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의 변
유옹 송창재
우리 마을에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다.
크기는 작아도 고기는 제법 많아서 산란철이 되면 텐트를 치고 밤낚시도 하고 차일을 치고 낚시 대회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낚시철만 되면 우리 마을 농사꾼들은 이 낚시터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좁은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차들 때문에 농기계들도 마음데로 다니기도 어려워서 면사무소에 건의를 하면 겨우 한다는 짓이 "낚시금지" 현수막을 거는 것뿐이다.
이런 것에 눈을 꿈적할 낚시꾼들이 아니고 오히려 오기를 부리는지 쓰레기도 가져가지 않아 봄갈이를 하려면 주변 환경정리를 먼저 해야만 경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곳이 무슨 마을의 멋진 홍보꺼리라도 되는 줄 아는지
시 의원이라는 나으리도 뒷짐이나 지고 낚시터 나들이를 하면서 명함을 나누어 주어 표를 얻어 오는데 급급할 뿐 농사 짓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뒷전이다.
동네 촌 사람들은 어차피 불평없는 자기 표이고 외부사람들은 자기가 시 의원에서 시장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니까 표를 얻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보다.
어차피 이 동네 표는 지 것이니까.
천만에!
나는 도시락 싸가지고 말릴 것이다.
이렇게 낚시 철이 지나고 나면, 간간히 할 일이 없는 실업자나 할멈한테 구박받아 슬픈 영감들만이 와서 소주 한 병 놓고 멸치 안주삼아 마시며 세월이나 낚는 곳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곳이 성시를 이루는 때가 있다.
추석 명절이다.
이 때는 물고기가 낚일 시절도 아닌데 시끌벅적하여 갑자기 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생겼을까 하고 슬슬 돌아다녀 보면
이곳 저곳에서 동서들 간의 소주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어차피 동서들은 물고기에는 애초에 관심 조차 없으니 물고기가 나오든 말든 상관이 없어 미끼 갈아 낄 필요도 없어서 빈 낚시만 담가놓고 소주 파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빈 바늘에 옆구리가 찔려 올라오는 넋빠진 촌피라미들도 있기는 하다.
그 동안 봄철 보리 벨 때나 사람을 보고 어쩌다 한 번씩이나 사람 구경을 하던 고기들이 웬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이 왔나 구경하러 나왔다가
술 먹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다가 옆구리가 찔린 것 일것이다.
이 놈은 워낙 시골 출신이라 그렇게 큰 소리를 처음 들어보니 왜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것도 낚시질해서 잡았다고, 마누라한테 자랑하려고 소주 사온 봉지에 싸서 가지고 간다.
그 한 마리를 무엇에 쓰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ㅎㅎ
경향 각지에 흩어져서 어쩌다 전화라도 한 번씩이나 하면 다행이던 동서들이,
시골이 친정인 마누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자기네 집에는 못 갈망정, 마누라의 청은 들어줘야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생활 철학을 터득한 지라 시골 처가에서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개 족보인 동서라고 해야 얼굴도 가물가물하여 다시 통성명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시골 처가에서 말똥거리며 얼굴만 보고 있기도 그러니 분위기 찾아 나오는 자연이 그래도 저수지이다.
남들이 보면 제법 운치 있고 의 좋은 동서 형제로도 보이고, 집에 있어 보았자 이것 저것 잔 심부름만 해야 하니 얼마나 멋진 회합의 장소이냐?
그래서 이쪽은 동서, 저쪽은 형제, 나중에는 완전히 집안 회합의 장소가 저수지 가의 나무 밑이니 그 시간에 물밑 붕어들은 웬 일인가 하고 당연히 기웃거릴 텐데,
그때 잡으면 제대로 잡겠지만 동서들은 붕어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고 서로 통성명하며 소주 잔을 돌리기에 바쁘다.
차라리 봄에도 이렇게 와서 술이나 한 잔씩 마시며 가족 단합과 우의를 다지는 가정의 날 행사나 하면 좋으련만, 낚시꾼들이 몰려와서 애꿎은 붕어 잡는다고 주변만 늘어놓고 가니...
제발 면에서는 봄에 차일이라도 쳐서 가정
주간이라도 만들어, 시의 귀감이 되는 선전용 면이라도 되면 “6시 내 고향”의 텔레비전에라도 나올 수 있을 텐데...
우리 시 의원은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가 보다.
한 사람씩 명함 주는 것은 돈도 들고 품도 드는 것이니, 그것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우리 동네는 “내가 의원으로서 파괴되어 가는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솔선하여 가정 주간을 만들어 외지 가족들의 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하면 멍청해도 폼은 날 텐데..
내가 이런 건설적인 안을 알려 주려고 해도, 국정에 전념하여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전화도 안 받고, 시 의회 홈페이지에 글을 써도 그런 것까지는 아예 보지도 않고....
그러면서 아무리 세금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돈 들여 뭐 하러 그런 자리는 만들어서 컴퓨터 관리자만 월급주고 앉혀놓고...
아, 국가적 차원에서 청년 실업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자리를 만들었구나!! ㅎㅎㅎㅎ
이제는 지 머리로 지 복 데로, 지 팔자 데로 살겠지~~.
우리 농민들이야 봄마다 낚시꾼들하고 싸우든 말든...
그래도 봄은 오지 말고, 차라리 동서들이라도 통성명 할 수 있는 추석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래도 가족의 화합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 ~~~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백번, 아니 천 번 옳으신 말씀이시다.
우리 피래미들도 정신차려야 옆구리 찔리지 않을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