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삼산리종점-녹동서원-청산-최정산-주암산-가창댐
ㅇ 2018년5월26일(토) 나홀로
ㅇ 대명동 원룸 숙소에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좀늦게 나와 405번종점에 도착하니
09시가 넘어 햇살이 따근따근해진다....녹동서원가는 버스(가창2)를 기다릴까?
약2km 걸어가자.....
ㅇ 삼산리 405번 버스종점
WOODEN HOUSE 가창로그빌
2017년 12월 대바우봉에서 내려다 본 삼산지와 WOODEN HOUSE
우미산 자전거 하이킹.....
♧ 녹동서원
김충선장군의 위패를 봉안하여 춘추로 재향하는 녹동서원은 충절보국의 삶을 산 김충선 장군의 위업을 기려 영조말년 부터 삼도유림이 한 뜻으로 합소하고 정조13년 (1789년)에 다시 유림들 이 공의를 모아 간하여 정조 18년(1794년)준공 봉안 하였으나 고종원년(1864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패령으로 훼철 되었다. 그 후 고종 22년(1885년)에 영남유림과 사성김해김씨문중 이 합심하여 재건 하였으며 ,1971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녹동서원에는 鹿洞祠, 崇義當 및 向陽門, 장군의 이력과 공훈등이 세긴 遺跡碑, 와 神道 碑 가 있다.
♧ 忠節館
후손과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 그리고 대구시의 후원금 등 으로 건립 되어 여기에는 임진란때 사용하였던 조총과 모하당의 유품,유물, 등과 한.일 양국의 역사,문화,임진란 관계 전문도서 등이 전시되어있다. 이 관은 한.일간의 교류협력의 장으로 활용코자1998년 6월에 개관 되었다.
이외에도 신도비가 1992년에 임진란 400주년 을 기념 하여 세워졌다.
(자료; 대구광역시 녹동서원 안내지 에서)
김충선[金忠善] 사야가[沙也加, 沙也可] 1571년(선조4) 1월 3일 일본출생
일본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1592년에 처음으로 조선이라는 땅을 밟게 되었다. 가등청정,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의 선봉장으로 3,000명의 병사를 통솔하며 내침했다. 하지만 사야가는 며칠 만에 조선의 장수로써 일본과 싸우고 있었다.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항복하여 귀순하고 순찰사 '김수' 등을 따라서 경주, 울산 등지에서 적군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사야가는 적진의 선봉장이었기 때문에 적의 동향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전공을 높이 사 가선대부(嘉善大夫) 벼슬을 내렸다. 1593년 그의 사야가의 뛰어난 전공을 인정한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겸 등의 주청으로 성명을 하사받게 되는데,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 김해 김 씨로 사성하였다고 한다. 이름은 충성하고 어진 마음 '충선(忠善)' 그래서 그는 조선의 장수 '김충선(金忠善)'이 되었다. 그리고 김충선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른다.
가창2 버스가 지나간다..
우측산길로 산행시작
김충선 장군 묘소
남지장사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우록마을 너머 비슬산 마루금 조화봉
최정산을 향하여...
청산에서 back 하여 최정산 목장으로...
낙엽송 솔방울...
비슬지맥 헐티재 갈림길
최정산 목장
비슬산 조화봉 방면
늦게 핀 이팝나무 꽃
벚나무 겨우살이
社稷壇
최정산 헬기장
스틱셀카 인증샷
부대입구에서 가창저수지 방향으로....
조망대에서 바라본 청산 - 최정산 목장방면
팔조령 방면 청도군
대덕산---앞산 ---산성산 ----
주암산(846m) 정상
대구시내 신천
뒤돌아본 최정산
가창저수지
광덕사
가창댐
가창댐 입구 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