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오늘이 나는 마음에 드네 외 1편
진 란
우기의 빗줄기는 무섭게
지붕이 무너지듯 쏟아 붓네
내일을 기다리는 동안 의자를 주문하고
굵은 빨대로 수박 샤베트를 빨다가
당신은 입안이 데었다고 펄쩍 뛰고
나는 빨대를 뽑아내면서 맵다고 했네
에디트 피아프의 빠담빠담과 섞여서
어두운 조명을 자주 들여다보았는데
한참 후에도 원래 저런 조명이 있었나 묻고
와인은 여자의 목덜미를 빨갛게 물들이고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당신의 등 뒤로 댓잎들이 빗방울을 껴안고
탱고를 추는 푸르스름한 옷소매를 보았는데
쏟아지는 것들이 자주 흔들리고 어지러웠고
어쩐지 와인이 짜다고 말하는 고양이 같은,
그 웃음 속으로 주름이 수묵화처럼 번졌다
숨은 고양이는 어디에도 있고
고양이가 처음도 아니었는데
그런 오늘이 나는 마음에 드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제목
이미 11월의 빅립스
시월이라고 부르면 저절로 가을이에요
그쯤에서 늘 내 오른 팔이 길어지고
당신을 향하여 자라나는 것이 있어요
거짓말처럼 한 뼘씩 늘었다가 줄었다가
사라졌다가 이울다가 울다가 그런 거지요
헛꽃 같은 달력을 넘기면
삶은 잰걸음으로 곤달걀이 되고요
그러니 가제트의 팔처럼 늘어진
독설을 헐어서 그 가슴에 담지 말기로 해요
울고 싶은 건 등성이에 선 11월뿐이에요
비탈에서도 비틀어지지 않고 견디어야 하니까요
몰래 온 첫눈에 물렸어도
향기를 놓지 않는 국화 향기는
길게 자라난 내 오른 팔로 가득 베어 물께요
진란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2002년 계간 주변인과 詩로 작품 활동.
시집 혼자 노는 숲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외 공저 다수.
현재 계간 P.S. 편집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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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늘이 나는 마음에 드네 외 1편 / 진 란
문학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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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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