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가 쓰러진 길 박남준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동안 바람이 불고 나무가 쓰러지고
큰비가 내렸다
꿈 밖은 아직 여전한데 쓰러진 나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낯익은 길을 베고
저 세상의 길을 떠난다
잔 바람에도 미루나무는
얼마나 반짝이는 푸른 손짓으로 바람을 불러모았던가
나무가 누워 있는 동안 이 산길
미루나무의 노래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바람의 나무, 바람의 손바닥들이라 부르던 저 쓰러진 나무와
다 버릴 수 없어 허리를 자른 나무들 사이에
나는 오래 망설인다
나무에 등을 기대어 거기 스스로를 가두고 나무처럼 쓰러져 있다고 여긴,
나무가 쓰러지며 지워버린 한평생
저 허공중의 길과 내가 한때 쓰러졌다 여긴
이 길 위에서 나의 오늘을 물어본다
올림픽 공원에서 오랜세월 사랑받던 미루나무 한쌍이 푸르름을 자랑하던 시절 2010.7.25일 사진입니다 이 나무는 그해 여름 강풍에 쓰러져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위 사진은 2010.9.17. 쓰러진 미루나무 사진입니다
쓰러진 나무 박남준
강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흔들렸으므로 한 그루 나무가 쓰러졌다
작은 씨앗 하나 땅에 떨어져 어린 싹을 키우고
한 그루 푸른 그늘을 드리우며 사는 일이란
사람이 태어나 걸어가는 알 수 없는 내일의 길처럼
허공 중에 낱낱히 가지를 뻗으며 길을 내어가는 것이라 여겼다
이제 나무가 쓰러지고
스스로 밀어 올린 그 모든 길의 흔적은 한 점 남김이 없다
그렇다면 나무의 지난 시절은 한갓 덧없는 일이었는가
내일이나 아니면 오래지않아
나는 톱과 낫을 들고 길게 길을 베고 누운
나무의 잠 속에 다가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아궁이 속에서
내 몸 안에 이처럼 훨훨 타오르는 불길 가지고 있었노라고
탁 탁 소리치며 방바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것이다
그 방에 등을 누인 내 잠의 어느 한순간
푸른 나무의 생애가, 그가 저 하늘을 향해 길어 올린
가지가지마다의 반짝이던 길들이
한번쯤은 보이지 않을까
굴뚝을 통해 춤을 추듯 솟아오르며 퍼져 가는 연기들이
언뜻 나무의 푸른 그늘을 그려 보인다
한때 나의 젊은 날도 휘감기며 노을 속을 떠돈다
곧 밤은 깊어질 것이고 나는 그 밤의 어느 한 자락을 베고
오랜 잠에 들 것이다
첫댓글 푸르름을 자랑하든 나무도 세월의 흐름에 흔적없이 사라지는군요...
우리도 언젠가 저 나무처럼 되겠지요...!!!
ㅎㅎ...좀 쓸쓸한 사진과 시 낭송을 하나 올렸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운명은 결국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