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38] `감각적인 분할`의 건축가 김현수(下)
매일경제 2022.08.05
[효효 아키텍트-138] 경남 통영의 이타라운지는 성악가인 건축주가 카페와 숙박 시설(레지던시)을 겸하면서도 공연장의 용도로 주문했다. 통영의 대표적인 문화 거점을 만들겠다는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통영 이타라운지.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언덕에 자리 잡은 대지, 중정 위쪽에서는 빛을 받아 떨어지는 그림자의 형상이 눈에 띄지만, 중정 가운데부터 바닥까지는 그림자 자체의 농담(濃淡)이 느껴진다. 이러한 차이는 중정을 에워싼 1, 2층 곡면 벽의 호(弧)와 지하층 벽면의 호가 미세하게 틀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더욱 강조된다. <남수현>
통영 이타라운지 내부 중점.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빛은 3D 모델링으로 시간별로 계산하기도 하지만 모형을 만들어 건축적 단면의 개념을 검토하였다. 방문자 마다 빛을 느끼는 감각은 다르다. 실제 중정은 북측에 위치하여 지하 중정까지 직접 빛이 닿는 경우는 많지 않기에 중정의 큰 벽에 빛이 부딪혀 중정깊이 까지 반사되어 스며드는 모습을 기대하였다.
지형 전체적으로는 대지와 주변, 대지 내 경계를 고려했으며 복도를 포함한 공용 공간, 압력과 물의 삼투압을 이용해 일명 사이펀(siphon) 방식으로 커피 내리는 공간을 구분하였다. 고객들이 커피를 수령해서 이동, 머물도록 중정 계단을 만들었다. 중정을 통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빛은 태아가 어머니 배 속 양수에 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타라운지는 층마다 대지의 형상과 필요에 따라 외곽선과 내부의 선이 달라진다. 건물은 1, 2층에서 외부와 자유롭게 연결되고 모든 동선은 외부로 이어진다. 면의 접합과 겹침은 일정한 흐름을 유도하는 한편 흐름을 끊어 정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로변 입면에 사용된 전벽돌을 제외하고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했다. 유로폼에 후작업을 거쳐 매끈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질감의 표면을 구현했다.
김현수는 설계 의뢰를 받으면 가장 먼저 땅을 세심히 살핀 후에야 이소우의 건축 언어를 이입한다. 처음에는 건축주의 모든 요구를 받아 '씹어먹는다'. 거칠어도 모형을 다양하게 만들어 숨겨진 공간을 찾아낸다. 터와 공간이 가진 경계의 깊이와 감각적인 요소들을 고려한다. 그런 다음 사용자의 지각할 수 있는 경험들을 다양하게 시뮬레이션 해 본다.
김현수가 실무를 한 건축사사무소 핸드 플러스(hANd+) 김준성 대표에게 배운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건축가의 자세와 '건축가가 어떤 건축을 해 왔느냐가 중요하다'이다. 현상학적인 분석을 통해 시퀀스가 사용자의 감각을 일깨우도록 설계하는 법을 배웠다. 창원 턴어라운드(2020)와 점포주택인 창원의 올어라운드(2020)는 건축주가 동일하다.
창원 턴어라운드.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창원시 의창구 창이대로의 턴어라운드(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는 준주거지에 위치한 3층 근린시설이며, 대지는 상업적으로 활성화된 일명 가로수길에 인접한 대지 뒤편에 위치한다. 2층과 3층의 접근 편의성을 위하여 계획된 연속된 외부 계단은 옥상층까지 이어지며 주변 가로수길의 경관과 인지성을 얻기 위하여 건물의 입면은 인접도로가 아닌 반대편 가로수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형에 맞게 지어져 상업적 가치가 높아졌다. 가로수길은 도심에서 보기 드문 키 큰 메타세쿼이아 수종이 긴 축선을 가진 길의 가로수로 선택되었다. 메타세쿼이아는 보기에는 이국적이나 주민들은 강한 향과 상하수도 배관을 파괴하는 깊은 뿌리, 가을에 엄청난 양의 낙엽을 떨구는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올어라운드는 1층 근린생활시설, 2층 주택으로 가로수길과 가로로 접해있다.
창원 올어라운드.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올어라운드는 톤앤톤 배색으로 가로수길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하였다. 전면 테라스를 단면 및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였다. 전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공간적 압도감을 주지 않기 위해 건물은 계단식으로 형성하였고 각층에 테라스를 조성하였다. 노출 콘크리트와 가로와 병행한 전면 통창을 특징으로 하는 카페이다. 턴어라운드와 올어라운드는 가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가 극명하다.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주택(2021)의 건축적 언어는 궁극적으로는 에센드와 같다. 모곡리 주택은 경계에 있다. 산자락 아래 경사지에 자리 잡은 마을과 그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밀집시켜 만든 주택개발 지역 경계에 있다. 땅은 단차를 가진 필지 두 개를 합하였다. 불과 30여 분 거리의 창원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누구나 꿈꾸는 보편적 전원주택을 바랐다.
경남 함안 모곡리 주택.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주택에 도착한 이는 다른 질감을 가진 콘크리트 벽의 분절, 높낮이를 조절한 담장을 돌아 현관에 들어선다. 건축가들은 남향을 향해 긴 복도를 배치하고 복도의 뒤편으로 거실과 주방, 침실을 배치했다. 복도의 양쪽으로는 세 개의 작은 실(室)과 외부 공간을 교차했고, 뒤편으로는 거실을 중심으로 두 개의 중정을 배치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켜켜이 중첩된 공간들로 내외부가 전환된 듯한 느낌이 든다. 경계는 유동성을 지닌 영역 설정이다.
김현수의 건축은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을 생각하게 한다. 칸의 건축철학은 형태-질서-디자인(Form-Order-Design), 서비스 공간(Servant and Served Space), 침묵과 빛(Silence and Light)이 핵심 개념이다. 공간의 구조는 빛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생명력 있는 자연광의 공간만이 진정한 공간이다. 칸은 "평면은 방의 사회다. 방은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현수는 이소우 건축사사무소를 안영주 건축가와 공동 대표 체제로 유지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가 전문화되면 해당 분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양한 건축을 하기 위해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각종 공모전 참여와 지역 프로젝트 수주를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김현수는 스위스 바젤의 헤르조그&드뫼롱(HdM) 건축사무소 출신으로 서울대 교수를 거쳐 홍콩 중문대 교수로 간 피터 윈스턴 페레토(Peter Winston Ferretto) 건축가와 오랫동안 협업하였다.
김현수가 생각하는 협업의 성장 전략은 전폭적이고 그 스펙트럼이 넓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부산오페라하우스 국제공모, 서울 서소문 밖 역사 유적지 공모, 서울 세운상가 국제공모, 서울 남산 예장자락 현상공모, 순천예술광장 국제 공모 등이다. 이들은 각각 창원과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서울에서 공모전 위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프로젝트 초기 아이디어 도출부터 최종 도면 제출까지 페레토와는 각자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대표로서 협업하였다,
2016년 6월 순천시가 원도심 활성화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순천부읍성 관광자원화'의 국제 설계 경기 당선작을 발표했다. 해외 185팀, 국내 118팀 등 총 42개국 303개 팀이 참여했다. 1등에는 인도 studio MADE의 'The Hidden Cloister', 이소우건축사무소는 'Urban Threshold'로 3등을 차지하였다
프란시스코 사닌 심사위원장은 1등 당선작에 대해 "순천 원도심재생의 촉매제 및 랜드마크의 역할을 위한 역사 및 도시 맥락을 수용한 독창적 재해석으로 반지하의 회랑에 다양한 전시, 공연장과 광장을 중심으로 지하상가와 옥천을 연결했다"고 평가했다.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 / 사진 제공 = 박영채 작가
발주처인 순천시는 이소우건축사사무소가 3등으로 당선되어 참여한 국내 건축사사무소 중에 가장 높은 순위였고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을 고려하여 당선자와 협업을 제안하였다 인도팀은 협업에 동의하고 2016 9월부터 2021년 7월 사용승인때까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설계안을 함께 발전시켰다.
공모지침에서는 순천부를 철거하는 방침이었으나 당선작 발표 후 공청회 등을 거쳐 유지쪽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 발주처는 이를 감안하여 공사비를 증액하였다. 당선자인 인도팀은 변경사항을 모두 인지하고 그 사유에 대해서도 공감하여 가장 좋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였다.
생태 도시 순천의 정체성을 지키면 좋겠다는 방향이 정해졌다. 디자인 감리까지 맡게 된 이소우는 도대체 설계안이 누구 거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니네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소우 입장에서는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경험함으로써 시공업체와의 관계, 대관 업무 역량을 키우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형태의 국제적 협업이든 거리낌이 없어졌다.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