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楚辭, 離騷(이소)
굴원이 지었다는 초사인 이소는 장중하다. 형식은 사언체(四言體)이다.
《이소》(離騷)는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시인인 굴원이 지은 장편 서정시이다. 수많은 비유와 의태어의 조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슬픔, 분노, 한탄과 신화적인 환상 세계로의 여행을 노래하고 있다.
이소는 형식만이 새로울 뿐 나니라, 내용도 새롭다. 초사의 구가는 사랑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짜릿하게 노래하는 새로운 형식의 서정시이다. 그러나 이소는 장중하고 거창하다.
아침에 천진에서 수레를 출발시켜
저녁엔 내가 서극에 이른다.
봉황새 공경스럽게 깃대를 받쳐들고
훨훨 높이 날아 길 인도를 의젓이 한다.
문득 나는 이 사막을 지나
赤水를 따라 노닐며 가는데
교룡을 지휘하여 나룻터에 다리를 놓게 하고
西皇에게 명하여 나를 건너주게 한다.
길은 멀고 험한 곳 많지만
여러 수레들 먼저 지름길로 가 기다리게 하고
부주산을 따라 왼편으로 돌아
서해에서 만나기로 기약한다.
내 자신은 천 대의 수레를 모아
옥 수레바퀴 통을 가지런히 하고 달리는데
수레를 끄는 여덟 마리 용 꿈틀꿈틀 하고
수레에 꽂힌 깃발은 펄럭거린다.
욕망을 억누르며 속도를 조절해도
정신은 저 높이 아득한 곳으로 달려간다.
九歌를 연주하며, 韶舞(소무)를 추며
한가한 날 빌어 즐겨도 좋다.
하늘이 훤하게 밝은 곳으로 오르다가
문득 고향을 내려다보니
내 하인들 슬퍼하고 내 말도 고향 그리워
우물쭈물 뒤돌아 보며 나아가지 않는다.
이소는 하늘과 땅 사이를 멋대로 돌아다니는 환상적인 유람이 시의 중심이다. 내용이 변하쿠쌍한 초현실적이다. 어떻든 간에 이소는 나라를 걱정하다 쫓겨난 애국시인으로 기억한다.\
첫댓글 (史記)의 《굴원전》(屈原傳)에 따르면 굴원이 초 회왕과의 갈등,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초나라 궁정에서 쫓겨나서 유배 생활을 하던 도중에 세상에 대한 이상과 실망감을 담은 시 《이소》를 지었다고 한다. 《사기》에 따르면 '리'(離)는 만남(遭)을, '소'(騷)는 근심(憂)을 뜻하기 때문에 '이소'(離騷)는 "근심을 만난다"(離(리), 猶遭也(유조야). 騷(소), 憂也(우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한 시대에 출간된 중국 고전 시가 작품집인 《초사》(楚辭)에도 《이소》가 게재되어 있다.
《이소》는 총 374구(句), 2,477자(字)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구의 길이는 반드시 같은 편이 아니지만 홀수 구는 "□□□△□□혜"(□□□△□□兮), 짝수 구는 "□□□△□□" 형식을 띠고 있다. 홀수 구의 △ 부분에는 '우'(于), '이'(以), '여'(與), '이'(而), '기'(其)를 비롯한 조사가 들어간다. 짝수 구는 각운(脚韻)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4구마다 운이 바뀐다. 끝 부분에는 4구로 구성된 '란'(亂) 부분이 부속되어 있다.
상관대부라는 벼슬에서 쫓겨나 삽시간에 백수가 되어버린 굴원은 하소연할 곳도 없고, 우울한 마음에 글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한문학의 역사를 논하면 빠지지 않는 작품인 이소(離騷)이다. 제목의 뜻에 대해선 사기 굴원 열전 중 '이소란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다는 뜻이다(離騒者 猶離憂也)'라고 나와 있다. 이 작품과 구가, 천문 등을 포함한 작품이 초사이다.
사기 굴원세가에서는 강가를 떠돌며 시를 읊다가, 마침내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멱라수는 오늘날 후난성 동북부에 흐르는 미뤄강이다. 후세의 중국 문인들은 굴원이 나라에 충성을 다 하다가 모함으로 쫓겨난 애국시인을 기린다.
굴원이 5월 5일 멱라수서 투신하자 초나라 사람들은 굴원을 애도하며 이 날이 되면 대나무통에 쌀을 담아 강에 던져서 굴원에게 제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