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두 사람이 진보파나 보수파라는 용어로 지칭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벤담은 진보적 철학자이고 콜리지는 보수적 철학자이다.
벤담의 영향력은 진보적인 사람들의 정신에 주요한 영향을 미쳐왔고, 콜리지의 영향력은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 그러했다.
그들의 영향력에 의해 사상의 바다에 펴져나가기 시작한 두 동심원의 체계들이 이제야 서로 마주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저작은 각각 자신들 편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범하는 많은 실수와 잘못에 관한 비판적인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 저작의 주된 목적은, 벤담에게는 현존하는 이론들과 제도들에 있는 것과는 다른 진리들을 찾아내는 데 있고, 콜리지에게는 현존하는 이론과 제도 안에 있지만 무시되고 있는 진리들을 찾아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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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이 그의 저작을 통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저작에 의해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의 정신과 그들의 펜을 통해서, 그의 정신의 영향을 받은 세상과 보다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만일 조상의 지혜에 대한 미신이 파괴되었다면, 만일 대중들이 그들의 법과 제도의 많은 부분들이 지성과 미덕의 소산이 아니라 과거의 야만에 근대의 오염이 덧붙여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진다면, 만일 가장 어려운 혁신이 그것이 혁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이상 기피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제도가 그것이 이미 존 재하기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공중의 마음을 이런 혁명적인 생각에 익숙하게 한 사람들은 그것을 벤담의 학파로부터 배운 것이고 과거의 제도에 대한 공격은 대부분 벤담의 무기를 가지고 행해져 왔다.
사상가들 혹은 어떤 종류의 사상가들이 개혁운동의 선봉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직접적으로 혁명적인 운동을 제외한 모든 사회운동은 그런 운동을 원래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옛 의견과 새로운 의견을 가장 잘 절충시킬 줄 아는 사람들이 앞장서게 되는 것이다.
이론과 제도 양면에서 영국 개혁의 아버지는 벤담이다.
그는 그의 시대와 국가의 위대한 전복적인(Subversive), 대륙 철학자들의 용어를 따르자면 비 판적인(critical) 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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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를 부정적인 철학자라고 말하는 것, 즉 비논리적인 논변들을 논파하고, 궤변을 폭로하며, 모순과 부조리를 탐지하는 부정적인 철학자라고 말하는 것에 관해서도, 흄이 건드리지 않고 남겨둔 그를 위한 넓은 영역이 있었지만, 그가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업적을 이룬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실천적 오용의 영역이다.
이것이 벤담의 특별한 영역인데, 그는 그 의 모든 기질에 의해 이 영역에 끌렸고, 실천적인 영역
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전쟁을 수행했다.
그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었다.
그의 마음을 사변으로 이끈 것은 이런 실천적인 문제들, 그를 위해 선택된 직업, 법률가의 직업의 문제들이었다.
그 분야에서 특정한 실천적 악습이 그의 마음에 충격을 주었고, 그가 그런 악습으로부터 놀라서 뒷걸음질치자, 악습의 거대한 산이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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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벤담과 다른 부정적인 철학자들 사이에 진정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이런 저작들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깊은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들이 순전히 부정적인 사상가들인 데 반해 벤담은 긍정적인 사상가라는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철학자들은 실수를 공격했지만, 벤담은 그런 실수를 대체할 수 있는 진리를 생각하기 전까지는 그런 실수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양심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성격은 전적으로 분석적이었지만 그의 성격은 종합적이었다.
그들은 어떤 주제에 있어서 받아들여진 의견을 그들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 의견으로부터 나오는 논리적 함축들을 검토한 후에, 그것의 기초에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비판했다.
벤담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출발했는데, 그는 자신의 기초를 깊고 튼튼하게 구축하고, 그 위에 자신의 구조물을 건립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둘을 비교 하도록 했다.
그는 그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자신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만 모든 다른 해결책이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산출한 것은 오랜 동안 살아남지 못하고, 그것들이 폭로한 실수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며 이미 많은 부분 사라졌다.
그렇지만 벤담이 제시한 것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며, 그것이 비판한 모든 실수가 사라지더라도 남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는 자주 그의 실천적인 결론을 기각해야만 하지만, 그가 결론을 이끌어낸 사실과 관찰의 모음인 그의 전제들은, 철학적 재료의 한 부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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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가장 간략하게, 인류에 대한 위대한 지적인 시혜자 중 한 사람으로 벤담의 위치를 말하도록 요청받는다면, 즉 그가 누구인지, 누구가 아닌지, 그가 진리를 위해 어떤 종류의 봉사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말하도록 요청받는다면, 우리는 그가 위대한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철학에서 위대한 개혁자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철학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그것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학이 정체 상태에 있도록 만든 것을 철학에 제공했다.
이런 역할을 한 것은 그의 교설의 내용이 아니라 그런 교설에 이르게 된 그의 방법론이다.
그는 도덕과 정치에 과학의 이념에 본질적인 습관과 탐구의 방법론을 도입 했는데, 이런 것들의 부재가 이런 탐구 분야를 베이컨 이전의 물리학이 그랬던 것처럼 끝없는 논쟁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벤담이 한 것의 혁신과 가치를 이루는 것은 그의 견해가 아니라 그의 방법론이다.
비록 우리가 그의 견해 전체를 부정하더라도(사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많은 부분을 부정해야 하지만), 그의 방법론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벤담의 방법은 전체를 그 부분들로 분리하고, 추상들을 구체적인 것들(things)로 분해하며,
집합(classes)과 일반성(generalities)을 그것들을 구성하는 개별자들로 구별하고,
모든 질문을 해결하기 전에 그 질문들을 부분으로 나누어 처리하는 방법인데,
이 방법은 '구체적 분석의 방법(method of detail)’ 이라고 간략하게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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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모든 치밀한 사상가가 건전한 규칙이라고 생각했지만 벤담 이전에 누구도 그처럼 일관성 있게 적용한 적이 없는 규칙이다.
즉 실수는 일반화에 숨어 있다는 것, 즉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없다는 것, 즉 마음은 그 전체가 이루어지는 부분들을 살펴보고 목록으로 만들기 전에는 그 복잡한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 추상화는 그 자체 실재가 아니고, 사실들을 축약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 따라서 그런 것들을 다루는 유일한 실제적인 방법은 그것들을 (그것이 경험 혹은 의식에 관한 것이건) 사실들에까지 추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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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벤담의 독창성을 이루는 것은, 그리고 그를 도덕과 정치철학의 위대한 개혁자로 만드는 것은 인간 행위의 철학에 이런 구체적 분석의 방법 - 전체들이 부분으로 분해되기 전까지는 전체에 대해 추론하지 않고 추상들은 그것들이 구체적인 것으로 번역되기 전까지는 추론하지 않는 이런 실천 - 을 도입한 것이다.
그가 '완전한 분류의 방법'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보다 일반적인 방법의 한 가지인데,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모든 것을 이 방법에 귀속시키고 있다.
그의 방법론과 달리 그의 철학의 일반적인 내용은 새로운 것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일반적 효용이 도덕의 기초라는 이론, 즉 공리주의 이론을 어느 누군가에게 귀속시키려 하는 것 은 철학사나 일반적인 학문이나 문예, 그리고 벤담 자신의 저작에 대한 전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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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일 사고하는 사람은 이 외에도 그의 개인적인 사고의 방식에서 우연적인 특이성을 가진다. 한 인간의 삶에 특징을 주는 모든 환경은 그것과 함께 독특한 편향성을 가진다.
그는 어떤 것들은 쉽게 지각하지만 다른 것들을 놓치거나 잊어버린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관점으로부터 다른 것들이 지각될 수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만큼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은 없다.
인류의 일반적인 의견은 그들의 가장 선택적이고 가장 복잡한 사고를 제거한, 그리고 뒤틀림과 편향성으로부터 해방된 모든 마음의 결론들의 평균인 것이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의 특별한 관점이 대표되지만 아무의 관점도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압도하지 않는 것이다.
집단적인 마음은 표면 아래까지 관통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모든 표면을 본다.
그에 반해 깊이 있는 사상가들은 그들의 깊이 있음 때문에 종종 이런 모든 표면을 보지 못하는데,
사물을 어떤 국면에 한정해서 강렬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다른 국면들에 대해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따라서 벤담같이 자신보다 앞선 사람들의 실수와 당대의 사고의 부정확성을 가장 잘 찾아내는 사람, 개인적 판단의 자유를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이 모든 시대와 국가에서 인류의 의견들과 자기 자신의 사고와 가장 반대되는 사고방식의 철학자들의 사변을 연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지성의 약점을 보강할 필요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바로 거기에서 그는 그 자신에게 거절된 경험들을 찾을 것이다.
그가 보기는 하지만 반만 보는 진리의 나머지 것, 그가 실수라고 찾아냈지만, 사실은 실수 라기보다는 단지 과장된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만일 벤담처럼 진보된 탐구의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도구를 기다리는 풍부한 금광맥을 발견할 것이다.
명료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하게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는, 그에게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정할 때이다.
사실 그가 그런 것을 맞닥뜨릴 때,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안개를 제거하고 그 안개 속에 숨어 있는 모호한 형태의 윤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벤담의 다른 사상가들의 학파에 대한 경멸, 그 자신의 정신과 자신과 비슷한 정신에 의해서 제공되는 재료들로만 철학을 만들려는 결심이 철학자로서 결격 사유이다.
두 번째 결격 사유는 그의 정신이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대표로서는 포괄적인 면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가장 자연스럽고 강한 감정 중에서 그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고, 이런 공감 능력의 중요한 경험 중 많은 것들로부터 완전히 절연되어 있었다.
한 마음이 자기와 다른 마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인 상상력이 그에게는 결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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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런 제한들로 인해, 인간 본성에 대한 벤담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경험주의적이었는데, 그의 경험주의는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의 경험주의이다. 그는 내적인 경험도 외적인 경험도 없었다.
그의 삶의 조용하고 평탄한 기조와 그의 마음의 건강함이 양쪽 경험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는 풍요, 고난, 정열, 만족도 몰랐다.
그는 병이 초래하는 경험도 가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84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소년처럼 건강했다.
그는 실의도 마음의 무거움도 몰랐다.
그는 인생이 고통이며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워즈워드로부터 바이런, 괴테로부터 샤토브리앙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 천재들의 영혼의 소리(다이몬)이고, 이 시대의 즐겁거나 슬픈 지혜가 의존하는 자의식이 그에게는 일깨워지지 않았다.
인간 본성의 어느 만큼이나 그의 안에서 잠들어 있는지 그는 몰랐고, 우리도 알 수 없다.
그는 그 자신에게 가해지거나 그의 동료 인간들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들을 의식 하지 못했다.
다른 시대와 다른 나라로부터 그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단지 그런 시대나 나라가 사실
들을 얼마나 알았는지, 그리고 공리의 원리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다른 모든 대상을 공리
의 원리 안에 결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하는 단일한 기준에 의해서 평가했다.
벤담 자신은 영국사에서 [상상력과 창조적 능력이] 가장 빈약하고 황량한 세대에 태어났고, 그런 면에서 벤담의 세대보다 나은 세대가 출현했을 때 그는 이미 노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속된 눈이 볼 수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을 보지 못했고, 달리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정도 외에는 성격의 다양성을 보지 못했다.
인간 감정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그는 그런 감정들을 형성하는 영향력들에 대해서는 더욱 몰랐다. 마음이 그 자신에게 하는, 그리고 외부의 사물이 마음에 하는 보다 섬세한 작용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상당한 정도로 문명화된 세대에서 벤담보다, 인간이 실제로 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주체성(agencies)과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주체성에 대해, 더 제한된 개념을 가지고 모든 인간의 행동에 규칙을 제정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벤담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는 철학을 위해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인 동시에 엄청난 결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전제로부터 정확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이기 위해 충분히 정밀하고 구체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거의 모든 사람보다 탁월 했지만 인간 본성과 삶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개념은 그에게 아주 빈약한 전제만을 제공했다.
그런 사람에 의해 무엇이 성취 될지는, 즉 그렇게 재능있고 그렇게 결점 있는 사상가가 철학을 위해 무엇을 할지는 명백하다.
그는 치밀하고 정확한 논리를 가지고 절반의 진리로부터 나오는 결과를 끌어내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적용했는데, 이전에 그런 예가 없을 정도의 위대함과 정밀한 스케일로 그렇게 했다.
이것이 아마도 후세가 판단할 벤담의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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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이 인정하지 않은 진리들, 벤담의 철학이 설명하지 않고 있는 진리들은 많고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그런 진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진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진리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에게 남겨진 상대적으로 쉬운 과업은 그런 진리들과 벤담의 진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벤담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반쪽의 진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벤담이 인정한 반쪽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벤담이 범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것도 벤담의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여지가 없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외눈만을 가진 사람의 외눈이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즉 통찰력 있는 눈일 때, 만일 그가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하면 그렇게 날카롭게 보지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한 연구를 집중해서 할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외눈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훨씬 더 수용적일 수 있다.
거의 모든 독창적이고 놀랄 만한 사변의 풍부한 동맥은 체계적인 절반의 진리를 보는 사상가들에 의해 열렸다.
그러나 이런 절반이 진리인 새로운 사상들이 다른 절반의 것들을 몰아냈는지, 아니면 평화롭게 그 위에 부가되었는지는 이 반쪽의 사상가들이 간 길을 포괄적인 사상가들이 따랐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과 인간 삶의 영역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거나 그것들이 나아갈 수 있는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에 대 한 우리의 앎은 불완전하다.
모든 온전한 진리는 모든 부분적인 진리의 관점을 결합하는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가능하 지 않고, 모든 각각의 부분적인 진리 각각이 할 수 있는 것들 전체가 완전히 보여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벤담의 부분적 진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을 검토(review)하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런 검토가 짧고 일반적이겠지만 시도할 필요가 있다.
어느 철학자와 관련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인간 삶에 대한 그의 이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철학자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인간 삶에 대해 어떤 이론을 견지하건 그런 이론이 주로 잠재적으로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이론이 무엇인지를 지적해 주면, 그 저자들에게는 그것이 계시처럼 다가온다.
사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론의 다른 부분들을 자신이 가진 인간 삶에 대한 이론에 맞게 형성한다.
그러나 벤담은 언제나 그 자신의 전제를 알았으며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알게 했다.
그의 실천적 결론의 이론적 기초를 추측에 맡겨두는 것은 그의 습관이 아니었다.
위대한 사상가 중에서 벤담만큼 확실성을 가지고 인간의 삶에 대해 정확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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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은 벤담이 인정한 유일한 사심 없이 무관심한 동기인데, 그러나 그는 동정심이 아주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덕적인 행동을 보장하는 동기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 사랑이 제3자에게 해를 끼치기 쉬우며, 따라서 다른 모든 감정과 같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벤담은 잘 알고 있었다.
인류 일반에 영향을 미치는 동기로 간주되는 일반적인 인류애의 동기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그는 만일 그런 동기가 의무의 감정과 분리된다면, 모든 감정 중 가장 약하고 가장 일관되지 않는 감정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류가 선을 행하도록 이끌 수 있는 동기로는 오직 개인적 이익이라는 동기만이 남는다.
따라서 벤담에 의하면 세계란 개인들이 자신들의 각각의 이익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곳인데, 이들이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이상으로 서로 충돌하는 것[상호 파괴적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 종교, 여론이라는 세 가지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희망과 공포를 이용해야 한다.
그가 인간 행동에 제한을 가하는 이런 세 가지 힘을 제재(sancion)라고 명명했는데, 정치적 제재는 법률에 의한 보상과 처벌에 의해 작동하고, 종교적 제재는 우주의 주재자로부터 예상되는 보상과 처벌에 의해 작동되고, 그가 대중적 제재 혹은 도덕적 제재라고 부르는 제재는 다른 사람들 의 호의나 불호의를 통해 생겨나는 고통과 쾌락을 통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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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이 성취한 구체적인 것들을 우리가 논의할 수는 없다.
그것에 관한 요약을 만들려고 하면 수백 쪽의 글이 필요함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평가를 몇 개의 항목으로 요약해 보겠다.
첫째, 그는 법철학 영역에서 신비주의를 추방했고, 법을 실천적인 관점에서 어떤 결정적이고 정확한 목표에 대한 수단으로 보는 예를 확립했다.
둘째, 그는 법 일반과 법의 체계의 관념, 그리고 그것들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관념들에 붙어 있는 혼란스러움과 모호함을 제거했다.
셋째, 그는 법률들을 글로 확정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법전으로 만드는 성문화의 필요성과 실천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런데 벤담이 주장하는 성문화는 나폴레옹 법전같이 단 하나의 정의도 없어서 기술 전문 용어의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 이전의 선례들을 계속적으로 참고해야만 하는 법전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법전 그 자체에 해석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보완과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을 항구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포함한 법전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그런 법전이 어떤 부분들로 구성되는지, 그 부분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구분과 분류를 통해 명명법과 배열이 어떻게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을 제시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하지 않고 남겨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하기에 상대적으로 쉽도록 해놓았다.
넷째, 그는 민법이 제공되어야 할 사회의 요구와 그런 제공이 적절한지 시험되어야 할 인간 본성의 원칙들에 대해 체계적인 견해를 취했다.
이런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나라의 정신적인 이익이 고려되어야 한다면 결점이 있는 것이지만, 어떤 나라의 물질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의 많은 부분을 위해서는 탁월한 것이다.
다섯 번째, 처벌의 주제는 벤담 이전에도 상당한 정도로 개선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벤담은 사법부의 설립 절차와 증거의 절차를 포함하는 사법적 절차가 법철학의 어떤 다른 분야보다 더 엉망인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 거의 완전한 상태에 이르도록 개선했다.
그는 그것의 모든 원칙을 확립하고 실천적인 배열에 관한 제안에 있어서도 거의 더 이상 할 것이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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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관련해서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국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복종해야 하는 권위는 어떤 것인가?
둘째, 국민들이 그런 권위에 복종하도록 어떻게 유도될 수 있는가?
이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 국민에 의해 이미 이뤄진 문명과 문화의 정도 및 종류, 그리고 그들이 이런 것들을 더 원하는지에 따라 무한히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질문은 이런 권위의 오용이 어떤 방식으로 견제되어야 하는지인데, 이에 대한 답변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 번째 질문만이 벤담이 심각하게 고려한 것이며, 그는 그것이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책임인가 하면, 그들의 명백하고 인정할 수 있는 이익이 그 목적인 좋은 통치
와 일치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다음에 물어야 할 것은 국민의 어떤 부분에서 그들의 이익과 좋은 통치의 동일성, 즉 그들의 이익 과 전체 이익의 동일성이 찾아질 수 있을까이다.
벤담은 이런 사람들이 다름 아닌 수적인 다수(numerical majority)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공동체보다 작은 어떤 부분의 이익도, 심지어 수적인 다수의 이익조차도, 그들의 이익이 모든 때와 모든 국면에서 모든 사람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의제 정부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력은 사실상 다수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세 가지 질문 중에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국민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권위에 복종해야 할까?
만일 이에 대한 답변이 국민 중 다수의 지배의 권위라고 한다면, 벤담의 체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만일 이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벤담의 '헌법전'은 경탄할 만하다.
한 번에 포괄적인 원칙을 포착하고 구체적이고 상세한 부분을 구상해 내는 벤담의 비상한 능력이 통치자를 수적 다수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단을, 수적 다수로 하여금 그런 통제를 끊임없이 행사하기 위한 수단을, 수적 다수의 의지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모든 바람직한 재능을 가진 공무원을 공급하는 수단들을 고안하는 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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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원리는 근대 유럽의 귀족 정부에, 즉 소수 귀족의 이익과 편안함을 위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에 기초한 정부에 대한 반작용의 시기에는 가장 고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유럽의 개혁자들은 수적 다수가 어디에서나 정의롭지 않게 압제당하고, 짓밟히고, 그보다 조금 나은 경우라 하더라도 정부에 의해 무시되는데도 불구하고, 수적 다수는 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바로잡고, 그들의 정신적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지 못하고, 통치 계급의 아주 작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자신들에게 세금이 부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충분한 힘을 어디에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는 데에 익숙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보고, 다른 여러 수단 중에서 보다 많은 정치적 권력을 수적 다수에게 줌으로써 이런 것들을 끝장내는 것이 바로 급진주의인 것이다.
이 시기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을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벤담의 「정부론」 같은 이론에 찬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한 형태의 나쁜 정부로부터 다른 형태의 나쁜 정부로 가는 것이 인류의 일상적인 숙명이었지만, 철학자들은 한 종류의 중요한 진리를 다른 종류의 진리를 위해 희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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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에는 어떤 최고의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수적 다수가 그런 권력이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으로 보아서 옳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것이 자체로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수적 다수에 기초 하지 않는 다른 권력보다 덜 부정의하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사회의 제도들은 어떤 형태로는 수적 다수의 의지에 대한 영속적이고 늘 준비된 반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이런 것이 수적 다수의 편파적 견해를 교정할 수 있는 수단이며,
생각의 자유와 성격의 개인성을 위한 피난처이다.
오랜 동안 진보를 계속하고 있거나, 지속적으로 위대한 모든 나라는 그 지배적 권력이 무엇이건, 그 지배적 권력에 대한 조직된 반대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귀족에 반대한 평민들, 왕에 반대한 성직자들, 성직자에 반대한 자유 사상가들, 귀족들에 반대한 왕, 왕과 귀족에 반대한 평민들이 그것이다.
역사상 거의 모든 위대한 사람 중 대부분은 그런 반대의 일부를 형성해 왔다.
그런 다툼이 계속되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여러 개의 경합하는 원리 중에서 하나의 원리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경쟁이 옛날의 경쟁을 대신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사회는 중국 같은 정체성으로 경화되거나 해체되게 된다.
지배적 권력을 비판적으로 보는 모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들이, 그런 요소들을 말살하고자 하는 지배 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저항의 중심이, 지배 권력이 계서제 사회이거나 귀족 사회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적 다수의 의견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 곳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저항의 중심으로의 거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인류는 반드시 퇴화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근면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이 또 다른 중국으로 전락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런 저항의 중심이 점차적으로 출현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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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철학에 대해 벤담이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자신들이 사는 사회의 의무와 덕으로 만드는 공통된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인데, 그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이익으로부터 나온 편견 (interest begotten prejudice)” 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이 개념이 벤담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경향성을 좇을 때 자신들이 그런 경향성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수단들은 모든 도덕가의 관심을 끌어왔고, 벤담보다 인간 감정의 깊이와 뒤틀림을 잘 알고 있던 종교적 저술가들이 벤담보다 더 깊이 이런 것들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벤담이 명백히 보여준 것은 계급 이익의 형태로 나타난 이기적 이익과, 그런 이익에 기초한 계급 도덕이다.
서로 공통된 이익을 가지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공통된 이익을 그들이 사는 사회의 덕의 기준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경향으로부터 역사에서 종종나오는 영웅적인 사심없음과 가장 추악한 계급 이기심의 결합이 나온다.
이것이 벤담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고, 그가 역사의 해명에 기여한 거의 유일한 것이다. 이 개념이 설명하는 것 외에 역사의 다 른 많은 것들은 그에게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 개념을 엘베시우스로부터 얻었는데, 엘베시우스의 정신에 관해서는 그 개념에 대한 여전히 적절하고 가장 정확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엘베시우스의 이 개념과 다른 위대한 개념, 즉 환경이 국민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프랑스 형이상학자들 대부분이 단지 문학사에서만 존재하는 데 반해, 그를 루소와 나란히 여전히 중요한 철학자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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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좁은 의미에서의 시, 즉 단어들을 사용하는 예술인 시에 대해 그는 조금도 호의를 가지지 않았다.
그는 단어들이 정확한 논리적 진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의 적절한 임무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저술의 어느 곳에서 그는 “산출되는 행복의 양이 동일하다면 푸시핀 놀이도 시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가장 가 치 있게 여기고 승배하는 것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견해를 더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말은 "모든 시는 잘못된 재현 (misrepresentation)”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시라는 것은 그 효과를 위해 과장하는 것이라고, 즉 한 사물에 대한 어떤 한 견해를 매우 열정적으로 주장하며 그에 대한 모든 제한과 한정을 억압함으로써 효과를 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벤담의 이런 성격의 특징은 칼라일이 "편협한 인간의 온전성"이라 고 부른 것의 예인 것으로 우리에게는 보인다.
벤담은 그 자신의 작은 영역 내에서 행복한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은 본질적으로 부족한 인간 지성의 법칙, 한 번에 한 사물만을 잘 볼 수 있다는 그런 법칙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 지성의 불완전함을 모두 볼 수 있고 그런 것들을 금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