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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There's Nothing, Missing In My Life
'내 삶에서 잃은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짜악.
넓디 넓은 숲 속에서 그다지 듣기 좋지 못한 소리가 울렸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 촉촉히 젖어있는 검붉은 머리를 가진 남자의 청결한 하얀 뺨에 새빨간 손자국이 생기고 있었다.
"변태."
그런 그를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란이 외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란의 단아한 이마에 혈관마크가 하나 뾰록- 하고 올라왔다.
"그런 게 아니라?"
란의 말에 그가 머뭇머뭇 거리다 담배 연기를 길게 뿜은 후 대답했다.
"실수였어."
란은 그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실수, 실수, 실수….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니, 하물며 실수라고 해도 사과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그렇게 해도 봐주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어떤 남자가 '실수'로 여자가 목욕하는 걸 보고 있단 말인가.
"실.수.라니."
"정말이라니까. 레어에 다녀오는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서..."
"변명하지 말아욧!!"
아주 빈약한 변명을 하고 있는 그에게 버럭- 소리지른 그녀는 계속 혼잣말로 쫑알쫑알 거렸다.
"그때 바스락 거린것도 스테드윅이지? 씽... 저런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변태, 저질, 호색한, 능구렁이, 제비, 너구리같은 섹마."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까지밖에 알아듣지 못한 스테드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필시, 좋은뜻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리둥절한 마음에 그는 담배를 한 번 더 깊이 들이쉰 후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아아악- 짜증나. 변태랑 한곳에 있기 싫은데!!"
중얼중얼 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다혈질적으로 버럭- 소리치자, 스테드윅이 황당하다는 듯, '시아, 미쳤어?'라고 중얼거렸다.
"실레스틴!!"
그런 그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는 아까 돌려보낸 실레스틴을 불렀다.
[네에~ 아니, 불렀어?]
"집에 가자. 태워줘."
...최상급 정령을 불러놓고 아주 당당하게 외치는 그녀였다. 성질더러운(?) 바람의 정령에게 저런 일을 시킨다면 바람의 정령은 버럭 화를 낼만도 하거늘, 실레스틴은 그냥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상했다. 허나- 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실레스틴 등 위에 올라 탄-실레스틴이 무겁다고 얼굴을 살짝 찌푸리자, 란이 '나 40kg밖에 안나가!!'라고 하면서 실레스틴을 한 대 때렸다-란이, 저택으로 향하면서 마지막으로 스테드윅에게 소리쳤다.
"변태로리콘씨- 담배나 끊어!!"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 그녀는 저 멀리로 사라졌다.
그걸 가만히 보던 스테드윅은 담배를 땅에 던지고 발로 밟은 후 비벼 담뱃불을 꺼버렸다.
"여전히 똑같네."
문득 하늘을 보던 그가 이렇게 속삭였다... 그랬다. 똑같았다.
6년 전과 똑같았다. 성격이고, 외모고, 매운 손까지 모두… 변한 건, 그녀의 눈동자 색과 가끔 보이는 슬픈 표정 뿐이었다.
담배. 스테드윅이 유희중에 꼭 들고다니는 물품이었다. 차가운 성격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았다- 아니, 누구와도 친해지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랬기에, 혼자 하는 유희에 심심함을 달랠 겸 담배를 꼭 들고다녔다. 그랬기에 언제나 그의 오른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혼자를 좋아하는 그는, 세상을 다 주어도 바꾸고 싶지 않은 여자를 만나버렸다. 그렇게… 그렇게 될 지는 아무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눈이 내리던 1월의 겨울이었다. 노아스가 웃는 표정 반, 슬픈 표정 반으로 안고 온, 긴 백금발에 따스한 백금색 눈동자를 귀엽게 굴리고 있던 여자였다. 아니, 여자- 라기 보다는 '소녀'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보이는 외모였건만….
어쨋건,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려니 했었지만 언제 부턴가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쾌활하고 발랄한 그 성격과 자신의 뒤를 쫄랑거리며 따라다니는 그 모습에 웬지 모르게 끌려버렸다.
그 이후로 약 9개월간의 짧은 만남이었다. 1월, 눈이 내리던 아침에 만난 그녀는 12월,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떠나가고 말았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었다. '담배 끊어'라고. 언제나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보며 했던 말이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등쌀에 담배를 끊었건만…, 근 6년의 끝없는 기다림 끝에, 그녀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게 되었다.
그가 문득 담배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보았다. 오른손에는 아직까지 선명한 인(印)이 남아있었다. 아니, 세달 전에 돌아온 인이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림은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였건만은…, 그 '기다림의 끝'이라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이를 보던 그의 입에 작은 한숨이 세나왔다…. 그 때 그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길이었는가….
그녀가 떠나기 전, 그는 그녀와 단 둘이 만날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전에는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져버렸다. 어이없이, 헤어지는 순간 그들이 했던 건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결국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지겨워요. 내 삶이, 내 운명이,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게. 모두 다 지겨워. 모든 걸 잊고, 평범한 인간으로 잠시동안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를, 그는 결국 잡지 못했다. 만약 그가 거기서 그녀를 잡았더라면 그때와 같은 슬픈 이별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이, 9개월 간의 짧은 만남과 6년간의 슬픈 이별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레스비아도 그런 짓을 벌이지 않았겠지."
하늘을 보던 그가 숲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전히,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기억하기조차 싫고, 그와 더불어 슬프기만 했던 '그 사건'…. 모든 드래곤들에게, 정령왕들에게까지 '금기'가 되어버린 '그 사건'….
어쩌면, 그는 이 숲을 보며 그녀의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비아'란 이름의 뜻은 다름아닌-
"…언제쯤이면, 이 기나긴 기다림이 끝날까. 언제쯤이면 모두들 예전으로 돌아올까."
-'숲'이었기에.
* * * * * *
쾅-
한편, 집으로 돌아온 란은 짜증이 극에 달해 맨 꼭대기층에 있는 자신의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뭐야…, 매너없이."
방 안에 들어가, 침대 위에 걸터 앉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릿하게,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얼굴과 자신이 아는 사람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둘은…, 상당히 많이 닮았다. 아니, 빼다 박아놓은 것 처럼 똑같이 생겼다.
"태훈아…."
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고싶었다. 다른 세상에 두고 온 사람들이.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사람들이….
갑자기 울적한 기분이 든 그녀는 테라스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어두웠고, 그와 대조되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감상하던 그녀는, 피곤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잠이들고 말았다.
그녀가 잠에 빠지자, 기다렸다는 듯 테라스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열린 테라스의 문 사이로 붉은 가루가 들어온 후 테라스의 문이 닫혔다. 붉은 가루는 꼭 사람처럼 '자아'를 가진 듯이, 란의 주위를 한두번 돌더니 그녀의 코와 입 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레스비아."
"네 입으로 내 이름을 담지 말란 말야-! 너도 지금 여기서 죽어야 해-!!"
정열스럽게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자신의 머리카락 만큼이나 붉은 거대한 불길 속에서 거칠게 소리쳤다.
"내가 왜?"
한 13~14살 정도로 보이는 백금발에 백금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그런 불길 속에서 순준무구하게 물었다. 웬지 모르게 후회하고 있는 듯 하는 건, 착각일까.
"왜? 꼴에 지 목숨은 아까운가봐? 이래서 정령들이란…."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어. 오히려, 사람의 목숨을 개미목숨 취급도 하지 않는 게 너희들이잖아?"
"웃기지 마-!"
"내가 할 소리야. 이번에 죽인 사람만 해도 벌써 몇 명이야? 당신, 이번에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난 당신의 살생을 줄인 것 뿐야."
어려보이는 여자가 꾀나 강경한 태도로 말하자, 화가 난 듯한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의 얼굴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졌다.
"네까짓게 뭔데 나의 살생을 줄여? 이런 상황이 나오기 전에 네가 가지고 있던 그 엘프만 내놓았으면 되었잖아!! 젠장, 나도 이런 짓을 하긴 싫었어!!"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당신이 복수한다고 해서, 당신의 자식이 돌아오기라도 해? 이래서 당신네들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어. '복수'라는 말 하에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
거침없이 딱딱 끊어 말하는 그녀의 말에, 붉은 머리의 여자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작은 방 안은 온통 깜깜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독한…, 너무나 지독한 고독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 몇 시간이 지났는지,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지독한 고독 속에서 따스하던 백금색의 눈이 서늘하게 식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가 거대한 성의 한 쪽에서 튀어나왓다. 그녀가 튀어나온 곳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웅장했던 성의 한 쪽 돌담은, 완벽하게 주저앉아 버렸다. 아니,'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형태조차 없었다.
'엠브로스… 저택?'
폭주해버린 정령의 기운덕에, 세상은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살려줘'라고 하며 애걸복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척박하게 갈라진 갈색 대지 위에서는 어딜 가든 불바다였다. 불꽃이 지옥의 염화처럼, 겁화처럼 타올랐으며 세상에는 지진이 끊이지 않았다. 그 위에서 죽는 사람이 수도 없었다. 사람뿐이 아니라, 이종족들도 수도 없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런 지옥의 한 가운데에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를 가지고 검을 휘두르는 소녀가 피를 뒤집어 쓴 채, 잔인하게 웃으며 서 있엇다.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사람에게 일말의 동정도 없이 잔인하게 했던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끝이 살짝 웨이브 진 길 실버블론드를 휘날리고, 서늘한 푸른눈을 가지고 있고, 키는 한 168cm정도로 보이는 여자…. 저 사람은 다름 아닌……
'……나……?'
내가 아니라고, 란은 발버둥을 쳤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보고 있는 란의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리고, 잔인하게 웃고 있는 소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소녀의 발 밑에 있는 대지의 색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곧……, 곧 그녀의 눈물이 떨어진 그 자리는 척박하게 갈라져버렸다. 모든 자연은 그녀를 거부해버렸다. 모든 자연은, 폭주해버린 그녀의 '기운'을 거부해버렸다.
…지옥이었다. 정령의 기운을 거부하는 자연…, 이보다 더한 지옥은 없었다.
심장이 미칠듯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미칠듯 슬퍼왔다.
'내가……, 아냐…….'
란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은 아닌데, 자신과 무척이나 닮은 소녀라. 그렇다면 설마……, 지금 저 소녀는….
'실…비아…?'
그녀의 말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의 한 가운데에 서서 잔인하게 웃으며 서 있는 소녀가 란을 돌아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거야, 란. 아니, 임아라고 해야해?'
그녀의 말에 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 사람은, 저기 있는 '실비아'는 '실비아'일 뿐, 이 곳에 있는 '란'과 닮은 사람일 뿐, 동일 인물은 아니였다. 어떻게 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임아'라는 이름은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에게 구속되지 않도록 버렸다. '임아'라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이런짓을 저지르지 않았어.'
그녀의 말에, '실비아'는 소림끼치도록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칼을 한번 세차게 흔들어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어떻게 확신해?'
어떻게 확신해? 어떻게? 어떻게? 확신…, 확….
'실비아'의 목소리가 란의 머릿속에 메아리쳐졌다. 싫다, 이런 것…. 괴로운 란의 심장이 다시 한 번 쿵쾅거렸다.
확신할 방법…. 자신은 이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대한민국에서 자라온 '선우란'이었다. 우연히, '실비아'와 닮게 태어나 이 곳에 끌려온 '선우란'이었다.
이런 짓을 저지른 건, 자신이 아닌 '실비아'였으며, 자신은 실비아가 아닌 선우란이었기에, 동일인물일 수는 없다.
'네 생각은 틀렸어.'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시린 푸른눈을 가지고 있는 소녀가 속삭인다. 거친 바람이, 그녀의 긴 백금발을 한바퀴 휘감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무감각한 얼굴로 그녀의 앞에 서서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을 무심하게 배어냈다.
사람의 입에서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피가 튀겼다. 잔인한 핏물이, 다시 한 번 튀겼다. 매우 붉고… 따뜻했다. 얘전 자신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넌 나고, 난 너야.'
'아냐.'
괴롭다는 듯 란이 울부짖는다. 이에, '실비아'의 얼굴에는 한층 더 미소가 짖어졌다.
'맞아.'
"아냐…."
지독히 힘이 들었다. 그러자, 현실에 있는 '란'의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란아, 왜 그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비아가 아닌 '란'이었다.
"난 란이야."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무감각하게 모든 걸 베어내고 있는 소녀의 등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자신도…, 자신도 익히 잘 알고있는 남자였다. 검붉은 머리에 검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까 자신과 온천에서 마추진….
'테드-.'
'실비아'가 구슬픈 어조로 그의 애칭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란, 그녀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의 구슬픈 어조와는 다르게, 얼굴에 핀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눈동자는 죽은 별빛처럼 생동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란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안."
쿵.
그가 슬프게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란은 자신의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미안해."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예리한 칼을 허리춤에서 뽑았다. 그리고….
"……미안해, 시아."
푸욱-
거침없는 동작으로, 그녀의 등 뒤를 찔렀다. 란도, '실비아'도 찔린 곳이 무척이나 아파왔지만 고통을 호소할 목소리가 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지옥같은 곳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던 소녀의 몸이 앞으로 서서히 쓰러졌다. '실비아'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란을 쳐다보았다.
'잘 봐둬. 너의 최후를…. 그리고….'
란은 무심코, 자신의 등 뒤를 더듬었다. 솟아오른 것이, 손 끝의 신경세포를 타고 대뇌까지 올라왔다. 다름아닌 이건….
'…흉터를.'
…흉터였다. 검상같은 흉터. 태어났을 때 부터 지금껏 있었던 흉터.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이 흉터.
'…거부하지 마.'
"…아나…."
'란아?'
란은 지금 다가오는 현실을 피하고 싶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허나,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거니와 자신의 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리 와서, 완벽한 '우리'가 되자.'
"아냐…."
'란아, 왜 그래?'
다시 한 번, 중얼거려 보지만 덮쳐오는 기운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덮쳐오는 거대한 기운이 그녀를 사슬처럼 옥죄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도 어떠한 게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는 시작햇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운을 다룰 줄 몰랐다.
"이런 건…, 이건 아냐…."
'어디 아파? 왜 그래?'
그녀의 중얼거림에, '실비아'는 다시 한 번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 결과는 다름아닌 네가 만들어 낸거야. 실비아 엠브로스.'
"아냐-!!!!!"
……
………
…………
"란아!!"
물빛 머리에 물빛 눈동자의 소녀, 해인이 외쳤다. 그제서야, 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을 뜬다. 점심쯤이 눈부신 햇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와, 그녀는 잠시 인상을 지푸렸다. 그 후, 주위를 둘러보다 해인의 걱정이 가득 담긴 눈과 마주쳤다.
"……."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란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들에게 있어 '실비아'의 대신이지, '란'이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실비아'란 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나, 자신이 죽을 때 까지 그럴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실비아'가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란아, 왜 그래?"
해인의 걱정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이런 목소리를 단 한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던가…. 란은 순간적으로 몰려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언니…."
바짝바짝 마른 입술에서, 평소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매우 낮고 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어디 아파?"
이렇게 말한 해인이 란의 이마를 집어보았다. …열이 상당히 높았다.
"…언니……."
란의 눈에서 쉬지않고 눈물이 떨어졌다. 두려웠다. 지금 이 모든 게 환상일까봐, 자신을 '걱정'해 준 사람들 모두 환영일까봐 그녀는 두렵기 시작했다.
"왜? 말해봐."
"나는… 여기서…."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해인의 물빛 눈동자를 더 이상 보기 힘들었던 그녀는 해인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어머니의 품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나는…, '실비아'지?"
그녀의 목소리에 해인의 표정이 굳었다. 아주, 아주 잠시였지만, 굳어버린 그녀의 표정은 곧장 석상이라도 될 것 처럼 무서웠다.
"…여기서, '선우란'이 아닌 '실비아 엠브로스'지…?"
* * * *
란 녀석, 은근이 스테드윅에게 반해있는 것 같습니다.
아차차, 이번 편은 현실이 아닌 란의 '악몽'입니다.
'대지의 가호를 받는 소녀'는 제가 초6때, 처녀작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략 슬럼프 탈출용으로 스토리만 잡고 휘갈겨쓴걸
리메이크... 해뻐린거랍니다.
에에, 그래서 많이 허접... 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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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에 재미있게보고있습니다!다음화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하하!
길다......[..<<─눈이...]... 저 '변태 어쩌고'할대 순간 피식했서;ㅂ;
푸훗.. 고마워. ( < -
푸헬헬헬헬헬/드디어 기억 비스무리한 것이 깨어나는건가요?
에에, 그냥 한순간의 악몽일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