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혈장(血掌)과 독련(毒鍊)
군유명은 한 마디의 말도 더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 열세 명의 사내들이 막 그를 발견했을 순간 앞장섰던 네 명이 별안간 돼지 멱따는 듯한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질렀고 네 구의 커다란 몸뚱이가 마치 공처럼 허공으로 던져졌다.
그 비명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일곱 명의 대한이 선혈을 미친 듯이 내뿜으며 맴을 돌며 저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손에 들렸던 무기들이 땅바닥에 쨍그랑하니 떨어지고 있었고 두 명의 친구 역시 길게 울부짖음을 토해 내며 군유명에 의해 담장 위로 패대기치듯 떨어졌다.
군유명의 뒤를 바짝 쫓던 금미는 이때야말로 전혀 손쓸 기회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미처 어떤 동작을 조금이라도 보이기 전에 눈 앞의 살육전은 이미 마무리를 지어 버렸는데 그야말로 사람들이 눈을 두 번 깜빡이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멀리서 그 누가 경악에 찬 부르짖음을 토해 내는가 하면 분노에 찬호통소리도 곧이어 터져 나왔다.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되었고 무기들은 등불빛을 받아 싸늘한 광채를 번쩍였다.
몇 사람은 미친 듯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의 사내들은 즉시 군유명쪽으로 달려와 에워쌌지만 매우 멀찍이 서서 이쪽을 주시할 뿐 금방 달려들지를 못했다.
군유명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오만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사방에 그 많은 고수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서는 은연중 살기가 감돌고 입가에는 한줄기 조롱하는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군유명의 옆에 서 있던 금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손을 쓰는 것이 정말 빠르군요, 군 공자.』
군유명은 담담히 말했다.
『고수가 승리를 이끌 수 있는 도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의 쾌(快)자에 있는 것이오.』
금미는 나직하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열 세 사람을 죽인 것은 마치 농부가 낫을 휘둘러 열세 뿌리의 잡초를 잘라내는 것 같았어요. 깨끗하고 날렵했을 뿐만 아니라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더군요.』
군유명은 눈빛을 빛내며 웃었다.
『만약에 내가 저와 같은 작은 인물들을 처치하는데 젖 먹던 힘을 다한다면 금미, 나는 오늘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오.』
금미가 정히 무슨 말을 다시 하려고 했을 적에 객잔 안에서는 한 차례 급박하고도 긴밀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지극히 빠르게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는 듯이 대문 안으로부터 달려 나왔다.
금미는 재빨리 말했다.
『그들이 왔어요!』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들이 왔소.』
수십 명이나 되는 대한들은 객잔의 문 앞에 달아 놓은 커다란 붉은 불빛아래 모두 다 잿빛 옷을 걸친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뜬 것이 마치 흉신악살같은 강호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달려 나오자마자 즉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겹겹이 군유명과 금미 두 사람을 한복판에 두고 에워싸는 것이었다.
군유명은 눈빛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아련한 시선으로 사방에 포위한 적들을 쓸어보았다.
그는 재빨리 호령을 내리고 있는 인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체구가 수척하고 나이는 오십쯤 되었으나 머리카락은 이미 반백이 되어 있었다.
싸늘하고도 준엄한 얼굴에 음침하고 박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첫눈에도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 자는 묵묵히 비스듬한 위치에서 군유명을 향해 버티고 서 있었는데 눈초리는 군유명의 전신을 아래위로 훑고 있었다.
군유명은 그 매섭게 생긴 사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친구, 내 자신이 스스로 인정을 하지. 오늘 밤 너희들과 맞서서 소란을 피운 것은 바로 나다. 모든 일들 역시 내가 저지른 것이다. 되었는가?』
살 한 점 없어 보이는 두 뺨을 약간 미미하게 떨더니 그 사람은 얼을과 같이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성명은?』
군유명은 껄껄 웃었다.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겠다.』
상대방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성을 내는 빛이 없이 말했다.
『알고 보니 이름도 없고 성도 없으며 꼬리를 감추자는 좀도둑이었군!』
군유명은 조금도 성을 내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응수했다.
『마음대로 헐뜯어라. 친구, 네가 나를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무엇이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 너는 이름이 있고 성이 있겠지?』
그 사람은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바로 대비방의 오뢰당 당주 냉검쌍환(冷瞼雙環) 조돈력(曹敦力)이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음, 너 역시 대비방에서는 수뇌에 속하고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 꼽히는가 보구나.』
냉검쌍환 조돈력은 짙게 코웃음 쳤다.
『흥, 원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부채에는 채무자가 있어야 한다, 친구, 너의 그 걸작들을 보니 틀림없이 너도 무림에서 명성이 쟁쟁한 인물인 것이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 조가는 다만 대비방이 너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길래 네가 감히 그와 같은 독수를 뻗쳐서 피비린내가 하늘을 진동하도록 만들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비방은 남을 도와 나쁜 짓을 일삼으며 뜻 있고 선량한 사람들을 학대했으며 남의 기업을 강탈할 뿐만 아니라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때 차지하려고 했다. 거기다가 억지를 써서 월경(越境)하여 나쁜 짓을 일삼았으며 남의 집과 세력권 내로 쳐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 이룩한 것을 모조리 집어삼키려 했다. 이와 같이 한 조목 한 조목 따져볼 때에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조돈력은 안색이 약간 변해서는 거칠게 입을 열었다.
『정말 허튼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 주둥이고 후레자식이구나. 네가 만약 철위부의 반역도나 잔여분자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군유명에게 충성을 다하는 앞잡이일 것이다.』
군유명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핫핫핫, 반역도와 잔여분자라고? 앞잡이라고? 그거 정말 신선한 낱말이로구나. 조 당주, 아마 너는 철위부를 누가 창립한 것인지 잊었나 보구나.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군유명은 철위부의 우두머리였다. 설마하니 그에게 충성을 한 사람이 반역도이며 잔여분자이고 충성을 다하는 자가 앞잡이라는 것이냐? 내가 보기에 그와 같이 신선한 낱말은 상대를 바꾸어서 응당 동가와 그와 같은 길을 걷는 너희들 대비방의 머리 위에다 씌워야 옳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돈력은 차갑게 웃었다.
『퉤퉤퉤! 군유명은 여러모로 이롭지 못한 짓을 하다가 살신지화(殺身之禍)의 화를 당했다. 동강은 그가 고생해서 창립한 기업이 와해되고 붕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추천하는 가운데 나서서 그와 같은 커다란 일을 떠맡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위기에 처하여 명을 받드는 것이고 뭇 사람들의 바램이 그에게로 귀결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비방은 다만 강호의 도의를 중시해서 흔쾌히 그를 도와 강산을 지키고 이어나가도록 한데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어찌 너와 같이 주객을 전도하고 흑백을 마구 뒤섞어 놓는 자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군유명은 싸늘하게 웃었다.
『조 당주, 너는 정말 천하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거짓말 종사(宗師)이자 사기꾼의 태조(太祖)로구나. 동강이 음모를 꾸며서 오랫동안 사귄 친구를 함정에 빠뜨려 해치고 그 사람의 강산과 기업을 엿본 나머지 옛 친구의 재부(財富)와 권력을 찬탈하였다. 그는 충성스럽고도 선량함에 양심이 있는 호결과 의사들을 잔인하게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인의(仁義)를 가장하고 정직을 또한 가장하여 도의를 지키는 사람처럼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일개 세상에서 보기 드문 교활하고 음흉한 자이며 비열하고도 몰염치한 쥐새끼 같은 도배이다. 그리고 너희들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떼의 의를 보면 의를 저버리고 모두가 인정머리라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뻔뻔스러운 공범자들이고 치사한 주구들이다!』
조돈력은 노갈을 터뜨렸다.
『닥쳐라!』
군유명은 하늘을 우러러 미친 듯 웃음을 웃고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조 당주, 네가 나에게 거드름을 피우고 호령을 할 자격이 있느냐? 나의 눈에 네가 어떤 작자로 보이는지 아느냐? 너는 한 마리의 짐승이며 한 마리의 개미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너는 다만 하나의 불쌍한 망나니에 불과하며 하나의 허장성세만 일삼는 하류배일 뿐이다.』
조돈련은 안색이 새파래져서 악독하게 입을 열었다.
『이 녀석, 너는 너의 입술을 건방지게 놀린 데 대해서 참담하고도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군유명은 손가락을 들어 상대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는 눈이 멀었구나.』
그 말이 미처 군유명의 혓바닥 끝에서 뛰듯이 뱉어지게 되었을 적에 비스듬히 한 사람의 그림자가 벼락같이 덮쳐들었다.
동시에 한 가닥의 싸늘한 광채가 어느덧 군유명의 정수리로 쪼개듯 떨어졌다.
군유명은 눈 한 번 들어 그를 바라보기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옆에 섰던 금미가 어느덧 번개같이 사납게 옆에서 툭 튀어나가며 바로 나아갔다. 그리고 쌍방이 삽시간에 맞딱뜨리게 되었는데 그 순간 한 마디 미친 듯한 울부짖음이 토해지게 되었고 달려들던 그 친구는 어느덧 곤두박질을 치며 땅바닥에 떨어져서는 떽데굴 떽데굴 굴러가더니 끝내 잠잠해지면서 꼼짝하지 못했다.
금미는 두 손을 한 번 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러섰고 그 땅바닥에 쓰러진 친구는 이미 죽은 모양으로 벌렁 드러누워서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두 눈이 불거졌고 눈의 테두리는 말 할 것 없고 얼굴의 오관들이 모조리 일그러졌으며 입술 사이로는 자색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장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사람의 전신의 살결이 바로 그 찰나에 모두 짙은 청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조돈력은 갑자기 가슴이 쿵 뛰는 것을 느끼게 되고 깜짝 놀라서는 불쑥 부르짖었다.
『금씨 집안의 청련장(靑憐掌)이다!』
금미는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정말 한 쌍의 개 눈깔 치고는 훌륭하구나!』
조돈력은 군유명에게 반발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멍하니 반쯤 얼굴을 가린 금미를 바라보더니 놀람과 분노에 얽혀서는 입을 열었다.
『너는 금씨 집안의 어떤 사람이냐? 금씨 집안과 동강 형님은 퍽이나 교분이 깊은 사이이다. 친구는 다른 사람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대상을 잘못 선택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금미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한 쌍의 흑백이 분명한 커다란 눈망울로 차갑게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군유명은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 당주, 아양을 떨 것도 없고 교분을 논할 것도 없다. 이 친구는 그런 너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는다.』
조돈력은 한편으로 놀람과 의혹을 느끼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녀석, 너는 반드시 진짜 실력대결을 하게 되기 전까지는 손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군유명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함께 놀자고 온 줄 아느냐?』
조돈력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 조가는 오늘 밤 만약 너희들이 살아서 린유성을 나가게 한다면 즉시 강호에서 은퇴하여 영원히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
군유명은 싸늘히 코웃음 쳤다.
『흥, 오늘 밤이 지난 후에 아마 너는 다시는 삶을 누리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그는 두 눈에 푸르고도 허연 살기 어린 광채를 쏘아내며 매섭고 잔혹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열 번 숨을 몰아쉬기 전에 너희들과 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맞아 죽어야 할 짐승들을 몰살시키지 못한다면 마존 군유명이라 자처하지 않겠노라!』
마존 군유명이란 글자는 마치 다섯 개의 갑작스럽게 떨어진 청천병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토록 맹렬하고도 만 근의 힘을 실은 채 사방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후려치게 되었다.
이윽고 삽시간에 그곳에서 하나같이 흉악하게 서 있던 대한들은 모조리 충격을 받은 듯 멍청해지게 되었고 모두 다 어지러워졌으며 모두 다 멍청해졌는가 하면 모두 다 전율을 했다.
그 다섯 글자의 소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한 사람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더더욱 뭐라고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지극한 잔혹, 그리고 엄청난 위풍을 상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를 잃은 죽음과 피비린내 나는 손, 그리고 혼을 앗아가는 깃발을 의미했다.
모든 사람들의 안색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게 되었고 그들 한 쌍 한 쌍의 눈동자에서는 여지없이 감출 수 없는 경악과 위축된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은 놀랍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같이 간담이 떨리고 얼굴빛마저 황당과 공포의 빛을 드러내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 모두 몸이 굳어져 버리면서 그곳에 그대로 서서는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조돈력은 애써 자기 스스로 느꼈던 경악과 의혹,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자기 수하들이 그와 같이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매서운 호통을 내질렀다.
그런가 하면 한 쌍의 날카롭고 악독한 눈빛으로 압제와 협박의 뜻을 띠우고 주위를 한 차례 쓸어본 이후 한 소리 호통을 내질렀다.
『뭐가 두려운 게냐? 너희들은 유치하고도 가소롭게 눈앞의 이 건방진 녀석의 거짓말을 믿는다는 것이냐? 군유명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어디서 다시 군유명이 튀어나온단 말이냐? 무덤 안에서 뛰어나온단 말이냐? 아니면 관 속에서 뛰어나온단 말이냐? 퉤, 저 녀석은 다만 헛되이 군유명의 이름을 빌어 목숨을 건져보려는 가짜에 불과하다!』
군유명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조돈력, 너도 두려우나?』
조돈력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는 노갈을 터뜨렸다.
『두려워한다고? 이 조모가 언제 너와 같이 남의 이름을 빌리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좀도적을 두려워했더란 말이냐?』
우레와 같은 광소를 떠뜨리며 군유명은 마치 한 가닥 흐르는 빛살처럼 신형을 몇 번 사납게 번뜩였다.
그
어떤 동작도 똑똑히 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왼편의 열 한 명이나 되는 우람한 체구의 대한들이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나가떨어지고 말았고, 이와 선후의 분별이 없이 잇달아 쿵쿵쿵, 하는 둔탁한 음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시 오른쪽 편의 십여 명이나 되는 잿빛 옷을 입은 인물들이 냅다 허공으로 던져져서는 저쪽으로 패대기쳐지게 되었다.
온 허공에 선혈을 확 뿌리면서 불그레하니 가지각색의 허깨비들과 이상야릇한 군상의 무늬들이 펼쳐지게 되었고, 그와 같이 얽혀서 함께 쏘아지는 뜨거운 피 속에 한 차례 한 차례의 처절하고도 떨리는 기다란 울부짖음과 한 소리 한 소리 슬프고도 절망적인 호곡소리가 내포되어 있었는데 그 소리들은 그토록 귀를 따갑게 했고 또 그토록 음산했다.
잇달아 허공에서 아홉 번의 공중제비, 보기에는 그저 한 번밖에 돌지 않은 것 같았지만 바로 그 아홉 번의 공중제비를 도는 가운데 잿빛옷의 사내들이 다시 십 수 명이나 꼬꾸라졌다.
군유명이 쏘아지는 것은 날카로우면서도 신속하기 뭐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그저 한 번 번쩍하니 오고가는 사이에 어느덧 삼사십 명의 허우대가 크고 건장한 사내들이 목숨이 끊어지고 혼이 달아나고 만 것이었다.
인류가 죽기 전에 내지르는 소리는 날카롭고도 참담하고 또한 매서운가 하면 또한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뒤흔들어 놓고는 하는데 이제 그와 같은 부르짖음은 쇠붙이들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마구 뒤섞여서 일어나고 있었다.
조돈력은 꿈에도 상대방이 정순하고 초절하기 악마와 같이 무서운 솜씨를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그만 일순간 자기도 모르게 멍청해지고 말았다.
그가 일순간 멍청해지게 되었을 적에 그의 수하들은 이미 덧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뭐라고 비유할 수 없는 공포와 충격이 이 대비방 오뢰당의 당주인 조돈력을 때리고 말았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날카롭고도 매섭고 또한 포악한 살인방식은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한평생 드물게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발생의 재빠름과 경과의 급박함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 사람의 솜씨로써 그토록 신속하고 맹렬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멍청하게 된 조돈력은 다시 더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한 소리 부르짖더니 기다란 장삼을 걷어 올린 곳에 한 쌍의 금빛이 찬연하게 번쩍이는 예리한 둥근 고리가 어느덧 엄청난 광채를 쏘아내는 뜨거운 해처럼 군유명을 뒤덮게 되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한 쌍의 금환(金環)의 달려가는 기세가 아무리 날카롭고 아무리 신속하다 하더라도 마치 공격을 가하는 한 조각의 형체 없는 그림자일 뿐인 군유명은 그를 한 번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처럼 그토록 매끄럽고도 야릇하게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두 명의 잿빛 옷을 입은 대한이 군유명의 그와 같이 날아드는 기세를 보고 도망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군유명이 한 손을 냅다 후려치자 어느덧 퉁겨지듯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한 명의 사내가 막 칼을 들고 옆으로 내려치려고 했을 적에 어둠 속에서 은빛 광채가 뱀처럼 느닷없이 번쩍였다고 느꼈을 적에 그 방금 손에 귀두도(鬼頭刀)를 쥐어든 친구는 어느덧 와락 맴을 돌며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목뼈가 분질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신음소리 한 마디도 내뱉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져서는 그만 시체가 되어 뒹굴었다.
군유명은 크게 몸을 선회시키면서 한 가닥 아름답기 짝이 없는 호선을 긋는 가운데 그는 연신 조돈력의 광풍폭우와 같은 스물일곱 차례의 나는 듯이 재빠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가 그와 같이 한 가닥 둥근 포선을 그리듯 신형을 번뜩이는 동안 또 열다섯 명이나 되는 적이 소리를 내지르면서 다투어 나가떨어졌다.
수십 필이나 되는 말들은 놀라서 길게 울부짖거나 사납게 소리를 치더니 다투어 사방으로 흩어져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겨우 남은 몇 명의 잿빛 옷을 입은 사내들 가운데 겨우 대여섯 명 만이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말의 안장이나 등좌에 붙어서 말잔등 위로 뛰어오르려고 하면서 어지러운 틈을 타고 뺑소니를 치려고 하였다.
군유명은 와락 몸을 날리는 가운데 어느덧 재차 조돈력의 아홉 차례나 전개하는 공격을 피했다.
그의 신형이 한 가닥 아스라한 광채가 되어 단 한 번 번득였을 뿐인데 어느덧 허공을 가로질러 대여섯 명의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서 도망치려는 그 적들의 머리 위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이 그의 신형을 똑똑히 보기도 전에 독사와 같은 가늘고 기다란 은빛 광채가 어느덧 귀를 따갑게 하는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와 더불어 번쩍번쩍 허공에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이 획 뒤집으면서 번쩍이며 허공에서 휘몰아치는 듯한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동공에 전광석화와 같은 한 가닥 불규칙적인 섬광이 비치게 되었을 때였다.
말 위에 올라타고 미처 몇 자도 내닫기 전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잿빛옷을 입은 사내들은 모두 다 동시에 맴을 돌 듯이 안장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들의 몸뚱아리는 아직도 땅바닥에서 데구르르 구르고 있는데 광풍노도와 같이 달려가는 말발굽이 또 소나기처럼 그들을 마구 짓밟아 버렸다.
대뜸 처참한 비명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지는 가운데 피와 살이 함께 튀었다.
사람들의 신지(神智)가 정히 이와 같이 처절하고 공포스러우며 잔혹하면서도 매서운 광경에 완전히 압도를 당하게 되었을 적에 군유명의 그림자는 다시 되퉁겨지듯 빠져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그토록 이상야릇하게 허공에서 몸을 흔들거리며 연신 맴을 돌 듯 솟구치고 있었는데 몸뚱이가 움직이며 전개되는 가운데 한 차례 후르륵후르륵하는 선풍(旋風)이 일었다.
그 선풍과 같은 속도는 결코 그의 행동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바람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에 그 바람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이미 저쪽으로 패대기쳐지듯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전신은 바람소리가 일기 전에 전개되었으며 바람소리가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 은교련(銀絞鍊)은 마치 추혼(追魂)의 검은 망사로 된 깃발이나 악마의 영험스러운 주문 같았고, 음조지부(陰曹地府)의 생사패(生死牌)같았다.
더욱이 원혼(寃魂)의 무서운 흐느낌같기도 했다.
그토록 악독한 광채를 번뜩이며 종횡으로 날고 휘몰아치는데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허공을 오고갔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흐르는 광채를 한 번 봤다고 느껴지는 순간 다시 두 번째로 볼 기회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거대한 사람들의 몸뚱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어떤 줄에 엉켜서 내동댕이쳐져 맴을 돌며 솟구치게 되었고 하나하나 몸을 뒤집으며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는 답답한 비명소리와 애절한 울부짖음은 일종의 가장 귀를 따갑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하는 괴이한 음성으로 혼합되어서는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오… 우악…』
『아아악… 아악…』
『윽… 크윽…』
냉검쌍환 조돈력은 목숨을 걸고 군유명을 추격했다. 그러나 마치 한 가닥의 섬광과 환영(幻影)을 뒤쫓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아무리 한 쌍의 금환을 휘둘러댔지만 상대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허공을 치지 않으면 실 한 가닥 차이가 났는데 매번 허공을 치게 되고 매번 실 한 가닥 차이로 빗나가 버리는 이 상황을 조합하게 될 때에 그에게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눈앞에 전개되는 적이 공력이 높고 기예가 강하며 지금 그의 힘으로서는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돈력은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시 한 번 더 호통을 내지르면서 맹렬히 달려들었고 군유명의 뒷모습을 정확히 겨냥하고 한 쌍의 금환을 일제히 떨쳐냈다.
금빛 광채가 반짝이는 가운데 그는 상반신을 살짝 비스듬히 기울이게 되었고 뻗쳐냈던 한 쌍의 금환을 되돌려서 다시 쳐들었다가 저격을 가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엄청난 가는 광채가 번개처럼 허공을 누비게 되었고 이리저리 선회하며 난무하는 가운데 어둠이 뒤덮인 밤하늘은 모조리 허깨비 같은 꼬리의 그림자가 가득 날고 깡충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돈력의 맹렬한 공격이 가까스로 시작이 되고 그와 같은 광채와 그림자들이 막 용솟음치듯 번뜩이기 시작했을 적에, 시간의 재빠름이 미처 사람이 머리를 굴리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뒤쫓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거의 하나의 형체를 감추고 땅을 축소시키는 악마처럼 조돈력의 매섭고도 날카로운 공격 하에 어느덧 후닥닥 후닥닥의 군유명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갑자기 목표를 상실하게 된 조돈력은 펼치던 초식을 어디다 대고 펼쳐야 하고 공력을 쏟아야 할 지 모르게 된 나머지 중심(重心)이 벼락같이 옮겨지게 되었다.
그는 미처 자세를 가다듬지 못하고 별안간 앞으로 꼬꾸라지듯 휘청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기운을 쏟으며 똑바로 서기 전에 목덜미가 갑자기 서늘해지게 되었고 하나의 가늘은 은빛 쇠사슬이 어느덧 그렇게 가볍고도 부드러운가 하면 또 튼튼하기 이를 데 없이 그의 목덜미를 휘감는 것이었다.
은빛 쇠사슬은 가늘고 적었지만 얼음과 같이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은빛 쇠사슬이 조돈력의 목덜미를 감게 되었을 적에 조돈력은 그것이 한 마리의 독사, 즉 한 마리의 독니를 벌리고 살진 곳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독사처럼 느껴졌다.
전신이 그만 갑작스럽게 식어지면서 조돈력은 마치 자기가 얼음구덩이 속에 내동댕이쳐진 듯 대뜸 그 자리에서 멍청해지고 말았다.
한 가닥 한기가 발바닥 중심에서 머리 위의 정수리까지 치미는 것이었다.
그는 뻣뻣하게 선 채로 두 눈은 정지되고 딱딱해진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치 황소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고 식식거리는 것이었다.
군유명은 바로 두 걸음 밖에 있었는데 그의 오른손에 쇠사슬의 꼬리부분을 잡고서 고개를 돌리고 저쪽의 금미에게 물었다.
『내가 이 닭과 개 같은 잡것들을 쳐 죽이는 시간이 사람들이 숨을 열 번 쉬는 시간을 초과했소?』
금미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듯 갑자기 흠칫하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군유명을 한 번 바라보았는데 그 즉시 군유명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뜻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자기의 입을 가리켰다.
그 뜻은 군유명에게 자기가 소리를 내서 말을 해도 괜찮으냐 하고 묻는 것이었다.
군유명은 담담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열 수도 있소. 어찌 됐든 간에 우리 조 당주께서는 다시 소문을 내지는 못할 것이니까 말이요!』
금미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약간 목쉰 듯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초과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저는 거의 숨이 막힐 뻔했다고요. 저의 느낌 속에는 아마 숨을 세 번 몰아쉬는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찰나지간에 수십 명의 살아 있던 사람이 모조리 죽었어요. 마치 원래 죽어서 그곳에 그토록 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던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이 조 당주라는 분 외에 또 다른 사람이 도망을 쳤을 것 같소?』
금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또 다른 산 사람이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면 당신의 치밀하고도 능숙한 수법은 어부들이 도가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라를 잡는 것보다 더 뛰어나 노련할 뿐만 아니라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지요!』
군유명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는 비유로군!』
이 때, 조돈력은 그제야 군유명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그토록 공허하고 그토록 고즈넉하여 사방에 서 있는 집들에 의해 막혀서 한 가닥 한 가닥 미약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는 외에 모든 것이 그토록 썰렁하고 그토록 조용한 것을 알아차렸다.
조돈력은 가슴 속으로 분노를 느끼며 고개를 슬쩍 돌려서 살폈다. 하마터면 심장마저 멈출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맙소사!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그가 데리고 온 근 백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죽어 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깨끗하고 날렵해서 심지어 조그맣게 한 가닥 숨만 붙어 있는 생존자도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군유명은 싸늘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 당주, 정말 불행한 일이구려, 응?』
조돈력은 식은땀이 눈썹 끝으로 뚝뚝 눈꼬리 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바쁘게 숨을 쉬는 소리가 더욱더 또렷해지게 되었고 얼굴은 불타는 것처럼 붉어졌다.
그는 입이 바짝 말라 쓰디쓰게 느껴졌으며 목구멍에도 마치 한 웅큼의 모래알을 집어 넣은 것처럼 깔깔한 것이 여간 괴롭지 않았다.
이 대비방의 실력 있는 인물을 가까스로 겨우 난삽한 음성으로 입을 열 수가 있었다.
『당신… 당신이 정말… 군유… 군유명이란 말이오?』
군유명은 늠름하게 반문했다.
『마존 이외에 천하가 넓다지만 또 몇 사람이 있어 호흡을 몇 번하는 시간에 이 수십 명이나 살아서 날뛰던 못난이들을 모조리 요절을 낼 사람이 또 있는지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시지…』
그는 조금도 웃음빛이 없는 웃음을 띠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이 은교련은 나로서도 어떤 친구가 나와 함께 소지하고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군…』
조돈력은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두 다리마저도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얼굴이 푸르죽죽해지고 입술이 허옇게 되어서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군… 군… 유명… 당, 당신은 죽지 않았소?』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명이 긴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토록 수월하게 제 자리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이 인간 세상에 대해서 후후후, 나는 아직도 상당히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걸…』
두려움에다가 공포까지 느끼게 되고 분노에 절망까지 뒤섞인 조돈력은 불쑥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동강에게 속았소…』
군유명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으면서 음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 그에게서 내가 이미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지? 물론,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감히 남을 도와 나쁜 짓을 하고 기꺼이 그 자의 방흉(幇凶)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천하의 일이란 결코 만사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음에서 목숨을 건졌으며 흉악한 일을 당했으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하늘은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바이며 내 생명이 다하기 전에 염라대왕도 감히 나를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조하듯 픽,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동가는 나를 위해서 복수하겠다고 선포하지 않았느냐? 그가 수고를 해줄 필요는 없기 때문에 부득이 그의 호의를 저버릴 수밖에 없겠군. 그 도의를 중시하고 교분을 따지는 절친한 친구에게 나는 빚을 받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악착같이 받아낼 것이란 말이다. 조 당주, 이곳에 내가 가장 먼저 찾아와 빚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너에게는 재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조돈력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간담이 찢어질 듯한 두려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군유명… 나는 비록 신분이 대비방의 육당주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나 역시도 명을 받드는 사람이고 방주의 얼굴빛을 보고 행동을 해야 했소… 나는 내 자신은 결코 당신의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단 말이오.… 당신은 은원을 분명히 해서 대상을 잘못 찾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군유명은 냉랭히 응수했다.
『틀림없다. 너 역시도 좋은 사람은 못 돼. 대비방의 사람은 모두 다 한 떼의 이리와 호랑이 같은 자들로서 좋은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고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하나하나 너희들을 다스려 나갈 것이고 하나하나 너희들을 무찔러 없앨 것이다. 그 누구도 요행을 바랄 수 없을 것이고 너도 마찬가지이며, 나를 함정에 빠뜨려 해치려고 했던 어떠한 사람도 요행을 바랄 수가 없게 될 것이란 말이다.』
조돈력은 놀람과 공포에 얽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반드시 나를 죽일 참이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물론이지. 그리고 비교적 특별하고 운치 있는 방법을 쓰겠다. 그와 같은 방법은 매우 재미있는데 다만 너는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조돈력은 흠칫하니 몸을 떨면서 경악과 공포에 질려서는 소리쳤다.
『군유명… 당신은, 당신은, 당신은… 내 말을 들어보시오…』
군유명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여유가 없다. 친구, 그만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좋겠군!』
조돈력은 밀가루나 쌀가루를 치는 채처럼 벌벌 떨면서 다급하고도 급히 낭패에 질려서는 마구 소리쳤다.
『군… 유명… 나… 나에게 교환조건이… 있소…』
군유명은 짙게 코웃음치고 사납게 외쳤다.
『흥, 닥쳐라, 누가 너의 조건들을, 잡것들만이 그것을 들을 것이다. 내 너에게 말하는데 너희들은 진정 아는 게 무엇이냐? 너희들은 그저 탐욕과 죽음밖에 모르는 치들이다!』
그는 두 눈에 살기를 돋구며 잔혹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조 당주, 너의 그 한 쌍의 금환은 아직도 너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얼마든지 손을 써서 공격해라. 하지만 내가 경고하는데 너의 기회는 아마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기회가 많지 않다고? 어찌 많지 않을 뿐이겠는가. 조돈력은 근본적으로 그에게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유명의 그 추혼탈명(追魂奪命)의 은교련이 아직까지 독사처럼 자기의 목덜미를 감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 설사 그와 같은 물건이 감겨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군유명의 일신에 지니고 있는 재간만 하더라도, 설사 맨손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뼈를 추려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자기 혼자 힘으로 이 천하의 수천수만의 사람이 이름을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마존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십성의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격이고 버마재비가 커다란 수레를 막는 꼴이었다.
혓바닥을 내밀어 말라서 갈라진 입술을 촉촉히 적신 조돈력은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서는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으며 애걸하는 눈빛으로 군유명을 바라보며 가련하게 입을 열었다.
『군… 군 공자… 우선 내 말부터 한 마디 들어보시오…』
군유명은 거칠게 소리를 내질러 상대방의 말꼬리를 잘랐다.
『잔소리 말아라,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을 듣느니 차라리 개새끼와 장난을 치겠다. 조가야, 네가 다시 손을 쓰지 않는다면 이 군유명이 먼저 손을 써서 너를 요절내는 것을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뱉으면서 조돈력은 두 손에 맥이 탁 풀리게 되어 쨍그랑, 하는 금속성 속에 그는 어느덧 한 쌍의 금환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는 애절하게 슬피 불렀다.
『군 공자…』
군유명은 소리를 내지르며 욕을 했다.
『못난 녀석 같으니라구. 대비방은 북쪽에서 종횡하고 있었는데 너희들과 같이 배짱이 없는 병신들을 의지하고 있었다니, 정말 놀랍구나?』
한편의 금미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나직하고도 급하게 입을 열었다.
『군 공자, 그의 말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어때요? 어찌 됐든 간에 얼마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 아니겠어요?…』
군유명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금미, 당신은 이 자들의 악독하고도 교활하며 간계가 많은 자들임을 잊었소? 나는 비열한 자들과는 내왕을 하지 않소.』
금미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들어본다고 해도 해가 될 것은 없지 않아요? 군 공자, 어쩌면 이 사람에게도 어떤 좋은 수가 있을지도 몰라요. 더군다나 만약에 그가 어떤 그럴싸한 말을 하지 못할 때 그 때 가서 손을 써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그는 이미 당신의 손아귀에 들어 있으니 그가 무슨 방법을 써서 도망을 쳐 목숨을 건질 수 있겠어요?』
군유명은 싸늘히 코웃음 치더니 약간 누그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 보시지.』
벼랑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에 한 토막 마른 가지를 잡은 사람처럼 조돈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는 그가 매달려 있는 이 앙상한 가지가 자기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실어도 괜찮을 것인지 시험을 해 보아야 했다. 따라서 그는 여간 조바심이 나지 않았고 지극히 당황하여 어떻게 할 바를 모르기도 했다.
그는 경황없이 입을 열었다.
『군 공자…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나는 당신에게 많은 비밀을 알려주겠소. 뿐만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첩자가 되겠으며 내응이 되어 드리겠소… 하지만 아직은…』
군유명은 천천히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그 웃음은 음산하여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에서 소름이 끼치도록 하였다.
그는 냉혹하게 입을 열었다.
『조가야, 너는 이 군유명이 이제야 강호에 발을 내디디는 햇병아리로 아는 것이냐? 나에게 가장 평범한 지연책을 쓰다니, 너는 역시 헛고생을 하지 말고 기운을 아끼도록 해라. 나는 너의 그 사악한 술수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조돈력은 다급하고도 절박한 심정과 공포에서 온 머리에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아니오. 나는 결코 그런 뜻이 없소. 군 공자, 나는 하늘을 두고 맹세하겠소. 나는 정말 진심으로 당신이 나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대해 보답을 하겠다는 것이오…』
군유명은 혀를 찼다.
『쳇, 개방구 같은 수작을 하는군. 네가 만약에 내 손에서 벗어나게 되고 목숨을 건지게 되었을 때에 네가 기꺼이 나를 위해 일을 하겠느냐? 조가야, 너는 어린애를 속이듯 하지 말아라.』
조돈력이 정히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적에 금미가 입을 열었다.
『군 공자, 이 사람에게 그와 같은 뜻이 있고 우리 또한 확실히 상대방의 진영에서 비교적 신분과 지위가 있는 인물이 내응해 주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이 사람에게 그러라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거죠?』
군유명은 불쾌히 말했다.
『분명히 말해 보시오. 만약에 이 늙은 녀석이 약속을 파기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을 때 당신에게는 좋은 어떤 방법이 있어 이 자를 징벌하겠소?』
조돈력은 그야말로 목이 부러질 것처럼 힘을 주어서 부르짖었다.
『나는 무슨 벌이라도 받겠소이다!』
군유명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며 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냄새나는 주둥이 닥쳐라. 나는 너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금미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입을 열었다.
『물론 나에게는 방법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