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으로 본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 쉬지 말고 가라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 누군지 알기 위해”
신해철이 부른 노래 <민물장어의 꿈>이다. 그는 민물장어의 꿈을 노래한다. 민물장어는 자기 자신을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져서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한다. 민물장어는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마지막 남은 자존심도 버리고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한다. 민물장어는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를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나를 부르는 소리를,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소리를 듣는다. 민물장어는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미련 없이 끝내려 한다. 왜 그럴까?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다.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갔다가 다시 민물로 돌아오는 연어와 달리 장어는 깊은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로 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신해철은 민물장어가 깊은 바다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꾸는 까닭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나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라고 노래한다. 그는 알을 낳으려는 욕망보다 나의 기원을, 나의 정체성을 알아내려는 욕망에 더 주목한다. 모든 꿈이 그렇듯,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꿈은 더욱 쉽지 않다.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는 게 아니라, 무언가 얻거나 이룬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져야 한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한다. 내가 얻거나 이룬 것은 나의 진짜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가리기 때문이다. 민물장어처럼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할까?
의대 증원 문제로 뜨겁다. 정부는 2025년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발표했다. 2035년까지 1만 5천 명의 의사가 더 필요한데 6년 교육을 마친 의사가 2031년부터 2000명씩 늘어나 2035년까지 1만 명을 늘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의사들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교수들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생들은 집단으로 휴학을 신청했다. 강 대 강 대치가 벌써 석 달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환자들만 생고생이다. 물론 이 싸움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정부들이 늘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때 의약분업을 이유로 351명 줄어들기도 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도 공공의료를 위해 의대 입학 정원을 400명 늘리려고 했다가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늘리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도 의사들이 시위를 한다. 이유는 정반대다. 제발 의사를 늘려달라고 시위를 한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3.4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 수가 부족하여 의사는 의사대로 힘들고 환자는 환자대로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2.6명밖에 안 된다. 그러니 프랑스 의사는 환자 1명에 평균 22분 진료하는데, 한국은 평균 4분만 진료한다. 병원 가서 진료를 못 받은 적이 있느냐, 의사는 이미 충분하다는 항변의 비밀은 이 4분에 있는 셈이다. 초속성 진료로 의사는 의사대로 혹사당하고, 환자는 환자대로 피해를 본다. 자신들도 과로사할 정도로 혹사를 당하면서 왜 의사들은 이토록 결사적으로 반대할까?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 할까? 그들이 잃는 것은 무엇일까? 돈? 권력? 명예? 마지막 남은 자존심? 도대체 그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할 까닭이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G. Deleuze & F. Guattari)는 그들의 책 <천개의 고원>에서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
그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할 까닭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나’가 진짜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진짜 ‘나의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수년 동안 서울대에서 의예과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그때마다 물었다. 의예과에 자신이 원해서 왔는지.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이들이 아니라고 했다.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이 등 다양한 꿈들이 있었다. 그 다양한 꿈들을 접고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망은 버섯같이 줄기가 뿌리처럼 땅속으로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뿌리줄기 같은 것이라 한다. 땅 위에서 보면 각각 다른 생명체처럼 보이지만 땅 밑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땅 위에서 보면 따로따로 존재해 서로 경쟁하는 ‘나’와 ‘너’의 욕망으로 보이지만, ‘나’와 ‘너’의 욕망이 땅 밑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원초적 욕망은 어디로든 이리저리 뻗어가고 연결되려는 욕망 자체일 뿐이지 누군가의 욕망이라고 할 수 없다. ‘나’ 속에 있는 욕망일 뿐이다.
그런데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나’ 속에 있는 원초적 욕망이 왜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나’의 욕망이 되었을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비유로 설명한다. 평평한 들판에 강물이 흐르면 처음에는 어디든 사방으로 흘러가지만, 물길이 생기면 그 길로만 흐른다. 우리의 원초적 욕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원초적 욕망의 들판에는 원래 따로 정해진 길이 없었다. 욕망의 강물은 어디든 마음대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에 대한 ‘나’의 욕망에 집착해 욕망의 들판에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욕망의 들판에 깊은 골짜기가 생기면 욕망은 그곳으로만 흐른다. 다른 곳으로 흐를 생각조차 못한다. 사랑이라는 욕망조차 돈에 대한 ‘나’의 욕망에 종속된다. 사랑조차 돈을 버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 속에 있는 원초적 욕망은 억압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감히? 나 의사야” 이러한 의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비밀은 2억이 넘는 평균 연봉에 있다. 아니, 우리 모두가 돈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는 데 있다. 우리 모두가 돈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기 때문에, 엄청난 돈을 버는 의사가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행복할까? 놀랍게도 그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꼴찌다. 무엇보다 그들의 원초적 욕망이 억압되었기 때문일 테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나의 욕망은 더 이상 나의 욕망이 아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 민물장어의 꿈을 꾸어보자. 자기 자신을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져서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자. 마지막 남은 자존심도 버리고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자.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를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나를 부르는 소리를,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소리를 들어 보자.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이르러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미련 없이 끝내보자. 그리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아보자.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아니 ‘나’의 욕망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되물어보자.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이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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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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