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0시 | 3시 | 6시 | 9시 | 12시 | 15시 | 18시 | 21시 |
---|---|---|---|---|---|---|---|---|
날씨 (℃) |
비25℃ | 비25℃ | 비25℃ | 비26℃ | 흐림27℃ | 흐림28℃ | 구름많음27℃ | 흐림25℃ |
강수확률 | 60% | 60% | 60% | 60% | 30% | 30% | 20% | 30% |
풍속 | 북풍12m/s | 남서풍8m/s | 북서풍5m/s | 북풍4m/s | 남서풍4m/s | 서풍4m/s | 남서풍3m/s | 남서풍1m/s |
습도 | 90% | 90% | 90% | 85% | 80% | 80% | 80% | 85% |
서천지역 오늘 시간대별의 날씨
내리막길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는데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0:32)
임도(10:34)
서천군 문산면 금복리에서 부여군 옥산면 신안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이다...여기서 참으로 많은 갈등이 생긴다...산행을 포기하고 하산을 해야하나 기왕 왔으니
계속 산행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옷은 다 젖어 버렸고하니 그냥 산행을 하기로 한다.
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가기로 한다
임도 우측 능선이 지맥길이다
시멘트 임도(10:38)
시멘트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산속에는 빗줄기가 더 굵어지는 느낌이다
못생긴 소나무를 만나고...
계속 비를 맞으면서도 우의를 입지 않았다.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옷이 젖기는 마찬가지일테고 오히려 비를 맞는게
더 시원한 것 같고, 다만 걱정되는 건 카메라와 스마트폰, 라디오 등 전자제품이 걱정이다
그리고 후에 감기가 문제인데...
갈림길(10:40)
안부(10:42)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0:44)
능선 좌측 아랫쪽으로 밤나무밭이 보인다
솔잎이 푹신한 능선길을 걷는다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진다...그러나 짙은 박무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선답자들의 흔적을 만나고...
소나무숲이 나오건만 등로는 잡목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원진지맥의 母山인 원진산이 나온다
원진산 정상 2등 삼각점(△서천22 / 1986 복구)
원진산(遠進山:270m:10:55)
서천군 문산면 금복리와 부여군 옥산면 신안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맥꾼들 이외는 찿는 사람들이
없는지 잡목과 풀만 무성한 채 2등 삼각점이 외롭게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 산 아래서 길산천(吉山川 )이
발원하여 천방산 자락을 따라 흐르다가 서천군 문산면(文山面) 지원리와 시초면(時草面)의 경계지점에서
지방2급하천이 시작되며, 이후 서천군을 관통하면서 남류하다가 서천군 마서면(馬西面)에서
금강으로 흘러든다.
길산천은 서천군 최대의 금강지류로서, 문산면·서천읍·마서면 등 7개 읍면이 길산천 유역에 속하며, 서천평야의
핵심적인 미곡 생산지대를 이룬다.
그러나 정작 원진지맥의 모산 역할을 하는 원진산의 유래는 서천군이나 부여군 어느 자료에서도
찿을 길이 없어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원진산에서 내려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좌측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나 무심코 걷다보면 알바하기 딱좋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1:00)
무명봉(11:04)
무명봉(11:06)
무명봉을 조금 지나니 밤나무단지가 나온다.
흔히들 밤(栗)하면 공주 정안밤을 연상하지만 공주와 인접한 부여에도 밤나무단지가 참으로 많다.
실제로는 부여가 충청남도 제1의 밤 생산지이라고 하는데 임야는 군 전체면적의 51.9%를 차지하며,
곳곳에 밤나무 단지가 많이 보인다
밤나무밭 상단부의 능선이 지맥길이다
밤나무 단지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밤나무 단지내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높은 습도로 인해 발생한 짙은 박무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밤나무밭 아랫쪽에는 옥산면 안서리 안동리 마을이 박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안동리는 안서리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날씨가 좋으면 북쪽의 옥산저수지 너머로 아미산과 비홍산, 장군봉, 월명산이 보일텐데 아쉽기만 하다
밤나무 단지 농로(11:15)
농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소나무잎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잡목을 헤치고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보인다
후답자들은 원칙을 고집하지 말고 비포장 도로로 내려 오시길...
도로(11:18)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에서 부여군 옥산면 안서리로 내려가는 도로로 옥산면소재지 가는 길이다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안서리(安西里)는 북쪽에 옥산 저수지가 있으며, 금천이 흐른다.
조선시대에는 하서면 지역으로 안서리였는데, 1914년 군폐합 시에 안서리로 개칭되었다.
1958년 수암리(秀岩里)에 있던 면사무소가 안서리로 옮겨와 면소재지가 되으며 자연마을로는
교촌(새탕), 안동리가 있는데 교촌은 안동리 서북쪽에 새로된 마을로 학교가 있어 붙여졌고,
안동리는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으론 예비군 훈련용으로 쓰이는 벙커도 보인다
묵은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진다...빗줄기 땜에 밥상을 펼치기는 뭣하고 하여
비를 맞으면서 베낭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 마시면 선 채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NO77 송전탑(11:35)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버섯들이 많이 보인다...이 넘은 덕다리 버섯같다
똑닥이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차서 그런지 사진이 뿌옇다
200.4봉(11:40)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고 여영님께서 걸어논 산패에는 202.2m로 적혀있다.
이곳 원진지맥은 그리 인기가 없는 지맥이라 그런지 맥길에 시그널이 별로 없고 길찿기가
난해한 곳이 많은 편이다...이렇게 왕창 걸어놓지 말고 중간.중간에 걸어 주었으면...
등로 아래에 있는 부여군 옥산면 내대리가 살짝 보인다
부여군 옥산면에 있는 내대리(內垈里)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대산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홍산군 하서면 지역이었다. 이후 차대리(車垈里), 내동(內洞), 소안동(巢安洞)을
병합하여 내동과 차대의 이름을 따서 내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차대리가 있다.
차대리는 차씨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비가 그치기 시작하는데 오늘도 구라청(기상청)의 오보에 완전히 새앙쥐가 된 느낌이다
등로에는 잣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물을 머금고 있는 잣나뭇잎
임도 합류점(11:45)
봉분이 땅바닥하게 붙어버린 묘지를 지나고...
임도 가운데서 요염한 자태로 산꾼을 유혹하는 자리공
비를 머금은 숲을 지나는데 등산화가 물을 먹었는지 자꾸만 질척거리고 비는 완전히 그친다
190봉(11:50)
190봉을 내려서니 밤나무밭이 나오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카메라 렌즈에 습기는 점점 차고 똑닥이 방수 카메라를 가져올 걸 후회스럽다
밤나무밭 윗쪽 능선을 따라서 간다
빛바랜 바랑산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계속되는 밤나무단지
172봉(11:58)
172봉 아래에는 최근에 조성한 듯한 풍천임공과 배부인 경주이씨 묘지가 있다.
이곳에서도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는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로 이어지는 넓고 뚜렸한 임도가 보이는데 지맥길은 좌측이다
묘지를 내려서 밤나무밭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밤나무 단지 우측 아래에는 일혜농원 지붕 건물이 보인다
송전탑을 바라 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고사리밭도 지나고...
못생긴 소나무 한 그루도 만난다.
NO80 송전탑(12:03)
무명봉(12:04)
무명봉을 넘어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슬슬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2:06)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
갈림길(12:08)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은곡리(恩谷里)의 모습
서천군 문산면에 있는 은곡리는 남쪽에 봉선저수지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이 있으며, 대부분 구릉지이다.
자연마을로는 감나뭇골, 은적굴(은적), 한실(대곡, 대곡리), 유산말 이 있다. 감나뭇골은 감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붙여졌으며, 은적굴은 전에 은적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 한실은 큰 골짜기가 있다 하
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산말은 마을부근에 버드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등로에 영지버섯 유생(幼生)들이 보인다
무명봉(12:15)
안부(12:18)
벌목지가 나오고...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고사리가 지천이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보이지 않는 등로 아래는 넘어진 고사목이 태클을 걸어대는
바람에 자꾸만 걸음이 느려지는데 여름철 산행은 피해야 할 듯 싶다
등로에서 바라본 문산면 은곡리 감나무골의 모습
감나뭇골은 감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의 이유
- 마종기 -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가 보인다
등로 아래에 있는 운봉김녕김공의 묘
무명봉(12:24)
벌목지 윗쪽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안부(12:35)
등로는 점점 거칠어진다
무명봉(12:37)
안부(12:38)
157.2봉(12:45)
157.2봉에서 거친 잡목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밤나무밭이 나온다
밤나무밭을 따라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밤나무밭을 지나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넓은 등로를 만난다
옴팍한 안부가 나오는데 준.희 선생이 이곳이 장구백이고개라는 산패를 붙혀놨다
장구백이 고개(12:55)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 은적마을에서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를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명의 유래를 알 길이 없으나 혹 고개가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닌지( 범여의 생각 中에서)
다시 밤나무 밭을 지나고...
무명봉(12:58)
봉우리 정상에는 벙커처럼 움푹파인 웅덩이가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움푹파인 임도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13:01)
옥산면 가덕리 차동소류지로 내려가는 도로인데 가덕리(加德里)의 북쪽에는 금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낮은 산이 있는데 대부분 구릉지이며, 세동소류지가 있다. 조선시대 홍산현 하서면 지역으로 노덕으로
불렸는데 1914년 군폐합 시 남면의 선서리(船西里) 일부를 병합하여 가덕리라 하고 부여군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덕리(갈때기, 노덕, 가덕), 진등(진동) 등이 있다. 가덕리는 갈대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고,
진등은 오양골 서쪽 긴 등성이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07)
맥길은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내려서는 길엔 맥산행의 大家들인 竹泉선생과 남양주 금곡님이 시그널이 보인다
묘지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오고...
3번째 묘지를 지난 뒤에야 등로로 내려선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는데 절개지가 나오고 철책 바리게이트가
등로를 막고있어 한참을 우회를 한 다음에야 도로로 내려선다
611번 지방도(13:18)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에서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로 연결하는 611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이곳을 장구백이 고개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611번 지방도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 쪽의 모습
서래야라는 표시판이 보이는데 저 글귀를 보면서 산의 지명을 맘대로 지어서 맥산꾼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서래야 박건석님이 생각나는데 그 분이 이 지역 출신인가 보다
서래야(舒來野)’는 서천군의 농산물 브랜드로 ‘서천에서 온 좋은 농산물’이란 뜻이라고 한다
임도에서 오르니 개망초가 길을 막고 있고 조금을 지나니 수목장을 한 소나무가 있다.
양주조공 수목장(13:20)
점심시간(13:20~13:45)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양주조공 수목장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마침 바람도 불어오고 옷 다 젖었기에 잠깐이지만 옷을 벗어
스틱에 널어놓고 점심을 먹는다...점심이라봐야 밥을 물에 말아 오이지 하나 뿐이지만...
식사를 마치고 숲속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진주강공 가족 묘지가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간다
진주강공 묘(14:00)
등로는 거칠어지고 보이지도 않는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07)
무명봉을 내려서니...묘지가 나온다
묘지(14:09)
언 넘의 새끼야!...망자의 밥상위에다가 똥을 싼 놈이...
잡목을 헤치며 등로를 이어간다
수풀을 헤치며 절개지 아래로 내려간다
진등고개(14:14)
서천군 마산면 나궁리 은적골 동쪽에 있는 긴 고개로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
진등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613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서천군 마산면과
부여군 옥산면의 표지가 있다... 등성이가 긴 고개라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진등고개 서천쪽의 모습
진등고개 부여쪽의 모습
부여쪽으로 간 다음에...
잡목을 헤치고 밤나무밭으로 올라간다
올해 처음으로 앵초꽃을 만난다.
도로가에 있는 산딸기로 원기를 보충한다
밤나무밭을 올라서서 이동통신탑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SK(지산)이동통신탑(14:24)
진등고개에서 한참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고도를 높이는데...
여영님의 격려 메시지가 나오는데 급경사의 오르막이 나온다는 뜻이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올라간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가덕터널 위(14:30)
이곳 아래로 서천에서 공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의 가덕터널이 지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차량소리가 심하게 들린다
177.6봉(14:35)
177.6봉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노고산 갈림길(14:38)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직진으로는 노고산으로 가는 길이다.
내 생전에 다시 이곳을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노고산을 갔다 오기로 한다
이곳부터는 남쪽은 서천군 마산면에서 부여군 충화면으로 북쪽은 옥산면에서
남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남.북이 온전히 부여군으로 들어선다
서낭당(14:45)
NO3 송전탑(14:53)
베낭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취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멧돼지 2마리가 열심히 땅을 파헤치고 있다가 음악소리에 도망을 간다
얼마나 놀랬는지 가슴이 철렁한다
이게 뭔 짓거리여!
돈을 받고 일을 했으면 마무리도 깔끔하게 해놔야지
어지럽게 널려있는 벌목에다 먹고 버린 쓰레기 과자 봉지까지...나쁜 쉬키들
180.5봉(14:57)
서래야 박건석님은 180.5봉을 작은 노고산이 코팅지를 붙혀놨다
노고산 오르는 길
노고산 정상에 도착한다
노고산 정상의 모습
노고산 정상 삼각점(△한산301 / 1997복구)
노고산(老姑山:229.3m:15:05)
서천군 마산면 나궁리와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등삼각점과
주위의 전망은 좋은 편이며 지명의 유래는 산 정상부에 있는 바위가 허리굽은 할머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려졌다는 설과 암벽 아래에 동굴이 있는데 마음씨 고약한 며느리가 남편 몰래 늙은 시어머니를
이곳에서 고려장(高麗葬: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일부 민간 풍속) 을
한데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일명 꼬라부랑산이라 불리는 노고산은 주변이 야산으로 이루어져 동으로는 성흥산성과 계룡산이
남으로는 금강 하구와 장항, 서쪽으로는 천방산과 성주산, 북쪽으로는 칠갑산과 부여읍내가 조망된다
주변 지명이 전장말(戰場~:전쟁을 준비했거나 전쟁을 벌였다는 뜻)과 고래기(고려기(高麗基:고려군이
터를 잡고 있었다는 뜻), 군간리(軍干里: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는 설),
장수고개(將
나뭇가지 사이로 좌측에 마가산이 아련히 보인다
노고산에서 천등산, 와우산, 월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노고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려 했으나 비에젖은 몰골이
너무 초라해 베낭으로 대신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갈림길(15:15)
뚜렷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가 보이고 그 아래의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은 지도상 수도산기도원이다
묘지 뒷쪽의 능선길
안부(15:18)
준.희 선생님의 빛바랜 표지기...지나가신지가 오랜된 듯...
등로는 상당히 난해하다...좌측의 묘지 상단으로 걷는다
묘지에서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후손들이 관리를 안하는지 묵은 묘지가 보인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최근에는 맥꾼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낙엽만 수북하다
이런곳은 감각적으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묘지가 있는지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밀양손공 묘(15:28)
밀양손공의 묘지를 지나니 잘 관리된 묘지가 있는 곳이 나온다
묘지 아래 좌측에는 굉장히 큰 태양광 시설물이 보이고...
묘지 위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밤나무밭 좌측이 맥길이나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 밤나무밭 가장자리로 내려간다
밤나무밭을 내려가니...
콩밭이 나오고 울타리를 넘어 도로로 내려선다
마가산 고개(15:37)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 오양마을에서 충화면 지석리 갈망동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데 교통량은 거의 없는 편이다...일반적으로 맥산꾼들은 이곳을 마가산 고개라
부르는데 지리원 지도에는 세동소류지 남쪽 골짜기를 마가산 고개라 표기하고 있고.
영진지도에는 조금을 더 가면 나오는시멘트 안부를 마가산 고개라고 표기해놨다.
또 고개 좌측 아래의 오양동 지명을 빌려와서 오양동 고개라고 부르는 자료도 간간히 보인다
마가산 고개에서 바라본 옥산면 금천리(金川里) 방향의 모습
금천리는 마을 북쪽으로 금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배다리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고려시대 말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조선시대에는 홍산군 남면의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사곡리(社谷里)와 선서리, 선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라 하고 부여군 남면에
편입하였고 자연마을로는 사당골, 안터, 큰뜸 마을 등이 있다. 사당골 마을은 사당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안터 마을은 기러기가 앉은 형국과 같다 해서 안터 마을이라 불린다.
큰뜸 마을은 금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우측 능선이 지맥길이나 축대가 너무 높아 숏다리로는 도저히 오를수가 없어서 묘지로 오르는 길로 간다
맥길은 우측 능선이나 그냥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마가산 갈림길(15:42)
숲속에 묻혀버린 밀양박공과 배부인 풍양조씨 묘비가 보인다
마가산(魔姑山:128.5m:15:45)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와 충화면 지석리, 남면 대선리에 걸쳐있는 산이지만
아무런 볼품도 없고 그저 그런 밋밋하여 일반인들이 거의 찿지 않는 산이다
지맥길에도 약간 벗어나 있어서 맥산꾼들도 그냥 지나치는 수가 많은 산이지만
마가산의 선녀에 대한 설화와 유래가 전해지는 산이다
이 산을 마가산 또는 며느리산으로 부르고, 조금전에 지나온 노고산을 꼬부랑산 또는
시어머니산으로 부르는데 마가산 선녀에 대한 전해오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660년에 백제가 망하고 여기저기서 백제부흥운동이 시작되었을 시기에 백제국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란 시어머니 선녀가 처음 시집간 곳은 부여 두리 서씨내 집안이었다.
낭군은 주로 사비성에서 살았으며 그럭 저럭 시집온 지 다음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 후 20년이
흐른 다음 며느리를 얻었다...며느리는 대산땅 비홍산 서쪽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들은 커서 벼슬길에 올라 청남담로(靑南擔魯) 벼슬에 있을 때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 왔다.
아들은 말을 잘 타는 아내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 싸우다가 백마강 건너 이목치산성(梨木峙山城) 에서
군사를 모았다...그러나 다시 나당군에게 몰려 가림성에 가서 군사를 모아 적과 싸웠으나 패전하고
부여 두리에 들려 어머니를 모시고 주류성으로 갔다.
몇번의 싸움에 실패한 아들은 주류성에 갔다가 어머니와 아내를 남기고 군사를 이끈 채 사비성 가까이
육박해 들어갔다...그래서 그는 사비성의 당나라 군사가 약세인 것을 알고 뗏목을 타고 쳐들어 갔으나
중과부적으로 피살되고 말았다...아들의 시체는 당나라 군사들에 의해 백마강에 버려졌다.
그 시체가 한달이 되어 규암진(현 부여군 규암면 백제대교 200m 지점에 있는 나루터)에서 달려온
아내와 어머니에 의해 발견되었다...아들의 시체를 보고 아내보다 어머니가 몸서리를 쳤다.
어머니는 타고난 미모를 자랑하듯 곱게 단장을 하고 며느리에게도 단장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곱게 차려입고 규암진에서 나룻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갔다.
사비성에 이르러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궁중으로 들어갔으며 당나라 장수들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그녀들 모녀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복수심에서 밤이되면
잠자리를 원하는 장수들과 침실에 들어가서는 몰래 한 사람씩 목을 찔렀다.
혼란중에 누가 죽인줄도 모르고 장수들은 하룻밤에 두 사람씩 죽어 자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불빛이 가물가물 조는 밤에 장수들을 유인하여 장수의 침실에
들어가서 목을 찌르다가 그만 억쎈 장수의 손에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살해되어 시체는 백마강에 버려졌다.
백제의 명문으로 태어난 한 가족은 이렇게 해서 종말을 고했다.
그녀들의 시체가 백마강에 버려졌지만 시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당나라
군사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돌아갔을 때 백마강의 이무기는 용이되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올라갈 때 두 고부의 몸을 등에 얹고 올라갔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옥황상제의 부름과 혜택으로
왕궁밖의 아늑한 집에 살면서 가끔 내려와 땅에서 살기도 했었다.
시어머니 선녀는 부여 두리에서 가까운 노고산에 자주 내려왔으며, 며느리 선녀는
비홍산이 보이는 마가산에 내려왔으는 말을 타고 노고산까지 가서 시어머니 선녀와
놀다가 하늘로 올라 갔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향한다
묘지(15:50)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잡목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는데...
여름에는 절대 와서는 안될 곳인듯 하다
임도(16:05)
천신만고의 개고생 끝에 시멘트 도로를 내려서니 우측으로 조금전에 마가산
고개에서 지나온 도로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 지석리를 지나가고 있으며 임도
맞은 숲에는 폐가가 보이는데 영진지도에는 이곳을 마가산 고개라고 한다
임도 옆에는 지석리를 관통하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부여군 충화면에 있는 지석리(支石里)는 마을이 언덕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며, 백제시대에는 대산현의 영향을 받았으나 차츰 임천권(林川圈)에 속해서
고려시대부터는 완전히 임천문화권으로 들어갔다.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팔충면의 지역으로 마을에
고인돌이 있으므로 고인돌, 괸돌 또는 지석이라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지석리(上支石里)와 하지석리(下支石里)를 병합하여 지석리라 하고
부여군 충화면에 편입하였고 행정구역으로는 지석 1,2,3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갈마동, 범황골, 하지가
있으며, 갈마동은 마가산 밑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범황골은 전에 범황사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는 지석리 아래쪽이 된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지석리 도로변에는 고인돌 3기가 있는데 청동시대의
지석묘로 추정된다.
임도 맞은편에 있는 廢家의 모습
폐가 옆으로 올라서니...
뭘하려는지 마구 파헤쳐 있는 황토길 능선이 나온다.
마가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워낙 개고생을 한 탓인지 온 몸이 쓰리고 피가 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여군 남면 신홍리(新鴻里)의 모습
신홍리 북쪽으로 금천이 흐르고 천 주변에 남면평야가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대산현, 고려시대에는 홍산현,
조선시대에는 홍산군 남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내서리, 신기리, 내동리 일부와
상동면의 삼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홍리라 하고 부여군 남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범말(호동, 호동리, 내서, 내서리), 새터(신기, 신기리)가 있으며, 범말은 신홍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산이 범이 엎드리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효종7년(1656)에 건립된 삽다리 건립비가 남아있다.
또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잡목의 터널을 개구멍 통과하듯 낮은 포복으로 겨우 빠져 나온다
안부가 나오고...
뿌려진 전신주의 흔적도 보이고...
간간히 선답자의 흔적도 보인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측량을 하고 박아논 지적도근점도 보인다
묘지 윗쪽 능선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 다음에... 묘지가 나오는 곳을 지난다
묘지위에서 바라본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갈마동의 모습
갈마동은 마가산 밑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무명봉(16:27)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한다
차돌바위 3개가 있는 곳으로 올라 선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조금전에 개고생을 한 걸 보상받는 느낌인 듯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묘지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148.2봉을 향해 올라간다
148.2봉(16:40)
148.2봉을 지나서 가니...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밤나무 단지가 나온다
밤나무 단지 윗쪽의 능선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여군 남면 내곡리(內谷里)의 모습
내곡리는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북쪽으로 금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위에 구룡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마을 남쪽에는 유곡들과 남면평야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산군 남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진곡리(眞谷里)와 내동리,
회서리의 각 일부와 상동면의 삼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동과 진곡의 이름을 따서 내곡리라 하고
부여군 남면에 편입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내동, 안골, 참실 마을 등이 있다. 내동 마을은 참실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며, 안골 마을은 참실 남쪽 골짜기 안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실 마을은 내곡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단양이씨인 이지시(李之詩),
이지례(李之禮) 형제를 제향한 동절사(同節祠)가 있다.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온다
151.2봉(16:48)
151.2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동 소류지와 내동마을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들판 너머로 청양의 진산인 칠갑산이 보이는 곳이련만 박무로 인해 아쉽기만 하다
십자안부(16:53)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벌목지 끄트머리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뚜렸하다
오르막을 올라서니...
벌목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충화면 지석리가 보이고 지나온 노고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170봉(17:02)
등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 우측 아랫쪽의 모습
174봉(17:08)
벌목지에서 좌측의 임도로 향한다
관리가 안된 묘지를 2군데나 지난다
기독교인 박성배 묘(17:10)
또 다시 등로는 거칠어 지고...
밤나무 단지가 나오는데...
눈에 잘 안보이는 낡은 철조망이 산꾼을 괴롭힌다
또 다시 잡목속에 들어갔다가...
밤나무 단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16번 군도가 지나가는 바랑고개로 내려선다
바랑고개(17:23)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와 남면 회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6번 군도가
지나가며 고개 주변에는 밤나무 단지와 호도나무 단지가 많이 보인다.
바랑고개는 바라뫼 고개의 와전(訛傳)으로 바라뫼는 앞을 내다 본다는 의미이다.
구룡평야의
넓게 펼쳐진 앞을 속 시원히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랑재에서 산행을 종료하다(17:25)
아침부터 비를 맞아 옷이 젖은데다가 높은 습도로 인하여 옷과 베낭, 내 몸뚱아리에서 악취가 진동을 한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좌측으로 내려가 충화면 소재지에서 버스를 타고 부여로 갈 예정이다
남면에서 충화쪽으로 간간히 차량들이 지나가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히치할 자신이 없다
바랑재 고개 아래로 내려서는데 고개 우측의 암벽에다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하긴 이곳 근처에는 계벽장군을 비롯한 8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인 팔충사(八忠祠)가 있는 곳이다
팔충사(부여 향토유적 제25호)는 백제의 삼충신인은
백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비운의 무장(武
계백(階伯)장군을 비롯한 흥수(興首), 성충(成忠)과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梧和尙), 곡나진수(谷那晋首), 억례복유(億禮福留) 등 8명의 충신과 황산벌에서 항전한
백제의 5천 결사대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
이곳 충화면에 있는 천등산(天燈山)은 계백장군이 태어나 무예를 수련하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산이다.
천등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한다.
‘옛날 백제의 궁성(부여)에서 의자왕이 밤마다 서편 하늘에 매달린 듯이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이상하다고 여기다가 하루는 신하들을 보내 살피고 오도록 했다. 신하들이 말을 달려 이곳 천등산에
이르러 등불이 반짝이는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건장하고 잘 생긴
장사 한 사람이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를 옆에 데리고 앉아서 글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의자왕은 곧 이 장사를 불러들여 장군으로 삼았으니 이가 바로 계백장군이다.
의자왕은 이후 하늘에 등불이 매달린 듯 보였다는 연유로 해서 이 산에 천등산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충화 초등학교가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인다
마침 RV 차량이 내려오기에 염치 불구하고 손을 들었더니만 차를 세우 주는데
기사분은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다.
비를 맞아서 냄새도 나고 몰골이 이렇다고 하면서 부여를 가야하는데 이 아래에
있는 초등학교 앞 정류장까지만 태워 달라고 하니 기꺼이 타라고 한다
돈이 없어 걸어 다니는 貧寒한 산꾼을 태워준 이 공덕...세세생생 福받을깁니다
충화초교앞 버스 정류장(17:55)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내리니 버스 정류장에는 나이든 여자 2분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17시 30분에 와야 할 버스가 아직도 안 온다고 투덜거린다...그래도 어찌하리 교통비를
줄이려면 마냥 버스를 기다리는 수 밖에...그런데 저 앞에서 빈 택시 한대가 내려오는게 아닌가.
택시를 세워서 흥정을 한다...나이든 여자분들에게 합승을 하자고 제의하니 단번에 OK한다
이 분들은 대전에서 오신분들이라고 하는데...충화면에서 부여터미널까지 택시비가 21,000원이
나오는데 친구인듯한 여자 2분이 15,000원을 내면서 나보고 6,000원을 내라고 한다
부여터미널(18:20)
택시에서 내려 여인들과 작별을 하고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터미널 옆 시장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한다.
개업한 지가 얼마 안 되었는지 시설이 참으로 깨끗하다
국밥과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샤워를 한 다음에
국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고 입가심으로 션한 맥주까지 한병 마시고 나니 살 것만 같다
새로 생긴 식당이라 그런지 화장실이 아주 깔끔하고 샤워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식당을 나와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 5분전이다
18시 50분에 부여를 출발하여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이다
오랫만에 우중 산행을 해본다...맥주를 먹은 탓인지 배는 아프고 감기가
오려나 머리가 띵하게 아파온다...현재의 컨디션은 감기에 걸리면 절대 안되는데 걱정이다
참으로 힘들게 한 구간을 끝냈다는 짜릿한 희열...이 맛은 맥산꾼 아니면 모르제
나머지 2구간은 아무래도 잡목의 저항이 덜한 겨울에나 해야할 듯 싶다
첫댓글 그렇게 다니시면 감기걸려유. 건강하세요.
감사...감기에 걸려 개고생하고 있습니다...오늘도 병원에서 링겔 맞고 왔는데
수술이후에 몸뚱아리 회복은 더디고 가야할 곳은 지천이고 이 짓거리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목하 고민중
금부기하고 금북기맥이후 다시는 안가는 곳입니다.백월산 자락에서갈라지는 지맥길이 ...길이 있는것도 신기하네요 ㅎㅎ 비오는날 살살 댕기십시요 ㅎㅎ
금북정맥에 딸린 12개 지맥중 10개 끝내고 원진, 무성지맥만 남았는데 고도는 높지 않지만
인기없는 곳이라 길도 없고, 인적도 드물고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 개고생했습니다.
그나저나 후배 산꾼들이 금부기 무박으로 하신다는데 걱정이네요
이런 곳은 개인적으로 겨울이 적격인듯 싶네요...가을철엔 밤나무단지가
맥길에 많이있어 수확기에는 마찰이 있을 둣 하네요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요
멋지신산님 ~~~~이시어요
죽다가 살아났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