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편수로 전한 사랑
진 연 숙
호박 편수가 완성되었다. 애호박의 달콤함에 표고의 감칠맛이 더해져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다. 부담 없는 겨울철 채소 보양식이다. 한 입 넣고 씹으니 순한 만두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간도 잘 배고 알맞게 익은 호박 편수를 큰 통에 가지런히 담았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몇 해 전 선재 스님 제자에게 사찰 요리를 배웠다. 건강식으로 재료의 단순함과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는 요리법이다. 가족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내 주위의 지인들에게 만들어 나눠 주고 싶었다. 이 세상 살면서 짓는 복중에 큰 복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음식을 나눠 베풀어 주는 복이라 하였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사찰 요리는 많은 양념이 필요치 않아서 좋았다. 간장, 된장, 고추장, 죽염, 고춧가루, 들기름, 참기름 등등 단순하여 깔끔한 맛을 만들어 낸다.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즈음에 우연히 도반들과 계룡산 무상사에 놀러 갔다. 대웅전에서 삼배하는데 관세음보살님을 바라다보니 싱긋이 웃고 있다. 잘못 본듯하여 눈을 깜빡이고 다시 한 번 쳐다보았는데 여전히 웃고 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듯이 법당 안에 앉아 있는 내 마음이 행복했나 보다. 언니 보살들이 한소리로 입을 모은다. “연화심이 무상사 부처님과 좋은 인연이 맺어진 것 같네.” 하며 고개를 끄떡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인연이라면 어떤 인연이 될지 계속 생각했다. 마침 사찰 요리를 배우고 지인들과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배우고 있으니, 인연의 복을 새로이 맞게 되는 셈이다.
무상사에는 외국 스님들이 한국 불교와 선을 배우고 수행하는 도량이다. 외국인들 본토의 음식인 샐러드와 한국 전통 사찰 음식을 한 달에 한 번 2~3가지씩을 해다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무상사에 내 뜻을 전하고 허락을 받았다. 사찰 요리 선생님에게 조언도 구하며 만들어 보니 점점 더 익숙해졌고 행복감이 더해진다. 참죽나물 장떡도 찬조를 받았다.
호박 편수는 몸에 열을 가라앉히고 기를 통하게 하는 효능이 뛰어나다.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비타민 무기질이 많아 채소 보양식이다. 그래서 늘 앉아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필요한 특별식이기도 하다.
장을 보고 재료를 신중하게 고른다. 칼질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게 된다. 손끝에서 사랑이 에너지로 전해진다고 했다. 이 음식을 먹는 외국 스님들과 모든 분이 건강해지고 뜻하는 수행 모두를 이루기를 바라는 기도의 마음도 보태진다.
이른 새벽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호박을 가늘게 채 썰고, 또 표고버섯도 채 썰어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두 재료를 들기름에 살짝 볶아 낸다. 속을 만두피 위에 올려 네 귀퉁이를 마주 보게 붙여 사각으로 모양을 낸다. 김 오른 찜기에 10분 정도 쪄낸다. 따스함이 내 손에 전해진다. 내 정성과 사랑이 스님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
호박 편수와 참죽나물 장떡과 파인애플 달콤한 소스를 담아 가방에 넣었다. 묵직하다. 그러나 마음은 날아갈 듯 좋다. 남편이 동행해 주니 든든한 마음으로 계룡역을 지난다. 한적한 시골길에 지난밤 내려 쌓인 눈을 구경하니 정겹다. 미끄러운 언덕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공양간에 들어서니 보살님이 “눈이 오고 추운데 멀리서 일찍이 오느라 애썼네요.”라고 활짝 웃으며 반겨 준다. 옆에서 음식을 담고 있던 미국 스님이 합장하며 “굿모닝!” 인사를 한다. 나도 “굿모닝!”하고 대답했다. 공양간 테이블에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있는 호박 편수와 장떡과 알록달록 샐러드를 가지런하게 올려놓았다. “스님! 코리아 푸드 호박 편수.”라고 한국어식 영어로 말을 하니 “땡큐!”라고 한다. 음식에서는 언어의 국경 없이 뜻이 다 통한다.
뷔페식인 무상사의 여러 나라 스님들이 내가 해 온 음식들을 먹는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덕이 들어갔는지를 헤아린다. 나의 덕행이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약으로 알아 육신의 괴로움을 치료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이 음식을 먹습니다.”라고 기도를 한다.
먹기 전 음식에 깃든 사람들의 노고를 먼저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는지를 돌아보고 몸을 지키는 약으로 생각하라는 뜻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정성 들여서 해 온 나의 마음이 듬뿍 담긴 호박 편수를 먹고 “마시써요.”라고 엄지를 올려 준다. 그들 나라의 익숙한 음식과 새로운 한국 음식을 함께 맛보아서 만족스러운가 보다. 보람되고 뿌듯하며 기쁜 순간이다. 새벽부터 준비한 아니, 며칠 전부터 준비한 음식 공양이 나의 기도의 실천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에너지가 전해진 것 같아 흐뭇하다. 사랑이 담긴 음식을 알아주고 축복해 주니 오늘 인연이 된 그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함께 해 줘서 고맙고 든든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음식은 상호 공생, 수많은 인연에 대한 감사,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인연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받고자 하면 상대에게 베풀라’라는 부처님의 삶의 가르침을 연습한 하루였다. 자비로운 밥상이 행복한 에너지를 부르고, 그 행복은 더 많은 행복을 끌어당긴다. 조그만 마음을 낸 음식 봉사에 겸손과 자비를 배웠다. 형편 닿는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재능 기부를 계속하고 싶다. 호박 편수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아직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