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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로막는 나무의 성장기/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은 생각보다 크다. 모두 돌아보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리니 만만한 산행은 아니다. 사실 숲 안에 들어가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무와 길이 비슷비슷한 풍경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사진 속 길을 렌즈 속에 담은 이유는 길을 가로질러 자란 나무의 모습이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옳다는 방향으로 자라나지 못하고 삐딱하게 자란 나무가 얼마나 고단한 성장기를 겪었을지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비록 남들처럼 반듯하게 크진 못했지만 덕분에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보다 혼자 멋들어진 삶을 만들어간다면 결과적으로는 더 멋진 풍광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이윤정기자)
산림욕장은 물론 서울대공원 안의 모든 풍경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윤정기자)
가을이 내려앉은 숲/ 화려했던 여름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고 한층 차분해진 모습으로 숲은 가을을 맞았다. 싱그러운 초록 잎과 지저귀는 풀벌레소리는 이제 숲의 주인공이 아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바스락 소리와 앙상해진 가지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산행길이 즐겁다. 시원한 가을바람은 땀을 말려주고 누렇게 변한 산의 풍경은 마음을 절로 숙연하게 만든다. 산길에서는 산림욕을 함께 즐기러 온 부부 일행을 유독 많이 만났다. 오르락내리락 경사 급한 길이 계속 이어져도 맞잡은 손을 놓는 일은 거의 없다. 마치 함께 걸어온 인생길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온 것처럼 말이다. (이윤정기자)
단풍의 원리/ 길옆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붉은 단풍이 손을 내민다. 단풍(丹楓)이라는 명칭 속에 ‘붉을 단(丹)’이 사용됐다 해서 모든 단풍이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붉은색, 갈색 등으로 나뭇잎이 변하는 현상을 통틀어 단풍이라 일컫는다. 나무는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생장을 멈춘다. 잎에 있는 엽록소의 광합성을 통해 생장에 필요한 양분을 얻던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것. 한여름 나뭇잎이 푸르른 것도 엽록소가 녹색이기 때문이란다. 겨울에는 엽록소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그 동안 있던 것도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나뭇잎은 숨기고 있던 색을 드러내거나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원리다. (이윤정기자)
나무의 이름은?/ 앞만 보고 열심히 길을 가다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에 저마다의 이름이 붙어있다. 사실은 종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나무야?”라는 궁금증을 묻기도 전에 해소시켜 준다.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에는 소나무, 팥배나무, 생강나무, 신갈나무 등 470여 종의 식물과 다람쥐, 산토끼, 족제비, 너구리 등 35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부스럭 소리에 눈을 들면 다람쥐가 재빨리 나무와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윤정기자)
지는 해, 맞잡은 손/ 산림욕장 코스는 생각만큼 평평한 길이 아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청계산의 위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관악산과는 달리 청계산은 흙산이라는 점이다. 폭신한 흙을 밟는 산행은 발을 편하게 할뿐더러 기분도 좋게 만든다. 오후에 접어들자 해는 점점 산에 가까워진다. 산속에서는 해가 더 빨리 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 쌍의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내리막을 내려오고 있다. 매일 이렇게 산행을 오신다고 한다. “매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세요?”라고 놀라서 묻자 경로우대를 받으면 무료입장이란다. 그래서 매일 편하게 운동 삼아 나들이를 즐긴다. (이윤정기자)
쉬어가는 숲, 명상하는 사람/ 산행 중 제일 먼저 몸에 오는 변화는 숨을 헐떡이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운동이 부족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 다음 찾아오는 변화는 마음의 차분함이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일은 어느새 한편으로 물러가고 조용히 나를 둘러보는 여유가 찾아온다. 숲에서 받은 여유를 그대로 간직할 수만 있다면 일상으로 돌아가도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치열한 전장에서 마음의 고요를 찾는 <명상록>을 집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윤정기자)
상처 입은 나뭇잎/ 멀리서 볼 때 저 나뭇잎은 단지 가을을 맞는 평범한 과정 중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잎 속에는 여기저기 구멍 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맘에 들었다. 상처가 많은 인생이더라도 꿋꿋이 아름다운 삶을 피어가는 과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연도, 사람도 그렇게 평생을 묵묵히 일궈나가는 것일 게다. (이윤정기자)
인사하는 플라타너스/ 산림욕장에서 중간에 샛길로 내려오면 다시 서울동물원 외곽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동물 우리로 바로 가지 않고 이 산책로만 걸어도 기분이 산뜻해진다. 온갖 나무들이 낙엽을 떨궈 카펫을 깔아놓았다. 밟는 족족 바스락바스락 인사를 해대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살펴보니 한 플라타너스 낙엽이 정말 인사를 하듯 다른 낙엽에 기대 서 있다. (이윤정기자)
서울대공원 조절저수지/ 서울대공원 조절저수지 앞에 서서 산을 바라보았다. 삼림욕장 저수지 샛길과 연결되는 조절저수지광장에는 서정주 시비가 서 있다. 조절저수지광장과 금붕어광장에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이 촬영됐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멋진 배경이 메모리 속으로 들어온다. (서울대공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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