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생활기 11 - 로잔, 아비뇽, 생메리드라메르
6/3 금 로잔 시내에 있는 펜션 싱글룸 35유로
펜션병(?!)이 초래한 삽질
‘이 산에서 내려가기 싫다’는 마음도 며칠 쉬고 나니 가라앉았다. 미지의 세계는 나를 부르고 유레일은 얼마남지 않았으니 그만 떠나야겠지? 지도를 보니 피렌체에 들러 프랑스로 이동하면 찍고 다니는 꼴 밖에 안되겠기에 과감히 이태리를 포기했다.
떠나기 전 여행지를 선택할 때 특별히 가고픈 데가 없었다. 어차피 처음이고 서유럽 어딜간들 감동이 없을까 싶어 딸에게 우선권을 주었었다. 막연한 정보 속에서 그나마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프랑스의 프로방스와 꼬뜨다쥐르 지방이었다.
일단 아비뇽으로 가자. 기차표를 끊으려니 프랑스 철도 파업중이란다. 파업 때문에 고생한 글을 여럿 본 터라 스위스에서 1박하기로 맘먹었다. 어디가 좋을까? 스위스를 안가려다 들렀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민박집에서 받은 가이드북과 유럽주요도시 호스텔 팜플렛 뿐이었다. 호수를 낀 몇도시 중 유스호스텔이 괜찮을 것 같은 로잔을 골랐다. 얼마나 정보가 없었냐하면 Lausanne(로잔) 철자를 봤을 때 속으로 라우산느라고 읽었을 정도.(또 깡무식이 다 드러난 종다리. ㅎㅎ) 돌아와서 로잔이 세계적인 발레의 도시라는 걸 알았다.
호스텔보다 더 좋은 펜션이 있을까 싶어 인포에 들어가 물었다. 가격을 말하길래 좋다고 했더니 지도에 형광펜으로 길을 그려준다. 난 아무생각 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아니, 역에서 2분이라더니 왜 이리 멀어?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생각하니 내가 팜플렛에서 본 호스텔과 인포에서 소개한 펜션을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펜션을 조사만 하고 호스텔로 가려고 했었는데 어느 틈에 그걸 잊어버리고 무조건 형광펜 길만 찾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거의 치매수준이 아닌가! 황당 그 자첸데, 어쩌랴, 내가 이 지경에 이미 이른 것을...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스위스에서 기분을 전환하긴 했지만 여전히 체력은 달리는 상태였다.
간 거리가 아까워 찾아간 펜션은 아파트였다. 시골이나 휴양지가 아닌 대도시의 펜션은 아파트 같은 데가 많다는 걸 이미 뮌헨에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방을 보니 호스텔의 근 두 배를 주고 이런데 묵어야 하나 돈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까 망설이다 목욕탕에 욕조가 있길래 목욕이나 하자하고 값을 치뤘는데 막상 샤워하러 가보니 욕조마개가 없는 욕조였다. 완전히 속은 기분.
아침식사에 나온 빵, 마가린, 잼, 요구르트 할 것없이 완전 싸구려 일색. 이렇게 까지 해야 수지가 맞나 싶을 만큼 모양뿐인 식사였다. 이런 데도 다른 투숙객은 좋다고 하니(입구에서 만난 서양 친구들에게 어떠냐고 물었었거든요) 사람의 판단이 제각각이고 그 덕에 영업이 되는 모양이다. 펜션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내가 차려서 본을 보여주고 싶었다.
6/4 토 아비뇽 Le petit Manoir 44유로 아침없음. 아비뇽테제베 역 인포에서 물어 외곽에 있는 수영장 달린 별 2개짜리 작은 호텔에 투숙. 둘이 써도 같은 가격. 앙, 배 아파라.
테제베역 인포에서 토요일이라 구시가 호텔과 유스호스텔은 전부 Full이라고 했는데 잘못된 정보였음. 다음날 유스호스텔에 가서 물어보니 어제도 방이 있었다고. 어쨌든 그 덕에 예쁜 호텔에 묵었지만 가끔 투어리스트 인포가 엉성하게 일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음. 아비뇽, 아를 등지엔 역 인포 말고 구시가 안에 있는 인포가 전문적인 관광인포임. 그걸 몰라서 엉성한 역인포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음
프랑스에 첫발을 딛다
쥬네브를 거쳐(기차를 갈아탈 때 여권검사) 아비뇽에 오니 1시가 넘었다. 숙소 찾는데 워낙 까다롭다보니 또 1시간 소요. 버스를 타고 외곽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 저녁거리도 살겸 동네 구경하러 나갔다.
체리와(뮌헨의 반값, 시골물가를 실감. 나중에 파리 바스티유근처 시장에선 아비뇽의 반값) 크림이 잔뜩 든 타르트, 우유를 사들고 바, 미용실, 꽃가게 등을 구경하다 테이크 아웃하는 파에야(홍합을 얹은 스페인식 볶음밥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집에 들어갔다. 맛 좀 볼 수 있냐니까 1회용 도시락에 밥을 담아준다. 짜서 자신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밥이라 반만 살 수 없냐니까 안된단다.
그는 안 사도 괜찮다며 도시락을 가져가려 한다. 오, 노우. 난 도시락이 필요해! 이제까지 구멍뚫린 포도팩을 그릇으로 썼는데(뮌헨 이후엔 오이, 파프리카, 양상추, 바나나, 토마토 등 샐러드 재료를 싸가지고 다니며 빵, 우유, 요구르트로 점심을 먹었다) 막힌 그릇이면 도시락 싸기가 훨신 좋다. 상대는 불과 몇마디 영어밖에 못한다. 어찌어찌 도시락을 확보하고 고마워서 체리를 몇 개 주었다. 그랬더니 이 남자, 도시락에 밥을 반쯤 담아주며 집게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쉬이~ 공짜로 준 건 비밀이라는 얘기지... 물론이지... 나도 입에 집게 손가락을 대면서 알았다고 했다.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혼자 다니니까 이런 일이 있네. 갑자기 기분이 업되면서 혼자 있는 게 너무 좋게 느껴진다. ㅎㅎ
반바지를 입고 수영장에 들어갈까 하다 시간도 늦고 해서 포기.(수영할 줄 아는 분들은 필히 수영복 가지고 가세요) 인포와 호텔에 있는 자료를 보려면 시간 꽤나 걸릴 것이다. 어딜 어떻게 다녀야 후대에 잘 다녔다는 소릴 들을까?! ㅎㅎ 이놈의 자료 보다 세월 다 가고 내 머리도 다 센다.
아를-카마그, 님-퐁뒤가르, 루베론-라벤더 마을 정도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프랑스를 동경하고 있었는지 프랑스 땅을 밟자 왠지 프랑스 사람들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하도 불친절하고 콧대높다는 소릴 많이 들은 탓에 길 물어보는데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소문과 전혀 달랐다. 사람들이 순박하고(찬란했던 역사는 뛰어난 선조가 쌓은 것이고 이 시골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국민이니까) 친절했으며 콧대를 세우는 사람은 단 1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6/5 일 아비뇽 강변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정확한 이름이 기억안남. ymca는 아님.) 11유로 아침없음. 작은 방에 2층침대 세 개를 놓고 열쇠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데 너무 저렴하니까 차라리 이 게 나은 기분. 어제 숙소는 비싸고 오늘은 싸니 예산에 접근한 셈.
친절한 남자들
일단 숙소를 옮겨놓고 아비뇽 구시가를 둘러보았다. 나이들면서 방향감각이 엉망이된 나는(예전엔 길, 하면 종다리였다는 전설이...) 돌다가 길을 잃었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의 초입까지 데려다 준다. 이 청년들을 조금 뒤에 케밥집 앞에서 또 만났다. 길가 벤치에 앉아 같이 점심을 먹었다. 스위스에서 프랑스말 공부하러 유학 와 있단다. 애들이 어찌나 반듯한 지 서양애들 같지가 않다.(이말은 서양애들은 다 개차반이란 뜻? 에구 에구 돌 맞을라) 체리와 청포도를 먹으라고 내미니 딱 한 개를 집는다. 남의 것이라 사양하는 눈치. 손에 덜어주니 그제서야 먹는다. 귀여운 것들! ㅎㅎ
유적에는 거의 흥미를 잃었고 일요일이라 상점이 다 문을 닫았으니 어쩐다? 아를에 가서 어제 팜플렛에서 본 아맘(hammam : 일종의 습식 사우나)이나 해 볼까? 과연 아맘 집을 찾을 수 있을까? 달리 할 게 없고 유레일 패스로 공짜기차를 탈 수 있어 아를로 향했다.
20분 만에 아를에 내리니 인포가 문을 닫았다. 일요일이라서 닫았나? 일부러 줄을 서서 기차표를 파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른다는 간단하고 차가운 대답뿐. 건물 밖에 나가 버스 노선도가 그려진 지도를 보는데 젊은 군인 두 명이 다가와서 도와줄까냐고 말을 건다. yes, please! 이 친구들은 아마 프랑스 용병인 듯. 한명은 폴란드 출신이고 또 한명은 잊어버렸네. 하여간 2시간 후에 기차를 탄다는 이 친구들이 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같이 hammam chiffa까지 동행해 주었다. 자기네는 어차피 역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no problum 이란다.
갑자기 생기가 돈다. 우리는 바람 찬 뢴강가를 따라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도막. 나더러 왜 혼자 여행하느냔다. 혼자 여행하면 결정할 때 간단해서 좋지만 그래도 여행은 동무가 있어야 좋다나? 이 친구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이렇게 동무는 수시로 만나고 있는 것을... 난 자기 주관을 얘기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팍팍 준다.
내가 소지품이 무겁다고 들어달라고 했더니(못말리는 종다리. 남자들은 뭐 국 끓이는데 쓰남요? ㅎㅎ) 에이, 하나도 안무거운데요, 하면서 기꺼이 들어주었다.
아맘쉬화에 도착해서 아맘이 뭐냐고 물었더니 들어와서 직접 보란다. 이날은 여성전용인 날이라 군인청년들에게 보고 나올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말이 안통했는지 그냥 가버렸다. 애써줘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맥주라도 한 잔 사주려했더니...
아맘은 습식사우나 방이었다. 정해진 시간 만큼 습식 사우나를 한 후 아라비아 풍으로 꾸민 휴게실에서 차를 시켜마시며 쉰다. peeling(물론 팜플렛엔 불어명칭이다)을 선택하면 우리나라 때밀이처럼 다른 사람이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탕 안에서 연두색 이태리 타올을 쓰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태리타올이 프랑스 남부에서 까지 선전하고 있다니... 놀랠 노자다! 서양사람들은 때 안민다고 들었는데 생활문화란 게 돌고 도는 모양이다.
맨 땅에 헤엄치기 식으로 고생하며 찾아간 곳이지만 팜플렛에서 본 분위기보다 엉성하고 왠지 후덥지근한 게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냥 둘러보기만 했다.
해가 쨍쨍한 날, 한 30분 걸으니 몹시 목이 말랐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고 특히 맥주와 상극이지만 갈증해소엔 맥주가 최고라는 말이 기억나서 역 근처까지 와서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잠시 멍하니 망중한을 즐기는데 주인이 와서 뭐라뭐라 하더니 난 더 시킨 적이 없는데 맥주를 가져온다. 뒤를 보니 왠 남자가 자기가 주는 선물이라며 웃는다.
세상에...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아닌가? 그 남자는 미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사람인데 어떤 프랑스 부인과 한잔 하고 있었다. 셋이 합석해서 미국인이 영어를 불어로 통역해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를역에서 기차를 기다릴 때는 뚱뚱한 흑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온 지라 똑같이 행동했다. 그는 아프리카(아마도 프랑스 식민지였던 곳이겠지)에서 왔고 지금은 빵을 배우고 있다고. 마침 온갖 종류의 빵을 한 보따리 들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해서 다음날 먹을 양식을 챙겼다. 이 사람은 영어가 거의 안통했는데도 어찌저찌 의사소통이 됐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이런 날도 있었다는... ㅎㅎ
(네가) 통하였느냐
네에~ 통하였사옵니다. ㅎㅎ 뭐가? 영어가...(커뮤니케이션이 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혼자 다녔다고 하면 다들 영어가 되는 사람인 줄 안다. 내 영어, 글쎄, 얼마나 한다고 해야할까? 삼십 중반에 일어배울 때 영어가 일어로 대체된 듯 까맣게 잊어버려 중1 문장도 기억나지 않았다. 넘 한심해서 몇 년 전에 한 6개월 회화 학원을 다닌 결과 판에 박힌 몇마디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이 몇마디 실력으로 이번 여행을 한 건데 외국어에 대한 내 생각은 아래와 같다.
우선 능통하지 않은 사람은 (유창하게) 말을 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말을 생각하고 그걸 영어로 바꾸려 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 필요한 단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빠르다. 의사소통은 이미 상황(!)이 반 이상 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단어만 나열해도 금방 통한다. 완전한 말을 만드느라 입 다물고 시간 끌면 그만큼 소통이 느리다. 내 경우 다소 철학적인 주제, 즉 남북통일이나 인간관계, 연애실패담, 이혼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가 영어를 좀 하는 경우엔 내가 단어를 주어섬기면 대부분 상대가 문장으로 되묻는다. 듣는 건 훨씬 쉬우니까 계속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 한가지는 발음에 너무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발음 좋아서 나쁠 건 없지만) 우리나라에선 너무 미국식 발음을 강조하는데 나가보면 전세계 사람이 제 나라 식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발음이나 억양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자세가 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6-7 월- 화 생메리드라메르 Location de Meubles La Sartan (1-2인용 스튜디오?) 35유로
나트막한 무화과 나무아래 정원을 예쁘게 꾸민 집. 마당 한켠에 작은 독채 스튜디오를 마련. 역시 샤워룸 천정에 창을 달아 밤 10시까지 자연채광을 받는 곳. 오븐달린 부엌까지 있으니 무엇이 부러우리. (그 오븐에 감자밖에 못구어 먹었지만)
펜션찾아 삼만리의 결정판
님에 가서 퐁뒤가르를 볼까, 카마그지역으로 가서 홍학을 볼까? 유적보다 자연이다! 플라맹고를 보러 가자.
(까마그란 특정 지역이름이 아니고 프로방스 남쪽 바다와 강이 만나는 델타에 조류가 많이 서식하는 몇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홍학 등 조류서식지를 볼 수 있는 곳은 생메리드라메르 외에 Aignes-Mortes와 한 군데 정도 더 있었다. 프로방스 남쪽 지도를 보면 감잡을 것임.)
아비뇽 구시가 인포에 물으니 아를에 가서 버스를 타란다. 한 번 가본 아를이라 자신있게 갔더니 월요일인 오늘도 인포는 닫혀있다. 영어는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은데 눈치를 보니 당분간 폐쇄한 모양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하지만 이젠 이런 일을 하도 당해서 별로 당황하지도 않는다. 어찌저찌 하다보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종국엔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캐리어를 끌고 20분쯤 걸어 아를 시내 인포를 찾았고, 버스시간표를 확인하고 정거장으로 가서 무사히 생메리드라메르행 버스를 탔다. 알고보니 이 버스는 아를 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그런데 왜 역 앞 버스정거장에는 행선지, 시간표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그 무거운 짐을 끌고 몇 십 분씩 걷게 하니 프랑스에 대해 말이 많을 수 밖에... 어쨌든 인간승리 종다리!!
버스 정거장에서 젊은 독일여성을 만났다. 생메리드라메르에 세 번째로 가는 길이란다. 아주 참하게 생긴 이 여자는 나의 고생담을 익히 알고(자기가 첨에 당한 그대로인 듯) 생메리드라메르에 대한 여러 정보를 주었다.
프로방스의 남쪽 끝 생메리드라메르까지 내려가니 제주도는 저리가랄 정도로 바람이 분다. 청바지를 빨아 널었더니 3시간 만에 말라버릴 정도. 인포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이 집을 혼자 힘으로 찾아내 부엌의 오븐을 봤을 땐 너무 기분이 좋아 3박할까 생각도 했지만 워낙 조용한 곳이라 하루 지나니 좀 외로웠다. 휴양은 이틀로 충분. 윙윙대는 바람을 맞으며 무화과 나무아래서 쌀밥으로 저녁을 차려 먹은 장면이 내 마음의 그림이 되었다.
말 한마디 안 통하지만 음식을 나눠먹던 할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채소를 사와 기름 좀 얻자고 했더니 식초까지 센스있게 챙겨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살라미를 드리니 이번에는 마당에서 딴 무화과로 만든 마말레이드를 주신다. 그래서 또 케?揚? 나눠드렸다. 너 먹지 왜 나주냐고 하시며 받는다. 불어 한마디도 모르는데 잘 알아들은 비결? 바로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기지 덕이다.
방에 텔레비전이 있는 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가로로 열걸음, 세로로 여덟 걸음 면적에 침대, 옷장, 테이블, 그리고 부엌(삼성 전자렌지, 냉장고) 욕실이 있으니 사람사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다. 시드니여행 때부터 한번 묵고 싶었던 독채에 숙박하게 됐으니 종다리 드디어 소원성취한 셈!!
바닷가 산책을 하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반갑다며 달려들어 내 흰바지에 마구 발자국을 남겼다. 이걸 계기로 개주인인 젊은 여성과 같이 마을을 구경했다. 이 마을은 주민은 2천명인데 년간 찾아오는 이는 몇십만이라던가?(에궁, 메모가 없네) 겨울엔 철시하고 여름 6개월만 거주한단다. 몇 개월 전에야 자동시스템 비디오 렌탈샵이 생겼을 정도로 자연 외엔 아무것도 없는 마을. 하지만 마을 곳곳에 있는 연못(호수? 내 숙소 앞에서도)에서 바로 홍학을 볼 수 있는 곳.
매일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나가 호텔에서 침대시트를 간다는 이 아가씬 런던에서 영어연수를 받았다고.(뭔가 안맞는 얘기죠?) 선라이즈, 선셋이 아름답고 교회에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며 물소를 보러나가는 배 타는 곳 등 마을정보를 많이 얻었다. 뮤직 바가 있냐고 물었더니 아직 본격적인 철이 아니라 딱 한 곳 있다며 가르쳐 주었다. 같이 한잔 하자니까 내일도 오늘 코스 그대로 산책하니 이 시간에 바다에 나오면 자기를 볼 거라고 해서 그냥 헤어졌으나 다음날 그녈 만나진 못했다. 이 친구를 집에 데려와 천천히 수다 좀 떨어볼려구 저녁 때 전을 넉넉히 부쳐 놓았는데... 아쉬웠다.
인생이란 게, 내가 외로울 땐 사람이 없고 누가 청할 땐 내가 혼자 있고 싶으니, 참 간단치가 않다.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쌍곡선임을 새삼 확인했다.
그래도 감사한 건 프랑스 어디서나 영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덕에 프랑스 생활문화를 한 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우아한 홍학 세상 - bird park
다음날 숙소에서 4킬로 떨어진 bird park(6.5유로)에 가서 홍학을 만났다. 갈 때는 버스를 탔고 올 때는 공원에서 만난 폴 아저씨가 태워다 주었다. 폴 덕분에 충분히, 마음껏 bird park를 즐겼다. 폴이 아니었음 하루에 몇 번 안다니는 버스 시간에 맞춰 반만 보고 돌아오거나 뙤약볕을 4킬로 걸었을 것이다. 이런 덴 자동차로 여행하든지 좀 멋을 부리자면 승마를 하거나 최소한 자전거라도 타고 다녀야 하는데 굳건한 두다리로 버텼으니, 21세기에 나도 참 못말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숱한 경험을 하니 귀여운 자식일수록 혼자 여행보내라고 하는 거겠지.
다음은 몽생미쉘, 지베르니, 오베르 쉬르와즈 입니다.
첫댓글 역시 혼자 해도 종다리님의 여행엔 사람들이 있고 . 맘에 드는 펜션에 묵게 되어 다행이네요 재밋게 읽고 있어요 . 아맘은 터키식 목욕탕인가봐요 (터키발음으로는 하맘 ?). 요즘 터키 여행공부중이라..^^.
정말 여행기가 재밌네여..저두 담에 유럽가면...느긋히 즐길수 있으면 좋겟습니다...부러워요..^^;;
친구야 넘 잘 읽었고 글이 주는 따뜻함이 물씬풍기는구나 사진도 정겹고 골목 구석구석 함께 걷는 느낌도오고 바디랭귀지도 모든이에게 용기를주고" 외로울땐 사람이없고 청하면 싫고"어쩜 그렇게 와닿는 말인지....덕분에 행복한시간 보냈다
어떻게 혼자서 여행 그렇게도 잘 다니시는지.꼬 판에 박힌 곳이 아닌 자유롭게 여행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글이 너무 길군요.두편으로 나누었으면 더 좋았을텐데.다시금 여행후 여행기를 잘정리 하셔서 쓰셨는지 다시금 종다리님을 우러러 봅니다.필리핀 바다위 카페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록 생동감이 나요. 님의 글을 읽으면 저도 당장 혼자서 떠나고 싶은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여행중 혼자떠났지만 좋은분들을 만나것도 님의 열린마음덕이 아니가 해지네여. 준비를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정보 좀 올려주세염~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