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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종교범으로 잡혀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
예수의 삶을 소급해 되돌아보면, 그의 운명은 실로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기원전 7년 팔레스티나의 가난한 유대인으로 태아나서 갈릴리 호반을 순회하고 다니던 하나의 단순한 목회자였다. 그는 오로지 민중을 돕고 구제하고 싶은 충정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설교하였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많은 환자를 치유하였다. 이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대중의 몰이해와 외면 속에서 그리고 유대의 '종교라는 이름의 정치'속에서 구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적과 우군에 의하여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는 머지않아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되어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 과정을 오히려 재촉하고 있다.
신의 사랑과 이웃사랑, 큰 사랑을 가르치는 예수도 유대의 백성이고 고대하던 다윗이 아니었다. 물론 아니었다. 예수는 제자들을 통해서 자기의 입지를 알아본다. 제자들은 그를 세례요한, 엘리야 Eliah 또는 예레미아 Jeremiah같은 선지자에 비교한다. 이들이 메시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였다면, 다 실패한 메시아들이다. 그들은 백성이 생각하고 고대하는 다윗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체념한다. 그는 말한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구나!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예수에게는 전기 轉機가 필요하였다. 그는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며칠 후 자신이 체포되어 죽게 되리라. 그는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사랑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죽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갈 길은 단 하나이다. 백성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메시아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는 메시아다. 그는 스가랴서의 예언을 반추한다. 선지자 스가랴 Zechariah는 바빌론의 절망으로부터 신국도래의 새 희망을 예언하였다.
마침내 그는 스가랴서의 예언을 연출 演出할 것을 결심한다. 장엄한 이 드라마는 예수의 연출이고 실연이지만 실현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실현이 된다. 스가랴서의 예언에 나오는 메시아는 용기있고 겸손하고 의로운 왕이며 장차 도래할 종말의 심판자이다.
미래에 찾아 올 메시아의 시대에 대하여 스가랴는 이렇게 노래한다.
"시온의 사람들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산헤드린 최고법원 소집 회의 모습(좌) / 예언자 「스가랴」 Zechariah(우)
예수는 스가랴의 예언 그대로 한다. 그는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 제자들을 보내 나귀를 한 마리 데려오게 한다. 나귀는 평화와 겸손의 상징이다. 항시 걸어 다니기만 하던 그는 나귀를 타고 베다니를 떠나 올리브 산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는 예루살렘 신전의 중정으로 들어가, 거기서 순례자들을 상대로 매매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엎고, 그들을 내어 쫓으며 말한다. "내 신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 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그리고 그는 율법학자와 사제들, 바라새인들을 향해, 그들은 위선자라고 통렬히 비난한다. 이러한 예수의 언행은 팔레스티나의 종교적 권위와 권력에 대한 위협이요, 도전이 된다.
이 사건으로 예수는 표적이 된다. 대제사장과 사제들은 모여서 걱정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불길한 징조를 감지한다. 오래 전 선지자 도빗 Tobit이 예언한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의 묵시 默示, 세례요한이 예언한 임박한 세상의 종말 같은 것을 연상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이번 유월절에 일어날 수도 있지 않는가? 예수의 행동이 그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른다.그렇게 된다면 자기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결국 예수를 없애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의논한다. 이때 유다는 예수의 뜻에 따라, 그의 부탁을 받고, 가야바의 집에 찾아가 누가 예수인지를 지목해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예수의 회상은 계속된다. 무엇보다도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그가 십자가형을 당한 전후의 사건들이다. 예수가 잡히기 전날 저녁 예수와 제자들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갖는다. 저녁 식사 후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에 올라 그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멈춘다. 예수는 땀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한다.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어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원이고 간청이다.
예수는 자신이 곧 죽게됨을 알고 겟세마네에서 닥쳐오는 죽음과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욕망사이에서 오는 심한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배어 나오는 피 흘리는 듯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그 날 밤. 대제사장,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검과 뭉치를 가진 위병들을 겟세마네 동산으로 보낸다. 유다가 길을 안내하는 가운데 로마 병정들이 들이닥쳐, 어둠 속에서 여러 사람 중 예수를 지목해 체포해 가게 한다.
그때 유대는 정치적 혼란 속에 있었고, 도처에서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세상의 종말을 부르짖어 민심은 더욱 불안하고 흉흉하였다. 유월절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유월절이야 말로 선동가들에게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유월절에는 수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므로 이들을 부추겨 반로마 투쟁에 동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마제국 제5대 유대총독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us는 자기 행정구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 反로마 폭동이나 반란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간 로마정권에 반항하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고압적 정책을 썼으나 유대인의 항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서투른 수습책으로 오히려 유대인들을 더 자극하였다고 디베리오 Tibrius 황제로부터 견책도 당한 처지였다. 유대총독 빌라도는 걱정이 되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는 총독 관저 테라스를 걸으며 예루살렘 시내를 내려다본다. 평온한 도시의 밤이다. 아니 폭동 전야의 불길한 고요함이다. 빌라도는 곰곰이 생각한다.
'이번에 이 셋을 검거하기만 하면 폭동의 불씨는 일단 끄는 셈 아닌가?'그들을 잡아들여 가두어두었다가 유월절이 지난 다음 십자가에 처형해서 본보기로 매달아놔야겠다. 그 나머지 열심당 잔당들이야 어떻게 나오든지 그 대응책은 그때 가서 찬찬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빌라도가 생각하는 이 셋이란 바로 세 명의 열심당 우두머리, 즉 시몬 마기 Simon Magus, 가룟 유다 Iscariot Judas 그리고 다대오 Thaddeus, 일명 바라바 Barabbas이다. 이들은 폭동을 이끄는 유대 독립운동 지도자들이다. 열심당 Zealots이란 이름은 원래 율법에 '열심인 사람 zealot'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 대항하여 무력 독립투쟁을 불사하는 국수주의자들이다. 로마 측에서 보면, 이들은 유대민족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테러리스트들이다.
예수를 심문하는 유대총독 「본디오 빌라도」(좌) /영화 바라바 장면에서의 유대 민족지도자 「바라바」(우)
예수는 민족주의자도, 독립운동 지도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빌라도의 체포대상자 명단에는 애초부터 들어있지도 않았다. 실은 빌라도는 예수가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하였다.
체포된 예수는 최고법원 산헤드린 Sanhedrin으로 인도된다. 이 최고법원은 유대의 사제들과 지도자들로 구성된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이 최고회의의 종교 재판정에서 의장을 맡은 사람은 대사제 가야바 Caiaphas이다. 그는 보에투스 Boethus 사제 가문의 일원이며 율법과 의식을 중시하는 바리새파로서, 예수가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하던 당시 대사제를 지냈다. 대사제는 정치적 임명직이었지만 유대교의 6~7계층 피라미드의 최고위치로서 막대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야바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는 법정에서 빌라도의 배석판사 역할을 하였으며, 훗날 베드로도 그의 종교심문을 받는다. 그가 대사제직을 그만 둔 후, 예수와 한 번 조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그의 과오와 더불어 개심을 진지하게 예수에게 고백한다. 물론 이것은 다 훗날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모두 예수에게 묻는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는 대답한다. "나를 그라고 말하는 것은 너희이다. 제사장 가야바가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의 입에서 참람된 말을 들었노라." 여기서 유대인들이 자기 옷을 찢는 관습은 신성모독을 들었을 때 그 행위에 대해 가장 큰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며, 하늘을 쳐다보며 죄를 용서해달라고 비는 의례적 행위이다. '카이사르 세금발언'과 같이 곤란한 상황을 번번히 빠져나가는 예수 특유의 화법은, 결정적이고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유보하고 상대방에게 다시 질문으로 떠넘김으로써 상대방 스스로 무너지게 유도하는 화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의 그러한 화법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되었다. 예수는 "나를 그 [하나님의 아들]라고 말하는 것은 너희이다."식의 예수 특유의 떠넘겨 말하는 어법으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해석의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주어 자신의 죽음을 불러왔다.
바리새인들과 전. 현직 대제사장들은 산헤드린에서 공회 公會를 열고 그간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언행도 신성모독의 연장으로 보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의논한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말한다. "너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한 줄로 생각지 아니 하느냐?" 이렇게 해서 서기 33년 산헤드린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당시 유대는 로마 속령에 불과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자면 로마 총독의 허가가 있어야 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 총독관저로 끌고 간다.
다음 날 유대총독 빌라도는 체포된 정치범들에 대한 재판을 연다. 빌라도가 낙점을 찍은 처형대상자는 유대독립을 위해 로마에 맞서 테러와 폭동을 일삼았던 열심당의 지도자들로 주범인 시몬 마기와 가룟 유가, 그리고 중범인 바라바이다. 총독 빌라도는 손이 묶인 채 자신의 앞으로 끌려나와 서 있는 예수를 보고 의아해 한다. 빌라도는 실은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예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가 외친다. "존엄하신 총독각하, 이 자는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자입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참칭 僭稱하며 로마제국을 능멸한 죄목입니다." 빌라도가 상반신을 굽혀 내려다보며 예수에게 묻는다. "그래, 네가 유대인의 왕이란 말이지?" 예수는 답한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오." 총독 빌라도가 몸을 젖히며 다시 묻는다.
"네가 정녕 유대인의 왕이라면 네 나라의 영토와 백성은 어디에 있느냐? 감히 로마제국에 대적하겠다는 뜻이 아니냐?" 예수는 답한다. "내 왕국은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 곧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킴이요. 내 원수는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불의와 부정, 거짓과 탐욕과 독선을 가리킴이요. 내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사랑을 베풀며 아버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오."
빌라도 총독앞에서 정의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예수」
빌라도 총독은 한동안 말을 잃는다. 그는 비로소 예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참으로 온유한 표정이다. 그는 생각한다. ' 이 예수라는 자, 정말로 정의와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이 사람은 결백하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군중을 향해 말한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예수의 처형에는 유대교황 안나스의 의견이 크게 작용하였다. 사제들을 대표해서 안나스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요구하였다. 안나스는 자신의 사제직 지위를 시기하고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귀찮은 반항아 예수를 이번 기회에 반로마 정치범으로 몰아 로마의 힘을 빌어 제거할 심산이었다. 당시 유대에서는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사형수중 한 명을 사면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번 재판과 처형이 마침 유월절에 겹쳐 있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 관습에 따라 군중에게 누구를 사면할 것인가를 묻는다. 군중은 일제히 연호한다. "바라바! 바라바!" 군중은 전에는 열심당 당수였고 현재는 원로 격인 바라바를 살려내어 유대민족 독립운동을 계속하겠다는 계산이었고,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풀어줄 망정 어렵게 잡은 독립군 테러리스트 바라바를 풀어주기는 아까웠다. 그러나 총독의 예수 사면 주장은 군중의 열화와 같은 거센 외침 속에 묻혀버린다. 한편 이 법정의 재판장인 빌라도는 배석판사로 참여한 대제사장 가야바와 긴밀한 의견을 나눈다. 바라바가 빠진 빈자리를 누구를 채워 넣을 것인가 하는 의논을 한 것이다.
재판정에 모여있던 군중의 "예수는 십자가형이다! 예수는 십자가형이다!"의 외침도 한 몫을 하였다. 빌라도는 유대인에게 정말 예수를 반로마 정치범으로 사형에 처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다. 군중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 騷動케 한다고 굳세게 그의 유죄를 주장한다. 결국 예수는 바라바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된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의 기득권층이 빌라도 자신의 손을 빌어 눈엣가시같은 존재인 예수를 제거하려는 속셈임을 알아채고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예언자적 언행으로 혹세무민한 죄에 대해서는 수긍하였으나, 가야바가 주장하는 예수의 반로마제국 정치범죄혐의는 억지임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로마정권에 반하는 언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지 않은가?
노회한 정치가인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 만일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그 분노가 실제로 반로마 봉기로 불붙을 수 있으며, 그 경우 자신의 지위가 위태해질 수도 있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여 예수에게 유죄를 판결한다. 사실 유대 풍속범 하나를 살리자고 자신의 총독 지위까지 위태롭게할 필요까지야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시몬과 유다는 로마제국에 대항한 독립운동가로, 예수는 로마법을 어기고 스스로 왕이라 칭한 죄, 거짓예언으로 백성들을 혹세무민한 죄, 종말이 온다고 떠들어 사회불안을 야기한 죄등으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하여 예수는 최고법원에서는 종교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종교사범이 아니라 로마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한 정치범으로 처형된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교외에 있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간다.
그는 서기 33년 3월 20일 금요일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린다. 그의 나이 40세다.
하나님은 침묵하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스가랴 예언에 따라 예수가 기획 연출한 드라마는 중도에서 막을 내리게 되고 그는 또 한 명의 실패한 메시아가 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사실은 여기가 이 드라마의 종극 終劇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예수가 스스로 연출한 드라마였지만, 이 후로는 요한 마가, 예수의 동생 야고보 그리고 영주 안디바가 같이 짜고 기획하고 연출한다. 이 드라마는 십자가형의 집행에서부터 그의 소생에 이르기까지의 등장인물도 많도 곡절도 많은 각본으로 짜여있다.
마지막 장면부터 얘기하자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부활하지 않았다. 그는 소생하였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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