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축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6일간 열린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총 상영작은 30개국에서 보내온 82편의 영화. 부드러운 호수 바람에 실릴 영화와 음악을 미리 감상해보자.
‘Jump! JIMFF!’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의 모토는 국제 영화제로서의 ‘도약’이다. 2005년 첫 막을 올린 이래 ‘음악’ 장르영화제의 내실을 다져온 제천영화제는 올해 국제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제경쟁부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섹션의 신설.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대상으로 9개국에서 만들어진 10편의 최신 음악영화가 상영된다.
‘음악영화 사전제작지원’ 제도도 올해 처음 운영한다. 음악영화 감독을 발굴, 육성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음악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개인 혹은 단체를 선별해 총 제작비 60% 한도 내에서 최대 2천만 원까지 제작비를 지원한다. 여기에 음악 녹음, 사운드 믹싱 등 후반작업 시 현물과 경우에 따라 숙박비, 식비도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 음악영화 제작 붐을 반영해 일시적으로 신설한 특별 프로그램 ‘한국 음악영화 스페셜’은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이라는 고정 섹션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개봉한 한국 음악영화 6편을 볼 수 있다.
제천영화제 특유의 감성이 반짝이는 기존 섹션 부분은 올해도 풍성한 라인업으로 관객을 찾는다. 음악이 내러티브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극영화를 상영하는 ‘시네 심포니’에는 12개국에서 온 12편의 영화가 준비됐다. 브라질의 보사노바 리듬, 일본 가요곡,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드라마, 코미디, 뮤지컬, 무성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타고 흘러나온다. 이 외에도 음악 다큐멘터리 전문 섹션 ‘뮤직 인 사이트’는 밥 말리, 쳇 베이커 등 거장 뮤지션들의 삶을 돌아보고 ‘주제와 변주’ 섹션에서는 1920~1940년대 할리우드 초기 뮤지컬들을 상영한다.
휴양 영화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밀리 페스트’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제작한 맑은 감성의 영화들로 채워진다. 지난해 새로 만들어진 ‘제천영화음악상’의 올해 수상자는 故 전정근 음악감독. 특별전에서는 전정근 음악감독의 대표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 <팔도기생> <아리랑>을 상영한다. 이 외에도 단편을 모아 소개하는 ‘음악단편 초대전’, 제천영화제의 명물 ‘시네마 콘서트’가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을 유혹한다. 여기에 제천영화제 최고의 ‘완소’ 프로그램 ‘원 썸머 나잇’과 ‘제천 라이브 초이스’,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이 제천의 밤을 더욱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개막작 <영앳하트 - 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 스티븐 워커 | 영국 | 107분 | 35㎜
한 밴드가 있다. 밴드의 주요 레퍼토리는 아웃캐스트, 지미 핸드릭스, 라디오헤드 등의 로큰롤 음악이다. 온몸에 피어싱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젊은이들 아니냐고? 그랬다면 이 밴드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캐나다 극장까지 방문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영앳하트>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밴드의 이야기다. 인생은 60부터고 진짜 인생은 80부터다. ‘영앳하트 코러스’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81세다. 대략 30여 명으로 구성된 영앳하트 합창단은 공식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노쇠한 성대를 가다듬고 힘껏 목청을 내지르기도 하고 로큰롤의 리듬에 맞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몸을 흔들어보기도 한다. 까다로운 박자와 리듬을 따라가다 머쓱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주름진 얼굴에는 젊은 날의 설렘과 희열이 배어 나온다. 영화는 이들의 연습 장면과 멤버 개개인의 인터뷰를 교차편집하면서 합창단의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의 과정을 감각적인 영상에 실어 경쾌하게 보여준다. 중간 중간 삽입한 멤버들의 뮤직비디오도 흥겹다.
하지만 영화가 비추는 것은 행복한 노년의 모습만이 아니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그들의 하루하루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멤버들은 건강 적신호로 종종 연습에 참가하지 못하기도 한다. 결국 공연을 앞두고 두 명의 멤버가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완성한 무대. 살아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그들의 공연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폐막작 <비지터 The Visitor>
2007 | 톰 맥카시 | 미국 | 108분 | 35㎜
삶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뜻밖의 깨달음을 선사한다. 월터 역시 아무 연고 없는 타렉을 만나 교감했을 때 그러한 각성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경제학 교수 월터 베일. 그는 뉴욕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만에 자신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하지만 그의 아파트에는 낯선 젊은이들이 거주하고 있다. 월터는 침입자들을 보고 깜짝 놀라지만 곧 불법체류자인 이들이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된다. 불쌍한 마음에 이들을 내치지 못한 월터는 시리아 출신인 음악가 타렉과 그의 여자친구 세네갈인 자이나브와 함께 기이한 동거를 시작한다. 두 이방인과의 생활은 월터의 삶에 차츰 변화를 가져온다. 타렉의 아프리카 드럼 젬베 연주가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심장 가까이에서 휘몰아치는 젬베의 열정적인 비트는 월터의 잃어버린 열정을 일깨운다. 월터는 타렉에게 젬베 연주를 배우면서 활력을 되찾는다. 클럽과 공원으로 연주를 다니며 월터와 타렉은 깊은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타렉이 불심검문에 걸리면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타렉을 돕기 위해 애쓰던 중 월터에게 또 한 번의 결정적인 만남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깃발> <시리아나> <마이클 클레이튼> 등의 배우로 더 유명한 톰 맥카시의 두 번째 연출작. 맥카시는 나이, 국적,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 두 남자의 연대를 섬세하고 깊이 있는 드라마에 담아낸다. 타렉의 사건을 통해 불법 이민자에 대한 미국 정책을 비판하는 영화의 시선도 설득력 있다. 미국 개봉 시 일제히 평단의 갈채를 받은 리처드 젠킨슨의 연기가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제천영화제 필견의 영화 8
전진수, 정우정 프로그래머의 추천작을 참고해 놓치면 후회할 영화 8편을 선정했다. 제천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음악영화들을 만나보자.
<잉베를 사랑한 남자 The Man Who loved Yngve>
2008 | 스티안 크리스티안센 | 노르웨이 | 99분 | 35㎜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천재지변이 일어났지만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에 살고 있는 17살 알레의 삶은 아무 문제가 없다. 누가 봐도 예쁜 여자친구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펑크밴드 결성을 앞둔 그는 한마디로 잘나가는 남자다. 잉베라는 전학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듀란듀란의 음악을 듣는 잉베는 알레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취향의 인간이지만 알레는 잉베의 매력에 자꾸만 빠져든다. 성장영화를 타고 흐르는 당대 최고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어보라.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Sita Sings the Blues>
2008 | 니나 패일리 | 미국 | 82분 | 35㎜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시타는 정절을 의심받아 군주이자 남편인 라마와 별거했던 인도의 왕비다. 한편 애니메이터 니나는 인도로 파견근무 간 남편으로부터 이메일로 이별을 통고받는다. 시타와 감독 자신이기도 한 니나의 사연이 번갈아 진행된다.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를 재해석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서 세 가지 형태의 그림자 인형을 통해 고대와 현대의 희비극을 동시에 전해준다. 인도의 전통음악과 1920년대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아넷 핸쇼의 조화가 감미로운 작품이다.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Two-eyed Ireland>
2007 | 임진평 | 한국 | 63분 | HDV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바드’는 TV 드라마 <아일랜드>의 삽입곡 ‘서쪽 하늘에’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두 번째 달’의 멤버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 이들은 2007년 아일랜드 음악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각자의 악기만 들고 아일랜드로 향한다. 아일랜드는 두 번째 달의 1집 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한 린다 컬린의 고향이기도 한 곳. 음악에 대한 열정만을 안고 떠난 여행이지만 바드 멤버들은 아일랜드의 음악에서 아이리시인들의 고단한 삶과 아픈 역사를 발견한다.
<위대한 사운드의 세계 Great World of Sound>
2007 | 크레이그 조벨 | 미국 | 107분 | 35㎜ | 시네 심포니
폭스TV의 <아메리칸 아이돌>은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이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위대한 사운드의 세계>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온 ‘아메리칸 아이돌’ 현상을 비판한 영화. 마틴과 클래런스는 신인 가수 발굴 오디션에 참가하지만 사기를 당한다. 영화는 실제로 오디션을 열어 진짜 오디션의 현장을 보여준다. 영화 속 오디션 참가자들은 대부분 배우가 아닌 몰래 카메라로 찍힌 실제 참가자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도쿄 랩소디 Tokyo Rhapsody>
2007 | 이소무라 이츠미츠 외 10명 | 일본 | 130분 | 35㎜ | 시네 심포니
감독 11인이 일본의 가요곡을 소재로 만든 옴니버스영화. 가요곡은 일본 근대민요에 뿌리를 두고 1950~1960년대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일본 특유의 음악 장르. 영화의 원제인 ‘인생은 가요곡이에요’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의 가요곡에는 꿈과 사랑, 청춘과 배신, 행복과 복수 등 삶의 희망과 황폐함이 녹아 있다. <워터보이즈> <스윙걸즈>의 야구치 시노부, <마을사진첩>의 미하라 미츠히로 등이 각각 메가폰을 잡은 11편의 단편이 다양한 삶을 노래한다.
<아니타 오데이: 재즈 가수의 일생 Anita O’Day: The Life of a Jazz Singer>
2007 | 로비 카보리나, 이안 맥크러든 | 미국 | 91분 | Digi-beta | 뮤직 인 사이트
‘Sing, Sing, Sing’ ‘Sweet Georgia Brown’ 등으로 1950~1960년대를 풍미한 재즈 보컬리스트 아니타 오데이의 삶의 궤적을 쫓는 영화. 편도선수술, 약물중독, 낙태, 구속 등으로 점철된 오데이의 삶은 재즈를 만나면서 이 모든 불행을 극복한다. 다큐멘터리는 자유로운 멜로디와 스윙감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재즈가수 아니타 오데이의 빛나는 순간들을 모아 보여준다. 2006년 타계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음반 작업, 공연 영상 등을 만날 수 있다.
<밥 말리: 엑소더스 77 Bob Marley: Exodus 77>
2007 | 앤소니 월 | 영국 | 93분 | Digi-beta | 뮤직 인 사이트
레게음악의 신봉자가 아니어도 ‘밥 말리’라는 이름 석 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밥 말리는 ‘Legend’로 레게음악 음반 최다 판매 기록을 보유한 대표적 레게 뮤지션. 영화는 뉴스 및 텔레비전 자료화면과 그의 음악을 통해 생전의 밥 말리를 되새긴다. 기록화면과 밥 말리의 음악이 교차하는 영상 이미지는 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BBC의 예술 프로그램 <아레나>의 연출자이자 마틴 스콜세지의 <노 디렉션 홈: 밥 딜런>을 공동 제작한 앤소니 월이 메가폰을 잡았다.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
1927 | 알랜 크로스랜드 | 미국 | 88분 | 35㎜ | 주제와 변주
이번 제천에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 브로드웨이의 인기 뮤지컬을 영화화한 <재즈 싱어>는 할리우드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다. 대대로 유대교 성가대로 활동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재즈가수가 되고 싶은 재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으로 떠난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재즈가수로 성공해 브로드웨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지만 집안의 부름으로 다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만 보고 가면 아깝지!
제천영화제에서 영화만 보고 돌아가는 것은 축제의 반만 즐긴 것이다. 올해 제천영화제는 영화 못지않게 음악 공연의 라인업이 ‘빵빵’하다. 먼저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원 썸머 나잇’은 네 가지 컨셉으로 4회 공연된다. 신촌블루스, 정경화, 봄여름가을겨울이 ‘메모리 나잇’에 DJ DOC가 ‘파티 나잇’에, 자우림과 바드가 ‘밴드 나잇’에, 크라잉 넛과 마우 프로젝트, 마이 앤트 메리가 ‘프리 나잇’을 통해 차례로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제천 라이브 초이스’에서는 타루, 오리엔탈 펑크 스튜, 캐스커의 음악과 마임이스트 고재경과 피아니스트 윤효간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신인 뮤지션 등용문이나 다름없는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