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트무트 코쉬크. 그는 EU내 한국통으로 통한다. 한국은 물론 북한을 수 차례 방문했으며 ‘김대중과의 만남화합으로 가는 한국, 화해와 통일’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경축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한반도 상황 및 주변정세, 한·독 관계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하 르트무트 코쉬크(Hartmut Koschyk)는 독일의 재선의원으로 기독사회당(CSU) 총무다. 1959년생인 그는 우리로 치자면 실향민 출신 의원이다. 그가 실향민이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문이다. 나치의 패망으로 독일이 전후 몇몇 지역을 포기하게 되자 그의 부모의 고향인 오버슐레지아 지역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하는 피난민 대열에 끼어 서독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쟁과 난민, 사회적 통합 및 갈등과 같은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코쉬크는 대학을 졸업한 후 시민단체인 ‘2차대전후 강제추방된 피난민협회’에 가담해 열심히 활동했고 1987∼91년에는 이 협회의 총무를 지내기도 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던 해 연방 하원의원이 된 그는 ‘독일내 공산 독재와 그 후유증 청산’을 위한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추방자 및 피난민의 기사(騎士)’로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1998년 이후 한·독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과 북한도 여러 번 방문했으며 2002년에는 ‘김대중과의 만남화합의 길로 가는 한국, 화해와 통일’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독일 정치권 내에서 한반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이자 아시아 전문가로 독일 및 유럽연합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인물인 것이다. 지난 2월말 노무현 대통령 취임 경축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그와 만나 한반도 상황 및 주변 정세, 한·독 관계의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귀하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각국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일 정치인이다. 또 남북한을 두루 다녀본 몇 안 되는 유럽 정치인이다. 귀하와 한국, 아시아의 특별한 인연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원래 나는 중국 문제에, 특히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티베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독일 통일후 1990~98년 동독 과거 청산에 관한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통일후 독일이 극복해야 할 난제 중 하나로 부각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학자들과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분단의 역사를 갖고있는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우리 독일의회 내에 한·독 의원친선협회 자리가 나서 위원장에 앉았다. 이것이 나와 한국의 인연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한국의 통일이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과 평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 귀하는 통일독일의 정치인으로 ‘동독과거청산위원회’의 활동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또 남북한을 모두 여행했고 양측의 정치인들과도 교류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판단해 볼 때 남북한이 이견과 경제·문화 차이에서 오는 간극과 정서적 이질성 등을 극복하고 메워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내가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0년이었다. 나는 남한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으로 관광을 갔는데 당시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뭐라고 할까. 동독과 서독으로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여행하던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혹시 여권이 잘못돼 여행 허가가 취소되지나 않을까 싶어 여권을 몇 번씩이나 뒤적여 보던 경험이 떠올랐다. 약간의 흥분과 떨림 속에서 금강산에 다녀왔다.
하지만 이것은 비록 큰 경험과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일이 아니라 관광으로 북한을 간 것이었다. 이후 2002년 5월4∼7일 독일 연방의회 대표단과 함께 공식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남한이 인프라가 잘 건설된 고도산업사회의 모습이라면 북한은 그 반대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초 옛소련에 속했던 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물론 평양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평양 바깥, 특히 판문점에 가까운 황해남도 지역에 갔을 때였다. 그 지역의 병원 등을 둘러보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느낌은 내 인생에서 처음 느꼈던 것이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들 간의 사고와 경제수준 등의 차이는 과거 동·서독 간의 차이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 괴리가 더 벌어져 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후 서독이 느꼈던 충격 중 하나가 동독의 수준이 서독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나쁘다는 것이었다. 당시 동독은 코메콘(공산권경제협력위원회)의 회원국 중 가장 경제가 좋은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경제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이 너무 낮았다. 북한은 이런 동독과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남북한이 이런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석환 위원과 인터뷰중인 코쉬크 의원
“햇볕정책 이제부터다”
―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한 후 한국을 방문할 때 육로로 직접 판문점을 통과해 오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육로 통과가 좌절된 이유는 무엇인가.
“2001년 5월 독일 하원 사절단과 함께 한국에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자 했을 때, 북한 당국은 기술적 문제를 들어 이를 거부하였다. 2002년 방문때는 처음부터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다음번에 독일 하원 사절단이 남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직접 북한에서 남한으로, 또는 남한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2005년 5월 남북한을 교차방문했을 당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 독일은 베를린선언 이래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 정책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현대상선의 대북지원 문제와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의 효용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실패했다고까지 말한다. 귀하의 평가는 어떤 것인가.
“DJ의 화해·포용정책은 역사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러나 과거 동·서독 시절 서독의 정치인들이 동독 정치인들을 만났을 때의 관계와 비교할 때 DJ는 너무 어려운 파트너를 만났다. 물론 나는 과거의 동독 정권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예측이 가능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북한 정치인들은 예측이 어렵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예측이란 약속하면 지켜줄 수 있을지 아닐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 정도에 관한 이야기다. 북한은 이마저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줘야 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햇볕정책은 이제 초기 단계다. 말하자면 DJ는 길이 잘 닦여진 상태에서 이런 정책을 폈던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북 화해협력의 길을 열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더 많은 투자를 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DJ가 베를린에서 연설했을 때,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그리고 독일은 처음부터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그 이유는 동·서독 분단 상황을 겪어본 경험으로 한국이 겪는 고통이 서독의 과거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DJ의 햇볕정책은 올바르고 용기 있는 것이었으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대통령으로서 시작한 정책이다. 그리고 그런 정책이 처음이어서 아마도 많은 투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정도 투자가 진행돼 이제는 무슨 일을 할 때 상호 검증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나도 DJ의 정책에 대해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DJ의 대북 포용정책은 역사적으로 공헌한 정책이라고 본다. 또 이에 대한 비판은 합당한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너무도 조급히 결과를 기대하는 조급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북한처럼 예측이 어려운 정권에 대한 정책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귀하는 오버슐레지아 지방에서 2차대전후 서독 지역으로 넘어온 피난민의 후예다. 또한 피난민의 기사(騎士)로서 난민 문제를 다루는 역할도 하고 있다. 통일 후에는 ‘공산 독재 극복 및 후유증 치료를 위한 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요즘 탈북 난민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독일 사람들은 난민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나?
“사실 난민 문제는 독일 근대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문제다. 또한 독일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다. 2차대전후 1,0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과거 독일의 땅이었던 곳에서 떠나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갔다. 나치독일 패망 후의 영토문제 때문이었다. 또 이들 난민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폐허 상태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됐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독일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영향을 미쳤다. 2차대전후 독일 사람들이 스스로도 난민이었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난민문제에 대해 정서적으로 대단히 민감하다. 유럽의 프랑스나 영국 등 다른 나라와는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나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일인들 스스로도 난민이었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난민문제때 독일인들이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던 것만 보아도 이런 현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민문제는 문화·역사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오버슐레지아의 경우 독일의 유명한 지성들이 배출된 곳이다. 다행히 독일은 이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제3제국, 나치가 폴란드·러시아 등지로 침공해 그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이 추방당하고 투옥되는 등의 고생을 했지만 현재 독일은 이들과 재수교하고 협력을 강화해 어느 정도 과거사를 극복해 가고 있다.
독일의 전후 3대 과제는 ▷나치가 남긴 전과를 극복, 해소하는 것 ▷수백~1,000만명 이상에 달하는 난민문제를 해결하는 것 ▷분단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는 이를 극복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 3가지 과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부흥의 원동력도 생겨났고 운명적 체험들이 국민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독일의 운명적 체험이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물론 독일은 가해자였고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점 등에서 다르지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힘이 통합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본다.”
― 북한을 직접 방문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북한 체제의 미래는 어떨 것으로 보나?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본 북한 지도자들은 어떤 상황판단과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나? 통일 독일을 달성한 서독의 정치인 입장에서 한국과 북한의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나?
“내가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2년 5월이었다. 당시 김영남·최태복 등과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은 북한도 원칙적으로 남한과 더욱 접근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또한 미국과도 대화 및 협력을 원하였다. 지금은 상황이 물론 어려워졌다. 기민당/기사당(CDU/CSU) 및 자민당(FDP) 원내교섭단체는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관련하여 독일 하원에 동아시아 안보를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를 제출하였다.
이는 유럽안보협력회의 프로세스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동북아 안보를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의 목적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1차원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이와 병행하여 신뢰 형성, 군비 통제, 경제 협력, 에너지 공급, 내부사회의 변화 등을 위한 조처를 함께 취하자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도 논하자는 것이다. 이 이니셔티브에는 러시아·중국·일본·미국·유엔 및 유럽연합(EU)이 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과 유럽이 이를 위한 시작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반도 지도를 펼쳐 보이며 최근 북핵
문제에서 비롯한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코쉬크
“독일 통일 과정에서 비밀지원 없었다”
― 요즘 한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의 동독 지원은 공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엄격한 상호주의에 입각했다고 하는데, 과연 비밀지원 같은 것은 없었나?
“동·서독 관계에서는 실제로 상호성 원칙을 준수하였다. 물론 여론에서 폭넓게 논의되지 않은 현금지원도 있었다. 예를 들면 옛동독의 정치범 석방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도 독일 하원의 특별위원회가 비밀리에 이에 관한 정보를 보고받았고 비정부 원조 기구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 귀하는 2002년에 ‘김대중과 만남화합의 길로 가는 한국, 화해와 통일’이라는 책을 냈다. 그만큼 한국 현대사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정통하다는 말인데 김대중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고 이번에 새 대통령 취임식과 김대중 대통령 이임 장면을 지켜본 소감은 어떤 것인가.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의 정치 인생은 처음부터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용기를 경의를 갖고 바라본다. 그는 이로 인해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가 2000년 베를린 연설을 통해 독일에서부터 햇볕정책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독일인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바로 이 때문에 햇볕정책을 지지할 의무를 느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 퇴임후 바로 그를 만났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상황 개선을 위한 독일과 유럽의 역할을 여전히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독일과 유럽을 중요하게 여긴다. 노대통령은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와 빌리 브란트 총리를 모범으로 여긴다. 그의 취임사는 아주 인상깊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했을 때 그가 많은 에너지와 동력을 갖고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 독일은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북한에도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서방국가로는 유일하게 북한의 ‘고려민항’이 취항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탈북자들을 위해 적극적인 기획망명 등을 시도하는 노르베르트 폴러첸도 독일인이다. 독일의 대북정책의 원칙과 기조는 어떤 것인가.
“독일은 한국의 긴장완화 및 포용정책을 지원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우리는 북측과 북한의 개방, 경제·사회적 개혁, 인권 개선 등에 관한 솔직한 대화를 원한다. 우리는 현재 북측과 접촉할 때마다 핵 문제를 계속 위험하게 몰아가면 북한은 결국 궁지에 몰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CDU/CSU 및 FDP의 동북아 안보를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의 목적은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사찰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북한은 다시 국제사회에 더욱 강하게 편입되고 안보에 대한 보장을 받으며 에너지 공급 및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 개선, 경제 발전을 위한 효율적 원조를 받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개방을 꾀하는 것이다.”
― 북한의 인권과 대북 포용정책 등을 놓고 한국 내에서도 말이 많다. 이 문제에 대한 귀하의 견해는 어떤가. 새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북정책 및 인권 문제에 대해 조언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물론 동·서독 관계의 경험과 독일 통일 경험을 한국이 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대한민국과 새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 긴장완화, 화해, 통일을 위한 독자적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언제나 한국 편에 설 것이다. 우리는 이미 2001년 6월 독일 하원 결의를 통해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최근 북한 핵 문제로 중대한 기로에 직면했다. 북한 핵 문제 해결 전망에 대해 독일은 어떤 전망을 갖고 있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유럽연합과 독일은 어떤 중재를 할 계획인가.
“독일과 EU는 현재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한국이 중재자로 나서기를 원한다면 이 역할을 떠맡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과 EU는 예를 들면 CDU/CSU 및 FDP가 제안한 국제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여기에서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한반도 상황 전개와 관련하여 독일과 유럽의 적극적 역할을 원하였다. 독일과 유럽은 이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 독일은 평양에 동독 시절까지 포함하면 서방국가 중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큰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영국 등이 독일대사관 건물에 세들어 있을 정도로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은 서방 국가들의 외교센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최근 여성 대사가 현지에 부임해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의 인원은 어느 정도이며 그들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그들의 생활은 어떤가. 특별한 고통은 없는가. 자유로운 여행은 가능한가. 북한인들을 현지 고용인으로 채용하기도 하나?그럴 때 특별한 제한이 있는가. 감시나 생필품 부족 등의 상황은 심각한가. 혹시 독일 기업인들의 평양사무소가 있는가.
“평양 방문때 나는 헤어트람프 대사를 위시한 독일대사관 직원의 활동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특히 평양의 독일대사관 부지에 스웨덴과 영국 대사관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기뻤다. 이는 EU가 추구하는 공동의 외교정책을 대변해 준다. 독일 경제계도 북한과의 협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독일의 상사 대표부나 지사는 공식적으로 없다.
그러나 이미 많은 독일 기업들이 북한내 상황 파악을 위해 방북한 바 있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평양 주재 독일 외교관들은 비교적 정상적인 근무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특별한 제한은 없어 보였다. 현재 식료품 사정은 내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다시 아주 긴박해졌으나, 이는 북한의 핵 문제 고조로 인한 것이다.”
― 독일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민주화투쟁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상적, 정신적 망명지로서의 역할도 했다. 또 독일로 유학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보다 미국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독일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독일에서 일했거나 유학한 한국인들 그리고 현재 독일 거주 한국인들에게 아주 감사하고 있다. 이들은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또한 독일인의 삶을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현재 독일 대학들은 젊은 한국의 대학생을 포함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유학후 한국으로 돌아간 한국인들은 양 국민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한국 유학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서 한국내 독일기업, 국제기업, 한국기업 등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 귀하는 독일내 공산 독재와 그 후유증 청산문제등에 관한 전문가인데, 소속 위원회의 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귀하가 소속한 위원회가 한국의 통일 과정에 조언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독일 통일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을 위한 조언을 하기란 아주 어렵다. 물론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서독인들은 현재 남북한 사람들처럼 서로 철저히 분단되어 살지 않았다. 현재 북한은 한국 및 국제 미디어의 수신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도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측이 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좀 더 많은 사람 간의 교류와 접촉을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다.”
― 분단을 극복하기까지 독일 의회에서 정당의 역할과 의원들의 역할은 어떠했나? 또 야당과 언론 그리고 집권당의 알력과 갈등, 주도권 쟁탈전 등은 없었나?
“ 물론 독일 내에서도 독일정책과 동방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초당적 공통점도 있었다. 1989년과 90년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이 통일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기본적 대합의를 이루어낸 것은 이러한 초당적 공통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정당간 사안별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 앞으로 EU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최근 미국의 지도자들이 언급한 ‘올드 유럽’(Old Europe)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인적 느낌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독일 지성인들의 반응과 대응은 어떤 것인가.
“유럽이 현재 이라크 문제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유럽은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 이외의 대안이 없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긴밀한 관계 유지 이외의 대안은 없다. 통합된 유럽만이 강력하고,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긴밀한 공조 하에서만 유럽은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안보를 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최근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이 대단하다. 주한미군 주둔을 놓고도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서 부터 철수는 곧 재앙의 시작이라며 철군 절대 반대를 주장하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현재 독일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문제에 대해 독일내 감정은 어떠한가. 또 독일은 미군 주둔 문제를 어떤 논리와 이론으로 합리화하고 있나?
“독일에도 물론 반미감정이 있다. 그러나 나와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미국과의 긴밀하고 신뢰 깊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도 독일과 유럽에 미군 주둔을 원하고 있다. 독일인의 다수는 전후 독일의 재건을 위해,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그리고 독일 통일을 위해 미국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을 잊지 않는다. 현재 미국과 독일 관계의 위기를 다시 극복하는 것은 미국보다 우리에게 더 결정적이다.”
“미래에도 독일과 유럽에 미군 주둔 필요”
― 최근 이라크전을 앞두고 슈뢰더 총리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설전을 벌일 정도로 독·미간 갈등이 크다.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나?
“파트너 관계, 우호 관계에서는 서로 이견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을 공공연히 떠들어 파트너를 곤경에 처하게 할 필요는 없다. 독일과 미국의 정치가들이 우리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를 원한다.”
― 한국은 최근 남북한 철도를 시베리아 철도와 연계시켜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러시아·중국 등도 관심이 많다. 또 동북아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노력도 진행중이다. 이 사업에 대한 독일의 관심과 전망은 어떤 것인가.
“남북한 철도 연결후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은 야심찬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국제협력이 이루어지면 최상의 기회를 실현할 수 있다. 유럽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과 중국간 자기부상열차 프로젝트 협력은 좋은 예다.”
― 한국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있나?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긴장상태가 완화되고 남북한 포용 및 화해정책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확실한 국제적 틀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동북아를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가 이 틀이 될 수 있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이웃과 국제 공동체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한 접근 노력이 모두에게 유익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로부터 안정과 평화, 동북아 및 세계를 위한 긍정적 발전이 시작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귀하는 한·독의원친선협회 회장이다. 한·독 관계의 미래에 대해 말해 달라. 독일은 한국에 어떤 파트너십을 원하고 있나?
“올해로 양국은 수교 120주년을 맞는다. 양국 관계는 아주 좋다. 아무런 장애도 없다. 독일은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 용기 있는 개혁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남북관계 개선도 적극 지원하였다.
분단 경험의 공유도 우리 양국을 긴밀히 맺어 주는 요인이다. 독일은 이제 통일을 이룩하였다. 독일은 한반도의 평화, 화해, 긴장완화 및 통일을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 경제관계에서도 한국은 독일에 아주 중요한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