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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의 날씨는 아늑하다 여겨질 정도로 평화롭고 온화했다. 다음날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제대로 그 위용을 떨치기 시작했고 목적지 주변으로 다가설수록 찰흙 같던 어둠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택시에서 내리자 바람도 거세게 불더니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변화무쌍했던 하루의 시작에 숙소를 나서기 전 당일 일기예보에 좌절했던 내게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고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사이로 찰나의 순간을 활용해 맑게 갠 하늘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축 처진 어깨를 다시 곧게 펴줬다.
교회 건물 건너편에서 패션 브랜드 Burberry의 팝업 스토어와 카페를 들어가기 위한 줄이 한창이었다. 바로 옆에 노아의 방주를 생각게 하는 건축물이 떡 하니 자리매김해 있었고 멀리서 볼 땐 얼핏 에덴동산처럼 보이다가도 금방이라도 바다로 항해를 떠날 것 같은 교회가 성스롭게 다가왔다. 종교는 없지만 어릴 적 어깨너머로 들었던 그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연상케 하며 마침 또 몰아치는 비바람 덕분에 분위기도 딱 맞아떨어졌다. 교회 주변을 감싸고 있는 물들도 정말 극적으로 다가왔다. 현대 건축물 하나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건 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 노아의 방주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너는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어라. 배 안에 방을 여러 칸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또한 너 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내용 중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일렀다는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이후 노아는 야훼의 명을 받아 삼나무로 거대한 방주를 만들게 했고 그 안에 정결한 짐승은 암컷 7마리, 수컷 7마리 나머지는 암수 한쌍을 싣게 했다 이후 대대적인 홍수가 일어나 방주에 탄 동, 식물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과 다른 생물체들은 멸절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노아는 까마귀를 날려 보내 물이 빠졌는지를 알고자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추가로 비둘기를 날려 보냈으나 곧바로 돌아왔고 다시 날려 보냈을 때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것을 확인한 뒤 물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방주에 탔던 모든 생명체들은 세상을 재건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전한다.
방주의 형상을 한 채 교회의 앞, 뒷 면을 보면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고,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내부가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을지 자연스레 호기심을 자아냈다. 가지런히 나열된 선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고 파란 하늘 아래 짙게 깔린 뭉게구름이 건물 특유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시켜줬다. 수차례에 걸쳐 실체를 현실에 나타내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제주도 최남단 서귀포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방주교회 위에서 담았던 사진은 금방이라도 닻을 올려 항해를 시작할 것 같았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그러한 극적인 상황을 자연스레 연출해 줬고 교회 건물 주변을 감싼 물과 저 멀리 일렁이는 바다가 혼연일체라 자연스레 서로에게 녹아든다. 반면에 눈으로 바라본 방주교회의 모습은 가지런히 나열된 선과 연속된 지붕 패턴들이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위에서 볼 때 와는 다른 맥락으로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현무암과 풀이 자제의 색과 어우러지며 땅에 녹아들었다. 이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더한다면 성스러움에서 비롯된 경 외로움은 종교가 없는 내게도 특별함을 가져다줬다.
다양했던 감정의 폭은 건축물 안에 내재된 서사와 만나 깊이를 더해 준다. 오래전 그리스 아테네를 여행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을 오르면서 아테나 여신을 상징하던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식재되어 있는 걸 보고 그곳에 깃든 이야기를 떠올린 채 함께 동행했던 지인과 상관없이 혼자 신이 나 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한 차례 대홍수가 지나간 뒤 새로운 꽃을 피우고자 수많은 생명들이 몸 담았던 공간. 사실관계를 떠나 이야기를 곱씹은 채 건물과 마주하며 순간을 온전히 느껴본다.
팝업스토어에서 바라 본 교회는 바로 앞에 자리한 동백나무와 건물 위로 피어난 구름 덕분에 흡사 에덴동산을 보는 것 같았다. 강한 바람 때문에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빛이 흩어져 주변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연출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방주교회의 모습이 마치 잘 담긴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듯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팔색조와 같은 매력을 가져다 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줬다.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전국 곳곳에 위치한 사찰 전각들이나 수많은 건축물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랜드마크를 제외한 현대 건축물에서 위에 나열된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흘러가는 순간의 변화에 녹아든 채 시시각각 다른 매력을 건네줬던 방주교회. 혼자 다녔던 여행은 정적인 순간을 넘어 공간이 매우 동적으로 다가왔다. 혼연일체라는 말 한마디가 이럴 때 사용하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서귀포 앞바다의 분위기에 녹아든 채 다음 순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2. 재일 한국인 건축가
방주교회를 포함해 그가 제주도에 만든 건축물들이 꽤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풍석 뮤지엄과 포도호텔까지. 주변 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이질감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포도호텔은 지붕이 포도송이를 형상화해 일출과 일몰 때 햇빛을 머금은 지붕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행기를 담기 전 그가 만든 건축물 전반의 분위기가 단순하면서도 절묘하다 라는 두 단어가 항상 함께 했을 정도니 말이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 그는 항상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고 전한다. 그의 일대기와 대표적인 건축물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그를 알아볼 수 있었고 방주교회를 지을 당시의 일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주교회를 다녀온 뒤 호텔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했던 순간으로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매우 짙게 깔려있다. 당장 날이 풀리면 안도 타다오를 포함해 제주도와 우리나라 각지에 퍼져있는 그의 건축물을 살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일본에 있으면서도 제주도 그중 서귀포를 사랑했던 그는 서귀포를 사랑했다. 말년에 서귀포에 거주할 생각을 했다는 그의 말을 전하는 영화 속 인물들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사이로 펼쳐진 풍경이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라는 그의 말과 방주교회에서 내가 느꼈던 그 모든 변화를 되새기며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정갈했으며 편안했다. 하지만 순간이 가져다주는 그 변화는 시간의 흐름과 결을 마주한 채 매 순간을 기대하게 만들어 줬다.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며 처음 건축물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 준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은 한참 건축 디자이너로 일본에서 활동 중이기에 직접 만나기는 힘들게 됐지만 2016년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됐던 르 코르뷔지에 전에서 그가 곁들인 설명과 곡선 그리고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봤을 때의 감정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친구 덕분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내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는데 문득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유동룡", 일본 이름 '이타미 준' 재일 한국인 건축가로 일본에 머물면서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던 건축가로 갖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도 2003년 프랑스 유명 박물관에서 전시를 진행하게 되면서부터다.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았던 그는 '자유로운 국제인으로서의 건축가가 되자'라고 다짐하며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만듦과 동시에 건축가로서의 그 만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게 된다.
2009년에 완공된 방주교회도 이와 결을 함께 한다.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아무런 설명 없이도 고스란히 그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갈수록 그 건축가에 대한 모든 것들이 궁금해졌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했던 가우디를 제외하면 소위 '팬심' 이 생길 정도로 그 매력에 푹 빠져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자각할 수 있었다. 덩달아 본래 확인했던 정보와는 다르게 내부 관람도 가능했기에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지체 없이 들어갔다.
3. 건축 그리고 공간
입장을 위한 간단한 절차를 마무리 한 뒤 베일에 쌓여있던 공간으로 자연스레 빨려들어간다. 상상력을 자극했던 외부의 모습과는 다르게 내부는 칸막이 대신 여느 교회와 다를게 없는 예배당의 모습이었다. 일정이 없을 때 방문객들을 위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덕분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편하게 돌아볼 수 있었지만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부터 사람들의 발걸음 부터 조심스러워 지는 것을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저 높은 곳에서 빛을 머금은 채 걸려있는 십자가는 공간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고자 조심스레 주변을 돌면서 카메라 셔터음도 저소음으로 설정을 바꾼다. 방해할 것도 없을뿐더러 어느새 예배당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 덕분에 공간에 경건함이 팽배했다. 게다가 건축가 '이타미 준'의 의도였을까? 바깥에서 봤을 때 와는 또 다르게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180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외부의 모든 것 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상당히 강하게 와닿았다. 마치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려는 듯 말이다.
이미 완전히 공간의 분위기에 스며든지는 오래였다. 앉아서 한창 기도드리는 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좀 떨어져 앉았다. 한창 고된 바람이 몰아치던 분위기와는 상반된 온화한 분위기에 편안함이 녹아 있었고 아래에 머물던 내 시선은 자연스레 빛이 떨어지던 방향으로 향한다. 일정이 마무리되어갈 시점에 즐기는 잠시 동안의 휴식. 궂은 날씨에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에 달콤하게 다가오며 생각의 늪으로 깊이 빠져든다.
누군가 내게 종교가 있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그 답변에 나는 나를 믿는다 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다.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기 전에 그 정서에 기반한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다양한 분야부터 우리의 일상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은 증명된 지 오래됐으며 해석이 불가능했던 수많은 자연현상들이 '과학'에 의해 분석되고 증명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바티칸에는 교황이 존재하며 중동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기에 맞춰 성지순례를 떠난다. 답 없는 사색의 순간을 마무리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4. 변화
건축가 '이타미 준' 방주교회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을 때 나는 이미 그분의 팬이 되어 있었다. 역사적 의미 또는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갈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고 더불어 건물 주변의 분위기와 잘 녹아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의 일대기를 건축물과 함께 설명해 둔 다큐멘터리 영화와 한국에 그가 살아생전에 남긴 건축물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 목록을 만들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불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참 좋았다. 실시간으로 내가 지금껏 관심 갖고 공부해왔던 것들과 여태껏 몰랐던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결합해 새로운 나만의 결과물들이 창조된 기분. 어릴 적 나는 정말 공부를 싫어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궁금증과 그 생각에 깊이를 더하고자 스스로 찾아보며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날 보며 가끔은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가지런히 나열된 선과 패턴의 연속성. 바라만 봐도 자연스레 편안해지는 게 시선을 묘하게 사로잡는 마성이 매력이 깃들어 있던 와중에 어떤 사진작가 분께서 구도를 잡기 위해 '기하학'을 추천해 주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시간과 빈도를 더 할수록 담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면서 단편적으로 담아왔던 조각들에 새로운 문장들이 모여 한 편의 문단을 이루고 그 문단들이 모여 글이 됐다. 고뇌는 어느새 순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다가와 사색의 순간 끝에 나온 생각의 파편이 여행기에 담겨 온전히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가 남긴 건축물을 통해 이뤄줬던 간접적인 소통들 때문에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다.
거센 비바람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점심때가 다가올수록 주변이 점점 따스해졌다. 길었던 시간 끝에 남은 결과물들을 안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풍석 뮤지엄 또한 그가 남긴 건축물이기에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좀 더 따스한 날 마주 보기를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주교회는 여전히 바다로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을까?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의 모습이 문득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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