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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9.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유백선 목사
히브리서 3: 1- 4
예수비전교회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한글비석로 24라길 76-5
(상계5동 136-55) 상담 :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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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비전교회는 매주 화요일(오전 11:30~오후 1:30)에 “사랑의 국수잔치”를 열어 이웃 여러분들을 초대하여 섬기려고 합니다. 오셔서 맛있게 드시고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시기를 소망하며 초청합니다. 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http://cafe.daum.net/jesusvision91 , http://cafe.daum.net/boram9191
아시아권역에서 인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된 때가 2,000년 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의심이 많았던 도마(AD 52-72)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여 7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마드라스 시내에 성 도마역이 있는데,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마의 언덕’이란 작은 산에서 제자 도마가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복음이 왜 인도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지 못했을까요? 인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 통계를 보면, 힌두교가 80%, 이슬람교가 11%, 시크교가 1%, 불교의 발상지인데도 불교가 0.7%입니다. 기독교는 1.5%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와 카스트제도의 영향을 받아서 영적인 상태가 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영향을 받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힌두교도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선교센터의 유치원에서 일하는 교사들도 힌두교 신에게 예배드리는 표시인 빨간 점, 흙점을 이마에 찍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서도 대문 앞에서 이상한 문양을 그리면서 복을 기원합니다. 이런 환경들이 인도 사람들의 마음 밭에 우상문화의 돌들을 많이 만들어서 믿음이 잘 성장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해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글자를 알지 못해서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해서 취업도 어렵고, 자기 종족의 언어밖에 모릅니다. 게다가 방언들이 1500여종이 넘어서 자기 종족의 언어만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언어가 달라서 복음을 듣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믿는데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마디의 말로 상대방의 호감을 얻고, 작은 행동(제스처)으로 기분을 좋게 한다면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올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좋은 인상을 주었는가?’ 좋은 인상을 주고, 호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보다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호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호감을 갖고 있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리더는 사람의 마음에 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같은 말도 듣기 좋게 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나는 함께 말하고 싶은 사람입니까? 생동감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입니까? 같은 언어(말)를 사용하는데 왜 예수님을 믿기가 어려울까요? 같은 말로 같은 자리에서 복음을 듣는데 왜 믿음의 편차가 심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실천(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믿고 확신하는 다르기 때문입니다.(딤후 3:14) 다 같은 말씀을 듣는데 믿음의 성숙도가 차이가 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한 대로 삶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는 송년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우리 다 함께 따라 합시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카타노에사테/κατανοησατε/katanoesate)”는 말은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다, 숙고하다, 발견하다, 지각하다, 이해하다, 시선이나 정신을 집중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삽니다. 예수님과 동행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 동행하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면 실망하고, 슬픈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몰랐던 글로바와 다른 제자가 실망해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동행하며 말씀하시는데도 눈이 가려져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너희가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영안이 닫혀 있는 사람은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삽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다.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 우리는 이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는데, 어떤 여자들이 무덤에 갔다가 예수의 시체를 보지 못하고 와서 예수가 살아나셨다고 하는 천사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의 시체가 없다는 것은 살아 나셨다는 증거인데,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했던 다른 제자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예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하실 때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느꼈습니다.(눅 24:32)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느끼면 주의 영이 내 안에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자기 사명을 발견하고, 자기 인생의 목적을 분명하게 세웁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목적이다.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생명의 길이다.’ 예수님을 이해하면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얻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원만하게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비밀(그리스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골 2:2-3) 예수님의 시선, 예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관점을 디자인하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관점을 가지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첫째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클레세오스 에프라니우/κλησεως επουρανιπυ/kleseos epoyranioy)”이란 말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고전 15:48)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빌 3:20)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고 증거합니다. 내 힘이 반석이 하나님께 있고, 나의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다고 증거합니다.(시 62:7)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소서. 우리의 죄를 사하소서.”(시 79:9) 지금 나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왜 주의 이름을 부릅니까?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욜 2:32=행 2:21=롬 10:13)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합니다.(눅 10:17)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고전 6:11)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나(우리)는 올해에 예수의 이름을 붙들고, 얼마나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까? 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주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어주소서. 그래서 땅의 만민들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들처럼 경외하게 하소서.”(왕상 8:42-43)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느헤미야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구하옵니다.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습니다.(느 1:11)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미국의 여성 찬송가 작사가 리디아 벡스터(Lydia Odell Baxter)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에벤 터커 선교사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지역교회를 섬기다가 벡스터와 결혼하고 뉴욕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질병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병든 나의 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찬송시를 썼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세요. 슬픔과 비통의 자식이여, 예수의 이름이 당신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것입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예수의 이름을 가지세요. (후렴) 고귀한 이름, 아! 얼마나 달콤합니까? 이 땅의 소망이요, 하늘의 기쁨입니다. 2. 언제나 예수의 이름을 가지세요. 모든 (죄와 유혹의) 덫으로부터 보호할 방패로서 / 만약 세상의 유혹들이 당신의 주위에 모여든다면, 기도로 그 거룩한 이름을 호흡하세요... 3. 아, 소중한 예수의 이름이여! 주의 이름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떨리게 하는지 / 그의 사랑의 두 팔로 우리를 받아주실 때 / 우리의 입으로 주의 노래들을 사용합니다. 4. 주의 이름을 경배하면서 / 주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서 / 하늘에 왕들 중의 왕이신 그분에게 우리는 면류관을 드릴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다 마칠 때 ...” 이 찬송시가 우리 찬송가(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나(우리)는 언제, 어디서, 항상,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둘째는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믿는 도리(호모로기아스/‘ομολογιας/homologias)”라는 말은 “인정한, 고백한, 공언한”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인정합니다. 예수 안에서 내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안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합니다. 지금 나(우리)는 내 안에 숨겨진 불순종, 죄들, 허물들을 주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합니까?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시몬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새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빈 그물을 들어 올려 씻어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들을 내려라.” 시몬은 곧장 깊은 데로 가서 씻어놓은 그물들을 다 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고기 잡는 베테랑이 목수출신의 예수가 말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잡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물 하나를 내렸는데, 그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들이 잡혔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본 순간에 깜짝 놀라면서 불순종에 대한 자신의 죄를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서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눅 5:8) 예수님께서는 물고기가 잡힌 현장을 보고 놀란 시몬(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할 것이다.”(눅 5:10)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 사람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메시야(구원자)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입니다.” 공언하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도이십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는 ”복음의 사신, 그리스도의 전권대사, 보냄을 받은 자, 대리자, 하나님의 사자(使者), 명령을 가지고 보내진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자(메시야)로 기름을 부으셔서(그리스도로) 이 세상(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사 61:1)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 이유는 천국의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마 5:3)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신원하여 주십니다.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시고, 압박하는 자를 꺾으십니다.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십니다.(시 72:4,13)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에게 그 선행을 갚아주십니다.(잠 19:17)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나(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신 것 때문에 우리가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가난한 사람을 들어서 부유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면 권고하십니다.(사 66:2)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보내셨습니다. 갇힌 사람을 해방하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모든 슬픈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대신하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사 61:1-3)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3년 동안 함께 공생하면서 훈련시켰습니다. 그 제자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오늘 나(우리)를 보내서 천국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만약에 내(우리)가 전한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십니다.(히 4:15)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히 4:16) 이것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 은혜를 깨닫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내(우리) 자녀들이 예수님께 나오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12살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꼭 믿게 해야 합니다.(눅 18:16)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어른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확률이 4%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인터넷, 타락한 정보들, 게임과 놀이문화가 복음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녀들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고, 찬송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5-6)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에서 삶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계속되는 고통, 수고 속에서 일을 성취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쁨이 아주 짧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광야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이루는 섭리를 체험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구원의 길이 보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깁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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