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3만, 관객 1000만명… 걸어온 길이 곧 '방송 역사'
30주년 맞은 최장수 TV프로 '전국노래자랑'… 14일 특집방송
26년째인 송해 '최장수 진행자'… 제작진 다닌 거리도 40만㎞
"중·노년 탄탄한 시청자층에 비상업성·서민적 성격도 큰 힘"
매주 일요일 정오, TV를 켜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전국~!" "노래자랑~!"이다. 1980년 11월 9일 첫 방송된 KBS1 TV '전국노래자랑'이 방송 30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 동안 숱한 필부필부(匹夫匹婦)들 가슴에 불을 댕기며 사랑을 받은, 한국 TV 방송 사상 최장수 방영 프로그램이자 소위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다. 지금도 10%대 초반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4일 방송될 '전국노래자랑'은 '30년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새 역사를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진행된 30주년 특집 녹화 현장에서 MC 송해(83)씨는 "서른 살을 맞이했지만, 늘 첫돌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1984년부터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은 현역 최장수 MC다. 웬만한 프로그램 한 편이 방송 1주년을 넘기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아날로그 냄새 물씬 풍기는 '전국노래자랑'이 무려 30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 ▲ 26년간‘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는 역대 최장수 MC 송해씨. /KBS 제공
◆서른살 맞은 '어르신판 슈퍼스타K'
'전국노래자랑'은 철저히 중·노년층을 겨냥한 '어르신판 슈퍼스타K'다. '전국노래자랑' 본선 출연자 15~20명 가운데 대부분이 40대 이상이고, 시청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66.6%(TNmS 집계)에 달한다. 40대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무려 80%를 넘는다.
호응이 미적지근한 것도 아니다. 시청률은 이미 '뮤직뱅크'(5~6%) 등 다른 가요 프로그램을 훌쩍 넘어섰고, 출연자들의 열기도 뜨겁다. 지난 30년간 본선 무대에 오른 출연자 수는 약 3만 명, 예심에 참가한 사람만도 50만 명에 달한다. 한 회 평균 예심 참가자 수가 300여 명이니, 우승(대상) 경쟁률은 보통 300대1을 넘는다.
- ▲ 1980년부터 30년 동안 방송돼 한국 TV 방송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KBS1 TV‘ 전국노래자랑’. /KBS 제공
1500회 넘게 방송되는 동안 탄생한 우승자 1500여 명을 포함해, 출연자 중 스타가 된 이들도 있다. 장윤정, 박상철 등 내로라하는 대형 가수들이 데뷔 전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섰다. 리포터 조영구, 개그맨 김재욱 등도 이 무대에서 끼를 발산했다. 30년간 제작진은 총 40만㎞를 유랑했고, 120명의 PD가 '전국노래자랑'을 거쳐갔다. 약 1000만 명(누적)의 관객들이 이 축제를 찾았다.
◆'아날로그'와 '겸손함'의 힘
방송 관계자들은 '전국노래자랑'의 힘을 '변치 않는 미덕'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겸손함'에서 찾고 있다.
실제 '전국노래자랑'을 만드는 사람들의 시계는 유독 느리다. 진행자 송해씨는 26년째 진행 중이고, 김인협 악단장은 29년, 기타연주자 서인수씨는 30년, 심사위원 신대성·이호섭씨는 17년, 정한욱 작가는 19년 넘게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지키고 있다.
양동일 '전국노래자랑' PD는 "요즘 프로그램은 화려한 영상미를 위해 컷(cut)을 굉장히 빠르게 편집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은 한 출연자가 인사하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 뒤로 사라질 때까지 모두를 한 컷으로 느리게 찍는다"며 "출연자에 대해서도 욕설·복장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지역축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방송 때마다 지자체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시간이 반드시 주어진다. 방송 유치 요청도 많아 대부분의 시·군·구가 2~3번 이상씩 '전국노래자랑'을 찍었다. 제작진은 "지역민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출향민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994년 송해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진행을 그만두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오래된 것'에 대한 '전국노래자랑' 시청자들의 애정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송해씨는 시청자들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5개월 만에 '전국노래자랑'으로 돌아왔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방송은 시청자와 관객에게 '찾아오라'고 명령만 했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곳곳을 직접 방문하며 서민들의 곁을 찾아가는 겸손함을 유지했다"며 "'전국노래자랑'만의 비상업성과 편안함, 사회통합적인 성격은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더 오랜 기간 사랑받을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