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역사 1044 예맥(濊貊)
고대 한민족의 종족명으로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동북부에 살던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 중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견해에서는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예맥(濊貊)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
예맥은 맥(貊·貉) 또는 예(濊·穢·薉)로도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동호(東胡) 동쪽으로는 숙신(肅愼)과 접해 있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송화강 압록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한반도의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만주의 랴오닝 성과 지린 성)에 걸쳐 정착하며 활동한 대민족으로 추측된다 부여(扶餘) 고구려 옥저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 역시 예맥족의 나라이다
맥(貊) 이 곰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로부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신화(神話)로 남아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예맥 내부의 여러 집단들의 경쟁 속에서 우세한 집단이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점차 세를 키워나갔는데 단군신화에 전해지는 설화처럼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켜 고조선을 구성하는 종족집단을 이루었고 이후 대표적인 예맥족인 부여로 그 세력이 계승되어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토착민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근대 역사학의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신채호는 부여사를 주목하였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기존의 기자 마한 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부정하고 부여주족론(扶餘主族論)을 제기하였다 신채호는 민족사 가운데 가장 주동력이 되는 종족을 주족(主族)으로 간주했는데 부여족을 주족으로 주변의 지나족(支那族) 말갈족 여진족 선비족 일본족 등은 객족(客族)으로 보았다 이는 4천년 민족사는 부여족 성쇠소장(盛衰消長)의 역사"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부여의 터전은 지금의 만주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했는데 거기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그 동부여에서 고구려의 지배층이 된 주몽 집단(계루부 왕실)이 나왔다 주몽 집단은 압록강 일대에 진출하여 졸본부여 곧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그러자 압록강 유역에서 먼저 살던 주민들 중 일부(비류·온조 집단)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세웠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부터 분리된 집단이다
가야가 있던 경상남도의 지역에서도 청동 솥을 비롯해 북방 유목민족이나 부여 계통의 유물들이 나오는데 부여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반도 남동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시조 대조영도 발해는 부여 옥저 변한 조선의 땅과 바다 북쪽 여러 나라의 땅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여 부여를 자신들의 오래 된 조상의 나라로 보았다 중국 송나라 때의 역사책 무경총요에서도 발해가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본래 예맥의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가 고구려와 백제처럼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