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어색한 동행을 하며 벤의 콘서트 연습장으로 향하고 있다.
벤과 나와 그의 여자친구.
에멀슨과 줄리오는 대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나타나질 않고
자넷은 항상 이른 아침이면
벤의 집에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몇번이고 웃는 인사를 건넸었지만..
그녀의 웃음은 잠깐 입고리에 걸렸다가는 이내 식어버리곤했다.
그리고 벤은 도무지 그녀의 의견 따위 듣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내 어깨에 손을 얹어도 괜찮으니..
나와 거리를 걷고 싶다던 아이들 중 누구라도 제발 나타나 주었으면 했다.
나는 지극히 평화로운 오후를 꿈꿨으나..
마음 한편에 엉겨붙은 감정의 고리들은 그녀의 웃다만 입가에 가 걸리고 만다.
나는 우성인자의 잔인한 공격처럼
의도하지 않은 채로 언제나 그녀를 상처입히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벤의 친절 뒤에..
그녀의 드러나지 않는 조바심과 아픔들...아는 척하고 다가설 수가 없었다.
혼자서 길거리를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애당초에 가지치기 당했기에..
내게도 벤이 필요했었다.
하지만..벤은 내가 마치 아라비아에서 온 공주라도 되는양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안달냈다
무지한 속도로 달리는 차와 죽은 쥐의 시체들 때문에 깜짝 놀라대는 나를
자넷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덤덤히 걷기만 했고, 벤은 웃으며 내 어깨를 잡아주었다.
그때마다 내 정당한 두려움이 가식처럼 느껴져 침울해졌다.
한 번쯤은 벤이 내게 손을 내미는 대신 자넷을 먼저 감싸안아주길 차라리 바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크게 웃곤 하는 내가..
그 누구와도 자연스레 볼을 맞추는 내가...
내가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녀에겐 아마 훅 불어 꺼버리고 싶은 촛불처럼 느껴지리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내 마음 속의 욕심이 그녀를 기만하는 샘이 될까봐..
나는 차라리 하늘을 둘러 보며 한 발 앞서 걷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프랑코 모잠비칸은
마푸토 시내의 다른 곳들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우아했으며 여유로웠다.
철문 안의 정원 곳곳에 총으로 만든 조각물들과 하얀 벤치가 있었으며..
흑인이든 백인이든...비싼 맥주나 주스를 마실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한가로이 책과 오후, 때로는 어떤 수다들을 향유하고 있었다.
늘 아끼던 팬더를 옆에 끼고 벤이 무대로 올라간 후,
자넷은 오랫만에 웃음을 보이며
벤의 밴드인 Quaze의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 사이의 친밀함과
어설픈 영어 덕분에 생긴 자연스러운 거리감 덕분에
나는 다행스러운 무관심 속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
객석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세트와 기타와 기타를 든 낡은 체육복 차림의 노인 두명.
때때로 분주히 움직이는 어떤 사람들....
갑자기 소풍 가기 직전의 어린아이처럼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프랑코 모잠비칸의 철문안에서는...
내 위험을 걱정하는 시선들과
어색한 대화 옆에 서성이던 만들어진 웃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만에 존재의 발랄함으로 돌아와 건물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전시관과 정원과 공연장을 오가며 사진을 찍어대다가
문득 지치면
공연장의 제일 끝 벤치에 걸터 앉아 연주를 들었다.
무대위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언젠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보러 혼자서 시청에 있는 극장에 가 앉아있던 생각이 났다.
그때 아마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한없이 자유로운 대지와 억제할 수 없는 피가 만들어내던...
쭈글거리는 손 밑의 음악들이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감고 영화를 듣다가 그냥 울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마푸토의 작은 공연장 한 모서리에 앉아있는 내게 그때의 공기를 전달해준 건...나이든 밴드의 초라한 외모였는지..감히 판단 할 수 없는 그 음악의 아름다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어떤 향수가 가슴깊이 밀려왔다
벤의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는, 원로 밴드의 멤버중 동생은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였지만,
통제불능의 알콜중독 때문에 황금토끼들을 놓쳐버리고...통증따위는 마비시킨채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절둑거리는 다리에 아주 낡은 파란 체육복을 입은 그의 연주는
무척이나 설레는 것이었지만
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초점없는 눈이,
그 표정없는 얼굴과 손이 무척이나 슬펐다.
그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안길 곳 없이 걸어온 무수한 세월의 냉정함 만큼이나 무심하고 애달픈 고백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눈을 감고 벤치에 누워버렸다.
문득 눈을 떴을 때 천막 지붕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내비쳤다.
내 감정의 사치...저들에겐 필요없는 것인데.
슬퍼해봤자 위로가 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어...몸을 일으켜 하늘을 향해 걷기로 했다.
정원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들여다보다가
오후의 바람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의 냄새를 들이키다가
내 검은 일기장을 꺼낼 무렵...
멀리 들려 오는 기타 선율이 구름처럼 내 혈관을 감싸왔다.
다시 벅찬 감동이 밀려 오자..
나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좀 더 배워겠다는 생각을 하며 볼펜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