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여행 / 새수 김진길
- 전국매일신문 2023.07.19 07:00
배낭 가득
버려야 할 욕심을 꾹꾹 눌러 담아
허리가 휘게 짊어지고
기차를 탄다
출발에서 속도를 붙여
터널을 들락거리며
종착역을 향해 질주한다
분주한 시침 따라 살아가는 인생길
터널에선 잠시
숨죽이는 방법도 터득하여
내일의 빛을 내다본다
바늘구멍 빠지는 듯 질주하는 삶
이제 괴로움 다 내려놓고
희망과 사랑으로
비워질 배낭을 새롭게 채우며
행복한 여정길 기대한다
하루의 햇살이 품어 들고 있다
고봉밥 한 그릇 / 새수 김진길
일 년에 한 번 그날만은
아버지 밥그릇에
하얀 쌀밥이 고봉으로 담겨져있고
올망졸망 사 남매 밥상엔
퉁퉁 불은 끓인 밥이
태엽 풀린 배꼽시계를 멈추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숟가락 부딧치는 소리 요란할 즈음
아버지가 입맛 없다며 남기신
흰쌀밥의 아픔을
부모가 돼서야 배운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에 가슴 아린다
배고픔을 채우기보다
건강을 위해 칼로리 계산하며 먹는
오늘날 잡곡밥 한 그릇은
허기졌던 그 시절
고봉밥과 아버지를 그립게 한다
분리수거 / 새수 김진길
실낱같은 인연을
싹둑 자른다
끈 떨어진 연
긴꼬리 돌리며 떨어져
구석에 처박혀 흔적 없다
빨간 풍선에 가득 채운 욕심은
어떤 타협도 귓전에 없고
돌발적으로 뒤죽박죽 쏟아내는
심 박힌 언어가 뒹구는 거리
바람 자길 기다려
종량제 봉투에 쓸어 담고 나니
작은 골목은
봄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엄마의 봄날 2 / 새수 김진길
철쭉 영산홍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
비바람견딘 빛바랜 꽃 한 아름
양촌 뜰에 인생 향기 가득 퍼지고
8학년 7반 소띠 친구 다섯 어머니들
깜짝 소풍이다
향기 짙은 꽃도 예쁘지만
소나무처럼 살아오신
세월의 진한 향이
초록의 잔디 위에 퍼지며
맛난 안주와 한 잔 술은
또하나에 지워진 번호를 그립게 하고
주름살 사이로 곱게 물드는 노을처럼
엄마의 봄날은
즐거운 소풍으로 또 하루를 지우고 있다
채송화 / 새수 김진길
-김정옥 화가 개인전을 축하하며
소꿉놀이하던 담장 아래
여린 꽃잎
채송화 한 포기가
작은 아이 가슴에 피어
두둥실 뭉게구름 넘실대듯
꿈을 일구고
꿈은 피어나 화폭을 탐스레 채워
생명을 불어넣는 화가로
소담스레 꽃대 올린
채송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김진길시집
하루에 물든 시간
표지작가 김정옥 채송화 화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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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시
그의 그림자 / 새수 김진길
긴 세월 왼쪽 그림자는
열지 못했던 문틈새로 여린 손 내민다
종이꽃처럼
바스락거리는 꽃잎을
품에 안아 보듬는다
작은 흐느낌은 봇물 되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빛없는 그곳에 작은 햇살을 기다리며
동동 구른 발바닥은 갈라지고
그 아래 시꽃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사랑의 마른 줄기는
간신히 고개를 세운다
나 하나 사랑이 아닌
모든 문학인을 사랑한 죄
무엇으로 위로가 될까
힘내고 걱정 마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