로 요동양공, 연문명왕, 연(燕)열조경소황제, 연황제暐(위), 연세조성무황제, 연열종혜민황제, 란한(모용보-355-398), 연중종소무황제, 연헌무제, 연황제 超(초)
(3)걸복진(乞伏秦)으로 서진(西秦)의 황제 집안인데 진열조선열왕, 진고조무원왕, 진태조문소왕이다.
(4) 탁발씨(拓拔)는 위(魏)나라를 건국하였다.
위태조도무황제, 위태종명원황제, 위세조태무황제, 위남안은왕, 위고종문성황제, 위현조헌문황제, 위고조효문황제, 위세종선무황제, 위숙종효명황제, 위소주유, 위경종효장황제, 위북해왕, 위장광경왕, 위여남왕, 위절민황제, 위안정순문왕, 위 효무황제, 위효정황제, 위문황제위공황제.
(5)우문주(宇文周) 집안으로 우문부는 요동에 있던 것으로 주효민황제, 주세종명황제, 주고조무황제, 주선황제(周宣), 주정황제(周靜)가 있다.(서주)
필자가 중국사서와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분석한바, 고대의 위(衛) 나라는 기원전 1040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의 연(燕)이 선비족의 국가이었으며, 이어지는 북위(北魏)를 건설한 종족이 선비족(시위,실위)족으로 밝혀진 것이며, 이들은 중국의 북부왕조를 庫莫奚(구막한국, Kumoxi)와 함께 열어 나갔다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중국사가가 말하는 홍산문명과 요녕성문명은 결코 지나인에 의한 문명이 아닌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아웃사이드(Out side)이며 동이(東夷)의 종족들이 건설한 문명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바이다. 이미 중국의 고고학에서 요녕성에서 내몽골로 이어지는 흥룡와문명(기원전 6,200-5,000)이 두 문명의 연결과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종족학에서 말하는 실위(室韋)가 중국 사서에서 ‘시위’로 증명되었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가 중국사서와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분석한바, 고대의 위(衛) 나라는 기원전 1040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의 연(燕)이 선비족의 국가이었으며, 이어지는 북위(北魏)를 건설한 종족이 선비족(시위,실위)족으로 밝혀진 것이며, 이들은 중국의 북부왕조를 庫莫奚(구막한국, Kumoxi)와 함께 열어 나갔다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중국사가가 말하는 홍산문명과 요녕성문명은 결코 지나인에 의한 문명이 아닌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아웃사이드(Out side)이며 동이(東夷)의 종족들이 건설한 문명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바이다. 이미 중국의 고고학에서 요녕성에서 내몽골로 이어지는 흥룡와문명(기원전 6,200-5,000)이 두 문명의 연결과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종족학에서 말하는 실위(室韋)가 중국 사서에서 ‘시위’로 증명되었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가 중국사서와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분석한바, 고대의 위(衛) 나라는 기원전 1040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의 연(燕)이 선비족의 국가이었으며, 이어지는 북위(北魏)를 건설한 종족이 선비족(시위,실위)족으로 밝혀진 것이며, 이들은 중국의 북부왕조를 庫莫奚(구막한국, Kumoxi)와 함께 열어 나갔다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중국사가가 말하는 홍산문명과 요녕성문명은 결코 지나인에 의한 문명이 아닌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아웃사이드(Out side)이며 동이(東夷)의 종족들이 건설한 문명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바이다. 이미 중국의 고고학에서 요녕성에서 내몽골로 이어지는 흥룡와문명(기원전 6,200-5,000)이 두 문명의 연결과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종족학에서 말하는 실위(室韋)가 중국 사서에서 ‘시위’로 증명되었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가 중국사서와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분석한바, 고대의 위(衛) 나라는 기원전 1040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의 연(燕)이 선비족의 국가이었으며, 이어지는 북위(北魏)를 건설한 종족이 선비족(시위,실위)족으로 밝혀진 것이며, 이들은 중국의 북부왕조를 庫莫奚(구막한국, Kumoxi)와 함께 열어 나갔다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중국사가가 말하는 홍산문명과 요녕성문명은 결코 지나인에 의한 문명이 아닌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아웃사이드(Out side)이며 동이(東夷)의 종족들이 건설한 문명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바이다. 이미 중국의 고고학에서 요녕성에서 내몽골로 이어지는 흥룡와문명(기원전 6,200-5,000)이 두 문명의 연결과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종족학에서 말하는 실위(室韋)가 중국 사서에서 ‘시위’로 증명되었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가 중국사서와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분석한바, 고대의 위(衛) 나라는 기원전 1040년으로 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의 연(燕)이 선비족의 국가이었으며, 이어지는 북위(北魏)를 건설한 종족이 선비족(시위,실위)족으로 밝혀진 것이며, 이들은 중국의 북부왕조를 庫莫奚(구막한국, Kumoxi)와 함께 열어 나갔다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중국사가가 말하는 홍산문명과 요녕성문명은 결코 지나인에 의한 문명이 아닌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아웃사이드(Out side)이며 동이(東夷)의 종족들이 건설한 문명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바이다. 이미 중국의 고고학에서 요녕성에서 내몽골로 이어지는 흥룡와문명(기원전 6,200-5,000)이 두 문명의 연결과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종족학에서 말하는 실위(室韋)가 중국 사서에서 ‘시위’로 증명되었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선비족의 가계도에서 연(燕)의 건국자가 선비족이었고, 제비는 玄鳥(현조)로 중세 국어에서 ‘현됴’ 가 되므로 중국에서 말하는 현토(玄兎)는 제비를 말하는 것으로 선비족이 건국한 연나라(燕)의 표식으로 보며 북위의 건국자가 선비족이란 것이 증명되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결국 옥서스권의 고조선 문명이 프로토 투르크, 트로토 타타르(머리의 달족)화 되어 많은 종족들이 동쪽으로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징기스칸의 시대(1,206)엔 선비족(시위족)과 구막한국(구막해)의 사람들이 모두 몽골, 프로토 몽골화되어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인류고고학사적인 분류에서 말하는 퉁구스(Tungus) 이며 통고사국(시위국, 선비국)과 구막한국의 공통적인 문명이며 그들의 언어가 같았다고 하는 것은 한 종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북사(北史)는 7세기 후반 당(唐)의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것으로 ‘북사’의 서역전은 위서, 주서, 수서의 서역전을 짜깁기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사는 중국의 북조시대의 것으로 중화족의 것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이므로 ‘고막해와 선비족의 ’실위(시위)‘는 응당 북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기에 외국전에 넣어 편찬 한 것은 위작(僞作) 또는 위서(僞書)의 비난을 피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사가들은 지금이라도 요하문명이(홍산문명 포함) 북적(北狄)의 문명으로 중국인의 문명이 아니란 사실을 고백하애 할 것이며 동북공정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