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말 공쿠르 형제는 재능있고, 독창적이고, 젊은 작가의 집필 생활에 보탬이 되는 상을 제정하게 됩니다. 공쿠르상. 상금은 달랑 만원. 장난쳐? 막걸리 한잔 값으로 무신 가난한 작가의 삶에 영향을 줘? 상을 받음으로써 그 유명함으로 책을 많이 팔게 됨으로써 도움되게 한 것이 형제의 깊은 뜻.
프랑스에서 유명한 소설이 미국에서 번역되어 잘 팔릴 가능성 0%.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프랑스에서 잘 팔릴 가능성 100%.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미국에 대한 문화적인 종속도는 엄청납니다. 한국도 심해서 한국책이 미국에서 팔릴 가능성 0%, 아니 그전에 출판 가능성 0%.
공쿠르 형제는 한 때 잘나가는 소설가. 그런데 현재 역사의 준엄한 시간의 그물에 걸린 작품은 하나도 없고 형제가 번갈아 가면서 꾸준히 쓴 프랑스 문단의 스켓취인 <일기>가 유명. 일기 부분에서 가장 유명한 필독서입니다. 영국의 사무엘 펩스의 <일기>는 런던 대화재, 런던 콜레라 기록을 해서 유명. 그는 암호로 일기를 적었으나 후세에 암호를 해독, 여성 행각의 다양한 모험이 만천하에 폭로됩니다.
듀크님의 2차 번개가 있었고, 대낮 나뭇잎에 소낙비 두들기는 소리가 좋은 이 시간, 차분히 그 시간을 돌아보며 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내 일기이면서 카페에 모임 후기이기도 한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엔가 해당하는 글이 되겠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아름답게 추억되는 지난 봄 돌산도 3박4일 마지막에 듀크님이 “모두들 돌아가시면 후기 많이 올려달라고” 했으나 아무도 올리지 않아서 상당히 의무 다하지 못한 찜찜함의 빚을 값는 순간입니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일주일만에 다시 만남의 근거는, 혹은 핑계는, 오우석님의 뉴저지 방문이었습니다. 쌩판 모르는 분이었고 이름에서도 딱히 특이함이 감지되지 않는 그냥 장삼이사의 한 명 아니겠는가 그 정도. 카페에서 원체 특이한 분을 다양하게 만나서 웬만하면 눈 깜딱도 안하는 경지였고 뭐 특이하다고 해도 인간의 상상력 범주안 아니겠는가. 그 정도로 그때까지 생각했으나, 그 분은 성처럼 Oh! 하는 많은 경악과 경이를 한세트로 묶어서 변주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여. Oh, my god!
듀크님은 뉴저지 중부에 살고 있습니다. 뉴저지 한인타운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깡시골입니다.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을 곳 같은 그런 거리감을 주는 곳. “천지지간에 가장 소중한 것은 공짜다. 청풍명월이 그러하고…같은 한시 풍류가 목가적인 그런 곳. 청정한 구름, 사원을 지나가는 깨끗한 바람만이 몰려다니는 곳. 안가봐서 정확히는 모름.
그런 멀고도 한적한 곳에 이상하게 역이민 멤버가 몰려있어서 청하님, 돌산도님이 그러하다. 아마 집값이 공짜? 그런데 두 분 모두 듀크님 픽업이 불가하니 듀크님 어떻게 픽업하는 문제가 등장했다. 멀리 멀리 있는 킴벌리님이 픽업의 여왕답게 자원하고 그래도 내가 무엇인가 해야할텐데, 그런데 나는 차가 없는데, 하는 와중에 신시내티에서 온 오우석님이 픽업한다고 했단다. 우와, 뉴저지서도 해결 못하는 뉴저지 문제를 신시내티에서 온 분이 한방에 해결하네.
아침에 테니스 치고 팅겨나갈 듯한 생동감으로 맥주 12캔, 물병에 담은 소주, 거기에 얼음까지 넣은 보온 가방 들고서 <한상>으로. 한시에 모인다고 했는데 아무도 없네? 평소에 약속 잘 지키는 분들인데. 좌우간 아는 부부 만나서 거기에 붙어서 얻어 먹고 있으려니 킴벌리, 멜로디, 스폰지님 순서로 도착.
듀크님과 오우석님 도착. 거기에 오우석님 동행한 면면들이 듀크님이 사진을 올린 분들. 뉴욕 이민 사회에 많은 사회 활동하시고 내가 장사했던 브로드웨이 한인도매 상가의 왕고참이자 전설인 임마철 선배. 아이, 임마! 철 선배가 왜 이곳에…날 보시더니, 음, 아는 친구있네. 아, 예…헤헤. 갑자기 묵직한 인물들이 왜 대거 참석하지? 오우석님이 소싯적에 금도매를 했고, 그것도 바로 내 가게 건너건너건너서. 완전 이웃인데 이웃끼리 만남은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구나.
알고보면 그 때 안 만나길 다행이었다. 천우신조라고 한다. 그 때 어울렸으면 술과 건강과 많은 돈을 탕진했을 것이다. 우린 보통 퇴근무렵 한잔 스케줄이라는 음모 꾸밀 때 그래도 전화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는 자체 검증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선비정신이라 할수도 있겠다. 어제도 마셨는데 오늘도 전화하면 실례 아닐까? 뭐 그런 것. 그런데 오선상님은 그럴 것 같지 않다.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 그냥 전화 걸 스타일이다. 원체 친화력이 있어서 인면수심이나 야수의 심장을 가지지 않고는 거절하지 못하고 끄달려갔을 것이다.
뉴욕한인경제인협회에서도 이런 역이민 모임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 현란한 역사를 듣고 많은 사회 활동과 모임을 한 사람들다운 사회성의 대화들을 듣고 있는데까지는 평화로왔다. 그 자리에는 한마디로 회장님이 많이 참석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그 분들은 듀크님에게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듀크님의 위상이 갑자기 몇 단계 상승해서 급승진을 했고, 우리가 진작 승진시켜 드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오선상님이 내 앞에 약간 비켜앉았고 내깐에는 신입회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목소리가 아주 좋으시다고 노래도 잘하시겠네 여자에게 인기도 좋으시겠네라고 마구 덕담을 했다.
그러나 그런 배려는 거의 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서 그 분이 어디가서 기가 죽을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남의 기를 죽이는 쪽으로 특별한 재주가 연마되어 있었다. 수학여행팀들을 보면 모두들 점잖은 분들 같은데 첫날 지나고 아마도 모두들 오선상님을 멀리했을 듯하다. 수학여행에서 술 좀 드셨어요? 마실 사람이 없어서...그냥 얌전히 지내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상상이 안 간다.
나너디에님이 고량주를 한병 들고 왔었다. 아니 저렇게 독한 술을. 맛은 있네. 금새 없어지고 지리도 생판 모르는 분이 삭 사라지더니 무려 세 병이나 사들고 와서는 “생긴 것이 마음에 든다.”며 한잔 하자고 하더니 그 한잔이 두잔 세잔 마구 붓더니, 옆에 앉은 나너디에 선배도 따라서 홀짝이니 나 역시 안 마실수 없고….
내 바로 어제 함승희 검사의 <성역은 없다>란 책을 읽었었다. 지방 검사로 부임하면 지방 유지들이 모여서 술로서 힘겨루기를 한다고 했다. 하이고, 아주 후진국적 발상이네…라는 것이 지금 이 건전한 역이민 모임에서 재현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딱 한 사람, 그것도 카페에 들어온지 얼마되지도 않고 카페 경력이라고는 수학여행 했다는 것 밖에 없는 양반이 종횡무진 좌충우돌 피아식별없이 마구 고량주로 휘젓고 있는데 그 상대가 바로 나인 것이다. 그 이유가 내 생김이 본인의 미적감각에 부합한다는 것. 괜히 내가 목소리 좋다고 했다가 이 지경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오선상님은 목소리가 아주 좋았다. 목소리 좋은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술이 목끝에 걸려서 간당대면서 잘 넘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간이 거부하는 것을 목구멍이 감지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 아, 혹사당하는 간과 위와 목구멍이여. 여성회원들이 똘망한 눈을 보면서 지켜보는데 뺄수도 없고. 진퇴양난의 애매함이여. 순간 비겁하면 내일 편할 것이라는 것과 비겁한 자 매일 죽는 것이나 마찮가지다에서 맘이 왔다갔다 했다.
듀크님은 앉자마자 어젯밤의 경험을 얘기했는데 골자는 버건디의 와인 빛갈과 진로의 맑고 투명함과 둔탁한 막걸리의 빛깔로 어우러진 그러나 계속하면 안될 것 같은 도망의 밤을 넘의 얘기처럼 듣고 낄낄거렸는데…영리하게도 듀크님은 벌써 저쪽 끝에 가서 아주 안전한 곳에 도피안사 같은 곳에서 있네…
여성회원들이 이렇게 나설만도 한 장면이었다.
“아저씨, 왜 초짜 회원이 그냥 분위기 파악이나 하면서 찌그러져있지 왜 스피노자 같은 우주의 호흡과 함께하는 동부의 대표적 선비를 괴롭히면서 나대세요?”라고 말 할 수도 있었을텐데 고량주 사오면서 아이스크림 세개를 사와서 뇌물로 뿌려서인지 아이스크림 먹기 바빠서 날 도울 생각은 일도 없어보였다. 우리 공유한 그 긴 세월의 축척의 정이 아이스크림 하나에 저리 쉽게 넘어가다니. 우리 카페의 지조가 이렇단 말인가. 강호의 도리는 엿바꿔 먹었는가. 카페 문화 이래서 되겠는가.
자기는 삼류도 아니고 사류도 아니고 오류…오류동 출신이라고 했다. 흑연 광산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게 뭐 자랑이나 소갯거리가 되나? 하나도 안 궁금하다.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오류동 흑연광산 나온다고 했고, 듀크님은 “스피노자같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오류동 흑연광산을 모른다니 놀랍다.”는 말을 했다. 좌우간 이제부터 누가 오류동 출신이라고 하면 무조건 흑연광산으로 화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소개하라고 하니 오류동의 흑연광산을 자랑하는 자기 소개 방법의 참신성을 넘어가는 기괴한 방법과 오류동의 흑연광산을 모른다고 놀라와하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듀크님도 웬지 오씨 아저씨 편인 듯한 편파성이 느껴졌다. 와, 이 양반의 친화력은 코로나 전파력 수준이다. 그런 사람이 왜 오류동에서 태어나고 신시내티같은 듣도보도 못한 곳에 있지? 김포공항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구해서 가을부터 거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변두리를 좋아하는 가 보다.
동부의 총무는 나어떡해 선배가 담당해오다가 시력 저하를 핑계로 내게 넘어온 듯한 분위기가 있고 가장 어린 애가 당연히 총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2명 500불.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먹어. 동부가 언제부터 이렇게 기아선상에서 헤멨단 말인가. 이거 모두 오선상님이 시킨 것 아녀?
알딸딸한 상태에서 나누기 하고 있는데 오선상님이 계산서 달라고 한다. 아니, 왜 생초짜 멤버가 총무님의 계산서를 보자고 해. 안보여준다와 그냥 한번 보자와 한 10분은 싸우고, 여전히 돈을 거두어 돈 헤아리고 있는데 자기가 내고 왔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이 돈들 어떻게 해 어떻게 다 돌려줘. 그러니까 회원들께서 오씨 아저씨에게 그냥 돈을 주라고. 그런 간단한 방법이.
동부모임에 1차로 끝나는 경우는 전무하다. 자 이제 2차로. 이제부터 옥석이 가려지는 것이다. 가라지는 바람결에 날려가고 정예부대만 남는 것이다. 일정이 있어서 먼저 떠나야하는 청하님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내 아는 분의 아는 분인 박선생님 부부가 처음 참석했었고 나와 다정하고 즐거운 사연을 나누었으나 대화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등장인물화 하지 못함이 미안함이다. 나보담 나이가 많으신데도 엄청난 동안이었다.
청하님의 모교 <홍대입구>로.
킴벌리, 멜로디, 임마! 철 선배, 김홍식 선배, 듀크님 그리고 바로 바로 오우석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맥주를 마시고 프렌치 프라이를 먹고 화기애애했으나 이미 취해서 먼 소리 오갔는지 기억 나지도 않고, 똑똑한 사람들은 중간에 다 도망가고 킴벌리, 오씨 아저씨 이렇게 세 명이 3차를 가는 결정의 과정은 아리송하다. 맨정신에 한 결정은 아닐 것이다. 좌우간 노래방을 갔다. 어제도 갔다면서 한잔하면 일단 노래방에서 끝내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킴벌리와 함께 부른 <먼곳에 있지 않아요>가 즐거운 여운으로 남았다.
내가 함께 부르자고 했고 킴벌리님은 부른 적이 없다고 했으나, 당신은 역이민의 꾀꼬리다. 당신은 뭐든지 잘 부를 수 있다 라고 했는데 내 스스로 술이 그렇게 취해도 이렇게 다정하고 색동옷 입은 듯한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정도이니 내가 내에게 놀랄 따름이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목표로 정진했고 어떤 것은 도달했다. 아직도 오리무중은 여자와 듀엣으로 부르는 것. 교회 성가대에서 남자 테너 부분. 여자 소프라노의 3도 낮은 음을 부르게 된다. 보통 듀엣에서도 남자 부분이 여자보다 3도 낮게 부르는데 그것을 잘 하는 사람들은 늘 부러워했었고 나는 아직도 잘 안되고, 그날은 술이 만땅이었기에 그냥 막 부른 것이리라.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보이고 들리게 하는 술의 위력.
나의 냉장고에 왜 아직도 바닥을 간신히 가리는 그날의 고량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 모른다. 술 자리에서 제일 늦게 일어선다. 나서기 전에 꼭 뒤돌아본다. 그래서 흘린 것이 없는지 깔끔한 뒷자리가 되었는지 뭐 그런 것을 챙기는 와중에 내 술가방의 한자리를 차지한 것 같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기억의 비자발성을 인류의 의식에 등장시킨다. 기억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시간 속에서 잊어버렸던 것인데 어떤 계기로서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는 현상을 말한다. 그럴 때 그 기억은 의식적이 노력 속에서 재생한 것보다도 더 실제에 가깝다고 본다.
홍차에 적셔먹던 마들렌 과자, 게르망트 저택에 매끄럽지 못한 포석, 빳빳하게 풀먹인 냅킨, 콩브레 마르탱빌 교회 종탑, 조르주 상드의 소설 등. 나에게는 아마도 이 고량주가 긴 세월을 지나도 문득 비자발적 기억을 상기 시킬 것이다. 검색해 찾았다. <연태고양주> 한국인들이 이름을 잘못 알고있다. 옛법으로 빚었다고해서 고양주라고 한다. 고량주란 것은 수수를 말한다고 한다.
오씨 아저씨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을까? 다행히 서로의 전번은 몰랐다. 그랬다고 이별일까? 신시내티에 와서 팰팍 근처에서 머물면 일단 내 손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번 모르니 까꿍하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듀크님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전설인 임마! 철 선배와 한잔하고 있다고 나오라고. 막연히 그렇게 풀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동부의 찬란한 전통. 1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둘이서 2차 맥주집에 가서 먹던 프렌치 프라이가 맛있었고 목넘긴 술잔 만큼이나 친해졌고, 뭐 또 다시 만나자, 김포 아파트에 재워준다, 난 김해 아파트에 재워준다 뭐 그런 식으로 약속이 남발되었다. 우린 김포와 김해 공항으로 연결되는 항공적 사이이고 듀크님은 항공대 출신이다. 서로의 3차를 위해서 헤어지고, 그 다음날 공항에서 전화가 왔다. 난 드디어 숙취가 느껴지는데 생생한 것 같았다. 역시 젊은 시절 안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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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석님 뵌 적이 있군요.
항공은 그냥 쓰다가 보니까 어감상 연결된 것. 그냥 시적 장치.
함께 만나 한잔 한 곳이 서울숲 바로 곁이라는 것을 헤어지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뜨는 핫플레이스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무늘보님이 늘 반겨주는 서울, 그 서울에서 막걸리 한잔 다시 하고 싶습니다.
추위가 한겨울 때 서울서 막걸리 한잔 해요.
처음보는 스피노자님의 포스팅입니다.
목소리 좋은 사람을 조심하라며 잘생긴 외모를 은근히 드러내심? ㅋㅋ
젊은 시절에 못만났지만 나이들어서도 만날 사람들은 다만남.
회장님들의 모임 후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엄지척이고요 뜬금없는 항공대는 김포와 김해를 연결하다가 나온 취중일기의 후유증이 아닐까? 하는
생생하고 재밌는 후기 당연히 추천 꾹! 꾹!
감사합니다.
처음보는 포스팅이군요.
포스팅하면서 글 써서 올리는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을 생각했습니다.
자체 검열해야지, 재미있어야지, 그리고 시간이 장마철의 그 흔한 물처럼 물쓰듯이 지나갔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고 나면, 의무처럼 후기써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책과 가까운 사람이 해야할 일이라고 스스로 의무지우고 있습니다만,
막상 쓰기 쉽지 않죠. 안쓰면 암시롱 안한데 괜히 써서 필화사건에 휘말릴 필요없다는
지극히 개인 보신적인 행마.
좋게 말하면, 벼슬은 진사이상 하지 않아서 당쟁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선비의 안빈낙도같은 태도...
추우면, 막걸리 한잔해요. 주량이 늘었다니 두잔~
세상에나! 왠 술을 그렇게나들 드시나요. 다양한 독서경력이 여기서도 발휘되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엄청 드시더만요. 이번 정모는 아예 술도가하는 노매드님 처가에서 지원하는 술도 있을 예정이니 볼만하겠네요.
전 많이 먹지 않고요,
"술은 좋아하지만 많이 먹진 못한다."는 식으로 남자들끼리 술자리에서 약간 무시성 평가를 받습니다.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술을 잘먹는 순서되로 서열을 정하는 버릇이 있죠.
전, 개인적으로 원시적인 버릇이라고 봅니다만
남자 본능적인 성향이라고 보고
남자 멸종시까지 존재할 관습이라고도 봅니다.
오우석님이 술을 따라주면서 속도가 느려지자,
뭔가, 한수 접어두는 듯한 그런 반응을 웃으면서 회상합니다.
언제 모임에서 만나서 막걸리 한 잔 해요~
@Spinoza
소설같은 후기글 잘읽었읍니다 ~~
짧고 간략한 소감 남겨주시어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행복하지 못한 이에게서 행복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 시간동안 전화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우와, 사람들이 이런 딜레머와 동행하는구나,
삶이 고해구나 같은 새삼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제가 세상과 단절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소금처럼 변하지 않는 견고함의 행복으로 동행하십시요.
"행복은 획득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고, 생각하는 방법이고, 성숙한 무엇이다. 행복은 정신적 능력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올리마 선배님, 뉴욕 오신다는 소식 접했습니다.
뉴욕의 북쪽으로 함께 동행하겠습니다.
제가 없어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니
샘이 납니다 ㅎㅎ
서부 엘에이 모임은 음주가무 없이도
즐거운 모임을 자주 가지는데
동부모임은 술 없이 모임을 가져본적이
없어서
동부 쪽엔 주당 들이 많이 사시나
아니면 기후 때문에 이민 생활이 서부 보다 힘들어서?
그렇다고해서 음주가무 싫어 하는건 아님니다. 아주 좋아 합니다 ㅎㅎ
그냥 궁금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돌산도형님께서 운전에서 실종하는 바람에 많은 드라마가 잉태되었으니
세상일이 굴러가는 방향의 감지는 어려운 것이고
그저 운명이 짜는 베틀에서 겸손해야.
듀크님 아그양육과 동행하느라 수고 많은데
위로삼아서 번개 또 때리시지?
아예, 매주 토요일 때리시지?
마치 함께 저녁을 보낸 기분입니다 ㅎㅎ
칭찬 감사합니다.
데이빗 님이 오시면 아주 건전한 바람직한 역이민 번개가 이뤄지리라 믿습니다만, 1차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숙지하셔야 합니다.
'대낮 나뭇잎에 소낙비 두들기는 소리'보다..
더 좋은 노자님 글.. 일단 박수부터~~~~~~^^
청하님 글과
달아주시던 멋스런 댓이 사라진 허전함
한 방에 이리 머얼리 날려주시니 고맙습니다
'프루스트를 읽다'
어떤 노교수의 글을 스치듯 보곤
언제든 나중에 볼 책으로 미룸~~^^
마들렌 과자는 아니지만 열대의 어느 정글에서..
시간 속에서 잊어버린 듯 한 그 무언가를 다시 찾은 느낌 받은 적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자주 글로 이리 뵈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저 기대만 하렵니다
고맙습니다
늘 댓글로서 맹활약하시는 자국님 감사합니다.
@Spinoza
흠…
짐 앞에 서서 이 댓을 보며
이쯤해서 비니님이 등판하셔야 팝콘각인데 ^^
날씨 탓인지 읽는 내내 손에 진땀을 쥐었습니다. ㅋㅋㅋㅋ
오랜만에 읽어보는 스피노자님의 재밌는 글 추천드립니다~~
서울 날씨는 보니까 오늘도 덥네요.
여기는 오늘은 아주 스원한 날입니다.
이곳은 10일 동안 30도 이하로 계속될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 김해에서 2주동안 하루종일 에어컨 아래에서 지냈는데
사는 곳이 반지하라서 여기선 아직도 에어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백조 여성회원들이 주가 되는 서부의 모임과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 입니다. 회식에서 잘 놀지 못하는 욘넘들은 다른 능력도 별볼일 없다라고 단언하는 어떤 분을 전에 만난적이 있지요.^^ 아무튼 이 동부에서 살아남기가 서부의 그것보다는 빡센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동서양을 섭렵하고 동서에 번쩍이며 아우르고 주름잡는 스피노자라는 분의 횡설수설이 참 재미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회식에서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능력도 별볼일 없다고 단언한 사람은 아마도 동부에서 이사한 사람일까요?
여긴 자기 놀기 바빠서 남이 잘 노는가를 살필 겨를이 없는데,
왜 그 분은 남 노는 것을 평가하고 있을까요?
서부 백조의 부드러움을 그리워합니다.
서울에서 백조 몇 분들과 만나면서 간접적으로 그 분위기 느꼈습니다.
아톰님이 부럽습니다.
저하고 바꾸시죠. 제가 서부로 갈테니, 동부로 오시죠.
오전 10시 54분의 인증샷은 나에게는 홍차에 찍은 마들렌과 같읍니다. 학창시절, 본문에 등장하는 오선생님의 20대 모습 같은 선배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오전 11시쯤 만나서 시작해서 그다음날 새벽 눈쌓인 덴버대학 부근으로 이어진 술과의 여정이 비자발성 기억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저 역시 천우신조인지 본인의 의지인지 그선배가 사는 덴버를 떠나 뉴저지 홈델이라는 깡촌으로 도망을 가서 조기 은퇴를 무사히 하게 되는 오늘이 있었읍니다. ^^
함께 걷던 금오도 1번길 행복하게 추억합니다.
대구에서 더위에 눌리지 않는 스원한 여름되십시요.
와아~~~
긴긴장문으로 모임후기 불참인데도
상세하게 주신글에 ,감동합니다
오빠야들 건강을 위해서
술 쬐끔만 드시와요 ㅎㅎㅎ
감동하여 감사하고
그 감사한 마음 여운이 죽 이어져
다음 번개에서 꼭 뵙도록 해요
오랜만에 스피노자님의 글을 댓글이 아닌 대문글에서 보니 반가워요.
댓글을 쓰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사슴이 뒷뜰 텃밭의 채소들을 간식으로 먹고 있네요ㅜㅜ
마음을 비우고 같이 먹고 살기로 하긴 했어요.ㅎㅎ
얘들아 우리것도 좀 남겨다오..
여하튼 상처자국님 말처럼 스피노자님의 글을 대문에서 가끔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게나말입니다요~~^^
책에 관한 박식을 좀 나눠주심 좋으련만..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는 맴이랄까 ^^
우리 세명이 청하님 소설 끝까지 응원했던 시간과 결국은 우리 세명 서울서 만난 것은 감동이며 여기서 다시 조우했네요.
예 글 자주 쓰면 좋을텐데요.
노력하겠습니다.
@Spinoza
청하님 모임 사진이라도 영접하며..
언제나 다시 글을 뵈올꺼나 기대했답니다 ^^
서울에서 조우했던 노자님, 미니님
'그 무언가를 다시 찾은 느낌?' 이라면 과할런지 ㅋㅋ
참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노오력 해주심을 기다립니다
스트레스가 되시지 않는 한도 내에서~~~
멋진 글의 스피노자님
홧팅 외쳐드립니다
와우, 멋진 후기이네요.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ㅋㅋㅋ
노래방에서 킴벌리 언니랑 부른 노래가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 1985년 강변가요제 대상곡.
기회되면 꼭 듣고 싶습니다.
다음 정모가 기다려 지네요.
센스있는 대화하던 총명한 모습이 기억나며
다음 정모에서 뵙도록 해요.
곧 건수 만들겠습니다.
오선생님 술 대작은 저 정도는 되어야 될겁니다. 가히 주신이시죠.^^
주 신....^^
많은 웃음도 주셨지요?
제게는 야~야~ 야야야야~
남도에 울리던 그 노랫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맴맴
인정함.
평소 스피노자님의 글과는 색깔이 많이 다른 수다 수준의 후기를 보니 아직 술이 덜 깬 듯 합니다요.ㅎㅎ
오선생님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만 님 후기 읽는 것이 더 쏠쏠한 재미가 있는데요.
그 와중에 또 얻어 들은게 있어 집에 와서 도시들의 지명,이름 유래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도 되었음에 감사도 드립니다 .
외롭고 의롭고 쓸쓸하게 이어가던 동부의 모임,
청하, 나어떡해 선배님과 우리 네명이서 버티어낸 시절,
이젠, 번개를 할라치면 공고가 필요한 상황으로 성장한 이 싯점,
함께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