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는 새다(정일근), 고추밭(안도현), 여승(송수권)-4제(2441).hwp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1)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를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2)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 나라의 가을밤
기역자 시옷자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개짓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정일근, <집오리는 새다>
[나]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 좋게 키워 내셨으니
진무른 벌레 먹은 구멍 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 농사 잘 안 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 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안도현, <고추밭>
[다]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 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3)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4)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 발치로 바리때5)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을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6)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송수권, <여승>
[어휘 풀이] 1) 퇴화 : 생물체의 어떤 기관이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점점 작아지거나 기능을 잃게 되어 쇠퇴해 감. 2) 거세 :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을 꺾어 버림. 3) 고뿔 : 감기. 4) 애지고 : 서럽고. 여기서의 ‘애’는 ‘창자’의 뜻. 5)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중의 밥그릇. 6) 흐들히 : 흐드러지게.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가]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다.
② [가]와 [다]는 [나]와 달리 시의 청자가 시 속에 직접 등장하고 있다.
③ [가], [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며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④ [나], [다]는 향토적인 소재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⑤ [나]는 대화체의 표현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보기>는 [가]를 해설한 평론들의 제목이다.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해석했을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 구체적인 사물의 속성을 통해 현실과 관련된 주제 형상화
• 왜곡된 사회 풍토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바람직한 삶에 대한 소망
① <보기>에서는 작가가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구체적인 사물에 해당하는 것은 기러기목에 속하는 ‘집오리’야. 시인은 시의 서두에서 ‘집오리’의 속성을 단정적으로 제시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어.
② 그런데 작가는 대조되는 이미지를 통하여 ‘집오리’의 부정적인 속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어. 즉, ‘넓고 푸른 하늘’,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과 같은 대조적인 이미지들을 제시하면서 ‘집오리’의 부정적인 속성을 표현하고 있어.
③ <보기>에서는 작가가 왜곡된 사회 풍토를 비판한다고 했어. 여기서 말하는 왜곡된 사회 풍토는 사람들이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은 채 억압적인 사회 현실에 순응하려고 하는 그릇된 풍토인 것 같아.
④ 작가는 그러한 왜곡된 사회 현실을 ‘불안한 시대’, ‘불안한 생존’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단절된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 연대감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⑤ <보기>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바람직한 삶에 대한 소망을 형상화하려 한다고 했는데, 작가는 명령형의 표현과 비상(飛上)의 이미지를 통하여 이러한 소망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어.
㉠과 ㉡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었을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은 화자를 비유한 표현이야. 즉, ‘고추잠자리’는 고추밭에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화자를 비유한 소재라고 할 수 있지.
② 또한 ㉠은 어머니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어. 즉, ㉠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화자의 애달픈 심경을 표현한 시구라고 할 수 있어.
③ ㉡은 대상을 변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음색’은 청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데 이를 ‘고랑이 깊은’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어.
④ ㉡에서 ‘고랑이 깊은’이라는 표현 속에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감정이 반영되어 있어. 즉, 화자는 여승의 음색을 ‘고랑이 깊은’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울적하고 우울했던 자신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⑤ 또한 ㉡은 여승의 모습을 표현한 시구와 조응되고 있어. 즉, ㉡과 ‘창백한 얼굴’은 여승의 처연한 이미지를 환기하는 표현들이야.
[다]와 <보기1>을 엮어 읽기 위해 <보기2>와 같이 학습지를 작성하였다. 질문에 정확히 답한 것들끼리 바르게 짝지은 것은?
<보기 1>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
<보기 2>
A.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쓰시오.
• [다]의 ‘설움에 진 눈동자’는 여승의 속세에서의 기구했었던 삶을 연상하게 하는 시구이다. 그런데 <보기1>에서 이와 같은 삶이 직접적으로 형상화된 부분은 ( ㉮ )연이다.
• [다]와 <보기1>에서 여승의 탈속적인 이미지를 환기하는 시구는 각각 ( ㉯ )의 ‘가지취의 내음새’이다.
B. 다음의 설명이 맞으면 ○표를, 틀리면 ×표를 하시오.
• [다]와 <보기1> 모두 여승과의 만남이 시작(詩作) 동기가 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