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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본원경 보물1011호
지장보살본원경은 줄여서 ‘지장경’, ‘지장본원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운 경전이다. 단종 1년(1453)에 전라남도 완주의 화암사(花岩寺)에서 만든 것으로, 글씨는 공암(空岩)이 쓰고 대선사 의명(義明)이 목판에 새겼다. 상·중·하 3권을 하나의 책으로 엮었으며,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7㎝이다. 권 상의 끝부분에 책을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의 이름과 책을 만든 장소, 책을 펴내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책에는 각 권마다 장수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丈(장)’자가 사용되고 있어서 조선 초기 장수 표시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몽산화상 법어약록 보물1012호
『몽산화상법어약록』은 법어(法語), 즉 부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적어놓은 것으로 승려들의 수행에 있어 길잡이 구실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원나라의 몽산화상 덕이(德異)의 법어 6편과 고려 나옹화상 혜근(慧勤)의 법어 1편을 엮은 책이다. 조선의 혜각존자 신미(信眉)가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목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어냈으며, 크기는 세로 30.8㎝, 가로 20㎝이다. 몽산화상 덕이는 고려의 승려들과 교류가 많았었는데 특히 혜감국사 만항(萬恒), 보감국사 혼구(混丘)와 깊은 교류가 있었다. 그는 고려말 이후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그가 편집한『육조단경』과 법어는 중국의 승려가 지은 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었다. 책 끝에 있는 김수온의 발문(跋文:책의 끝에 대강의 내용과 그에 관련된 일을 간략하게 적은 글)에 의하면, 인수대비가 성종 3년(1472)에 대대적으로 펴낸 불교서적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인수대비는 선조들의 명복을 빌고 대왕대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29종의 불경을 인쇄하였는데, 이때 이 몽산화상법어약록은 200부를 찍었다고 한다.
대방광불화엄경소<권68> 보물1013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화엄경의 내용을 당나라 징관(澄觀)이 풀이하고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註)를 달아 해석한 것이며, 전체 120권 중 권 제68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2㎝, 가로 10.7㎝이다. 이 판본은 송(宋)의 정원(淨源)이 송(宋) 상인(商人) 서전 등을 통하여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게 보내온 목판(木板)에서 찍어낸 고려본(高麗本)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見解)이다. 이 책은 송(宋)과 고려(高麗)의 고승간(高僧間)에 이루어진 교류(交流)의 일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권말(卷末)의 묵서지기(墨書識記)로 보아 조선조 중기에 대승사(大乘寺)의 지응시봉(智膺侍奉) 각전(覺田)의 소유(所有)였음을 알 수 있다.
지장보살본원경 보물1011호
지장보살본원경은 줄여서 ‘지장경’, ‘지장본원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운 경전이다. 단종 1년(1453)에 전라남도 완주의 화암사(花岩寺)에서 만든 것으로, 글씨는 공암(空岩)이 쓰고 대선사 의명(義明)이 목판에 새겼다. 상·중·하 3권을 하나의 책으로 엮었으며,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7㎝이다. 권 상의 끝부분에 책을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의 이름과 책을 만든 장소, 책을 펴내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책에는 각 권마다 장수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丈(장)’자가 사용되고 있어서 조선 초기 장수 표시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몽산화상 법어약록 보물1012호
『몽산화상법어약록』은 법어(法語), 즉 부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적어놓은 것으로 승려들의 수행에 있어 길잡이 구실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원나라의 몽산화상 덕이(德異)의 법어 6편과 고려 나옹화상 혜근(慧勤)의 법어 1편을 엮은 책이다. 조선의 혜각존자 신미(信眉)가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목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어냈으며, 크기는 세로 30.8㎝, 가로 20㎝이다. 몽산화상 덕이는 고려의 승려들과 교류가 많았었는데 특히 혜감국사 만항(萬恒), 보감국사 혼구(混丘)와 깊은 교류가 있었다. 그는 고려말 이후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그가 편집한『육조단경』과 법어는 중국의 승려가 지은 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었다. 책 끝에 있는 김수온의 발문(跋文:책의 끝에 대강의 내용과 그에 관련된 일을 간략하게 적은 글)에 의하면, 인수대비가 성종 3년(1472)에 대대적으로 펴낸 불교서적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인수대비는 선조들의 명복을 빌고 대왕대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29종의 불경을 인쇄하였는데, 이때 이 몽산화상법어약록은 200부를 찍었다고 한다.
대방광불화엄경소<권68> 보물1013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화엄경의 내용을 당나라 징관(澄觀)이 풀이하고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註)를 달아 해석한 것이며, 전체 120권 중 권 제68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2㎝, 가로 10.7㎝이다. 이 판본은 송(宋)의 정원(淨源)이 송(宋) 상인(商人) 서전 등을 통하여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게 보내온 목판(木板)에서 찍어낸 고려본(高麗本)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見解)이다. 이 책은 송(宋)과 고려(高麗)의 고승간(高僧間)에 이루어진 교류(交流)의 일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권말(卷末)의 묵서지기(墨書識記)로 보아 조선조 중기에 대승사(大乘寺)의 지응시봉(智膺侍奉) 각전(覺田)의 소유(所有)였음을 알 수 있다. 진실주집 보물1004호
송나라의 예묘행(倪妙行)이 여러 선사들의 명(銘), 가(歌), 심요(心要), 법어(法語), 시(詩), 문(文) 등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나무판에 새긴 후 누런 종이에 찍어낸 것으로, 3권이 1책으로 묶여 있으며 크기는 세로 25.7㎝, 가로 17.5㎝이다. 책 끝에는 조선 세조 8년(1462)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당시 진의부위(進義副尉)로 있던 황오신(黃伍信)이 쓴 글씨로 판하본(板下本)을 만들어 윤필상(尹弼商), 노사신(盧思愼), 한계희(韓繼禧)의 교감(校勘)을 거쳐 간행되었다.
인천안목 보물1015호
송나라 승려 지소(智昭)가 당시 불교 5개 종파의 기본사상과 창시자들의 행적을 요약하여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 많이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남송(南宋)이 지소(智昭)가 임제종(臨濟宗), 위앙종,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등 선문오종(禪門五宗)의 조사(祖師)들의 약전(略傳)과 법어(法語), 학인접화법(學人接化法) 등 강요(綱要)를 뽑은 내용이다. 이 책은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원나라에서 활동하던 강금강(姜金剛)이 간행한 책을 원본으로 삼아, 조선 태조 4년(1395)에 무학대사가 회암사에서 다시 새겨 펴낸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권 상, 중, 하를 하나의 책으로 엮었으며, 크기는 세로 25.3㎝, 가로 16.7㎝이다.
대방광원각략소주경<권상2> 보물1016호
이 책은 대원각(大圓覺)의 묘(妙)한 이치와 관행(觀行)을 설명한 경(經)인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줄여서 ‘원각경(圓覺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훌륭한 이론과 실천을 말하고 있어 불교 수행의 길잡이가 되었던 경전으로 우리나라 승려의 교과과목 중 하나이다. 이 책은『원각경(圓覺經)』에 당나라 종밀(宗密)이 주석을 붙인 것으로, 권 상의 두 번째 책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원래는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기 위해 1판에 20행씩 새겼던 것을 10행씩 찍어 내어 책으로 만들었다. 크기는 세로 34㎝, 가로 19.8㎝이다. 고려시대 여러 스님들이 저술한 문헌들을 총망라하여 간행한 속장경 계열의 목판과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판을 새긴 기법이나 글자체가『대방광불화엄경소』(보물 제891호)와 비슷하다. 대방광불화엄경<정원본권2,38, 진본권15, 주본권38> 보물1017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삼장반야(三臟般若)가 번역한『화엄경(華嚴經)』정원본 권2, 38과 동진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한『화엄경(華嚴經)』진본 권15,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華嚴經)』주본 권38로 이루어져 있다. 정원본(貞元本)은 전체 40권이며 목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었는데,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권2의 표지에는 ‘晉本(진본)’이라는 금색 글씨가 있는데 잘못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숙종 때(재위 1096∼1105)의 원본을 참고하여 다시 새긴 해인사(海印寺)의 판본에서 찍어낸 것으로 보이며, 인쇄시기는 12∼13세기로 추정된다. 진본(晉本)은 전체 60권 가운데 권15이며, 목판본으로 역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정원본과 같은 판본에서 찍어낸 것으로 보이며, 간행시기도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본(周本)은 진본 60권보다 후에 번역했다고 하여 ‘신역화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전체 80권 중 권38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마지막장에 충정(忠正)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지 호적단자 입양 입안문서 소지 분재기 명문 예장지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고문서 보물1018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가(光山金氏禮安派宗家)의 21대 6백년간에 걸쳐 전해내려오는 고문서들로 1,000여점이 보관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교지 등 7종 429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된 고문서 목록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교지, 교서, 교첩, 차첩 등은 총 82점으로, 임금과 관에서 보내는 각종 사령서와 김씨가의 역대 문서들이다. 호적단자는 총 43점으로, 원본이 아니라 후에 베껴 쓴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의 여러 시대상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입양, 입안문서는 양자를 들이는 것에 대해 예조에서 이를 인정한다는 문서로, 총 4점이다. 소지(所志)는 개인이 관에 청원할 일이 있을 때 올리는 진정서로, 총 91점이다. 분재기는 45점으로, 김씨가의 역대 각종 재산과 노비분배에 관한 기록이다. 명문(明文)은 총 154점이며, 김씨가에서 사고 판 가옥, 논밭, 노비 등에 대한 기록이다. 예장지는 혼례에 관련된 문서로, 총 100점이다. 고려 후기부터 구한말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각종 자료들로서 고문서 연구 및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가족제도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들로 평가된다. 1. 교지(敎旨), 교서(敎書), 교첩(敎牒), 차첩(差帖) : 성화(成化)17년(1481) 생원(生員) 김효로(金孝盧)이 장임랑(將任郞) 임명(任命) 차첩(差帖)을 비롯하여 그의 후손(後孫)인 김연(金緣), 김부의(金富儀), 김해(金垓), 김광계(金光啓), 김대(金岱), 김지원(金智元) 등의 교서(敎書), 교지(敎旨), 교첩(敎牒), 차첩(差帖) 등이 각종(各種) 사령서(辭令書) 및 증시교지(贈諡敎旨) 그밖에 김대(金岱)의 증조비, 조비, 비, 처(妻), 김부필(金富弼) 처(妻) 등 부인직(婦人職)에 이르기까지 김씨일문(金氏一門)의 역대(歷代) 각종(各種) 문서(文書)임. 3. 입양(立養)·입안문서(立案文書) : 김효로(金孝盧)의 계후(繼後) 입양(立養)·입안문(立案文)을 시작하여 인조(仁祖) 5년(1627) 유학(幼學) 김광계(金光繼)가 동생 김광실(金光實)이 제삼자(第三子) 석렴을 후사(後詞)로 삼을 것을 청원(請願)하는 소지(所志) 및 이에 대(對)한 예조(禮曺)의 입안문(立案文) 등 총 4건(件)이 있다.
제 매월당선생문 매월당선생전 김시습전 및 매월당 문집 각 주자실기 이장곤 봉별시 매월당집 인출참여자 명단 각명신언행록 정응두 봉별시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전적 보물1019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댁(光山金氏禮安派宗家宅)의 문중에는 고문서 이외에도 전적 약 3천여권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 서첩을 포함한 13종 61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간략하게 그 전적과 서첩 목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별시첩(別詩帖)에는 조광조(趙光祖), 성세창(成世昌), 이자, 심봉원(沈逢源), 나세찬(羅世纘), 성수종(成守琮), 이장곤(李長坤), 송린수(宋麟壽), 엄흔(嚴昕), 정응두(丁應斗), 김종윤(金宗胤) 등 제씨(諸氏)의 글이 실려있다.
성화16년2월13일…동복 화회문기 보물1020호
성종 11년(1480)에 작성된 재산분배 기록이다. 이름높은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상산 김씨(商山金氏) 가문의 16대손인 김광려, 김광범 형제와 여식인 전좌랑 한건의 처 등 3남매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를 서로 상의하여 분배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이 문서(文書)는 상산 김씨(商山金氏) 16세(世)가 되는 진사(進士) 김광려(金光礪), 유학(幼學) 김광범(金光範) 형제(兄弟)와 여서(女壻) 좌랑(佐郞) 한건(韓健)의 처(妻) 삼남매(三男妹) 가 모여 부모(父母) 전래(傳來)의 미분(未分)된 토지와 노비를 분배(分配)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상산 김씨(商山金氏) 시조(始祖)는 김수(金需)로 려조(麗朝)에서 보윤(甫尹)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세(世) 되는 김행(金行)은 문과출신(文科出身)으로 만호(萬戶)를 거쳐 교리(敎理)등 관직을 역임했는데 배우자인 숙인(淑人) 창령조씨(昌寧曺氏)는 바로 문정공(文貞公) 남명(南冥) 조식(曹植)의 여식(女息)이다. 이들 여서(女壻)로는 남명(南冥)의 제자(弟子)되는 문정공(文貞公)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과 또한 차녀(次女) 여서(女壻)는 임란(壬亂) 때 의병장(義兵將)인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이름높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된다. 21세(世)가 되는 동산(東山) 김명봉(金命鳳)도 임란(壬亂) 때 공훈(功勳)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일등(一等)에 녹훈(錄勳)되었는데 이와같이 상산 김씨가(商山金氏家)에는 내외척(內外戚)을 통(通)해 이름있는 인물(人物)이 많이 배출(輩出)된 가문(家門)이다. 분금(分衿)은 동생(同生)의 생년순(生年順)으로 장남(長男)인 진사(進士) 김광려(金光礪), 다음 여서(女壻) 전좌랑(前左郞) 한건(韓健)의 처(妻), 그리고 끝으로 말자(末子)인 유학(幼學) 김광범(金光範)의 순(順)으로 분배(分配)되고 있는데 분배(分配)가 끝난 문기말(文記末)에는 각자(各自) 이름 밑에 수결(手決)을 하였으며 출가(出嫁)한 여식(女息)은 전좌랑(前左郞)인 부군(夫君) 한건(韓健)이 대신(代身) 수결(手決)하고 있다. 문서(文書)의 기록(記錄)은 말자(末子)인 유학(幼學) 김광범(金光範)이 묵서(墨書)로 필사(筆寫)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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