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0분 기상. 일어나자마자 밥을 앉히고 보온물통을 데우고 따끈한 차와 보온도시락,
끓여먹을 찌개와 반찬을 챙깁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동작입니다.
얼핏 보이는 바깥은 아직 깊은 한밤중. 그러고보니 잠든지 두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덜 잔 시간, 차마 이것을 잠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듯합니다.
늦은 잠시간대를 바꾸지도 못하고 새벽은 새벽대로 일찍 열어나가면서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던 즐거운 수면부족.
소망하던 값진 것을 받는 날, 잠 못잔 것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는 자신감처럼 맑았던 그 새벽.
더 낮은 자세로 생각한다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호강한 것도 감사할 일 같습니다, 이날만은...
...이 날은 새해를 여는 첫 눈꽃산행입니다. 그리고 제 생애 처음있는 황홀한 눈나라 산행이구요.
살면서 '처음' 혹은 '첫'이란 단어처럼 설레는 접두사가 또 있을까요?
선자령. 여름이면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강원도 산골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와 주고
그 대관령의 강릉과 평창을 잇는 중간계에 위치한 눈과 바람의 고개.
가파르지 않아 가족단위 눈꽃 트래킹으로도 인기있는 겨울산행의 백미 선자령으로
산행이지만 마치 동화나라 백설공주가 부럽지않을 아름다운 눈세상 눈구경하러,
가벼운 산보나가듯 나서보는 겁니다.
영동지방의 백두대간 등줄기는 위세높은 산들의 점령지구.
구름도 쉬어가는 대관령과 멀리로 산들의 파노라마가 눈길 가는 곳마다 이어지는 훌륭한 조망을 겸비한 선자령 눈꽃산행을 눈 설(雪)자의 설레임으로 떠나가는 1월 산행은 행복의 나라로 입문하는 어린 요정이 되기 딱 좋은 그런 별세계.
경험이 부족한 아줌마의 공상은 눈이라면 꼭 그런 다른 세상, 신비로운 의미들로 가득해 집니다.
그러기에 눈이 조금 부족해도 최근의 날씨가 한파 뒤의 눈녹듯 스르르 풀린 것으로 이해하면 그 뿐.
겨울하늘이 유리에 금가듯 쨍하게 파랗진 않더라도 이 역시 녹고 있는 눈처럼 침엽수 위로
실수로 떨어뜨린 눈사탕을 발견한 것처럼 바라보면 되는 것.
선자령 칼바람을 귀따갑게 주지한 덕분에 먼저 얼어버린 마음의 경계령이 한 발 더 나아가 있었기에 그쯤, 괜찮았습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더 따뜻한 방안에서 실컷 들었던 선자령 칼바람은 미리 다 맞았으니,
실물로 좀 덜 맞았다고 그걸 이해못할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곳을 과연 덜 춥다고 해도 될런지..영하 10도쯤.
그건 아이들 지리공부 같았습니다. 교과서에서 사진과 도표로 배우고 나중나중 그곳을 밟아보는 교육현장처럼
따로따로 주지하더라도 효과는 오는 것. 그것은 교육을 떠나 어른의 세상에서 소문과 실제처럼 구별해도 좋겠고...
세상의 모든 들리는 소리와 내 귀로 들은 소리를 걸러내기 위해 직접 나서 보는 것, 선자령은 꼭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하얀 눈의 나라에 울긋불긋한 산사람들의 인간눈꽃열차 행렬은 초입부터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니,
이들 모두 새벽길을 나섰고 비슷하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와 다를 바 없는 기대감을 안고 눈산행을 나섰으리라.
그 여러 갈래에서 저마다 어느 한 지점의 산들로 산들로 모여드는 행위.
좁은 땅덩이라 하지만 열린 마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겨울산맛 같은 알싸한 향기.
겨울산을 오르는 참을성으로, 눈꽃산행을 간다는 희망으로 이들 모두에게 한해동안 산의 정령이 골고루 비추이시길...
나뭇가지에 얹힌 하얀 눈은 바람찬 구릉에서 어디로든 날아도 이 지역의 겨울을 오랫동안 하얗게 유지시키는
비밀의 알갱이들. 그동안 내 모르게 하얀 덩이 수없이 날렸을 여러 밤과 새벽동안에 누군가는 이 눈맞이를 벼르고 벼러
하얀 세상의 첫발자국을 남기러 새벽행을 나서고, 먼저 극점을 밟은 자의 쾌감을 맛보았으리.
밤의 여로를 뚫고 세상을 맞이하는 역할을 신은 눈에게 부여했을까?
새벽차안에서 완전한 어둠에 쌓인 고속도로변 희끗희끗한 들판의 눈은 새벽을 밝히는 지상의 은빛이불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보라고 남편은 연신 입김서린 유리를 닦아 줍니다.
눈산행을 가는 아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려는 배려의 감사 마음 한켠에
눈은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의 겨울엽서 같단 생각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눈이 오면 "와ㅡ 눈이다" 하는 것처럼 꼭 환호성을 앞세우지요.
부부로 늙어가는 중간 지점에도 눈만 보면 장난을 걸고 싶은 청춘이 일어납니다.
눈가루는 아름다운 이미지 연출에 지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첫번째 소품이라 생각듭니다.
선자령 겨울 칼바람이 아무리 포근하대도 이곳은 강원도 바람고개.
겨울 상록수는 눈을 얹은 모습도 푸르름을 감출 수 없습니다. 바람의 스침이 이토록 잦았단 증거이지요.
우리가 여름 더위에 지쳐 가장 먼저 상상의 힘을 필요로 할 때 흔히 눈덮인 강원도 설원평야 눈의 숲이 필요했듯이
이제 우리는 그 장면을 걷고 있습니다. 상상 속으로 들어간 현실의 걷기 여행.
그러나 이것이 산행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생존의 장이라면
이곳은 게릴라들의 겨울 거처가 되며 험난한 생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시절의 호사를 잘 누리는 우리들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저는 언뜻언뜻 겨울 지리산의 마지막 빨치산들을 떠올렸습니다.
스무살을 지날 무렵 읽고 평생의 교사로 삼은 소설 <태백산맥>의 긴긴 여운이 아직도 뚜렷한 영상처럼 각인된 때문입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아직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생이 더 가기전에 국민의 책 <태백산맥>을 읽기를 권하며,
아이들이 자라 스무살을 맞이한다면 그 일순위로 <태백산맥>을 권하는 부모가 되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겨울이 다가기전에 혹은 지리산에 다시 가기전에 태백산맥 마지막 10권을 꼭 다시 읽으라 말하고 싶습니다.
겨울산에서, 눈덮인 막막한 겨울 산에서 조국의 몹쓸 이념앞에 희생당한 이쪽과 저쪽의 숱한 영령들이
깊은 산 골짜기마다에 울려퍼지는 환상을 20년이 지나서도 생생히 감지하는 건,
그 나이대에 받은 벅찬 감동의 깊이와 눈산이 가져온 이미지가 만난 덕분.
그러므로 겨울산에 선 모든 사람들이 게릴라처럼 보여도 용서해주는 거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배우고 따르고 싶은 부부의 모델들이 꼭 있습니다.
경상도 남편들은 이래저래 손해보는것도 많습니다만 그건 겉모습만 보고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의 얕은 시선일뿐이지요.
산행을 나서니 그저 얼굴 정도 알던 주변의 아저씨(언니)들도 가까이서 보이는 모습에서 비로소 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버스안에서 저는 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옆좌석의 산행고수이신 '덕실'아저씨 부부의 모습.
아저씨는 이미 여러해동안 산을 많이 다니신 백전노장처럼 혹은 제가 놀라 말했던 것처럼 걸어다니는 인간지도처럼
어둑한 도로어귀만 보고도 여기는 평창이고 횡계고 다 알아내십니다.
덕분에 제가 미리 스페츠를 신었던 것도 그 분이 미리 끼우고 계셨던 덕분이지요.
그런데 사모님께서 스페츠를 신으시다가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신어보는 스페츠가 어이없게 고장나는
대형 사고였지요. 아저씨는 이미 신으셨지만 손을 쓸 수 없게 된 스페츠를 할 수없이 넣으시고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의 스페츠를 다시 벗어 주셨습니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퉁명스러움으로 '아나' 하며 건네셨지만 그 어떤 말보다도
오랜 세월 한솥밥 먹은 부부의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장을 낸(?) 사모님의 미안스러운 모습도 보고 배워야 할 제 모습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남편에게서 꼭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는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화가 난 사람 곁에서 함게 식식거리는 단정치 못한 말투들보다는, 아무래도 사태를 원만히 수습할 길은
그렇게 좀 다소곳이 따라하는 행위겠지요? 두 분,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스페츠없이 이 깊은 눈밭을 어떻게 다니셨는지 모르겠네요.
우리에게 겨울이미지는 <러브스토리>에서 시작되고 익숙한 겨울 영화음악을 함께 듣는 것처럼 무얼해도 아름다운
연출이 됩니다. 딸아이는 피아노 반주로 <하얀 연인들>을 연주해 줍니다.
이 글을 쓰는동안 딱 어울리는 최선의 선택은 그런 영화음악과 함께 하는 거겠지요.
저는 여자여서 게다가 상당히 초보산행이어서인지 늘 이런 장면에서 생각이 멈춥니다.
어찌할수 없는 여자의 시선으로 이 아름다운 눈세상을 본다는 건 축복받은 감정의 샘물이 펑펑 고이는 것쯤 될까요?
남자의 시선보다는 여자의 시선이 좋겠다고 궂이 차별하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도 눈산이기에 가능해 보입니다.
당연히 무릎까지 빠지는 눈 아래로는 할미꽃도 피었겠지요. 가는 길마다 조금은 시시한 야생화 안내문구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처럼 서 있습니다. 한국을 지나고 중국도 넘어서고 러시아 아무르강까지 할미꽃이 분포한다는군요.
믿어지지 않는 할미꽃의 강인함. 꼭 우리 산하에만 자생할 것 같은 여린 저 꽃이 그 세찬 러시아 강기슭 산들에 핀다는 건
경이로운 식물의 살이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일깨우는 작은 교훈.
지금도 이 하얗고 차가운 눈 아래 온갖 야생초들이 생명의 움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
야생의 꽃들은 여자이면서도 어머니와 같아 보입니다.
눈을 보고 그냥 걷기만 하면 당연히 신나지 않겠지요.
언제 한 번 이 눈을 흠뻑 또 맞아 보겠나! 지금 이곳 이 눈 속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익숙한 눈싸움.
뭉쳐지지 않는 미세한 쌀알같은 눈은 흩뿌리면 안개요 던지면 신나는 눈폭죽.
입에도 들어가고 목안으로도 들어가는 차가운 감촉을 오소소 한 번 떨고나면 이미 몸은 공기와 같은 추위로 딱 정지.
그러고도 이것이 신이나는 우리는 아직 마음은 청춘인 중년의 초보산행가들.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북풍의 칼퀴같은 풍력의 날이 온바람을 다 쓸어모으는 힘찬 팔매질 소리로.
동해에서 불어오던 바람들이 산맥의 능선을 만나 소용돌이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선자령 칼바람을 만들었을까요?
멈춤없이 큰 숨을 뱉어내는 풍력발전기의 바쁜 팔매질이 온갖 자그마한 소리들을 집어삼키는 듯
강원도 바람다운 칼바람소리를 연주합니다.
그 옆을 지마며 놀라면서도 강원도의 힘같은 힘찬 응원소리 듣는 듯 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염원의 오랜 펄럭임이 해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플랜카드에 나부끼면서도 수년째 고배를 마시는 배경
어디에는 분명 우리의 좁은 안목이 놓치는 부분이 있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수년 전의 강원도가 아님을...탄광의 매캐한 강원도 그을음은 이제 눈나라의 지상명제인 동계올림픽 유치로
눈속에 파묻었는데, 그 눈의 요요현상이 사라진 후 만나게 되는 맨얼굴도 올림픽을 치룰 만한 성숙한 의식이 되어야겠다는,
그래서 영화 <국가대표>의 그 피날레처럼 겨울스포츠 불모의 땅에
땀으로 일궈낸 꿈의 동계올림픽이 마침내 우리땅 강원도에서 열리기를, 선자령 바람소리 다시 들으며 염원합니다.
솔바우 회장님의 소고기 된장찌개입니다. 벌써 그림만으로도 최고의 맛이 보이지요.
두껑을 열어젖힌 뒤 저 여유있는 담배 한 모금의 자세야말로 산행고수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로 보입니다.
된장맛은 어른과 함께 살며 어깨너머로 들은 맛내기의 비법과 어쯤 그리도 닮았는지,
언니의 음식솜씨가 숨은 조력자처럼 든든하게 비칩니다.
회장님의 구수한 설명이 바로 시골 된장독에서 맛이 익어가는 그것을 보는 듯 깊어가는 점심시간 그 놀라운 맛!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는 정상석 주변 풍경.
눈산행의 가장 인기있는 코스로 각광받는 곳답게 많은 사람들로 하루종일 붐볐던 이 곳을
저의 훗날에는 눈산행의 메카로 기억될 소중한 곳이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그날 카메라는 이 사진을 끝으로 하산행을 찍지 못하는 복선을 던지며
제게 그야말로 뼈아픈 하산선물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운동하지 않은 자 산에 다니면 안된다는 날카로운 일침을 던지듯 무릎이 경고를 해왔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상상하던 그 아픈부위가 산행시마다 누적되더니만 결국 일을 내고 만 것이지요.
카메라도 멈추고 다리도 함께 멈춘 후, 멀고 고단했던 하산길의 배경들은 간간히 미소언니의 추억만들기에 동참하며
정말 신났었지만, 그 아까운 웃음거리들을 마음에만 담았습니다.
눈속의 왈츠처럼 한바탕 어우러져 흩뿌렸던 눈장난도, 타잔처럼 줄을 타고 날아가 그대로 땅에 꽂히며 운동신경의 둔재를
실감하던 그 순간도, 마음은 빨리 가야 함에도 이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애가 타던 그 한걸음 한걸음들도
이제 지나간 즐거운 웃음소리되어 하얗게 박혔습니다.
후미의 꼴찌들에게 성내지 않고 처제 대하듯 맞아주신 여러 따뜻한 산님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늦어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눈산행을 기다렸기에 이렇게 시기어린 인체구조가 제동을 걸어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달동안 열심히 몸만들어 2월 무등산행엔 중간 즈음에 내려오는 기염을 토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1월 아름다웠던 눈산행 선자령,
함께 한 우리 산우회 가족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축복이 흰눈처럼 소복소복 내려지기를 바라며
부족한 긴 글 인사를 올립니다.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