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
1) 지하철을 탔다. 옆자리에서 수수한 차림새의 여인네가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한 여인이 부러움과 험담이 섞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놈의 여편네 욕심이 너무 과해, 열쇠 세 개 면 됐지, 뭘 또 더 바라고 배짱을 튕기고 있는지 몰라?’ ‘하기야 고생 고생해서 아들 하나 고시 합격 시켰으니 그럴 만도 하지.”다른 여인이 맞장구를 쳤다.
2) 요즘 결혼은 당사자의 됨됨이나 서로의 사랑보다 조건과 배경이 우선이다. 남자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재력이 탄탄해야 한다. 여자도 거기에 걸맞으려면 부모를 잘 만나고 미모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때 잘 나가는 신랑감과 결혼 조건으로 여자는 열쇠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열쇠, 자동차 열쇠’ 또 하나는 뭐더라?' 생각타가 내 지난날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3) 군에서 제대를 하고 한 달 여를 친구들과 친척집을 돌며 무위도식하던 때였다. 의형(義兄)으로 맺은 시골집에 머물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느닷없이 선을 보라고 하셨다. 나는 무일푼의 백수로 준비된 신랑감이 아니라 사양 했다. 상대 쪽에서는 선을 보고 서로 맞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게 아니냐며 거듭 제의를 했다. 그래도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은 상처 아닌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처녀는 내 초등학교 동기 여동생이었다. 선을 보지 않은 것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도시로 나와 직장을 가졌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출가하지 않은 여동생을 부양해야하는 나의 입장으로는 결혼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노총각 국수 맛 언제 보여 주겠냐고 들 심심찮게 재촉을 했다. 그렇다고 아무 처녀나 사귀거나 선을 본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나 스스로 결혼의 절실함을 느낄 여유도 없었고.
5) 어느 날 어머니께서 조용히 불러 선을 보라고 하셨다. 선은 웬 선이냐니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처녀라고 했다. 수 년 전부터 옆집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뒷바라지 하고 있는 할머니가 질녀를 소개한 것이다. 그분은 어머니와 형님 동생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사이로 나도 안면이 있었다. 사진도 한 번 보지 않은 처녀에게 서울까지 선을 보러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당부를 거절할 수 없었다.
6) 어는 봄날, 서울 가는 첫 기차를 탔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니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스물아홉의 나이는 당시로서는 결혼 적령기가 넘었다, 거기에다 신랑감으로서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선을 보자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처녀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까지 미쳤다. 만약 선을 보고 나서 상대가 내 마음에 미흡할 경우에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뒤척이며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7) 만나자고 한 영등포역에 내렸다. 서울행이 서툴러서 대합실에서 쭈뼛쭈뼛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아저씨, 선보러 오셨지요?” 하고 다가왔다.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도 미처 하기 전에 “이리 따라 오세요” 라면서 앞서 걸었다. 대합실 한쪽에 처녀가 얌전하게 서 있는 앞으로 가자 그녀는 “오시느라 고생 했어요”라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얼핏 건너다본 처녀는 고와 보였다. 여학생은 저희 집으로 가자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8) 영등포역에서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있었다. 그녀를 따라 응접실에 들어서자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남녀노소의 시선이 일제히 쏠려왔다. 그녀의 고모부 되는 분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지만 시선 둘 곳이 마땅찮아 고개를 숙이고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음료수와 과일을 내 놓았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9) 오십대의 고모부는 시사 상식과 한학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주고 받고나서 고모부가 질녀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제야 몇 사람 건너 앉아 있는 그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녀와 마주치는 시선을 피하면서 “좋습니다”라고 엉겁결에 대답을 했다. 고모부는 자네 대답을 들었으니 우리끼리 의논을 해 보겠다기에 밖으로 나왔다. 발길이 긴 담을 따라 이어진 화단 앞으로 향했다. 한창 망울을 터뜨리고 피어나는 꽃들이 봄을 다투고 있었다.
10) 잠시 후 거실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나왔다. 앞에 와서 잠시 머뭇거리더니만 남산에 가보았느냐고 묻고는 안내해도 괜찮겠느냐는 말에 좋다고 했다. 다시 거실로 들어가 엉거주춤 인사를 하였다. 안내한 여학생이 쌕 웃으면서 마당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그녀를 따라 남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1) 싱그러운 봄기운이 피어오르는 남산의 숲을 나란히 걸었다. 가족과 직장생활에 대해 의례적으로 주고받았다. 그녀는 시골에 집을 떠나 고모 댁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종교를 가졌냐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화제가 소설과 영화에 이르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얼마를 걷고 나서 벤치에 앉아 그녀를 자세하게 바로 보았다. 동그랗고 큰 눈에다 얼굴이 발그레한 그녀는 고향 뒷산에 활짝 피어난 참꽃이 떠오르는 미모였다.
12) 내려오는 길은 서울역 쪽으로 잡았다. 점심을 먹자면서 눈에 띄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권하는 그녀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했다. 그녀를 앞에 두고 혼자서 자장면을 먹으며 떨리는 젓가락질로 음식 먹는 선까지 보였다. 대합실 개찰구 앞에서 그녀와 작별을 했다. 하행선 열차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등을 기대니 긴장이 풀리고 몸은 나른한데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13) 그날이 내 생에 운명의 하루였다. 나중에 들으니 처 백모가 나도 모르게 보내 준 내 사진을 그 쪽에서 돌려 보았으니 선을 보러 간 것이 아니고, 보이러 간 것이었다. 영등포역이 첫 관문이었다. 그 날 교복 입은 처제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나는 역 구내를 헤매다가 돌아와야만 했었다. 자신의 신분은 베일에 가려놓고 나를 떠 본 것을 세월이 지난 뒤에야 알았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14)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을 본 여인이 아내이다. 우리는 인륜지대사라는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건이나 배경은 그다지 따지지 않았다. 서로 지나온 환경은 달라도 지향점이 비슷하여 한 지붕 아래서 같은 꿈을 꾸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첫댓글 부부는 다 인연따라 만나는것 같습니다. 한번 보고도 부부가 된것을 보면 천생연분이 아닐까요.^^
댓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