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유품
2009년 봄, 아빠의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라 볍원에 가니
비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였습니다. 일년 시한부 손고에 우리 가족은
할말을 잃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남동생은 당장 간 이식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아빠의 몸은 이식 수술을 받을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엄마와 번갈아 병간호하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아빠가 손녀딸이 보고 싶다며 퇴원해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빠가
서랍절리를 하고, 화분에 물도주며 거동하셔서 안도 했습니다. 그런데 곧
힘들었는데 밥도 안드시고 계속 누워 계셨습니다. 나는 아빠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프면 얘기하세요. 병원에 가셔야죠, 저도
친정에만 있을수 없으니 오늘 저희 집으로 갈깨요!" 아빠는 억지로 밥을
두 숟갈 뜨고 눕더니 머나먼 길을 가셨습니다. 아빠의 체온을 느끼며
몇 시간을 통곡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빠 휴대 전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입력된
전화번호는 달랑 네 개, 우리집,아내, 띨, 아들뿐이었습니다. 낡은 지갑
안에는 교통 카드 한 장과 주민 등록증 그리고 내 졸업식 때 찍은 가족
사진이 있었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사셨던 아빠에게 따뜻한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무뚝뚝하게 굴던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빠 지
갑을, 휴대 전화를 조금만 더 일찍 봤더라면 아빠의 외로운 가족 사랑을
깨닫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빠가 하늘 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편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김선화 님 / 경기도 광주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면접 질문에 사장님,
고객 등의 답변이 나왔다. 그런데 한 지원자는 '자신'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없는 회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바로
채용됬다.
(강헌 선집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