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에 여행후기를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바쁜 일들과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중단상태로 몇 달이 지나버렸네요.
죄송합니다.ㅠㅠ 완결을 하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있어 빨리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자세하지 못할 수 있어요.ㅜㅜ
(5에 이어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오쿠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좀 남아 좀 전에 봐두었던 해도곶 아래 해안을 찾아간다.
해도곶 입구 직전에 왼쪽으로 내려가는데 뭔가 어두운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이 있어서 보니 일본식 묘지들이 수십채 도열해 있다.
납골당 비슷하게 생겼는데 좀 더 칙칙한 느낌이 강하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공간이 아무렇치도 않게 도로변에 놓여 있는 것이 생경한 느낌이다.
해도곶 아래 해안은 마치 태고의 원시해안을 보는 것 같다.
재멋대로 깍인 돌기둥이 바다에 불쑥불쑥 솟아있고 짙은 회색 바다가 조용히 외면하고 있다. 산호가루 해변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어구만 아니었다면 수천년동안 인간이라고는 얼씬도 안한 것 처럼 생각된다.
산호해변을 걸으며 특이한 문양의 조그만 소라껍대기를 주워본다.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린 손바닥 크기의 산호조각도 하나 챙겼다.
제주에 살다보니 집에서 향을 잘 피우는데 향꽂이로 하면 딱이겠다 싶어서.
(다녀와서 향꽂이로 잘 쓰고있다^^)
찾는 이 한명도 없는 해안을 30분 정도 걷다가 오쿠마을의 미야기민숙으로 돌아간다.
평소에 느끼던 것이 아닌 이질적이지만 맛있는 음식냄세가 풍겨나온다.
식당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화덕이 있는 방으로 가니 말그대로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대략 10종류의 음식이 커다란 접시에 탐스럽게 놓여있다. 급격히 허기가 밀려온다. 야채와 함께 요리한 족발, 닭요리, 꽃게장, 기타 해산물과 두부요리 등등...
가방에서 아직 많이 남은 고구마샤케와 중간에 산 맥주들을 들고 나와 자리를 잡는다.
나 말고도 손님들이 대여섯명 있는데 전부 일본인이다.
민숙에 도착해서 방명록을 보니 거진 본토 사람들이고 한글이나 한국에서 온 손님은 찾지 못했었다.
여섯살 쯤 되보이는 아들은 동반한 도쿄에서 온 젊은 가족, 본토 어디에서 신혼여행 온 커플, 민숙주인장 친구이면서 자주 여행와 머무른다는 50대 후반 아저씨 이런 구성이다.
우리들은 각자 가지고 온 술을 꺼내들고 저녁을 먹는다. 모든 음식이 입에 잘 맞고 맛있다. 내가 혹시 일본에서 살 체질인가...
젊은 부부랑 커플을 보니 샤케를 마시는 방식이 있다. 커피포트에 물을 팔팔 끓여 샤케 원액(?)을 1/5 정도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희석해서 마신다. 저게 일본(혹은 오키나와) 방식인가...
나도 따라 해보니 부드럽고 괜찮다. 어젯밤에 뭣도 모르고 25도 짜리 고구마술을 소주 마시듯 했나보다...
맛난 저녁에 싸한 샤케를 마시며 때로 맥주도 곁들이며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일본말을 전혀 못하지만 큰 지장은 없다. 대략 영어(단어 위주지만)가 다 통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한국말을 곧잘 알아듣는다.
일본사람들은 대화할 때 리액션이 강한 듯하다. 놀랍다거나 특이한 얘기를 들으면 예외없이 고음의 반응이 이어진다.
대략 이런 발음. '이~~~~~?' '에~~~~~~?' '우으~~~~~~~' 등등
생소한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둘어앉아 건배를 하고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고요한 민숙에 밤이 깊어간다.
술에 살짝 취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게 방에 들어가 잔다.
걸죽한 소바로 아침까지 잘 먹고 밤에 친해졌던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민숙을 나선다.
여러모로 인상에 남는 하룻밤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년에 한번은 올 생각인데 올 때마다 여기서 하룻밤 묵을 거 같다.
어제처럼 한적한 북단의 58번국도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중북부 서쪽에 동그렇게 튀어나와 있는 모토부반도로 간다.
오전에 추라우리 수족관을 보고(관광객 모드로 그냥 볼만한 정도) 인근의 바닷가로 내려가본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그냥 유명관광공원인데 그 근처에 있는 곳들이 정말 멋진다.
수족관 바로위 쪽의 '비세 후쿠기' 가로수길과 그 앞의 에메랄드 비치.
하염없이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에 솟아 있는 예쁜 숲길.
가로수길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준다. 그냥 걸어도 좋다.
(여행에 있어 약간의 모험성을 가미하고 다니다가 예쁜 민박을 발견하면 거기에서 묵는 돌발성 이벤트 같은 걸 기대하고)
셋째날은 숙박예약을 안하고 와서 다니면서 알아봐야 한다.
어젯밤 미야기에서 알게된 신혼부부가 추천한 민박이 가로수길 근처라 전화번호를 찍고 가본다.
바다에 가까운 마을 한켠에 있는 고풍스러운 집이다. 숙소스럽지는 않고 그냥 민가처럼 보인다.
분위기는 마음에 들어 요금을 물어보니 1인당 대략 10만원 정도다. 너무 비싼 듯 하여 물어보니 끝내주는 스시가 저녁으로 나온단다. 마음이 동하긴 하였지만 시간도 이르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 일단 보류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거기서 잘 걸 하고 후회가 된다.)
모토부반도 아래 쪽 어디 인터넷 맛집을 찾아가 '아구생강구이덮밥'을 먹는다.
아구는 흑돼지인데(제주도?ㅎㅎ) 양념돼지고기구이가 밥과 같이 나온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식당도 깔끔하고 꽤 괜찮은 맛이었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 좀 복잡했다.
세소코대교를 지나 세소코섬도 들어가보고(쓸쓸하고 한적한 느낌), 모토부반도 서쪽 해안도로를 슬슬 돌아본다.
날씨가 좋아서 푸르디푸른바다가 남국처럼 생각된다. 광활하고 멋진 경치가 끝없이 이어진다.
문제가 생겼다.
호텔을 몇군데 가봤는데 방이 없다. 평일이고 비수기라 구하기 어렵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그저 나혼자만의 착각이었나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물어물어 민박집을 찾아도 될 거 같은데 문제는 현금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것.
오키나와는 내 예상과는 달리 민박과 식당, 휴게소 등은 거의 현금만 받는다. 멀쩡하고 커다란 식당도 카드 안됨.
그래서 민박을 찾으려면 은행이나 우체국가서 현금을 찾아야하는데 좀 지치고 귀찮다.
호텔을 알아보며 내려오다가 모토부반도 아래 쪽 어느 소도시에서 가서 조그만 호텔이 눈에 띄어 들어가보니 역시 만실.
엉뚱한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 나는 충동적으로 그 옆에 있는 통신사 가게(우리나라 휴대폰 대리점과 같은)로 들어가 괜히 물을 한 잔 얻어 마시고 미적거린다.
단정한 복장에 친절한 표정의 지점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도와줄 일 없냐고 묻는다. 방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 폰으로 여기저기 한참을 전화하더니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준다.
뻔뻔하고도 과장되게 고맙다고 말하고 찾아가보니 모텔인듯 호텔인 듯 생긴 곳인데 뭔가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이 든다.
아마도 출장온 사무직들이 묵는 레지던시 비슷한 곳인가보다.
요금도 꽤 비싸고(방 하나에 8만원 정도) 딱히 묵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아 그냥 나온다.
대리점 지점장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방은 어찌 되겠지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여행 오기전 찾아둔 무슨 야구장 근처에 있는 값싼 스시집.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찾아가보니 오늘은 회 재료가 없단다. 헐...
모토부반도는 나랑 궁합이 잘 안 맞나보다... 라는 생각이.
살짝 지친 나는 첫째날 잔 아메리칸 빌리지 근처 호텔에 전화를 하고 방이 있다는 대답을 듣고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오키나와도 제주도 처럼 외곽에는 가로들이나 불빛이 많지 않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타고 아메리칸빌리지로 내려가니 하루 묵었다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편의점에서 다양한 컵라면 중 하나를 골라들고 숙소로 올라가니 몸이 슬슬 풀린다.
컵라면으로는 포만감이 생기자 않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동네 구경을 나간다.
선술집과 호프집을 섞어 놓은 것 처럼 생긴 집에 들어가보니 스시집이다.
일인용 스시(여덟점짜리)과 샤케 한 도꾸리를 시켜 먹는다.
비로소 느껴지는 낯선 도시에서의 노스텔지어...ㅎㅎ
이제 돌아와야 할 날이 밝았다.
아무리봐도 4일은 너무 짧다.
마지막날 일정을 해보니 공항이 가까운 곳으로 와서 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하에 있는 슈리성을 구경간다.
유명관광지이고 성지순례처럼 여행객들이 가는 곳이지만 역시 슈리성 같은 곳은 들러봐야 한다.
일본에 합병되기 전 독립국가 였던 류큐왕국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확실한 장소.
류큐왕이 앉았던 옥좌가 인상적이다.
슈리성 근처 식당에서 점심으로 두부볶음을 먹고 국제거리를 구경한다.
나하시는 교통이 복잡하여 주차가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 첫날이나 마지막 날은 차를 렌트하지 말고 모노레일 같은 걸로 다니는 게 좋다.
국제거리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곳인데 너무 커다란 곳은 살짝 구경만하고 뒷골목으로 들어가보니 예쁜 소품 가게들이 있다.
기념품 몇가지를 샀다. 지인들에게 나눠 줄.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키나와 바다를 다시 본다.
일년에 한번씩은 오리라...
인천공항에 저녁에 내려 바삐 김포공항으로 건너가 제주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집으로 간다...
오키나와여 안녕... 내년에 다시 만날 때까지...
#후기의 후기
- 뒷부분을 너무 대충 쓴 거 같아 죄송합니다.ㅜㅜ
- 여행 가기 전에 책을 두 권 정도는 읽고 가세요.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은 너무 단편적인 것들이 많아서 깊이있는 정보를 얻으려면 책이 가장 좋아요.
- 가급적 현금(엔화)을 넉넉히 가지고 가세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인당 5만엔 정도는 있어야 함)
- 가셔서 일정이 꼬이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당황하지 마시고 와이파이를 잘 이용하면 거의 답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가서 숙소를 찾는다하면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보면 그 지역의 전체 숙박시설이 나온 리플렛이 비치되어 있어요.
- 출발 전 공항에 세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여유가 있어요.
- 렌터카 운전할 때 전반적으로 천천히 하시고 왼쪽으로 붙어 가는 걸 주의 하세요
- 다음 글에 사진만 올려볼게요.
- 저는 일년에 한번씩은 갈 생각인데 제가 제주도 가이드라 내년(16년 2월 경)에는 동반자를 몇 명 모아서 가 볼 생각입니다.혹시 동행하고 싶은 분 있으시면 11월~12월 경에 제 블로그에 공지할 예정이니 참고 하시고 신청하세요^^
이상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5F8505584E45026)
첫댓글 여건만되면 함께 가고 싶네요^^
거의 10년전에 오키나와엘 다녀왔는데 여행기를 읽으니 어제일처럼 생각납니다 ^^
일본은 소주(고구마, 보리, 쌀 등의 증류주)를 물에 많이 타 먹습니다.
차가운 물에 타면 미즈와리, 따듯한 물에 타면 오유와리라고 합니다. 세게 먹을 때는 로크로(얼음만 넣고) 먹구요...
일본의 바에서는 위스키 키핑하듯 니혼슈(발효주)나 소주(증류주)를 키핑해놓고 마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희석하는 자기만의 비율도 있고요^^
...덕분에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여행기 잘 읽었습니당~ ^ㅇ^
잘 읽었어요. 기회되면 가고 싶으네요.
참, 잘 지내시지요?^^
북쪽 늪지대 여행도 하셨나요? 그 곳이 참 궁금~
넘 맛있는 국제거리의 수제 과일아이스크림 ..
'후쿠슈엔'~ 중국식 공원은 명품예술공원 ~
내년엔 그 곳도 꼭 가보세요~^^
일본 북해도도 참 좋은데 오끼나와는 기회되면 가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