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비밀
14
처음에 호감이 갔었던 게 영양이 컸는지 저는 이승현과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친해지기 전 저를 비꼬는 모습에 욱한 성격이 나왔지만 그것도 예전 일이니 상관없다. 녀석의 집에 놀러갔을 때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어디로 보나 동양인 같은 녀석의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자신의 계모를 떠올렸었다. 이상하지. 나도 그렇다. 애초에 서양인과 동양인이 뭐가 같을까? 닮은 점이라고는 웃는 모습밖에 없었다.
아…
그래. 웃는 모습? 닮았네. 닮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녀석의 어머니를 대하는 게 어색해졌다. 승현은 그것을 잘 캐치해선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데, 나도 참 미쳤지.
“으음…”
“…….”
이런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홧김에 내 과거사를 녀석에게 다 불어버렸다.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전부 다. 저와 승현 사이에 고즈넉한 침묵이 흘렀을 때쯤, 나는 평소에 웃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씩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보였다. 지용은 잘 모르겠지만 승현은 그의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처음 승현에게 들었던 생각은 많이 힘들었겠구나, 였었다. 뭐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저는 그저 평범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고등학생뿐이었다. 부모와 트러블이 있었다고 해도 그처럼 심하게 변질되지는 않았다. 괜히 물어봤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 그와 이런 비밀을 공유하고 나니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지용이 지금 어떤지는 잘은 모르겠어도, 승현 자신은 그랬다.
“그럼 너 지금 혼자 살고 있는 거야?”
“어…”
“그래…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난 너 같은 경험이 없어서 뭐라고 위로도 해줄 수 없어. 이런 말도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도 너랑 이런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 더 친해진 거 맞지?”
“…….”
그러면서 히, 하고 웃는 승현을 보며 지용은 의외라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저를 안타깝다며 불쌍하단 듯 바라보거나 경멸하지 않던가? 이런 반응은 동영배 다음으로 처음이었다. 비록, 승현이 말주변이 부족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진 못했어도 지용은 언뜻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까지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만, 어머니와의 관계가 식어갈 때 쯤, 같이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에게도 이런 말을 꺼냈던 적이 있었다. 반응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았다. 저를 동정하거나 경멸하며 욕하거나. 아, 경멸했던 쪽은 질이 안 좋은 쪽으로, 제가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병신이라고 욕을 하며 금방 저질스런 농담을 했었다.
“이승현, 너 진짜…”
“으, 응?”
역시 어설프게라도 위로해줬어야 하나. 승현이 속으로 걱정하는데 갑자기 저를 꽉 끌어안아 버리는 지용 때문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용은 승현의 어깨를 세게 안으며 낮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좋아한다. 위로 못해도 좋다, 이승현. 그게 더 좋아.
그 말을 들은 승현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음을 지용은 안느라 보지 못했다.
‘거참… 부끄럽게.’
역시 게이는 게이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지용에게 안긴 그 순간 약간 떨렸다. 승현은 허공에 들린 손을 주춤거리다 지용의 등을 감싸며 마주 안아주었다. 그 상태로 둘은 짧게나마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
후로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쭈욱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사귀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쯤에서 이제 등장해줘야지. 까만 놈.
“이승현.”
“……? 아, 강대성…”
평소보다 더 까맣게 보이는 우리의 대성이는 흔치않은 진중한 얼굴로 저벅저벅 승현에게 다가갔다. 나른한 오후의 점심시간이라, 지용과 밥을 먹고 교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승현이 고개를 들었다.
“넌 뭐냐.”
“닥쳐, 권지용.”
오, 세게 나가신다. 대성이의 닥쵸, 곤지용- 이라는 말에 시끄럽던 교실이 한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말하지 않았던가? 앞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대성은 이 학교의 일진이었다. 다른 급우들은 흥미진진하다는 듯 셋을 조용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