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그 나라는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되시는 나라일
것입니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현현하심은, 이 땅 가운데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현실은 바로 요한계시록22:3-4에 기록된 약속입니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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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것이요
(계22:3-4)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의 왕 되시고 우리는
그의 온전한 백성이 될 것인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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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약속이고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그분께서 우리를 아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을 알게 된다는 인류 최고의 약속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최후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그분을
그만큼의 레벨로 사랑하게 될 것이고 아끼고 경외하고 경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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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계21:22에서 다소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습니다." 이어서 기록하기를 "그 이유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바로 그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 나라 전체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가득할 것입니다. 마치 물이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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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음 같이 말입니다. '그 성에는 해와 달도 필요 없었습니다(계21:23)"라고
증언하는데 해와 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이 되고 어린 양이 그
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가득하고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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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신 통치가 온전히 임하는 세상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의 영원한
왕 되시는 나라가 바로 최후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서 이 나라의 소망을 모른 채 무지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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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라가 도래하고 있는데 우리가 구하고 있는 기도의 얄팍함을 보면
얼마나 창피합니까? 그렇다면 그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혹시 지루하게 되지 않을까? 할렐루야 성가대에 가입해서 성가대복을 입고
우리는 매일 찬양하게 될 것인가? 성가대에 가입하게 될 것인가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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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그분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배에 관한 정의는 악보를 펼치고 목소리로 노래하는 예배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우리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방법은 이 땅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창세기1장은 증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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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시고 그들에게 주신 삶을 누리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
하며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다시 말해 인류를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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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신 처음 계획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되 '인간을 통해
다스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다스린다는 것은 군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고 즐기고 그것에 굴복당하지 낳고 돌보는 것
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은 죄로 인해 우리 가운데서 망가져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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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현현하실 때, 우리에게 약속 된 비전이 바로 그 '소명
의 회복'이 아닙니까? 요한계시록은 선언하지요. "일찍이 죽임을 당하 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왕 노릇
하리로다(계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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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이 땅 가운데서 영원히 다스리는 '통치' 그것이 최후의 하나님 나라
에서 성도가 영원토록 하게 될 기쁨의 일이자 소명이자 예배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나라에서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영원한
생명과 그의 지으신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즐기되 그것에 굴복당하지 않고
그것을 돌보는 것 그런 하나님 나라 적 통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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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기의 삶이 안식이라면 최후 하나님 나라의 삶은 통치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방법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를 통해 그 나라에서
온전하게 될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