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문집 노림재본
제가 예전에 익재문집 발간년도를 조사했던 자료중 익재문집 육간본인 노림재본에 대한
내용이랍니다
익재문집 육간본
1923년에는 河謙鎭의 序를 받아 鉛活字로 간행하였고 ---
하겸진에 대하여
조선 말기~일제강점기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峰) 또는 외재(畏齋).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생애]
1870년(고종 7) 진주에서 출생하여 13세에 사서오경을 익혔고, 24세부터는 성리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27세 때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후 평생을 학문과 저술에 힘쓰다 1946년 별세하였다.
[활동사항]
학문의 경지를 넓히기 위한 교유와 순례를 중시하여 17세에 당대의 명유 허유(許愈)를 만났고, 27세에 곽종석을 직접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29세 때에는 이승희(李承熙)·송준필(宋浚弼) 등과 교유하였으며, 경상도 안동·성주·선산 등지의 선현 유허지를 순례하였다. 후에 중국 순례에 나섰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에서 되돌아왔다.
[학문과 사상]
일제침략기를 살면서 나라와 민족의 얼을 일깨우는 저술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나라 선현들의 학문과 연원을 체계 있게 정리한 『동유학안(東儒學案)』을 짓고, 『해동명장열전(海東名將列傳)』을 저술하였다. 만년에는『동시화(東詩話)』를 엮었는데, 정인보(鄭寅普)는 그 서문에서 “동국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기한 시화”라고 극찬하고 있다.
익재선생문집 중간지 [이규석(李圭錫)]
도(道)는 하늘에서 나온다. 하늘이 변하지 않으므로 도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인데, 문자(文字)로 기록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를 변치 않게 하는 것이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아! 우리 선조(先祖)의 이 문집(文集)은 도(道)가 보존되어 있는 바이니, 마땅히 변함없이 전하여져서 하늘과 함께 그 종시(終始)를 같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하늘에만 의존한 채 임자년(1434)ㆍ경자년(1600)ㆍ계유년(1693)에 중간(重刊)하는 역사(役事)가 없었던들, 이 문집이 지금까지 전하여 오는 것 또한 기필할 수 없었을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과 계유년의 역사와의 기간 또한 이미 오래라서 판본(板本)이 이즈러지고 파손되어, 전현(前賢)이 뒷사람을 돌보는 혜택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으므로 내가 일찍이 이 때문에 주야(晝夜)로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었다.
다행하게도 노림재(魯林齋)에서 족보(族譜)를 나누어 주던 날에 내가 이런 뜻으로 의논(議論)을 제기하였더니, 여러 족씨(族氏)들 또한 내 뜻에 동의하였으므로 드디어 종렬(鐘烈)을 시켜 공인(工人)을 모집, 노림재에서 역사(役事)를 시작하였는데, 노림재는 곧 익재공(益齋公)의 현손(玄孫)인 청호공(淸湖公)의 묘우(墓宇)이다. 7개월이 지난 다음 일이 준공(竣工)되었으니, 이는 청호공의 신령이 선조(先祖)를 위한 사업을 묵묵히 도와 준 것이 아니겠는가?
《효행록(孝行錄)》은 비록 귀원(龜院)에서 신간(新刊)한 것이 있으나 지금 원고(原稿)를 중간한 이 판본은 따로 노림재에 보관하려 하니, 사세(事勢)가 각기 따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하여 그 일에 참여하였었으므로 감히 그 전말을 기록한다.
병인년 양로절(涼露節)에 19대손(代孫) 규석(圭錫)은 삼가 노림재(魯林齋)에서 쓴다.
* 이규석이라는 분이 비슷한 시기에 두분이 과거시험 급제를 하셨는데?
이규석 1
[생원진사시] 고종(高宗) 28년 (1891) 신묘(辛卯)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3등(三等) 33위
자 우현(禹玄)
생년 신유(辛酉) 1861년
합격연령 31세
본관 경주(慶州)
거주지 양주(楊州)
[이력사항]전력 유학(幼學)
과목 이의(二義)
[가족사항]
[부]
성명 : 이준영(李準榮)
관직 : 전행영릉참봉(前行永陵參奉)
품계 : 통사랑(通仕郞)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
[제] 이규완(李圭完)
[제] 이규성(李圭聲)
이규석 2
[생원진사시] 고종(高宗) 22년 (188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三等)
생년 임자(壬子) 1852년
합격연령 34세
본관 경주(慶州)
거주지 문경(聞慶)
[이력사항]전력 유학(幼學)
과목 이의(二義)
[가족사항]
[부]
성명 : 이주욱(李周郁)
관직 : 학생(學生)
- 안동에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는데 이곳은 한국의 전통문화의 세계화와
민족문화 정체정 확립에 앞장서서 잘 보관되지 않는 문화유산과 훼손되어 가고있는
각 문중의 귀중한 문서를 위탁받아 관리해준 곳이랍니다.
사실 우리 문중이 가지고 있는 이 노림재본은 남선면 현내리 노림재에 있는데
보관상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는게 사실일것 입니다.
요즘 많은 문중 자료들이 도난되고 훼손되어져 가는게 현실입니다.
얼마전 익재공 영정 도난사건도 마찬가지일것 입니다.
한국국학 진흥원에서는 작년부터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을 하고있답니다.
목판 10만장이 모아지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을
할려고 계획을 하시고 있는것을 알수있답니다.
첨단 시설로 갖추어진 시설에 우리 종중이 소유한 익재문집 노림재본이
기탁되어 보관되어진 것이 제 생각으로는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나하구
생각을 해봅니다.
익재문집 노림재본이 있었다는것을 다시한번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한국국학진흥원 홈피에 가시면 다른 문중에서 기탁한 많은 자료를 보실수 있을것이며
이곳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홈피 자료를 통하여 더 자세히 알수 있을것 입니다.
영암 호암문중 이승주 올림
첫댓글 좋은자료.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