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지평에서 부르는 도약과 침체의 이중주
Ⅰ. 머리말 IMF 체제와 지방자치시대의 전개라는 두 축은 1999년도 공예계에 있어서 새로운 이중주를 연주하게 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국공예의 세계 무대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국제공예비엔날레가 지방도시인 청주에서 개최되었다는 역사적 사건과 다른 한편으로 공예활동의 침체적 국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우선 공예계의 도약적 측면을 조명해 보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한 달여 간 46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가운데 지방도시인 청주에서 국제적 행사로 화려하게 출범한 것이었고, 『근대를 보는 눈―공예』편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기획되어 20세기 공예사의 변천과 흐름을 참신한 전시기법이나 입체적 연구의 결핍이라는 차원에서 다소 미진한 감은 있었지만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침체적 국면은 형식적 기획전과 창조적인 실험이 없는 개인전으로 인한 작가정신의 부재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생활공예품의 확산이 두드러지게 부상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침체적 국면은 IMF 체제 하의 경기침체 현상이 공예계에 여과없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미술분야, 그 중에서도 생활과 밀착된 공예 장르가 경제적 파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이번 IMF 체제가 닥치면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체제의 위축된 경제상황과 세기의 전환점에서, 공예분야는 다른 조형예술 분야와 비교할 때, 새로운 훈풍(薰風)을 맞이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구체적 증거들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이제 2년마다 우리나라 청주에서 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게 됨으로써 국제적인 공예계의 동향을 한국의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 2001년에는 경기도 도자기 엑스포가 창설될 예정이고 올해에는 그 사전행사로 『생활도예공모전』이 열렸다는 점,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대를 보는 눈―공예』편을 기획함으로써 근대와 현대공예의 발자취를 점검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들은 공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기에 유효한 기제가 되었으며, 한국미술사를 지탱해 온 공예의 역할과 기능은 물론 공예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을 제고시키는 사회적 밑거름으로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문화의 세기’가 궁극적으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균형 발전 속에서 그 모습을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공예’가 단순히 ‘생활의 미’ 혹은 ‘실용과 미의 겸비’와 같은 전통적 공예 개념의 가치를 벗어나 예술과 기술,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과 같은 이분법적 미학 자체를 하나로 용해하고 조화시켜 나가는 종합적 예술로서의 중요한 장르임을 자각케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1999년도 공예계의 도약적 기류는 점차 공예라는 분야가 예술과 산업, 수공정신과 기계적 테크놀로지, 기계적 단순노동과 창조적 노동 사이에서 그 양자를 결합하거나 연결시키는 중요한 장르임을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측면들은 공예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Ⅱ. 공예계의 동향
1. 공예화랑과 아트 숍의 활성화
1999년도 공예전시회를 조감할 때 통인화랑, 크래프트스페이스 목금토, 크래프트하우스, 핸즈앤 마인드에서 꾸준히 생활공예 개인전과 기획상품전을 열었으며, 10월에는 우리그릇 려(麗)가 개점하여 식생활문화를 결합한 전시장과 숍의 기능을 겸비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신사동에 들어섰다. 우리그릇 려는 하나의 생활문화로서 식기와 식탁, 그릇과 음식과의 관계 등을 아우르는 개념의 독특하면서도 한국적인 미감의 식생활 도구들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개관기념 기획전으로 연 『’99 여름식탁전』은 이인진, 이윤신, 김천수, 김기라가 참여하여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모양의 그릇, 수저와 젓가락, 유리그릇 등을 선보였는데 개성있는 식탁문화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참신한 의도가 돋보였다.
사실 영국이나 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이 가진 다양성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다채롭게 공존하는 가운데 생활의 미를 계층에 맞게 누리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도 공예가들의 창작정신이 살아있는 생활공예품의 고급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사치나 호화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사치나 호화스러움을 넘어선 인간이 가진 경제적인 부와 삶의 양식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가시화하고 있는가에 논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선진국이 고급상품을 장인정신이나 인간의 수공정신에 기대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을 볼 때, 우리도 생활도구와 공간들을 창조정신과 한국적 미학으로 개발해 나갈 시기가 된 것이다. 그만큼 공예의 기술과 미학은 문화와 경제를 융합하는 수단으로서 세계의 유명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자원이자 무기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생활공예품의 고급화와 예술과 산업을 연결시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한국의 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판단은 아니라고 본다. 이로서 현재 공예전문숍은 인사동의 토도랑, 예당 등과 더불어 공예품의 유통적인 측면에서 그 반경이 확장된 셈이다. 또한 가나아트스페이스가 점차 공예 전시장으로서 그 역할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1999년도의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공예전문숍과 갤러리들과 함께 미술상품, 이른바 뮤지엄숍이 점차 자리를 구축하면서 공예품의 생활화, 미술품의 공예품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아트숍으로는 호암미술관, 가나아트,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 환기미술관을 비롯해 국공립시립박물관 및 미술관의 아트숍이 각자의 미술관 성격에 맞는 아트 상품들을 개발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머지 않아 선진국의 유명미술관 뮤지엄숍과 같이 다양하고 진귀한 아트 상품이 하나의 시장체제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2. 주요 그룹전과 개인전의 양상
올해 열린 공예 전시회 중 주목할만한 기획전은 ’9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세계현대공예의 오늘국제초대작가전』(청주 예술의전당 일원, 9.3~10. 30),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를 보는 눈공예(덕수궁미술관, 12.16~2000.2.6)』와 부산시립미술관의 『흔적과 촉감』( 12.10`~2000.3.5), 현대화랑의 『국제공예미술의 오늘 인체를 위한 디자인』(12.16~ 12.30)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큰 규모의 전시회 외에는 앞에서 언급한 공예전문 갤러리, 공방, 백화점 갤러리에서 열린 상품성 위주의 전시회가 주류를 이루어 공예의 실용성이 대세를 찾아가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이런 와중에 20세기의 말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근대를 보는 눈 공예』는 그 동안 한국 현대공예사의 체계적 연구가 빈약했던 현실에서 학술적 정리와 함께 전시회를 통해 전개양상을 조망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전시회에는 일반인들의 호응이 커 연장 전시까지 했다는 사실 역시 공예계를 위해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근대공예와 현대공예의 궤적을 정리하는 대규모 기획전으로서 그 학술적 논문의 개제가 총체적인 조망을 하기에는 한계성이 있었고, 전시 자체도 전시유물의 분류나 전시기법 면에서 고답적이었으며 좀더 입체적이고 품격있는 공예품의 해석적 접근을 상실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와 함께 부산시립미술관의 『흔적과 촉감』전은 송번수, 박수철, 유재구, 차계남 4인의 섬유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 기획전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전시 개념이나 작가 선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창설된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의 본 전시라고 할 『세계 현대공예의 오늘―국제초대작가전』은 모처럼 국제규모의 행사로서 199명의 국내 작가와 44명의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현대공예의 세계적 동향을 국내에서 조감할 수 있었다는 특별한 이슈 외에 뚜렷한 주제나 성격 있는 전시회가 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공예의 기획성과 국제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이 가시화되는 계기가 된다면, 한국공예가 미술 장르 속에서나 문화산업의 기반으로서 그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데 커다란 초석이 되리라 본다. 『국제공예미술의 오늘―인체를 위한 디자인』전은 네덜란드의 오노 부크하우트, 미국의 브루스 매트케프, 한국작가로 뉴욕에서 활동 중인 왕기원 세 장신구 작가와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맡은 오준석이 함께 연출한 전시회였다. 예술적 장신구의 세계적인 추세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회였으나, 전시 명칭에 걸맞는 국제적 규모로 꾸며지지 못했던 것은 전시 명칭과 작가 선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차라리 ‘개념적 장신구’라든가 하는 타이틀로 폭을 좁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외 올해로 창립 24회를 맞이한 서울대 동문들로 구성된 토회가 『오늘을 심는 사과나무』(크래프트스페이스 목금토, 12.17~12.26)라는 타이틀의 정기회원전과 함께 <현대도예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던 것은 전향적인 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금속 제3그룹의 『미성년자 관람불가』(예술의전당, 10.19~10.27)은 획기적인 주제로 시선을 모았으나 회원들이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해석능력과 작품 내용이 미약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신한 시도가 동문전 위주의 그룹전 경향이나 뚜렷한 이슈가 없는 그룹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 올해 열렸던 개인전의 동향은 설치작품의 약진과 생활공예의 확산이라는 두 가지 대세가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생활공예의 약진은 토도랑, 통인화랑, 크래프트스페이스 목금토, 핸드앤마인드, 가나아트스페이스 등과 같은 갤러리를 겸한 공방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개인전으로는 『박종훈 물레작업전』(경인미술관, 5.12~5.18)이 물레작업으로 제작된 다양한 그릇의 한국적 정감을 잘 드러냈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조류와 관련하여 『이강유 그릇전』, 『이윤신 그릇전』, 『전상호 생활유리조형전』, 『노용숙 아름다운 빛깔구이칠보예술전』, 『이영호 도예전』, 『오희정 금속공예전』, 『윤광조 생활자기전』등은 공예의 예술성과 실용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전시회였다고 평가된다. 설치미술의 성격의 개인전으로는 『김송이전』(갤러리 보다, 8.25~8.31)이 금속공예를 전공한 작가의 감성이 개념적인 빛과 어우러져 독특한 마력을 발산하였으며, 금속공예의 실용성과 개념성을 철학적 깊이로 이끌어 낸 『이명숙전』(서신갤러리, 11.3 ~11.9), 섬유공예의 전통적인 재료를 벗어나 조명과 형광섬유를 통해 새로운 설치적 가능성을 보여준 『이은숙 잃어버린 태아전』(인사갤러리, 12.1~12.7), 미국에서의 연구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여 번데기라는 테마로 김을 재료로 하여 설치미술의 현장성을 극대화한 『구경숙 크리살리스(Chrysalis)전』(담갤러리, 12.8~12.30), 한국적 색채미와 핸드 위빙기법으로 설치적 실험을 계속해 온 『이정숙전』(미술회관, 10. 29~11.3), 색채가 있는 전선을 이용한 바스켓트리의 기법을 통해 새로운 작품형식을 전개해 온 『오순희-자연 속의 바스켓트리전』(갤러리 우덕, 12.17~ 12.28)은 올해의 개인전 중 가장 주목되는 전시회였다. 이들은 도록이나 전시장 디스플레이조차도 하나의 총체적인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고 학구적이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 밖에 회갑을 맞은 『최현칠 새처럼, 거울처럼전』(예술의전당, 11.29~12.6)」은 작가의 지난 작업을 두 가지 테마로 묶어 전시한 것으로, 현대 금속공예의 개척자이자 1세대인 작가의 후배와 제자들이 헌정한 전시회였다. IMF의 여파로 외국 작가의 국내 개인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호주 도예가인 『패트러스 스프롱크전』(핸드 앤 마이드, 8.31~ 9.9)이 열렸으며, 섬유작가인 『김현태전』(긴자 9 비도우갤러리, 12.13~12.17)이 일본 동경에서 열렸다.
Ⅲ. 맺음말
이제 20세기를 건너 21세기로 들어서는 전환점에서 바라본 한국공예의 1999년도 동향을 정리하자면 ‘도약과 침체의 이중주’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이중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도약이나 침체,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이 양자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 일은 우리 공예계가 지난 20세기 동안 잃었던 것은 무엇이고 찾았던 것은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지난 20세기는 거의 40년 간을 일제의 강점 하에 문화적 전통을 올바로 계승할 수 없었고, 국권회복 후에는 전쟁과 외세에 의한 급속한 근대화가 전개되었다. 그 후 독재와 민주화의 항쟁과 대립…. 그야말로 정치적 질곡과 피폐해진 문화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현대공예가 태동되고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실생활 도구는 기계화된 플라스틱과 스테인레스가 공예의 도구성을 잠식해버렸고, 공예는 왜곡된 선전(鮮展)에 의해 배태된 감상적 공예와 외국의 미술사조에 의해 순수미술화로 치닫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예교육은 실기와 기능위주로 편재되어 공예사나 공예론은 거의 도외시되어왔다. 이러한 결과가 바로 도약과 침체의 이중주를 연주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생성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첫째는, 공예계의 이론가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제도의 개선을 정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공예비엔날레가 2년마다 한국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그 실무를 담당한 예술행정적 인재가 다른 여타의 분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 공예교육의 한계를 여실히 노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BK21이라는 국가적 대사업에 휩쓸려 ‘테크노’라는 말이 대학마다 유행처럼 범람하는 시대에 공예개념에 관한 학술적 논의나 21세기 새로운 사회에 부응하기 위한 공예의 담론이 거세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학교가 학과나 교과과정을 ‘디자인’으로 바꾸어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공예란 장르가 있었는지 또한 선조들이 물려준 공예의 전통이 어떻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지 심각하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예는 그야말로 침체가 아니라 소멸해나갈 것이다. 이 침체의 상황을 도약으로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공예이론교육을 대학마다 제대로 개설해야 하고 큐레이터, 공예미술행정가, 공예사가, 공예이론가, 저널리스트 등을 배출하여야 한다. 특히 각 공예관련 대학원에서는 이론 분야를 개설해 장학금은 물론 졸업한 인재들을 외국에 유학을 보내서 선진국의 학문과 경험을 쌓고 돌아와 다각적인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의 세기는 그냥 오지 않는다. 더구나 공예미술관 하나 없는 우리 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국제경쟁력을 갖는 일은 공예의 전통을 새롭게 부활시켜 산업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태리·독일·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수공기법과 장인정신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국부를 쌓고 있는 일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더구나 인터넷 시대에 우리의 살길은 문화상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파는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공예가들이 좀더 분발하여 국제적인 감각을 길러야 하겠다는 점이다. 공예의 실용성은 이제 해묵은 패러다임이고 디자인의 예술성, 가구의 조각성과 회화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더구나 탈장르의 개념이나 서로 다른 장르나 매체가 섞이는 혼성적 경향은 이제 국제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장르, 국가, 인종구분은 물론 재료적 구분 자체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세상에 와 있다. 우리도 공예의 재료적 개념을 벗어나 기능적·사회적 효용성으로 그 카테고리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때가 왔다. 금속공예도 장신구, 용기, 오브제, 실내장식, 제작을 위한 모델링 등으로 구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도예나 목공예, 섬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공예가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하겠으나 국제적인 조류를 읽고 이것에 대응한 자신의 행동철학을 세우는 일은 21세기 공예가들의 지향점이 아닌가 한다. 침체를 극복하고 도약을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는 일, 공예이론가를 배출하는 일, 교육자보다는 직업적인 공예가가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회. 이것이 곧 모호한 이중주를 넘어선 교향곡을 연주하는 길이며, 우리 사회의 싱싱하고 찬란한 공예의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우리가 잃었던 전통공예의 기술과 미학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접목함으로써 한국공예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 또한 국제화 시대 우리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사회·국가·공예인 모두가 21세기의 지평 속에서 공예개념 자체를 반성적으로 되돌아 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생활문화의 토대로서 그 올바른 좌표를 설정해 나갈 때만이, 세계 속의 한국의 모습은 오천 년 문화민족국가로서 새롭게 부상하게 될 것이다.
◎筆者 : 장동광/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