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해의 오해
윤소진
아빠가 영화관에 있다. 1층 나열 92번, 스크린과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상영 시간까지 40분가량 남았지만 누구도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황금약국까지는 뛰면 8분, 천천히 걸어가면 25분. 오늘도 나는 뛰지 않기 위해 아빠를 영화관에 버렸다. 여사장이 다른 업주보다 까다롭거나 유별난 구석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은근히 사람을 압박하는 데가 있었고 그건 그녀의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로 한복판에 있는 대형 약국에는 약사 부부와 직원으로 일하는 연정 언니,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일했다. 언니와 나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하나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 누군가 의도치 않게 이 규칙을 깨기라도 하면 여사장은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던 믹스커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마시고 조제실로 들어가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평소 상가 층계참에 앉아 김밥을 먹거나 포장마차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곤 했던 연정 언니는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 약국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 나 역시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 보면 시계의 분침이 아닌 초침에 따라 고개를 까닥이며 시간을 죽여야 했다.
일주일에 세 번, 12시부터 4시까지 일하는 나에게 여사장이 특별히 화를 낸 적은 없다. 오히려 잊을만하면 한두 번씩 택시비로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거나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묻곤 했다. 내가 그럴싸한 대답을 고르기도 전에 티스푼으로 홍차 티백을 건져내고 한숨을 쉬는 게 전부였지만. 그녀는 내가 셈이 명확하지 않은 것과 요즘 애들답지 않게 되바라지지 않은 것. 자신의 헤픈 남편이 연정 언니와 내게 농담을 걸 때마다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점을 높이 사는 듯했다. 30대 중후반인 언니가 아침마다 남자 약사의 비위를 맞춰야 할지, 여사장의 눈치를 봐야 할지 고민했다면 나는 초지일관 여자의 말에만 성실하게 답했다. 물론 당신이 주휴수당을 아끼기 위해 파트타이머인 나를 일주일에 세 번, 하루 4시간만 고용하는 것과 세금 3.3%를 내는 게 아깝지 않냐며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은 일.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보건증을 요구한 것과 달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 따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 건 먹고사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기보단 번거로운 일일 테니까.
약국에 도착하자마자 정수기 받침대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컵을 닦았다. 수세미를 물에 적신 다음 주방세제가 아닌 그 옆에 놓인 베이킹소다의 뚜껑을 열어 아주 살짝 묻힌다. 이때 힘 조절에 실패해서 고운 가루 위에 썩은 우유 덩어리 같은 게 생겨서는 안 된다. 그건 약사가 용납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톱을 일주일에 두 번씩 바짝 깎아야 했고, 향수는 물론 핸드크림도 무향의 시어버터만 사용해야 했다. 대충 탕비실 정리를 끝낸 다음에는 약품 검수를 마친 알약을 카세트에 차례대로 채운다. 이때 에스로반, 퍼스크린, 오스템클로르헥시딘은 언제 열어도 비어 있지 않게끔 넉넉하게 채워 넣는다. 연정 언니가 가루약 조제를 시작하면 출력된 시럽 라벨을 보고 빈 시럽 통에 눈금을 맞춰 넣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가장 작은 12cc는 천천히 두 번에 끊어서 넣으면 되는데, 어린이용 해열제를 넣을 때면 애를 먹곤 했다. 끈적한 딸기향을 가만히 맡다 방심한 틈에 쏟기를 두 번, 그때도 여사장은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거래 명세서를 보고 약품을 제자리에 놓거나 약국 선반에 있는 비품 진열을 확인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곳은 일의 순서를 따지기보단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치워야 했다. 그중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길고 하얀 타원형의 알약, 동그란 살구색 알약, 약국에서 가장 작은 개나리색 알약을 정확히 이등분하는 일이었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동그란 알약의 가장자리를 집어 정제절단기로 이등분할 때면 아주 반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약 표면에 균열을 만들거나 바닥에 가루를 흘리는 실수 따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작업한 알약은 육안으로 봤을 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반이었다. 오늘도 알약 90정을 반달 180개로 만들었음에도 미세한 가루조차 남기지 않았다. 시간도 평소보다 10분이나 단축했으니 이 정도면 연정 언니가 환자 열 명의 가루약을 제조하는 시간보다도 빠르고 정확하다. 눈앞의 알약을 한 개도 삼키지 않았는데 목구멍에 침이 고인다. 상온에 반시간 정도 방치해 둔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정도 삼키고 싶다. 하지만 이제 겨우 1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아빠의 손에 물병 하나 쥐어 주지 않고 나왔으니 나도 굶어야 한다.
영화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하필이면 오늘 상영하는 영화의 러닝 타임이 너무 짧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처럼 최소 3시간은 되어야 안심이 되는데, 한 시간 반밖에 안 되는 무성영화라니. 약국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뛰어가도 이미 상영 시간은 한참 지났을 것이다. 이제 모든 걸 아빠에게 맡겨야 한다. 운이 좋으면 두 번째 상영이 시작될 것이고 아빠는 한 번 더 흑백 필름 속에 감길 것이다. 나는 상영관 앞에서 아빠를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 여름이 되고 낭만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상영 하는 날은 점점 드물었다. 한여름이면 노인들은 영화관이 아닌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거나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종묘를 선선히 걷곤 했다. 하루 세 번 그날의 명화를 상영하는 극장에는 아빠만 남아 있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55세 이상은 영화 한 편에 이천 원, 나는 값을 치렀고 나머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이천 원만큼 버티거나 영영 버려지거나 아니면 천천히 사라지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
냉장고 안에 박카스랑 비타민 음료까지 다 채워 넣고 나서야 처방전을 입력하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는 남자 약사가 날이 덥다고 던져두고 간 여름용 재킷이 걸려 있었다.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은 채 내 몸이 하얀 외투에 닿지 않게끔 허리를 곧추세웠다. 남자 약사와 내가 마주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15분 남짓이고 그마저도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전부였다. 약국은 한쪽 벽면 전체가 대형 거울로 되어 있었고 그는 정수기 옆에 바투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포마드 왁스로 머리까지 만진 후에야 외출 준비를 마쳤다. 여름에는 하얀 리넨 재킷을 겨울에는 베이지 톤 울 코트를 입는다는 그는, 종종 내게 자신의 뒷머리 모양이나 재킷 단추를 몇 개나 잠글지에 관해 묻곤 했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내가 거울 속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처방전을 차곡차곡 정리하면 그는 애초부터 내 대답 따위 중요하지 않는다는 듯 약국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에게 문을 열어주고는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이들 부부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묻고서는 대답을 듣지 않는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나도 남자 약사의 말에 어떻게 하면 과하지 않고 적당히 성의 있게 대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황금약국은 동네 상가에 있는 약국들보다 크기야 컸지만, 직원을 한 명 두고 있으면서 아르바이트까지 따로 쓸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내가 고용된 건 철저히 남자의 사적인 외출을 위해서였고 그 누구도 그가 어디에 가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연정 언니의 사적인 처방전뿐이었다.
언니가 약품 출고 처리를 하지 않는 수요일마다 다량의 졸피뎀을 가져간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여사장이 상가 계모임이 있다고 자리 잠시 비운 날이었고, 나는 건조 시럽을 네 개씩 한 묶음씩 스테이플러로 찍고 있었다. 내가 사용한 만큼의 스테이플러 심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여분이 보이지 않았다. 처방전이 놓인 서랍 말고는 여사장의 허락 없이 열 수 없었던 나는, 연정 언니가 있는 조제실로 갔다. 언니는 그곳에서 타원형의 알약을 일일이 분리하고 있었다. 알약 검수 및 분리는 내가 오전에 오자마자 끝낸 업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언니가 분리하는 약은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없는 졸피뎀이었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처방전 없이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어서 나도 대충은 알고 있는 약이었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본 언니는 이거 졸피뎀이야 알고 있지? 라는 말과 함께 내 손에 유발과 유봉을 넘겨줬다. 목격자에서 공범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날 이후 수요일마다 졸피뎀 35알을 유봉으로 짓이겨 빻은 다음 고운 가루로 만드는 것도, 하얀 가루를 분포기에 넣어 일주일 치 정량으로 나누는 일도, 그 약을 약 포지에 넣어 실링기로 밀봉하는 것까지 전부 내 몫이 되었다. 연정 언니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사장의 눈을 피해 공기 중의 가루약을 빨아들여야 한다며 집진기를 가동하는 게 전부였다. 약국에서 빼돌리는 건 졸피뎀만이 아니었다. 언니는 랜덤 채팅 방에서 알게 된 10대 여학생들이 사후 피임약을 구하는 일까지 도왔다. 그들은 제법 과감했는데 약국 문으로 들어온 앳된 여학생이 이리저리 둘러보다 니베아 딸기향이랑 치실, 잘 나가지도 않는 한방 파스까지 계산하면 언니가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피임약을 슬그머니 집어넣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연정 언니를 찾아오는 여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여름 하복을 입고 분홍색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온 중학생부터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게 두리번대는 바람에 나를 더 조마조마하게 만들던 20대 여자.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들어와 아예 카운터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던 여자까지. 약국을 찾는 여자들은 정말 이곳에서 황금알이라도 훔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평소 남자 약사 못지않게 불필요한 말이 많고 눈치까지 없는 연정 언니가 이 모든 걸 대범하게 해치우는 걸 볼 때마다 황금약국에서 유일하게 셈이 명확하지 않은 건 여사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언니가 손에 쥐여 준 유봉으로 졸피뎀을 빻고, 조제실로 들어간 언니를 대신해 여자들의 약 봉투에 응급 피임약을 넣었다. 귀가 두꺼운 토끼가 그려진 노레보원정부터 포스티노, 레보노민정까지. 여사장이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알약의 이름부터 연정 언니가 따로 빼놓은 여분의 약 개수까지 외우게 된 나는, 점점 더 완벽한 공범이 되어갔다. 윤아, 그 약들 공통점이 뭔지 알아? 껍데기는 다 다른데 막상 까보면 정말 딱 한 알이 들어 있다? 72시간 이내에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얼마나 간단해. 언니 얘기를 듣다 보면 나 역시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곳을 찾는 여자들은 황금약국 페이약사 최연정 덕분에 병원에서 불필요한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 성관계를 맺은 건 언제인지, 평소 피임은 잘하는지, 질내 사정을 했는지, 질외 사정을 했는지. 어떤 의사들은 낙태 여부를 묻고는 그러기에 피임을 잘하지 그랬냐는 훈수까지 둔다고 했다.
연정 언니는 내가 약국의 비품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성실하게 졸피뎀과 피임약을 빼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언니가 약사 부부의 눈먼 돈에 관심이 없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언니는 여자들로부터 응급 피임약의 제값을 받아 금전통에 넣었고 매출 장부에는 의약외품이라고 적었다. 언니에게 피임약은 반창고나 손 소독제처럼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어야만 했다. 하루에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세 명까지 피임약을 사 갔고 시제는 만 원에서 삼만 원까지 쌓여 갔다. 어쩌다 내가 혼자 약국에 남아 있을 때면 금전통에 자물쇠까지 채우던 여사장도 자기 생각보다 돈이 더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여사장의 관심은 약국에서의 연정이 아닌, 퇴근한 이후의 연정의 삶에 쏠려 있었다. 여사장은 언니가 자신의 남편과 내연 관계일 거라 확신했다.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연정 언니가 먹는 것부터 바르는 것까지 지켜볼 뿐이었다. 연정 씨, 방금 그거 립글로스지. 나도 하나 부탁해, 내가 시간이 없네. 늘 이런 식이었다. 여사장은 번번이 언니가 쓰는 물건을 사다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고, 그 물건은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병으로 된 음료를 버리는 재활용 통에 놓여 있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은 버렸다기보단 누군가 발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리병 틈에서 존재감을 내보였다.
그날도 연정 언니의 코랄 빛 블러셔는 박카스 병 사이에 반듯이 꽂혀 있었다. 언니가 이틀 전에 여사장에게 사다준 그 블러셔였다. 언니는 아무런 미동 없이 일반 쓰레기봉투에 같이 넣어서 버려달라고 했다. 나는 언니의 불면이, 타인에 대한 지나친 연민이 모두 다 쓰레기통 안에서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언니의 하얀 볼을 은은하게 물들이던 블러셔 자국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살짝 아쉽기도 했다. 여사장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연정 언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때때로 자신이 연정 언니의 고용주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언니를 대할 적마다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스크린의 모서리만 바라보고 있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을 변호할 줄 모르고 그 어떤 부당함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람. 언니와 아빠는 닮은 구석이 없는데도 어디선가 본듯한 상황과 익숙한 시선에 조금씩 숨이 조여 왔다. 쓰레기봉투에 언니가 이틀 전에 사다 준 블러셔를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직 분리수거장에서 유리병을 골라내는 언니에게로 가서 물었다. 여사장이 언니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불쾌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을 잇기도 전에 연정 언니는 내 어깨를 살짝 장난스럽게 밀고는 나를 대신해 말을 이어나갔다. 윤아, 오해받는 게 편할 때가 있어. 여사장은 나를 지금 이상으로 함부로 대하거나 쉽게 자르지 못할 거야.
여사장이 언니를 해고하지 못할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황금약국에는 약사가 여사장과 연정 언니 둘밖에 없었다. 여사장의 남편은 약사도, 파트타이머도 아니었다. 하지만 약국을 찾는 모두가 그에게 약사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나 역시 그가 하얀 가운을 싫어할 뿐이라고 여겼다. 남자가 약국의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면서 조제실에는 들어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사장의 남편이 약국 문을 여닫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어린아이의 조그마한 손바닥에 텐텐을 쥐여 주거나 종로 금은방 사장들에게 쌍화탕을 건네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다. 황금약국은 종로의 널리고 널린 약국 중 하나였지만,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오면서 성실한 부부 약사가 하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약사인 아내와 시시한 남편이 진종일 말도 섞지 않고 자리를 채우는 게 전부였다. 그의 정체에 대해 알려준 것도 연정 언니였다. 언니는 남자 약사가 여사장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를 지키는 거라 했다. 하지만 여사장은 바로 옆 가게에서 5년 넘게 프렌차이즈 밀크티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에게도 자신의 남편이 약사임을 강조했고, 나 역시 남자가 간단한 지시 사항을 내릴 때마다 말끝마다 약사님이라고 호칭을 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모두가 남자를 약사님이라고 불렀다면 여자의 호칭은 약국을 찾는 손님마다 달랐다. 연정 언니는 남자 약사에 대해 평범한 남자,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시시한 남자라고 했다. 상대가 특별하다고 여길수록 더 형편없어지는 부류. 조금 덜 비참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투명해지기를 선택한 한심한 인간. 내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언니였지만 남자 약사의 얘기가 나오면 이상하리만치 예민했고, 나는 그런 언니가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는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고 무구한 내 아빠를 떠올리게 했고, 가끔 여사장보다 더 여사장 같을 때도 있었다.
지난가을부터 아빠는 담뱃불도 제대로 못 붙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손끝이 그다음에는 손 전체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왼쪽 손가락 두 개가 겨우 담배를 붙들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손에 있는 라이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빠에게서 담배 냄새가 아닌 눅눅한 개 오줌 냄새가 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뇌혈관도 기다렸다는 듯이 차츰 쪼그라들었다. 간단한 인수인계를 받으러 황금약국에 다녀온 날. 거실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고 있었던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창틀까지 살피고 나서야 안방 한가운데 겨울 솜이불이 켜켜이 무덤처럼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찌는 더위에 이불을 뒤집어쓴 아빠는 마른 혀를 반쯤 내민 채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이러다 아빠가 우연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고 애써 알은체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우리가 왜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있는지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 아빠가 아예 입을 열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종종 별 볼일 없는 남자들과 자는 상상을 하곤 했다. 척 보기에도 시시한 남자들. 황금약국에 발목 보호대를 사러 오는 남자나 약국 건너편에 있는 유니클로 아르바이트생처럼 오다가다 만나 서로에게 아무런 의문도 남기지 않을 사람들과 모로 누워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빠는 화장실 문을 열고 쪼그려 앉아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엉킨 융을 빨았다. 푸른곰팡이같이 네모반듯한 빨랫비누가 검은 물감이 되어 하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빠가 반으로 쪼개진 옥돌 위에서 융을 사정없이 비빌 때마다 역한 고무 냄새가 내 방안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구몬 문제집을 제쳐두고 화장실 문지방에 걸터앉아 검정 청바지 위에 눌어붙은 본드 자국을 뜯어내거나 군데군데 삐져나온 실밥을 쪽가위로 야무지게 잘라냈다. 아빠는 그 자세 그대로 내 운동화를 빨았다. 캔버스 천으로 된 흰 운동화의 옆구리부터 밑창까지 작은 칫솔로 북북 문지르던 아빠는, 우리 윤이 발이 공룡만큼 커져서 이제 2080 칫솔로는 턱도 없겠어, 라며 웃었다. 그는 운동화 신는 사람들이 우리 밥줄을 다 끊어 놓았다고 말하면서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직 빨지 않아도 되는 내 신발부터 찾았다.
연정 언니와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자마자 여사장은 잠시 나갔다가 와야겠다면서 처방전만 제대로 입력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약국에서 신는 구두와 외출용 신발을 엄격하게 구분했는데 우리가 돌아갔을 때는 이미 신발을 갈아 신고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여사장이 벗어둔 구두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소가죽으로 된 검정 로퍼는 가죽이 살짝 들뜨고 군데군데 벗겨지긴 했지만, 뒤축만큼은 구김 없이 반듯했다. 약사가 잠시간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컴퓨터 책상 아래 있는 구둣주걱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잠깐 신발을 벗어두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보였던 천연 라텍스 깔창은 또 얼마나 깔끔했던가. 하지만 한쪽 밑창이 조금 더 닳아서인지 신발은 나란히 놓여 있음에도 묘하게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건 정확한 반이 아니다. 밑창 고무가 마모된 부분은 아예 평평하게 간 다음에 보강창을 덧대야 하는데 여자는 매번 굽을 통째로 뜯어내고 딱딱한 고무 덩어리를 갖다 붙였다. 기껏 오랜 시간 길들인 신발을 부수고 또 부쉈으니 제 아무리 좋은 구두라 해도 남아나지 못 했다. 여자는 그 긴 세월 동안 종로 한복판에서 약국을 운영 하면서도 제대로 된 구둣방 하나 찾지 못한 것이었다.
여사장은 처방전을 입력할 때마다 급격한 피로를 느끼곤 했고, 그럴 때면 종로 골목 구석구석을 30분씩 배회하다 돌아왔다. 이곳에는 노인이 많았고 그들은 하나같이 막무가내일 때가 많았다. 특히 남자 약사가 자리를 비울 때면 마음대로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꺼내 먹으려 했다. 약국을 사랑방으로 삼은 이들은 황금약국의 파트타이머가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픈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고 친숙했다. 그들은 감정 표현이 아이들만큼이나 투명하고 명확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순간 한없이 온순해졌다. 어제와 비슷한 통증을 달고 살면서도 그 미묘한 차이를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것.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은 의지나 노력보단 선택과 배척에 의해 결정되는 순간이 더 많았다. 연정 언니가 장부에 의약외품이라 적는 걸 선택했다면 여사장은 자신의 남편을 배척했다. 그리고 아빠는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그날도 아빠는 슬리퍼를 들고 뒷짐을 진 채 대합실을 걸어 다녔다. 차표를 손에 쥔 승객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그가 바로 앞에 서도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았다. 신발의 뒤틀린 부분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의 신발을 벗기는 일이었다. 그건 낯선 이의 집에 문을 두드리는 일과도 같았다. 그거 되게 좋은 신발인 것 같은데, 꽤 돈 좀 줬겠어요. 지금 밑창만 제대로 잡아 놓으면 5년은 더 신겠네. 차표와 시계를 번갈아가며 주저하는 손님 앞에 슬리퍼를 내려놓은 아빠는, 다 고치는 데 10분도 안 걸리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바로 앞에 센터가 있으니 난로를 조금만 쬐고 있으라고 했다. 화장실 타일을 오래 쳐다보면 자꾸만 슬퍼진다는 그는, 내가 흰머리를 스무 개 넘게 뽑을 때쯤 엄지손가락이 칼에 베이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성길 아저씨는 그런 아빠에게 성실한 찍새가 되어주었다. 터미널 흡연실에서 오가며 만났다는 아저씨는 라이터를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했고, 아빠가 구걸하지 말라고 화를 낸 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야, 인마. 네가 거지냐. 사지 멀쩡한 놈이 일을 해야지 왜 그러고 있어. 그날 이후 성길이 아저씨는 대합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 구두 수선을 권하는 찍새가, 아빠는 아저씨가 찾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딱새가 되었다. 시외버스 기사들은 성길이가 침을 찍 뱉으면 윤 사장이 꿀밤을 딱 때리는 게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은 아저씨는 마흔셋에 첫 직장을 얻게 되었다. 아빠는 화요일 저녁에는 성길 아저씨랑 목욕탕에 가고 일주일에 한 번은 짜장면 곱빼기를 먹으러 갔다.
늘 뒷짐을 지고 대합실을 거닐던 아빠가 수갑을 차게 된 것은 성길이 아저씨와 일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천안 가는 버스를 예매한 수녀가 장애인 불법 고용으로 아빠를 신고한 것이었다. 아빠는 수녀의 아도방 가죽 구두 표면의 코팅이 벗겨진 것까지 기억난다고 했다. 오래된 신발을 구김 없이 관리해 온 가지런한 생활 습관에 감탄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때는 아빠가 본격적으로 성길 아저씨한테 구두 닦는 걸 가르칠 때였고, 수녀는 탑승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고 했다. 주야장천 찍새만 해왔던 성길 아저씨는 제법 노련한 구두닦이처럼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에 융을 칭칭 감았다. 구두약을 둥글린 다음에 구두 앞코부터 천천히 문질렀다. 신발 밑창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건 무리였을까. 성길이 아저씨는 혼자 잘하다가도 번번이 아빠의 눈치를 살폈고 결국 아빠가 신발 밑창을 약속로 털어냈다. 아빠가 석유난로 앞에 신발을 내려놓자 수녀는 아몬드처럼 뾰족한 눈으로 성길 아저씨한테 대뜸 오천 원을 내밀었다. 선생님, 아픈 사람을 데려다 장사하면 안 되지요. 이 돈은 청년의 몫입니다. 아빠가 닦는 건 사천 원이라고 해도 수녀는 한사코 성길 아저씨 손에 오천 원을 쥐여 주고서야 자리를 떴다.
경찰이 아빠를 데려갈 때까지 터미널 직원 중 그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랑 성길이 아저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어묵꼬치를 사 먹었던 떡볶이집 아줌마도, 구둣방 바로 앞에서 꽃집을 하는 젊은 아가씨도, 얼마 전에 말도 없이 결혼을 해서 아빠가 뒤늦게 축의금을 줬다고 했던 매표소 언니도 모두가 멀거니 아빠와 경찰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학교를 마친 내가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갔을 때도 아빠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길이 아저씨에게 주급으로 급여를 주고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챙겨 먹여 보냈다는 것도 때때로 일을 하지 않는 날에도 목욕탕에 가 등을 밀어준 사적인 얘기까지. 아빠는 성길 아저씨의 이름에 대해 끝까지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성길 아저씨의 노모와 휴무였던 버스 기사들이 찾아와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아빠는 터미널에 나가지 않았고, 가끔 김 소장이라는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와 속을 뒤집어놓곤 했다. 김 소장은 그러기에 대합실에 왜 장애인을 나돌아 다니게 하냐고, 혼자 일하면 되는 일이지 웬 오지랖을 부려서 오해를 받았냐고 핀잔을 늘어놓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아빠가 집에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서울의 달」, 「옥이 이모」, 「파랑새는 있다」 처럼 대부분 김운경 각본의 옛날 드라마였고, 가끔 「야인시대」나 「피아노」 같이 2000년대 드라마가 끼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집에서 옛날 드라마 재방송만 보던 아빠는 술이 없으면 좀체 잠들지 못 했고, 흔한 주정 한 번 없이 천천히 쪼그라들었다. 하루는 신발장에 있는 몇 개 없는 신발을 모두 내다버리기도 했고, 텔레비전이 음소거 상태인 줄도 모르고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기도 했다. 더는 술이나 담배를 찾지 않았으며 철지난 사람들의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약사님, 남편 찾으러 나갔을 거야.
연정 언니는 여사장이 자신을 미워하는 힘마저 사라지면 약국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거라 했다. 언니가 남의 집 속사정까지 왜 알아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 역시 황금약국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으면 아빠와 숨 막히는 묵언수행을 해야만 했다. 터미널에 있는 두 평짜리 구둣방 보증금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언니는 여사장이 그저 그런 남자라도 붙잡고 사는 게 사람들의 수군거림보다는 견디기 쉬울 거라 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가는 팔목을 지그시 눌러 주물렀다.
언니는 요즘도 밤마다 잠을 잘 못 자는 거예요?
졸피뎀, 내가 먹는 거 아니야.
졸피뎀은 언니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남편의 것이었다. 전날 먹다 남은 꽁치 조림이나 냉장고 안에 있는 보리차 안에 곱게 빻은 알약을 서서히 녹여 넣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시엄마가 보내준 식혜에 졸피뎀 20알을 한꺼번에 넣기도 했는데, 그때도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알아서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아무런 오해도 없이 선한 잠자리에 드는 걸 원치 않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 다행히 언니에게는 딸린 자식이 없었고, 남편의 폭력도 더는 깊은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사장은, 끝내 자신의 신발을 고칠 재주가 없었던 그녀만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4시 10분 전이었지만 아빠의 이천 원짜리 시간은 이미 타들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연정 언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우리들의 낙원상가에는 더 이상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낭만 극장 앞에는 담배꽁초만 쌓여 있었다. 상영관에 들어가지 못 하고 극장 주변을 맴도는데 하얀 구두를 신은 남자 약사가 낭만극장 상영관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아빠는 똑같은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자기 몫의 시간을 버텨냈다. 순간, 여사장과 연정 언니 이미 지나간 남자 약사의 얼굴이 차례대로 스쳐 지나갔다. (66.4매)
첫댓글 네~ 잘 읽어볼게요! 고생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