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큰 아버지
나는 대한민국에 친척이라고는 너의 큰아버지 문상봉 뿐이었다.
너의 큰아버지는 남파 간첩으로
27년간 수감상활을 하신 분이다.
우리가 귀국하기 몇년 전에 출옥하시어 전주의 어느 꽃집가게에
몸담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너의 큰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 했다. 그러나 너의 큰아버지가 만나지 않겠다고 하여
만날 수 없었다. 어느 날
신병철 목사님과 황필규 목사님께서 너희들을 데리고 큰아버지를 찾아갔었지. 그런데
형님은 너희들조차 만나 주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배신자라는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
내가 너들이 갈 적에 큰아버지가
입을 옷가지와 용돈 30만원을
보냈는데 그것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국 꽃집 가게에 놓고 왔다더라. 며칠이 지나서였다.
내 앞으로 소포가 하나 왔더라.
그 소포는 내가 너의 큰아버지한테
보냈던 바로 그 소포였다. 말할 줄 모르는 물건에도 너의 큰아버지는 계급의 낙인을 찍었다. 사람이 빨간 물이 들면 혈육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겠니.
어쩌겠니. 그게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닌 분단 조국의 아픔이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