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수 없죠?
인조 14년(주후 1636년),
청 태종이 12만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인조는 급히 남한산성으로 대피했지만 45일 만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인조가 청 태종한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행했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두 나라가 군신 관계를 맺은 것을 기념하는 비를 세워야 했습니다.
청나라에는 기념비를 세우고도 남을 일이지만, 조선은 다릅니다.
오랑캐한테 항복한 것도 기가 막힌데, 오랑캐를 칭송하는 비석을 어떻게 세웁니까?
하지만 별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렇게 해서 흔히 ‘삼전도비’라고 하는 대청황제공덕비를 세우게 됩니다.
비문을 지을 후보자로 장유, 이경전, 조희일, 이경석 네 명이 거론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할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고사했습니다.
늙고 병들어서 문장을 짓지 못한다고도 했고, 일부러 형편없는 글을 지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대제학이던 이경석이 글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경석은 글을 배운 것이 천추의 한이라면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글만 지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글을 비석에 옮겨 적어야 합니다.
오준이 그 일을 맡았습니다.
오준은 한석봉의 서체를 익힌 명필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조선에 오는 사신들마다 오준의 글씨를 찾곤 했습니다.
오준의 심정도 이경석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비석에 옮겨 적은 다음,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며 오른손을 돌로 찍어버렸습니다.
자기 행위가 얼마나 저주스러웠으면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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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모르는 사람한테도 이 정도 기개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들만 못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견딜 수 없는 치욕이라야 합니다.
다른 일은 다 괜찮아도 그런 일만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때문에라도 교회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가 '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대체 무엇이 별수 없을까요?
물론 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경석도 별 수 없었고, 오준도 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정말로 그렇게 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경우에는 별 수 없지 않습니까?”,
“저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별 수 없습니다.”,
“별 수 없죠. 그럼 어떡해요?”
이런 경우에, 별 수 없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별 수 없어서 어떻게 하기로 했다는 얘기입니까?
죄다 “어지간하면 신앙 원칙을 지키려고 했는데 여건이 따라주지 않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신앙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없지 않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렇게 못한다고 할 때 별 수 없다는 말을 씁니다.
별 수 없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기왕이면 세상에서 잘 살고 싶은데,
신앙을 지키며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해서
별 수 없이 세상 욕심을 포기할 때 써야 합니다.
별 수 없다는 말로 포기하는 것은 언제나 세상이라야지, 신앙이면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신앙을 지키지 않아도 별 수 없다.”라는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세상에서 손해를 봐도 별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세상을 그만 살아도 별 수 없다.”라고 한 사람을 순교자라고 해서 그 자손까지 칭송합니다.
신앙은 우리한테 언제나 최고의 가치입니다.
- 강학종 목사의 『하루 한 말씀』 p189~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