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이다. 방송에서는 혼자 사는 삶이 트렌드가 됐다. 요즘은 누가 더 혼자 잘 사나 시합을 치르는 것 같다. 그만큼 시대가 혼자 사는 삶에 진심인 것 같다. 가족은 해체되고 솔로의 삶이 우수하다는 사상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혼자여도 괜찮다는 글들이 많다.
혼자 살겠다는 마음, 정말 맞을까? 그게 정답일까? 과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신(god)이나 공동체의 규칙이 있었다. 그것만 따르면,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부터 신의 규율은 무너지고 개인의 삶과 자유가 부각되기 시작됐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 나는 왜 태어났지? 삶의 의미는 무엇이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다양한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그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니체라는 천재도 태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이 따라 자유와 개인의 취향이라는 신념 아래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해체되어 왔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을까? 자유가 남았을까? 나는 책임 없는 쾌락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유를 그저 " 혼자 살겠다! "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안타까우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성장하지 말고그대로 멈춰 있어라
혼자서 즐겁기만 하면 되는 걸까?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그저 가볍게 이성을 만나면서 말이다. 반려 동물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욕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즉 사람이 그리운데, 반려 동물로 그 외로움을 채울 수 없다는 뜻이다.
성숙한 사랑을 얻고 진심 어린 관심을 받으려면,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 내가 왜?"라는 마음이 커져간다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과잉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한다. 자의식 과잉은 심리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상대가 조금만 싫은 티를 내면, 냅다 도망치는 것이다. 이는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며, 가정을 꾸리는 일은 분명 힘들고 때로는 지칠 것이다. 수십 년간 떨어져 지내던 남녀가 한 이불을 덮고 사는데, 평탄하게 지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인간은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혼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혼자 살겠다는 마음은 마치 " 나는 상대를 위해 눈곱만큼도 희생할 생각이 없으며, 사랑도 받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저 성장하지 않고 살겠다는 태도이다. 이는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을 전부 끊어내겠다는 다짐이 된다. 그런 의식은 잠재의식에 저장되며, 결국에는 정말로 혼자 살게 된다. 말의 힘은 강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혼자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글을 분석해 봤다. 또한 주변에서 비혼 주의를 외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분들의 깊은 내면에는 어떤 외로움이 보였다. 잘 생각해보자.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인데, 굳이 혼자 살겠다고 글까지 쓰겠는가? 굳이 입 밖으로 비혼 주의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진짜 혼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애초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 철학가들은 혼자 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려다가 혼자 살게 된 것이다. 당신은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인류의 삶을 진보시키는 과업을 달성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인류를 진보시키는 업적을 이루면서도 가족을 꾸리며 살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누구든지 공동체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반문해보겠다. 당신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식당을 가든지 집에서 차려먹을 것이다.
밥을 먹는 행위를 구태여 왜 먹어야 되는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며 정신적, 유체적 유대를 함께 나누고 싶은 것도 굳이 설명해야 되는가? 애정 욕구,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그러니깐 혼자 살겠다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있냐면, " 나는 밥을 먹지 않고 살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내가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식욕처럼 즉각적으로 생명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외로움도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유해하다고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3년간 아무도만나지 않았다
나는 3년간 일만 하면서 살았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아봤다. 애인도 없었으며,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 스스로를 그렇게 가두었다. 무슨 느낌이었냐면,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 같았다.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감이 나를 짓눌렀다.
1년까지는 괜찮았다. 2년부터 상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면역력이 낮아져, 병원을 자주 다녔다. 어떤 일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번아웃이 왔으며, 생기를 잃어갔다. 나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성장하겠다는 큰 포부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3년간 그렇게 살았고, 현재는 다시 공동체를 이루고 친구를 만나며 산다.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정말 나처럼 고립되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처럼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서 처절하게 고뇌하고 고통받아봤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혼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말마다 친구를 만나고, 애인도 만나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관계에서 얻는 이득은 취하면서 책임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쓴 글이나 영상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까지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괜찮지 않다
나는 "혼자서도 괜찮아!" , " 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 "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딴 건 부모님에게나 통할 말이다. 부모님은 자식이 어떻든 그저 사랑한다. 그런데 타인은 다르다. 남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얻을 게 있어야 사랑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평생 유아기적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확신하건대, 혼자서는 괜찮지 않다. 당신 그 자체를 사랑해줄 사람은 거의 없다. 현실은 냉혹하다. 당신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연애를 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혼자 살게 된다.
" 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 " 저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예시를 보여주겠다. A라는 사람은 평소에 " 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 "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A는 취업을 해야 된다. 이력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린다.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을 보러 간다. A는 " 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니깐,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타일링을 전혀 하지 않고, 운동복을 입고 간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회 통념조차 무시하는 발언이 바로 " 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 "이다.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빛나지 않는다. 박물관에 존재하는 위대한 조각상들은 본디 단순한 돌멩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돌을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돌이 조각상이 되려면, 울퉁불퉁한 원석을 깎아내고 조각칼로 상처 입혀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멋진 조각상이 만들어진다. 조각상에는 조각가의 피와 땀이 묻어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멋진 조각상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박물관에 입장한다.
단순한 돌덩이를 구경하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은 없다. 노력을 통해 얻은 가치만이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노력과 열정 없이는 당신은 빛날 수 없다. 그렇기에 혼자서 살겠다는 마음보다는 참여를 통해 행복을 성취하겠다는 의지가 훨씬 값지다. 멈춰있지 말자.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넘어지겠지만 말이다.
결국 누가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인가? 바로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아이를 창조하고 가정을 꾸리는 삶, 개인의 성장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에 가치를 제공하며 사는 삶, 그것이야 말로 빛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