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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몇 명 올 거냐?"고.
축제 마지막날이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 청산도에 다 오는 줄 알았다.
어정어정 하다가는 축제가 다 뭐꼬, 배를 못 타서 못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괜히 마음 급해져서 땅이 꺼져라 온 집을 쿵쾅쿵쾅 뛰어다니고,
생각과 상상은 차타고 가면서 하면 되고, 아직 김도 덜 빠진 밥솥을 열어 도시락 싸고,
머리는 손가락으로 쓱쓱 빗고, 재킷, 장갑, 스카프는 둘둘 말아서 배낭에 쑤셔 넣었다.
순식간에 모든 준비완료, 나는 내가 그렇게 동작 빠른 사람인 줄 몰랐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무엇인가 한 가지 빠트린 것 같았다.
일단 대문 밖을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는 어렵다.
배낭 팍 엎어서 모든 것 새로 착착 정리하여 챙겼다.
밥, 반찬, 수저, 물 다 있고, 카메라도 있고, 장갑, 모자, 방석, 칼, 휴지, 지펜, 약, 돈도 있고,
간식에 사탕, 선글라스, 비닐봉투까지, 나가서 필요한 모든 것은 다 깔끔하게 챙겨져 있었다.
다 챙겨졌는데, 아주 완벽한데,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도대체 무엇이 빠졌을까?
방마다 다니면서 싹싹 훑어보고, 주방도 한번 싹 훑어보고, 주머니마다 손을 넣어 털어보고,
그래도 여전히 서운하기는 서운한데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집을 나왔다.
그리고 집에서 한 50m 정도 걸어왔지 싶다.
"아, 맞다" 하면서 머리를 딱 때리는데,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나온 것이었다.
길가에 배낭 내려놓고 옆에 있는 사람까지 끌고 뛰어가, 문 열고 들어가서 립스틱 바르고 왔다.
(청산도 가는 길)
괜히 마음 조급하여 목만 바짝바짝 마르고, 불안하여 물만 자꾸 마셔 화장실만 급하다.
와서 보니 생각만큼 관광객들이 많지도 않고, 축제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오히려 조용하다.
사람이 많아 미어터졌으면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 않아 서운하다.
붕~ 청산도를 향하여 배는 출발했다.
감기가 들고 보니 바람이 어찌나 무섭던지 바람을 피하여 선실로 들어갔더니 자리가 없다.
할수 없지 뭐, 기계소리 시끄러운 선수창고 안에라도 들어가서 바람을 피해야지,
배낭 내려서 벽에 기대놓고, 널빤지 나란히 붙여 만든 선수창고 바닥에 자리 깔고 앉았다.
창고에 먼지가 쌓여 먼지 묻을까봐 기대지 못하니 허리가 어디까지 굽어 들어가 활등이 되고,
작은 문으로 보이는 초록색 船바닥을 보고 앉았으니 아침에 있었던 립스틱 사건이 서글프다.
갈치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을 시작으로 우산도 한 개 잃어버리고, 부채도 한 개 잃어버리고,
오늘은 또 얼굴 그리면서 입술을 쏙 빼먹어버리고, 이제 나도 기억력 좋단 말은 옛말이다.
(예쁘다 노란꽃)
그렇게 급하게 정신없이 바빠도 일단 배만 탔다 하면 청산도까지 가는 건 또 금방이다.
산행을 할 것인가, 슬로길을 걸으면서 이것저것 보고 즐겁고 신나는 관광을 할 것인가?
역시 청산도는 아시아 최초, 세계 제1호 슬로시티다.
산행을 하겠다는 사람은 8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슬로우관광을 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현명한 판단을 했군 그래, 나도 관광이다.
오늘은 장기미해변으로 가서 바다 보면서 기분전환 좀 하고, 떨어진 기억력도 끌어 올리고,
동글동글한 공룡알과 이야기 좀 하다가, 서편제세트장으로 와서 팥칼국수 한 그릇 먹고,
두릅, 고사리, 엄나무순 등 산나물도 좀 사고, 완도의 특산물 전복도 대여섯 마리 사고,
그렇게 진짜 슬로시티답게 "슬로우 슬로우" 하고 걸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삶에 옮겨 보리라.
그러나 관광팀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꼭 앞장서서 슬로길을 안내해야 된다면서.
"슬로우 걷기 축제는 축제장이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청산도 섬 전체가 축제장이다.
슬로길은 부두에서부터 시작하여 멀리 언덕으로 서편제, 봄의 왈츠 세트장이 아련히 보이고,
아련히 보이는 세트장을 보고 화살표만 따라 걸으면 1코스 2코스 3코스로 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걷다보면 슬로우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중에는 아주 작은 것까지 눈에 쏙 들어온다."
"슬로길은 말 그대로 슬로우 슬로우 걸으면서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걸어야지,
한참에 여럿이 우 모여서 깃대 들고 앞장 선 가이드를 따라 걷는 길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봐야 되고, 들리는 소리는 다 들어야 되고, 체험이란 체험은 다 해봐야 되는
나 같은 사람과 같이 걸으면 그거 따라한다고 괜히 마음만 바쁘고 신경만 쓰이고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니, 쓸데없이 나를 붙잡지 말고, 각자 취향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슬슬 걸어라."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말도 필요 없다. 막무가내다. 무조건 같이 가야 된다는 것이다.
이해불가, 설득실패, 떼를 쓰고 우기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래, 같이 가자"며 같이 걸었다.
성질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부산사람이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고함부터 먼저 질러 놓고 시작하는 사람이 부산사람이고,
덕이 되던 실이 되던 그 자리에서 담판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부산사람이다.
출발하여 한 6~7분쯤 지나니 모두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는 총알처럼 달아나버린다.
속으로 "거 봐, 슬로우를 참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같이 가니까 괜히 마음 급하고 불편하지?"
아 그런데, 오만 거 다 보고 천천히 걷는 나의 걸음이 더 좋다며 찰싹 달라붙는 한 팀이 있다.
"길눈이 어두워서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모른다."며 무조건 내 뒤만 졸졸 따르겠다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나서 잘 노는 친구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소원대로 무조건 같이 걷기로 결정을 했다.
이리하여 끝까지 나를 꼼짝 못하게 한 사람은 중년의 여인 3명, 나까지 포함하여 총 4명이다.
"이제 우리 넷은 한 팀, 슬로우 걷기 축제에 왔으니까 그 슬로건에 맞게 슬로우 슬로우 걷자" 며
제1코스와 제2코스부터 걷고, 제4코스는 상황 봐가면서 더 걷던지 하기로 하고 걷기에 나섰다.
(도락리 해변)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몇 번 산행을 같이 했던 사람으로 안면이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키가 자그마한 사람으로 삼악산에 왔었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키가 훤칠하게 큰 사람이 또래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다.
셋이서 청산도행 배 안에서 살짝 쐬주 한 잔씩 했다고 하더니 양껏 취하도록 마셨는가 보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맨 땅에서 비틀거리고, 그저 좋다며 헤벌헤벌 웃음 날리고,
술도 못하고, 입담도 없고, 농담도 싫어하는 나와는 완전 딴판, 우습고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부두에서 미항길을 걸어서 보건소 앞에 오니 마을 할머니가 엄나무순을 팔고 있었다.
몸에 좋은 엄나무순이라고, 데쳐서 쌈 싸먹으면 억수로 맛있다고, 그만 덜렁 사려고 달려든다.
살림을 사는 주부들이라 이해는 가지만, 이제 슬로길 시작인데 어떻게 짊어지고 다니려고?
할머니에게는 돌아오는 길에 사겠다고 하고, 이 친구들한테는 길이 멀다며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약속대로 돌아오는 길에 엄나무순 10,000원어치 사가지고 와서 맛있게 쌈 싸먹었다.
그렇게 오만 먼눈 다 팔면서 슬로우 슬로우, 눈에 보였다 하면 다가가서 쳐다보고 만져보고,
느림의 종 발견, 봤는데 그냥 지나치겠나, 땡땡땡 땡땡땡 모두 느림의 종 한 번씩 다 치고,
동구정도 마찬가지, 약수라고 하는데 그냥 가겠나, 뻘떡뻘떡 모두 물 한 바가지씩 다 마시고,
(도락리에서 서편제세트장으로 가는 길)
도락리바닷가로 오니 바닷가 입구에 멍게, 해삼, 전복 등을 파는 회주점(酒店)이 있었다.
그걸 보더니 그만 또 멍게가 먹고 싶다며 멍게다라이 앞에 붙어 서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안 돼, 이러면 안돼, 이러다 서편제, 봄의 왈츠세트장까지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된다고,
멍게는 돌아올 때 먹고, 멍게는 또 통영 멍게가 싸고 맛있으니 통영 갈 때 먹자."며 길을 돌렸다.
이 친구들 걷는 것 보니 괜히 슬로우라는 말을 강조했는가 싶다. 그만 빨리빨리라고 할 것을.
겨우 멍게 뿌리치고 오는데 이번에는 또 톳, 너푸 등의 해초를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또 붙어 서서 값이 얼마냐, 이름이 무엇이냐, 어떻게 먹느냐, 물어보고, 만져보고, 씹어보고,
키 큰 친구가 1봉지 3,000원 달라는 너푸를 4봉지 10,000원 주고 사서 1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너푸는 미역, 다시마 등과 같이 바다에서 나는 해초류로, 너풀너풀 너풀거린다고 '너푸'라 하고,
생김새는 단풍나무 잎처럼 끝이 뾰족뾰족 하고 크기도 단풍나무잎만 하고, 색깔은 숯검정이고,
된장에 시래기 넣어 먹듯 물에 불려서 된장에 넣어 끓여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해초류는 다 좋아하고,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궁금하여 배낭 깊히 넣어 와서,
가르쳐 주는 대로 물에 불려서 된장에 넣어 끓여 먹었는데 맛 별로더라, 아무 특징이 없더라.
짭짜무리한 갯내도 없고, 시원한 바다향도 안 나고, 감나무이파리처럼 억세고 질기기만 하더라.
아직 두 번은 더 먹을 만큼의 양이 남았는데 아마 저대로 굴러다니다가 끝내는 썩혀 버리지 싶다.
이제 곧장 가야지, 이렇게 어정거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서 슬로우라는 말은 쏙 빼고,
"빨리 저 서편제길에 가서 좀 쉬자, 일단은 저 세트장부터 가야 뒷일이 된다"며 길을 재촉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도락리에서 서편제로 올라가는 길을 보고 "길이 예쁘다"며 길에서 늘어졌다.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길은 처음 보았다고, 소설속의 어느 유명 관광지에 온 느낌이라고,
앙! 앙! 거의 절규에 가까운 감탄사가 하늘을 울리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사진을 막 찍어댄다.
요리 찍고 조리 찍고,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한가운데서 찍고 모퉁이에서 찍고, 완전 신났다.
(웃지 않아 멋 없다)
나이 들어갈수록 사진이 추억이고, 잠 못 드는 괴로운 밤 옛날 사진 꺼내 놓고 보면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면서, 가는 사람 불러다가 사진 찍어 준다고 김치- 참치- 멸치- 갈치- 꽁치- 넙치-
웃어야 예쁘다고 김치를 외치면서 입 크게 벌리고 웃으라고 하는데 웃음이 안 나와서 재미없다.
(서편제길에서 본 도락리 앞바다)
위에 올라가면 더 멋진 풍경 많이 나온다며 막 찍어대는 사진 중단시키고 서편제길로 올라왔다.
언덕에 올라서서 도락포를 보고는, 진짜 더 멋진 풍경이 나왔다며 좋아서 이리 펄쩍 저리 펄쩍,
작년부터 청산도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짬이 없어 못 오고 있다가, 친목회 계모임 갔다가
마침 청산도 간다는 친구가 있어 따라 왔더니 정말, 진짜 잘 왔다며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서편제세트장 뒤 전통놀이체험장)
축제기간이라 오늘도 서편제세트장 뒤 전통놀이체험장에서는 소리꾼이 나와서 소리를 한다.
덩실덩실, 얼쑤, 얼쑤, 볼 때마다 부러운 소리꾼, 어쩌면 소리도 그리 잘 할까?
장구소리 북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는데, 걸걸하고 구성진 노랫가락이 사람 애간장 다 녹인다.
마음속으로 "부럽다, 나는 왜 저런 재주가 없을까?" 라며 발걸음 멈추고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
팀 중의 한 친구가 올라오더니 바로 무대로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두 팔을 휙휙 내 던지며 허리를 휘감아 돌아서 사뿐사뿐 장단을 맞추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다.
산만 잘 타고 우스갯소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춤도 너무 예쁘고 맵시 있게 잘 춘다. 재주꾼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서편제길)
시간만 많으면 얼쑤, 얼쑤 추임새 넣어가면서 좀 더 보고 왔으면 좋겠더라만, 시간이 없다.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며 서편제세트장으로 내려가서 서편제세트장 한 바퀴 둘러보라 하고,
한 친구는 소피가 마렵다하여 보내놨더니 화장실이 더러워서 변이 안 나온다며 그냥 나왔다.
여럿이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다 그렇지, 내집처럼 면경같이 깨끗한 화장실이 어디 있노,
더럽다 싶으면 더럽다고 소리만 지르지 말고, 넘쳐나온 화장지 발로 밟아서 넘치지 않게 하고,
물도 내려서 냄새 날라가게 하고, 그렇게 대강 치우고 일 보면 되지, 소리만 지르고 있으면 되나?
부두에서부터 소피가 마렵다하여 가까운 달팽이화장실에 보내놨더니 화장지가 없다고 그냥 오고,
도락리에 와서 또 소피가 마렵다하여 도락화장실에 보내놨더니 또 구시렁구시렁 그냥 나오고,
서편제에 와서 또 소피타령, 서편제화장실에 보내놨더니 더러워서 변이 안 나온다며 그냥 나왔다.
세 살짜리 어린얘도 아니고, 모자라는 사람도 아니고,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오더라마는,
그래도 같이 다니려면 어떻게 해서든 살살 달래어서 기분 좋게 데리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화장실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여기서 안 누면 옷에 싸야 된다. 아무 소리 말고 빨리 누고 와" 라고
엄포를 놓아 다시 데리고 들어가서 오줌 뉘고,
이제 근심도 풀었고, 살랑살랑 한국의 아름다운 길 서편제길을 걸어 봄의 왈츠 세트장으로 간다.
(봄의 왈츠 세트장)
(봄의 왈츠 세트장)
(봄의 왈츠 세트장)
좋다, 좋다, 너무 좋다.
한국 땅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느냐며 나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며 유채밭을 날아다닌다.
셋 중 한 친구는 술이 거나하게 되어서는 "일상탈출, 여기는 청산도, 나는 자유인" 라고 외치면서
어떤 남자팀에 어울려 병아리 소풍가듯 손잡고 딸랑딸랑 따라갔는데 여기서 다시 만났다.
이제 술이 조금 깨었는지 "남자친구는?" 하고 물었더니 "넘의 남애 뭐할라꼬" 라며 쌀쌀하다.
맞다, 넘의 남애 뭐할라꼬, 잘나도 내 신랑, 못나도 내 신랑, 우리 신랑 내 남애가 최고지.
다시 4명이 한데모여 봄의 왈츠 세트장을 둘러보며 정말 좋다,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온 김에 야무지게 매매 보고 가야된다며 드라마 주인공들이 생활하던 내부 공간까지 보고 오라고
했더니, 침대며 탁자, 피아노, 주방, 거실 등은 아무래도 탁 트인 자연경관만 못하던 모양이다.
끈달린 신 벗었다 신었다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들어가자마자 금방 나와버린다.
(유리구두)
(유리구두 아가씨)
이 구석 저 구석 삐꿈삐꿈 세트장을 둘러보다가 드라마 주인공의 유리구두 발견,
의논이나 한 듯 넷 모두 자동적으로 척척, 유리구두를 신고 포즈를 취했다.
저 친구 폼 좀 봐라, 경상도 말로 폼 쥑인다 아이가, 대낄이다.
내가 보기에는 '봄의 왈츠' 유리구두 아가씨가 아니라 영화 '친구'에 나오는 머시기 같다.
춤도 잘추고,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폼도 잘 잡고 "그대는 멋쟁이" 만능 재주꾼이다.
(유리구두 아가씨)
이 친구는 진짜 유리구두아가씨처럼 주황색 티셔츠에 모자도 꽃무늬 창 넓은 모자를 쓰고,
구두도 제대로 신어보겠다고 유리구두 안에 썩은 물이 고여 있는 데도 등산화 벗고 신었다.
키도 훤칠하고 좋았는데, 가슴을 가로지른 배낭끈과 허리에 불끈 맨 재킷이 조금 걸린다.
(서편제세트장에서 본 도락포)
청산도 슬로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을 받는 풍경이 저 아래로 보이는 도락포다.
언덕위의 하얀집(봄의 왈츠)에서 내려다보면 저 도락포가 완전 한 폭의 그림이다.
노란 유채와 새파란 청보리와 에메랄드빛 푸른바다가 세상사 모든 괴로움 다 잊게 해준다.
육지에서 온 우리 네 사람, 키 큰 친구는 처음부터 좋다, 잘 따라왔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재주꾼 친구는 바다를 보는 그 순간부터 물 색깔이 너무 아름답고 물 냄새가 매우 향긋하다며,
외국여행에서 보았던 어느 나라 지중해 그 바다와 똑 같다고 하면서 바다이야기가 터지고,
그래, 외국여행에서 본 바다가 무슨 바다이며 외국 어느 나라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몰라" "나라이름도 바다이름도 몰라" 지중해라는 것과 바닷물색깔이 좋다는 것만 기억한단다.
그럼 집에 가서 식구들이 오늘은 어디 갔다왔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거냐고 했더니 "사진"
사진 보여 주면 된단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어 가야 된단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다.
(서편제길에서 본 도락포)
나도 저 그림이 너무 좋다.
나도 저 친구들과 같이 좋다는 말을 밖으로 내뱉으며 호들갑을 떨고 싶은데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마음속으로만 좋다, 좋다. 라는 말을 되뇌고, 친구들과 어울려 맞장구를 치며 걷는다.
(산 허리를 둘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화랑포길)
저기 앞에 보이는 타원형의 산, 산 속으로 해변을 보며 난 길이 바로 화랑포길이다.
화랑포는 먼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양이 꽃과 같다하여 꽃화(花) 파도랑(浪) 자를 써서
花浪浦라고 하며, 화랑포길은 화랑포에서 새땅끝을 연결하는 길이다.
(화랑포 갯돌밭 입구)
이 친구는 처음부터 나의 뒤만 졸졸 따르겠다며 지금껏 "샘" "샘" 하면서 계속 따라 다닌다.
넷 중 둘은 먼저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면서 화랑포갯돌밭으로 내려가고,
나와 둘이서 뒤에 처져 걸어오다가 힘들어서 못 걷겠다며 뻗대고 앉아서 우는 아이를 보았다.
나는 속으로 "녀석, 꾀가 나는 구나, 조그만 것이 고집이 세구먼" 이러면서 지나왔는데,
옆에 있던 저 친구가 아이 앞에 다가가더니 아이를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손을 잡고 뭐라고 쑐라쑐라 하더니 그만 울음 뚝 그치고 일어나서 혼자 걸어간다.
그렇게 달래놓고 오면서 "잔돈이 있었으면 한 장 주고 올 건데..."라며 그냥 온 것을 미안해한다.
놀랬다, 정말 너무 많이 놀랬다. 저런 재주 있고 마음씨 좋은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나도 저 아이를 어떻게 할까, 날도 더운데 시멘트바닥에서 저렇게 울어대면 기운 다 빠지는데,
저 아이를 어떻게 달래어 일어서게 할까, 돈이라도 한닢 쥐어 주면서 달래볼까 생각은 했지만,
내 몸도 무겁고, 아이엄마가 있으니 아이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뭐, 이러면서 그냥 지나왔다.
그런데 저 친구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달래어 놓고 오는 것이었다. 정말 감동했다.
저 친구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 사진 한 장 찍자며 가는 사람 불러 세워서 일부러 찍은 사진이다.
"마음씨가 아름다운 친구여 복 받으소서"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화랑포 갯돌밭)
나는 이제 기운 다 빠졌다.
배도 엄청 고프다.
그러나 저 친구들은 오면서 차에서 간식 먹고 배에서 쐬주 한잔씩 하고 왔는지라 생생하다.
이제사 술이 살살 깨기 시작하고 아직 배는 하나도 안 고프단다.
그러나 때도 되었고, 점심 먹으려고 갯돌밭까지 내려왔으니까 먹어야 된다며 상을 차렸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쐬주, 청산도행 배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2병 얻었단다.
나도 쐬주 한 잔하고 "나 취했다" 하면서 비틀비틀 걸어보고 싶더마는, 그것도 쉽지 않더라.
나는 어머니가 담가 준 김장김치 찬물에 할랑할랑 흔들어서 양념만 털고 가져 왔는데,
그들은 소풍간다고 상추, 땡초, 미나리쌈에, 고기볶고, 배추김치, 파김치, 많이 준비해 왔더라.
쌈쟁이, 덕분에 김치쌈, 상추쌈으로 쌈싸서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복숭아통조림까지 얻어먹고,
(당리 돌탑공원)
왔던 길 되돌아 서편제, 화랑포, 사랑길의 갈림길인 당리 돌탑공원으로 올라왔다.
계획대로 화랑포로 가려고 시계를 보니 14시50분, 화랑포-사랑길-당리-부두까지는 85분소요,
배 출발시간은 16시, 이크 큰일 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온갖 먼눈 다 팔고 걷는 우리는 어렵다.
화랑포는 무슨 얼어 죽을 화랑포, 사랑길이라도 걸어보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된다.
저 친구들 하자는 대로 다 했다가는 우리만 묶기는 것이 아니라 일행 전부가 묶일 수도 있다.
정신 차려야지, 같이 해롱해롱 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시치미 뚝 떼고 분위기 확 바꿔서,
"시간 없다. 화랑포 생략" "좋다고 무드 잡고 폼 재다가는 집에도 못가니까 바삐 서두르시오"
(제2코스 사랑길 초입)
시간관계상 화랑포길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바로 사랑길로 접어들었다.
사랑길은 당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해안길로 숲속의 고즈넉함과 해안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이 사랑길에서 사랑을 하면 결혼이 성사된다고 하여 청산도 사람들은 연애바탕길이라고도 한다.
(제2코스 사랑길)
마음 같아서는 사랑길도 생략하고 바로 봄의 왈츠, 서편제로 하여 부두로 갔으면 싶더마는,
그래도 먼 길 왔는데 한 개라도 더 보여줘야 안 되겠나 싶어서 먼눈 팔지말고 따라오라 하고,
나처럼 이렇게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앞장서서 힘차게 걸었다.
(사랑이 주렁주렁)
아이구 무시라, 무슨 사랑을 이렇게 정신없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을까?
읽어보고 싶지도 않지만 읽어 볼 시간도 없고, 마음이 바쁘니 저 나무하트도 걷는데 방해다.
사랑이고 뭐고 배 놓치면 집에도 못 가는데 이 친구들은 왜 아직도 아니 온단 말이고?
샘, 샘, 하면서 끝까지 뒤를 졸졸 따르겠다는 친구는 진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따라오는데,
산에도 많이 다니고 산길에 감각도 있다 싶은 친구 둘은 그만 꾀를 부리고 따라오지 않는다.
(타원형의 산으로 난 길이 화랑포길)
아이구 참말로, 그만 꼬박꼬박 따라오지, 또 무슨 호작질 하고 있나, 사람 애가 말라 죽겠다.
혹시나 싶어서 쓸개 없는 노루처럼 가다말고 우뚝 서서 획 돌아보고, 획 돌아보고,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는 바다의 도시 부산에 사는 사람이 바다가 그리도 좋을까?
뒷사람은 빨리빨리 따라오지 않고, 마음은 급해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바다가 보인다.
타원을 그리며 뱅 돌아가는 바다가 멋있고, 에메랄드빛 파란 바닷물이 나는 너무너무 좋다.
(당리재삼거리)
헐떡헐떡 사랑길을 다 걸어서 당리재삼거리까지 왔다.
뒤에 두 사람 길 잃을까봐 한참을 기다렸다가 서편제에서 바로 부두로 오라고 가르쳐 주고,
(당리재삼거리 원두막쉼터)
이 시간에 원두막에 올라 앉아 쉬고 있는 저 사람은 자고 내일 나갈 것인가?
내마음 급하니 앉아서 노는 저 사람이 부럽고, 나도 천천히 자고 내일 갔으면 좋겠다.
(저 멀리 노란집이 봄의 왈츠 세트장)
지난주 까지만 해도 온 들에 노란 유채가 물결을 치고 새파란 청보리가 수를 놓더니,
1주일 사이에 유채는 꽃잎 다 떨구어버렸고, 청보리는 싹둑 베어져 소먹이로 갔다.
(당리마을)
그래도 저기 한 마지지 논에는 유채가 아직 안지고 남아 있구나,
그러다 해지면 저 유채도 지고, 축제도 끝나고, 손님들도 뭍으로 다 돌아갈 것이다.
이제 봄도 가고, 여름 되어 노란 유채밭에 빨간 양귀비가 피면 그때 다시 또 와야지,
(도청리 전통이 흐르느 거리)
드디어 도청리 선착장이다.
얼마나 숨이 넘어가도록 급하게 걸었던지 옷이 흥건히 다 젓고 입에서 단내가 다 난다.
그 바쁜 중에도 아까 아침에 만났던 할머니 찾아가서 약속한 대로 엄나무순 사고,
지난주에 같이 왔던 한 친구가 도청리 부두에 전시된 농기구와 농산물들을 보고,
"여기 옛날 우리 아버지가 쓰던 거 다 있네" 라며, 탈곡기도 밟아보고, 지게도 만져보고,
쌀소쿠리, 짚소쿠리도 만져보고, 똥장군을 보고는 어린시절 생각나는지 추억의 웃음을 짓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 급한데도 일부러 멈춰 서서 전시된 농기구와 농작물들을 둘러보았다.
(똥장군)
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지라 이런 농기구들을 보면 어린시절 생각나고 부모님 생각난다.
아무 일도 안했는데 어깨가 아파서 "어깨야, 어깨야, 어깨 아파" 하면서 어깨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똥장군을 졌나, 거름을 져다 날랐나, 궁매처럼 놀고 뭐한다고 어깨가 아파" 라며,
특별히 잘해줄 힘도 없는데 아프지나 말지, 왜 아프기까지 하느냐는 뜻으로 "아프면 죽어라" 며
집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나무라시며 서운해 하던 어머니의 짱짱한 고함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똥장군)
그런데 그 똥장군이 장군이 아니고 장곤이었던가?
나는 어릴 때 똥장군 '장군'이라고 들었는데 '장곤'이 표준말인가?
(유채씨앗)
요건 유채씨앗이라고 한다.
이것도 어릴 때 어머니께서 짱다리 턴다고 막대기로 때려서 터는 걸 본 기억이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노란꽃이 아니고 흰색과 보라색 꽃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채가 아니고 무 였던가?
웬만하면 어릴 때 보았던 건 다 기억하는데 오랜 세월 떠나 사니 이젠 그것도 잊어버리고 만다.
(도청리 대합실 옆에서 본 문어)
어, 저건 불가사리다.
불가사리가 농작물재배에 거름이 되고 비료도 만든다더니 저렇게 말려서 만드는 구나.
불가사리가 또 신기하여 달려와서 봤더니 불가사리가 아니고 문어다.
바닷가에서는 예사로운 것이고 흔해 빠진 것이지만 나에게는 새롭고 신기한 어물들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왜 아직도 아니 오실까?
아무리 나롱나롱 걸어도 지금쯤은 도착을 해야 하는데, 진짜 오다가 옆으로 새기라도 했나?
배는 곧 출발한다고 빨리 승선하라 하고, 이 친구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전화하여 "곧 배 출발하니까 먼눈팔지 말고 나롱부리지 말고 빨리빨리 오라"고 했더니,
아이구 맙소사, 무슨 일이냐, 정말 뱅뱅 돌겠습니다. "지금 도락리로 가고 있어요" 라고 한다.
"아니, 이 바쁜데 도락리는 왜 또 내려 가, 지금 제 정신이가, 남의 정신이가, 왜 도락리로 가?"
갈 때는 도락리로 가고, 올 때는 서편제에서 도로를 따라 바로 도청리로 오라고 귀가 따갑도록
가르쳐 주었는데, 내 설명할 때 귀는 동냥 보냈나? 내 말이 그렇게 시시하게 들리던가?
도락리에서 너푸는 왜 샀어?
짊어지고 다니면 무겁다고 올 때 사려고 했지만 그 길로 다시 오지 않는다고 미리 산 것 아니냐?
승무원 아저씨, 배 출발할 건데 빨리 안타고 섰다고 소리 지르고, 친구들은 아직도 깜깜이고,
다시 전화하여 무조건 빨리 오라고 했더니, 참말로 환장하겠다. 다리가 아파서 빨리 못 걷겠단다.
아니, 여태껏 성턴 다리가 갑자기 왜 아파, 짱짱하던 다리가 빨리 오라고 하니 그만 아파버려?
승무원 아저씨는 놔두고 그냥 가자며 호각을 불어제치고, 나는 절대 그냥 가면 안 된다고 버티고,
시간은 급한데 사람은 안 오고, 간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데, 아 정말, 사람 미치겠더라.
이럴 때 누가 새치기라도 하여 옥신각신 밀고 당기고 서로 네 잘났니 내 잘났니 시비가 붙거나,
큰 차 작은 차 막 들이대어 선이 얽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신간이 벌어지고 시끄러우면,
자연적 시간이 지연되어 출발이 늦어지고, 그 틈에 늦은 친구들 쏙 들어오면 되는데,
이럴 때는 또 승객들 모두 싸움도 안하고 질서도 잘 지키고 고분고분 말도 참 잘 듣는단 말이야.
하나, 축제 마지막날이라 손님도 그리 많지 않고, 차도 그리 많지 않아 차 실을 공간이 남았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막 달려왔다. 배 타려고.
그 자동차 싣고 오려고 기다리면서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그 시간을 벌어 친구들이 왔다.
마지막 한 대의 자동차 덕분으로 무사히 친구들 모두 태우고 왔다.
사람 애터져 죽게 만들고,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지만, 친구들 만나니 또 반갑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오는데 보니까 또 마음 짠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그런데 싱글싱글 웃으면서 흔들고 오는 손을 보니 시커먼 비닐봉지 안에 머위가 들어있다.
그렇게 바빠서 동서남북을 헤매고, 전화는 바리바리 오고, 다리가 아파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그 와중에, 무슨 정신으로 머위까지 샀을까? 머위 한 다발 사가지고 덜렁덜렁 들고 왔더라.
하여튼 가죽도 두껍고, 배포도 좋고, 마음도 넓고, 기운도 세고, 재주도 많은 대단한 친구들이다.
소심하고 날카롭고 뱃심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도시락 들고 따라다니면서 배워야 될 친구들이다.
왜 성턴 다리가 갑자기 아팠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급히 걷다가 넘어지지 않았나 싶다.
며칠 후 "다리는?" 하고 물어보았더니 "쪼매" 라고 했는데, 성격이 좋은 친구라 금방 낫지 싶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서편제길)
붕~ 기적을 울리며 배는 출발했다. 다시 또 육지로 향하여.
바람 때문에 또 선실로 올라갔더니 슬로길을 무슨 마라톤 경주하듯 죽기살기로 내 달렸던가,
모두 전쟁터에서 총탄 맞아 쓰러진 장병들처럼 온 방바닥에 무더기로 퍽 퍽 엎어져 있다.
그래서 그냥 방문턱에 궁둥이만 살짝 붙이고 앉았더니 아이구 불쌍해라, 선수창고는 저리가라다.
사람이 많으니 냄새도 얼마나 지독한지 코가 둘러빠지고, 허리는 또 굽어 들어가 활등이 되었다.
서 있으면 다리 아프고 앉아 있으면 허리 아프고 밖에 나오면 춥고 안에 들어가면 덥고,
산에서는 춥기 전에 입고 덥기 전에 벗고 고프기 전에 먹으라고 했는데,
배에서는 다리 아파서 앉고 허리 아파서 서고 더워서 나가고 추워서 들어오니 변덕쟁이라 한다.
변덕쟁이, 앉았다가 섰다가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배 안에서 변덕을 몇 번이나 부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선실에 늘어져 코까지 드렁드렁 골면서 자는 친구들 모습이 편안해 보여 마음은 편하다.
이제 청산도 슬로우 축제도 막을 내리고, 유채 핀 자리에 양귀비가 새로 피면 그때 또 가야지,
친구들 모시고 다닌다고 못 먹은 팥칼국수도 그때 가서 먹고, 바빠서 못 산 전북도 그때 가서 사고,
시간 모자라 못 걸은 화랑포길도 그때 가서 걷고, 손목 잡혀 못 간 장기미해변도 그때 가서 가야지.
청산도 슬로길이 궁금하고 빨간 양귀비가 궁금한 사람 있으면 그때 또 한번 훌쩍 떠나봅시다.
빨리빨리, 빨리만 외치는 숨 가픈 도회를 벗으나 느림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슬로길을 찾았건만,
올 때는 온다고 바빠서 동당거리고, 갈 때는 또 간다고 바빠서 동당거리고, 결국은 "빨리빨리"다.
배는 떠나는데 사람은 오지 않고 애간장 녹인 것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죽 흐르지만,
그래도 그런 배짱 좋고 배포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청산도 슬로길이 더욱 더 재미있고 좋았다.
친구들이여, 여러분들이 있어서 슬로길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오늘처럼 웃는 얼굴로 산에서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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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산도 는 집 가출 했을때 가봤든곳이라 마음이 더 쟌 합니다.
긴-글 잘 읽었습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책하나 내입시더. ㅎㅎ
이 긴글을 다 읽으셨어요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책, 제목까지 다 정해 주었는데 아직도 책을 못내고 있네요. 답답한 사람.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아론과 나나의 여행기"를.
아론과나나의여행기기다려집니다.
긴 글 다 읽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늘이 몇일이다요.. 흐미~ 오늘에사 읽었네요..ㅎ
나나님 내가 미치..ㅠ
이 못난사람 나나님 글에 등장도 다 시키주고.. 우리가 절케 이상하게 행동햇나..ㅎㅎㅎ
그래도 넘 밉다 하지 마시고 언제 만난거 확실하게 함 대접하겠습니다..
또 다른곳에서 만나요~~ㅎ
밉다 하기는,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재미있었구만요.
즐겁고 재미있는 친구들이었어요.
넷이 같이 걸었던 청산도 슬로길이 눈에 선 합니다.
그래요, 다른 곳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