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간이역과 객지풍경.
강물과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숍에서 낯선 사람과 부딪치다. 초록 수풀 속에서 전해오는 밤 물결치는 소리. 풀향기는 정신을 해이하게 늘어뜨리고 풀벌레 소리는 지쳐버린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그때 우리는 똑같이 별리의 슬픔을 안고 있었다. 상심한 마음으로 양평 강가를 걷다가 초라한 간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20대의 감성으로 우린 서로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다 어느 눈 오는 겨울밤 양수리로 여행을 떠났다. 신작로를 건너면서 웃고, 지나가는 소달구지를 보고서 또 웃었다. 눈 내리는 강가는 참으로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사방이 낭만이었다. 낭만과 여흥이 숨어 진을 치고서 사람들을 맞았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 나와 버스정류장이 마주 보이는 찻집으로 올라갔다.
빨갛게 불꽃이 타오르는 곤로를 끼고 앉아 지나간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십 년이나 비껴 갔다. 우리가 처음 기차 여행을 떠났던 청량리 역사는 세월 따라 엄청난 속도로 변해 갔다. 우선 간이역마다 모두 통과하는 비둘기호 열차가 사라졌고 곧이어 통일호 열차도 없어졌다. 겨우 무궁화호만 살아 남았는데 그나마 운임료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새마을호와 우등고속버스가 생겨나더니 KTX 급행열차마저 생겨났다. 서울역에서 부산까지 단 3시간만에 완주하는 초고속 급행열차. 언젠가 대방역에 서 있을 때였다. 앞뒤로 길게 잘 뻗은 KTX 급행열차가 지나가는데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지금 청량리 역사로 가고 있다.
몸은 중년이 되어 노쇠현상을 호소해도 마음은 아직도 이팔 청춘인 나는 요즘 세월을 거꾸로 되돌려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 나이 오십에 이르고 보니 지난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나이 오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 나이 스물 여덟 살 때 그러니까내 어머니가 쉰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막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혼수 예단을 준비하기 위해 이모와 함께 동대문 시장을 헤매고 있는데 엄마의 부고장이 날아든 것이었다. 결혼식을 열흘 앞둔 날이었다. 오랜 병고 끝에 인생을 마감한 엄마는 큰딸의 결혼식만큼은 꼭 보고 나서 죽겠다고 입만 열면 말했었다.
"어서 날 받고 혼수 준비하거라."
대학 졸업하자마자 서두른 결혼이었다. 미리 이불부터 사 다락에 올려놓고 맞선자리를 골라 골라를 하던 엄마였다. 장남도 안 된다. 외아들은 더더욱 안 된다. 딸보다 학력이 낮거나 집안이 빈한해서도 안 된다. 차남이나 막내 아들 중에서 마음이 너그럽고 순한 사윗감이어야 한다. 직업은 안정된 직장인을 원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은 위험성이 있기에 아예 맞선 자리에서 제외시켰다.
전문직이나 기술직도 좋아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대졸 이상이어야 했다. 장모의 체면과 집안의 위신을 생각해서였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는 것을 눈치 채고는 더 결혼을 닦달했는데 아무리 사윗감을 들이대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직업이 마음에 들면 집안 내력을 걸고 넘어졌고 마지막에 가서는 꼭 인물타령을 했다. 엄마의 사윗감 조건은 끝도 없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제 일 순위는 인물이었다.
"옛날부터 사람은 인물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잘생긴 사람 치고 못 사는 사람 없다. 거지는 거지같이 생기고 학자는 학자답게 생기고 막노동꾼은 막노동꾼답게 생겼다. 인물이 먼저다. 학벌도 집안도 그 다음이다."
엄마의 인물 타령은 끝도 없었다. 엄마의 처녀 적 이야기도 대개 인물이야기부터 시작됐다.
"내가 소싯적에 얼마나 인물이 좋았는고 하니 우리 동리는 물론이고 이웃 동리, 아니 먼 동리에서까지 날 구경왔었다. 너희 외할머니께 물어봐라, 사실인가 아닌가."
외할머니까지 갈 것도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아버지에게 갔다. 엄마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빠, 엄마 처녀 때 인물이 그렇게도 좋았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가 너희 엄마 인물에 반해서 결혼한 것 아니냐, 먼 이웃 동네까지 소문이 났었단다."
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듯 새삼스레 황홀한 감격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먼저 엄마에게 아빠의 인물 만족도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내가 왜 너희 아버지와 결혼한 줄 아냐?"
"왜? 아빠가 잘 생겨서."
"잘 생기긴 뭐가 잘생겨? 하도 좋다고 매달리니까 할 수 없이 불쌍해서 결혼해 줬지. 그리고 한가지 막내아들이라는 조건이 있어서였지, 난 죽어도 시부모는 못 모시거든."
세상에…… 어쩌면 그 당시에 저런 당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읍내에만 나가면 총각들이 내 얼굴 한번 보기 위해 줄을 이었단다,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도 얼른 내려와 내 얼굴 한번 쳐다보고 가고, 어떤 총각은 내 손에 인절미도 갖다 주고, 동동 구리무도 갖다 주고, 우리 뒷집에 사는 성배라는 총각은 내 얼굴 보기 위해 새벽부터 우리 대문 가를 어슬렁거리다 외할아버지에게 들켜 혼쭐나기도 했단다."
"뭐? 성배 성배라구, 그건 또 누구야,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또 있었어?"
잠자코 듣고 있던 아버지가 또 나섰다.
"성배 성배 몰라? 사짜이꼬 남편 말야."
"아! 난 또 누구라구. 그런데 그 사람 얼굴도 시커멓고 못났던데."
"그러니까 나한테 퇴짜를 맞았지."
엄마는 그런 식으로 인물타령을 하며 자신은 못난 사람은 아예 상대도 안 하고 살았다고 걸핏하면 말했다. 그러면서 장차 사윗감과 며느리 감은 반드시 빼어난 인물이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못 박았다. 맞선 제의가 들어오면 사진으로 일차 테스트를 한 다음 실물을 반드시 면접 보는데 그때마다 각종 구실을 붙여 퇴짜를 놓았다.
남자가 키가 작다. 눈이 째졌다. 볼썽 사납게 광대뼈가 튀어 나왔다. 인상이 재수없게 생겼다. 젊은 남자가 배가 나왔다. 어깨가 구부정하다. 다리가 벌어졌다. 눈동자가 동태 눈깔처럼 썩었다. 눈에 바람기가 가득하게 생겼다. 눈에 성깔이 잔뜩 든 게 여자에게 주먹질 깨나 하게 생겼다.
주색잡기에 빠질 인상이다. 뒷모습을 보니까 복이 올려다가도 달아나게 생겼다. 그건 또 어떤 판단에서 온 말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아무튼 구실도 가지가지였다.
심지어 시어머니 자리가 눈이 독하게 생겼다 하여 퇴짜를 놓기도 했다. 엄마의 말에 일언반구 토를 달거나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난리가 났다. 그리고 한번 퇴짜를 놓고 나면 두 번 다시 심사하는 일도 없었다. 마지막에 걸려든 게 남편이었다. 엄마는 드디어 합격점을 내리면서 말했다.
"체격이 반듯하고 이목구비가 훤하고 착해 보여서 마음에 든다. 영화배우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만하면 됐다. 직장도 안정되고."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혼사가 급물살을 타고 진행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생명줄은 마지막 힘을 다해 가고 있었다. 폐암 말기였다. 사람이 숨을 쉰다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었다.
그 단말마적 고통을 하고서도 혼숫감을 직접 고르겠다고 나섰다가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때가 엄마 나이 오십이었다. 그 나이 오십이 어느새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친구들 중에는 벌써 손자 손녀를 본 축들도 있다. 경자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데 제작년에 결혼한 아들한테서 벌써 손자 손녀가 둘이나 태어났다. 현미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벌써 다 시집 장가보내 손자가 셋이다. 나는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는데 아직 대학생이다. 경자와 현미는 얼굴에 주름살도 별로 없는데 벌써 할머니 소리를 듣고 산다. 재주도 용치.
나는 그럴 것을 대비해 아이들에게 미리 다짐해 두었다. 결혼은 너희들 마음대로 할지라도 아이는 천천히 낳거라. 난 벌써부터 할머니 소리 듣는 것 싫다. 이런 내 모습을 두고 남편은 말한다.
"글쎄 그게 당신 마음대로 될까."
지하계단에서 올라오니 세상은 별천지 같다. 롯데백화점은 청량리 한 가운데를 점령하고 나서 엄청난 속도로 사람들을 흡수하고 있다. 거리는 노점상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옷가게마다 중국제품이 헐값에 마구 팔리고 있고, 밝은 색조의 음감이 거리 풍경을 색칠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창가 588 거리도 산뜻한 표정으로 옛 모습을 감추고 있다. 답십리 굴다리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거리마다 표정을 달리 하고 있다. 하지만 성 바오로 병원 앞길은 옛날과 비슷하다. 고등어자반과 오징어 갈치 등, 각종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찻길을 거의 메우다시피 하고 있다. 그 뒤로 이어진 야채전, 과일전은 싱싱한 눈요깃감을 제공한다. 그 거리를 한참 걸어 제기동 쪽으로 오다 보면 오밀조밀한 가구상이 나타난다.
그 맞은편이 경동시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구경은 사람을 살맛 나게 한다. 특히 재래시장은 아련한 옛 풍경과 함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싸구려가 지천으로 넘쳐나는 장터는 호기심을 잔뜩 부려놓고 손에 손에 잔뜩 먹거리를 매달고도 지칠 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나는 거리에 넘쳐나는 싸구려 옷가지를 외면하고 발걸음을 역사로 향했다.
롯데백화점 옆 넓은 광장이 다 청량리 역사였는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한쪽으로 다 막아 놓았다. 백화점 뒤쪽으로 난 계단 위로 보이는 건물이 청량리 역사였다.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전광판에 불이 켜진 채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나마 음식점과 옷가게 신발가게 등이 주류였다. 정면으로 보이는 승차권 판매소와 왼쪽으로 보이는 개찰구가 간신히 역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 도착 역명과 시간표는 보이는데 운임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판매소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운집해 있는지 나는 간신히 역 시간표만 확인하고는 쫓기듯 빠져 나오고 말았다. 역사 계단을 내려오는데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았다. 뙤약볕이 등뒤를 사납게 내리 덮치고 있었다.
노상에는 버젓이 의류상이 활개치듯 벌어져 있었다. 버스 환승소가 보였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심심하면 기차 여행을 떠났었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면 이상한 열기가 우리 마음을 확 휘어잡았었다. 이십 여 년 전만 해도 서울역서 의정부로 가는 열차가 있었다. 전철말고,
남편과 내가 기차에 오르면 승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곤 했었다. 잘생긴 남녀 한쌍이 나타나니 객실 안이 다 환해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귀엣말을 나누며 웃었다. 우리 이제부터 추억 여행을 떠나자고.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잠시 강철을 생각했다.
이강철. 그는 우리 학교 미대생이었다. 유난히 여학생이 많은 미대에서 그는 청일점이 되었다. 부모가 모두 화가인 그는 태중에서부터 화가였는지 모른다. 부모를 닮아 세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일찍부터 색감이 뛰어났고 손재주가 좋아 손으로 하는 거면 무엇이든 잘했다. 나무를 깎아 목각인형도 만들었고 그곳에 작은 글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매듭도 잘했다. 성격은 감성적이었다. 비만 오면 술이 고프다고 했고 여행을 떠나자고 졸랐다.
어떨 땐 비가 내리는 캠퍼스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혼자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학교 내에 파견돼 있던 공안요원에게 찍히는 일도 있었다.
이강철. 그는 우리 사범대뿐만 아니라 인문대와 멀리 공대에까지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름이 워낙 특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놓고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야! 이 강철 같은 놈아."
그러면 그는 반박했다.
"그래 이 약골 같은 인간아."
예술가의 사고(思考)는 항상 비정상적이라나?
그가 말했었다.
"아티스트의 사고가 평범하다면 그건 아니지, 그건 문제가 있다는 증거야."
그의 예술론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것들이었다. 정상을 비정상으로 파격을 정상으로 취급하곤 했다. 한번은 남영동 숙대 앞을 지나는데 숏 팬츠를 입은 여학생이 그를 보더니 손에 쥐고 있던 장미꽃 한송이를 던져주고 가는 것이었다.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 꽃을 받아들더니 눈물을 흘렸다.
아! 아! 내 생애의 즐거운 순간이여.
시간이 갈수록 나는 도무지 그의 사고(思考)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말고는 남자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그때 우리 동년배들은 모두 짝이 있었다. 짝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다 못해 등이 구부정하고 못난이 삼형제 같은 형철이 강민이 정식이 일당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기적이라 표현했다.
모범생으로 소문난 연규철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전도사라고 소문난 그는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내 반응은 단연코 노우였다. 엄마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외워대던 인물타령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여자친구를 만들었단 말인가. 내 먹기 싫은 떡 남주기도 싫다고 나는 어느새 그에게 괘씸죄를 씌우고 있었다. 그렇게 좋다고 따라 다닐 땐 언제고 벌써 다른 여자애를 꿰어 차?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주걱턱 경숙이도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학교에서 소문난 야구선수였다. 동정인지 아님 호기심인지 그 야구선수는 경숙이를 옆에 끼고 다니면서 온갖 착한 티를 다 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었다. 그 커플이 가장 먼저 깨질 거라는 걸.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 다음 차례가 바로 나와 이강철이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이강철 주변에 여자가 많이 꼬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문을 일축하며 주말마다 그와 기차 여행을 떠났다. 청량리에서 밤 기차를 타고 강릉이나 정동진으로 향했다. 그때만 해도 비둘기호 완행열차가 있었다.
청량리에서 밤 11시 중앙선 열차에 오르면 다음날 새벽 다섯 시쯤 강릉역에 도착했다. 잘하면 해맞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어린 날 내 가슴을 울리며 떠오르던 햇덩어리,
바다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지글지글 타오르던 해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했다. 그 해를 맞이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나는 그 해맞이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
「보라 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
누군가 옆에서 유행가 가사를 시처럼 외우고 있었다. 가수 조영남이 당장이라도 나타나 노래를 부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감격하다못해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기야 너무 멋있다."
과연 신(神)이 해와 지구와 달을 창조했다는 말이 실감났다. 신이 아니라면 누가 과연 저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태양은 예술 그 자체였다.
"이건 예술이야 예술."
그 역시 감격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강릉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간이 음식점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었고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고속버스를 타고서 서울로 귀경했다. 이강철은 나 말고도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 미대생들과도 강릉을 여러번 갔다왔다고 했다. 명목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와 기차 여행을 그만두게 된 것도 다 그 이유에서였다.
한번 감정에 빠지면 다시는 못 헤어나는 게 나였다. 푹 빠져서 혼미를 거듭하다 된통 혼이 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친구들이 아무리 이강철의 비리를 말해도 나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저 내 감정이 소중했다. 감정적으로 만족하면 옆에서 지진이 나고 해일이 일어도 상관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남의 시선 따윈 관심도 없었다. 뭐든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고 그 이왼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소문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왔다. 이강철이 미모의 여대생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녀는 제약회사로 유명한 모 기업의 막내딸이었다. 당시 그 집안은 명예와 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여성지에 그 집안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이강철이 평소에 왜 그토록 집안 혈통 운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는 소문난 부잣집 딸답게 화려하고 야했다. 야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옷도 명품만 입는다는 소문이었다.
얼굴과 몸매가 받쳐주니 완전 모델감이었다. 육감적인 몸매에 서양적인 이미지가 그녀의 외모를 더 빛나게 했다. 그러니 당연히 옷차림이 환상적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미대생이었다. 공부를 하러 학교에 오는지 아님 패션쇼를 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지 모를 정도라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나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사시사철 청바지에다 생전 가야 스커트 한번 입지 않았다. 화학 실험할 때 약품이 튀면 구멍이 나기 때문이었다. 생물학이 전공인 나는 각종 실험 기구에 세균 이름만 외워도 머리가 빠개질 정도였다.
더구나 나는 멋내고 모양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적인 감각도 둔했다. 반면 이강철은 미 지상주의자였다. 곡선과 색감을 중시했고 내게도 은연중 그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무시
했다.
아무리 그가 내 마음에 들어도 한 사람 때문에 생전 입지도 않던 스커트에다 화장을 한다는 건 왠지 자존심 상하는 일 같았다. 그는 만날 때마다 옷차림이 달랐고 헤어스타일도 수시로 바뀌었다. 옷과 머리에 액세서리도 자주 바뀌었다. 운동화도 옷 색깔에 맞춰 신을 정도였다. 긴 머리를 말총처럼 따 내리기도 했고 그대로 빗어 내려 산발하기도 했다. 성격은 소심한 반면 세세한 구석도 있었다.
말 한마디도 그냥 허투루 흘려 듣지 않았는데 그 점이 몹시 나를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 자기는 허점 투성이면서 내게 완벽할 것을 강요하는 것도 몹시 못마땅했다. 제 눈에 든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든 티를 뽑겠다는 게 그의 심사였다. 점차 실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번 실증이 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게 나였다. 아무리 감정을 중시해도 실증이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헤어졌는데 생각지도 않은 후유증이 밀려든 것이다. 허전함, 그건 극도의 허전함이었다. 그때는 대학도 졸업한 때였고 집안에서는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맞선을 볼 때마다 그와 비교가 되면서 자꾸 파토가 나는 것이었다. 이강철은 예술지상주의자였는데 맞선 상대자들은 모두 현실론자들이었다. 한마디로 모두 돈과 잇속에 밝은 속물들이었다.
허전함과 함께 외로움이 머리를 끝까지 침투했다. 내 성격과 전혀 상관없는 후회와 미련이 그를 향해 잔뜩 돋아나 있었다. 그때 나는 나처럼 이별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민옥이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일단 청량리에 나왔는데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무작정 청량리 역사(驛舍)로 들어갔다.
"일단 목적지까지 승차권을 끊었다가 중간에 내리던가 그러자구."
민옥이와 나는 서로 웃으며 말했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떠나는 여행길은 더 많은 흥미 거리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우선 양평까지 기차표를 끊었다. 중간에 가다가 좋은 곳이 나타나면 거기서 내리고 안 나타나면 끝까지 가기로 했다. 드디어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청량리 굴다리를 지나 망우리 석탄 지대를 지났고 도농리를 지났다. 바깥풍경으로 논밭과 강물이 수없이 지나갔다.
오밀조밀한 상가와 가난한 읍내 풍경도 지나갔다. 그러다 뙤약볕 논에서 김매기를 하는 농군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곳은 능내역 다음인 양수리였다. 물 구경은 나도 좋아했지만 민옥이도 엄청 좋아했다. 양수리역은 그야말로 시골 역사답게 작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푸른 벌판과 함께 수초로 덮인 물가가 나타났다. 면사무소도 보였고, 시골 다방과 음식점도 몇 보였다.
자동차가 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고추가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삶아서 검게 변해버린 토란대와 산나물도 보였다. 그 시멘트 길을 따라 한참 내려오니 드디어 양수리 물가가 나타났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 모텔과 위락시설과 함께였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갈대숲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물오리가 떼를 지어 강을 유영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당겼다. 그 강을 끼고 초록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난 내가 싫다."
나는 강물 위 솜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강철을 붙잡지 못해서?"
민옥이는 내 말을 전혀 왜곡했다.
"아니, 다른 여자 좋다고 도망간 그 치를 못 잊는 나라는 인간이 정말 싫어서."
"그렇다고 자신을 학대할 필요까진 없잖아."
"그러는 너는 왜 잊지 못하는데."
"나는 원래 그렇게 못난 인간이잖아, 감정처리를 못해서 질질 짜기나 하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하면서 민옥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말했다.
"이십 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글쎄."
"적어도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 어떤 형태로든 변해 있을 거야, 그치."
"그렇겠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물오리에 시선을 던졌다. 어미 물오리가 고개를 물속으로 처박자 새끼들도 함께 물속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내 목을 잠시 휘감고 지나갔다.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가 앉았다. 위를 쳐다보니 어떤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 느티나무가 아마 백년도 넘었다지?"
"그렇다나 봐."
"이렇게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능하겠지."
"너는 자신 있니?"
민옥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나 역시 말했다.
"실은 나도 자신 없어."
"그렇다면 우리 이런 감정놀음 집어치우고 그만 잊어버리자, 그깟 것들 잊어버리고 새로운 상대 만나자."
"그러자구."
그후 민옥이는 석 달도 안 돼 웨딩마치를 올렸다. 집안에서 정해둔 남자였다. 지방 중소도시에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한 남자라 했다. 하지만 나는 쉽지 않았다. 엄마가 자꾸 태클을 걸고 나 역시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후 나는 더욱 속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살다보니 소위 신세대 주부가 되었던 것이다. 날마다 드라마에 빠지고 자식들 남에게 뒤쳐지지 않게 키우다보니 어느새 소모품처럼 낡아져 있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자 비교적 자유스러워졌다. 이제부터 자기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라고 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며 기차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자각증상을 일깨우는 효능이 있었다. 20대에 느꼈던 인생의 의미와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느끼는 인생의 의미는 남달랐다.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상하게 초조하고 불안했다.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몸도 예전같지 않아 피곤을 거듭 호소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업이 은연중 기울고 있었다. 겉으로는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무의식 중 나는 그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참 돈이 들어가야 할 시기였다. 아들은 군대 보내면 된다지만 딸은 달랐다. 딸은 나를 닮아 의지가 약하고 매사에 의존적이었다.
아무리 다그치고 야단쳐도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남들은 졸업하면 취업하기 위해 컴퓨터다 외국어 강습이다 쫓아다니기 바쁜데 딸은 옷타령이나 해대고 음악에 빠져 지냈다. 도무지 현실감각이 없어 보였다. 날마다 외우는 게 외국여행이었다. 공주병도 그런 공주병이 없었다.
"엄마 아빠는 능력 없으니까 니가 벌어서 외국여행을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젊었을 때 내 모습과 똑같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을 자식이 닮는 것처럼 두려운 것도 없었다. 대학졸업 후 한번도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나는 모험 기피론자 무사안일주의자였다. 힘들고 신경 씌이는 건 아주 질색이었다. 그저 편안한 게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명예퇴직 당한 후 사업에 손대기 시작한 후부터 불안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얼굴에 칼주름이 역력했다. 잔주름도 아닌 칼주름은 눈가를 움푹 패이게 했고 웃을 때마다 입가에 주름도 깊어졌다.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맛사지를 해도 소용없었다. 세월의 늙음을 무슨 수로 막으랴. 언젠가 친구들이 농담처럼 한 말이 생각난다.
"공부 잘 하는 년이 얼굴 예쁜 년 못 당하고, 얼굴 예쁜 년이 남편 잘 둔 년 못 당하고, 남편 잘 둔 년이 자식 잘 둔 년 못 당하고, 자식 잘 둔 년이 돈 많은 년 못 당하고, 돈 많은 년이 건강한 년 못 당하고, 건강한 년이 세월 못 당한다."
어느날인가부터 힘이 빠지더니 피곤이 누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병원에 갔더니 골다공증이라 했다. 세상에…… 말로만 듣던 골다공증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의사는 컴퓨터로 출력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비교적 위쪽은 양호한데 아래 대퇴부로 내려오면서 여기 구멍이 보이죠? 여기 흰색 말입니다. 더 이상 진척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약물요법을 해야 합니다. 좀더 심하면 화학요법을 해야 합니다. 아직 폐경은 안 됐죠?"
"네, 아직요."
"폐경이 되면 골다공증 현상이 심해지니 미리 대비하셔야 합니다. 에스트로겐이 끊기면 증상이 심해지니까요."
순간 정신이 멍했다.
"화학요법은 어떤 건가요?"
"약이나 주사로 하는 호르몬 요법인데 일 년에 두 번씩 암 검사를 받아야 합니
다. 간암검사 유방암 자궁암 검사입니다."
"그렇게나 위험한 걸."
"그래도 뼈에 구멍이 뚫려 부러지는 것보단 나아요."
암검사라니, 생각만 해도 살이 떨렸다. 내 엄마가 그 암으로 쓰러지지 않았던가. 두려움이 가슴을 덮치면서 마음이 심하게 요동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근심 걱정이 몰려들더니 우울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갱년기 우울증이었다. 늙음이 몸과 마음을 덮친 것이다.
"민옥아 나 골다공증이래, 넌 몸 괜찮니?"
"나야 뭐, 뭐? 너가 골다공증이라구?"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갑자기 잔뜩 긴장돼 있다.
"응, 그리고 갱년기 우울증인지 자꾸 슬퍼져, 그이 사업도 예전같지 않고 힘든가봐."
"……."
"우리 나이가 그렇잖아, 예경이는 지난달에 유방암 수술 받았대, 다행히 초기라 위험하지는 않대나 봐."
어째 말끝이 수상했다.
"예경이 남편은 하도 술을 많이 마셔서 당뇨에다 고혈압이 심화됐대, 부부가 다 쌍으로 아파대니 애들 꼴도 말이 아니더라."
나는 갑자기 오른쪽 가슴이 뜨끔거렸다. 피가 일제히 가슴 쪽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요즘은 젊은애들도 암이 흔하대, 니 딸래미도 유방암 검사 받으라고 해봐, 20대 30대 처녀 아이들도 많이 걸린대, 중국에서 사막에다 핵실험을 많이 한 여파래, 그 분진이 한반도까지 몰려와 갑자기 암이 흔해진 거래."
나는 불안으로 가슴이 덜덜 떨린다. 골다공증이 문제가 아니라 암이라는 복병이 내 몸 속에 숨어 있다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억측이 머릿속을 감돈다.
"우리 남편이 갖다준 게 있는데 너랑 나랑 종합병원 가서 건강검진 받아볼래?"
"아니 난 됐어."
전화를 끊고 나니 공연히 기분이 나쁘다. 나는 습관처럼 TV를 켰다. 웃음 박사로 알려진 유명한 의사가 개그우먼처럼 멘트를 날리다가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여러분 살아 있는 것 감사하십시오, 병원에 가 보십시오, 여러분 나이에 있는 사람들 중 암병동에 누워 있는 분들 수두룩합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은 눈물 없이는 못 봅니다. 여러분 현재 삶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일 주일 전, 남편은 사업을 접겠다고 선포했다. 더 이상 계속 해봐야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 했다. 주식 팔고 시부모가 남겨 둔 지방에 있는 땅을 팔아 정리하고 나면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고 했다. 아들은 군대가면 될 것이고 딸은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건 휴학을 하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딸은 대성통곡했다.
말로만 듣던 파산이 이런 거라며 자꾸만 되묻더니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어차피 닥친 현실이었다. 그나마 집 한 칸 남은 것도 다행이었다. 원래부터 사업 체질이 아닌 남편은 당분간 쉬면서 재기를 노리겠다고 했다. 따라서 가정 경제도 초긴축에 들어갔다. 죽을병 아닌 이상 병원 출입도 삼갔고 먹는 것 외에 모든 씀씀이를 줄였다. 처음에는 죽을 것같이 힘들더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몰려왔다.
궁핍이란 단어는 내 생전에 처음 겪는 낯선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힘들게 살아본 일이 없었다. 풍족하진 않았어도 돈 때문에 자존심상하는 일 따위는 당해보지 않고 살았다. 절약이란 단어는 가끔씩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진 자로서의 여유였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다 돼 이런 일을 겪다니 이건 분명 TV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일이어야 했다.
낯섬과 분노가 내 의식 속에 스쳐갔지만 남편을 위해 참아야 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잃어버린 것보단 가진 게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신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짙은 가을 날, 느닷없이 민옥이에게 전화가 왔다. 돌아오는 토요일 압구정동에서 가까웠던 대학 동창들끼리 만나자고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민옥이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나가기로 했다. 정말이지 나가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여유롭게 현재 자기 위치를 자랑하느라 바쁠 텐데. 그러나 한편으론 호기심도 당겼다. 민옥이가 한 말이 귀에 쟁쟁했다.
"성숙이는 남편 몰래 콜라택 출입하다 덜미를 잡혀 혼쭐이 났단다."
"콜라택이라니?"
"청량리에 있는 노인네들 가는 무도장 있어, 현대 코아 4층 건물에……."
"세상에 망신당했겠구나, 어쩌니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서."
"이혼 얘기까지 나왔단다."
"웃긴다, 아참 이번에 수연이도 나오니, 미국에 갔다가 의사와 결혼했다던."
"걔 이혼하고 재혼했다는 말 있던데."
"뭐 재혼?"
"재혼한 게 문제가 아니라 지난달에 귀국해서 암 수술 받았대."
"무슨 암이었는데."
"응, 자궁경부암이었대, 자궁 들어내고 나서 골다공증도 생기고 그 바람에 우울증까지, 그래도 다행인 건 돈은 많아서 이번에 만나면 자기가 다 쏜다고 하더라."
"그나마 다행이다."
"아참 현자 말야, 걔 소식 들었니?"
"나야 모르지 왜 무슨 좋은 소식 있니? 걔 결혼도 않고 쭉 독신으로 살지 않았니?"
"뭐, 잘은 모르지만 결혼했다는 소식 있어."
"그래? 그렇담 이번 주말에 꼭 나가 봐야겠는 걸."
나는 무엇보다 현자의 소식이 궁금했다. 생물학과 중, 유일하게 독신론자였던 현자는 그 흔한 미팅 한번 하지 않았다. 남자 혐오증이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수녀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젊은 날의 헛된 꿈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나이 사십이 넘어 어느날 커플이 되었다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나는 민옥이에게 현자도 이번 모임에 꼭 나오느냐고 거듭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드디어 주말이 왔다. 주름살을 감추느라 파운데이션을 바르는데 손이 자꾸 빗나갔다. 아무리 덧칠을 해도 주름살은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아마 내가 제일 많이 늙었을 거야. 나는 공연히 세월 탓하며 얼굴의 주름살을 저주했다. 옷을 입으려고 장롱을 여는데 모두가 칙칙한 색깔들뿐이었다. 좀더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검정색 톤으로 사다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구두도 맞지 않았다. 평평한 단화만 신다가 뾰족구두를 신으려니 발목이 부러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좁은 스커트에다 스타킹을 신으니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정장에다 화장을 짙게 한 채 집을 나섰다. 골목길을 나서는데 어깨에서 핸드백이 툭 미끄러졌다. 핸드백을 집어 올리는데 이번에는 스카프가 스르르 풀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스카프를 집어 올리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에이 썅."
생각지도 않은 욕설이 튀어 나왔다. 깜짝 놀랐다. 썅이라니 이게 도대체 누구 입에서 나온 소린가. 스스로 기함할 것 같았다. 가을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다. 피부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내가 벌써 늙었구나. 나이 사십을 불혹의 나이라고 한다면 나이 오십은 지천명의 나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구두가 불안했다. 삐끗한 게 꼭 부러질 것 같았다. 걸을수록 다리가 후들거렸다. 에이 썅. 또다시 욕설이 나왔다. 아니 내가 자꾸 왜 이러지.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구두를 편한 단화로 바꿔 신었다. 그제서야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한결 편한 발걸음으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발이 신발 안에서 헛도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양말만 신다가 스타킹을 신으니 여유가 생겨 발이 빠지는 것 같았다.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그때였다. 내 앞으로 마치 부르기라도 한 듯 택시가 와 멈춰섰다. 나 역시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 택시에 올라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압구정동 현대 백화점이요."
"거기는 많이 밀릴 텐데."
"그러니까 빨리 가주세요."
손을 신발 밑으로 넣었다. 발 밑에 땀이 축축하게 배였다. 택시는 사거리를 지나 반포 입구에 닿았다. 국립묘지가 뒤로 보이면서 차량이 흐름이 둔해졌다. 그때 내 주머니 안에서 사랑의 협주곡이 울렸다. 핸드폰이 온 것이다. 화면을 보니 전혀 낯선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누구?
나는 핸드폰 뚜껑을 열면서 수많은 상상과 기대를 했다. 이상했다. 나이 오십에도 무슨 호기심이 그렇게 많은지 낯선 전화번호가 찍히면 자신도 모르게 설레는 것이다. 혹시? 라는 물음은 현재와 과거를 통째로 아우르면서 그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생각나게 했다.
"여보세요?'
"저어, 이현경씨 핸드폰 맞습니까?"
굵직한 중년 남자 목소리였다.
"그런데요?"
가슴이 갑자기 두근반 세근반 하면서 방망이질을 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 바쁜 시간에 전화를 해 내 이름을 확인한단 말인가.
"저어, 지금 ○○대학교 동창회 가는 길이시죠?"
"네, 그런데요."
"저도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과는 달리 신경질적인 대답이 나왔다.
"아! 글쎄 누구시냐니까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가 딸깍 끊겼다. 동시에 궁금증과 함께 수많은 이름이 떠올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 나왔다.
"혹시 이강철?"
핸드폰을 꼭 쥐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후면경을 보니 운전기사도 웃고 있었다.
"오늘 좋은 데 가시나 봅니다."
"좋은 데는 요 뭐, 대학 동창회 가는 거예요."
택시가 고속터미널에 이르자 차량의 흐름이 아예 정체됐다. 미터기를 보니 9000원이 넘어 있었다.
"엄청 밀리는구만."
운전기사가 혼잣말을 하면서 라디오를 켰다.
"자 잠깐만요, 택시 세워 주세요."
"네?"
"여기서 내려서 차라리 전철 타고 가는 게 낫겠어요."
택시를 내리니 차도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지하도로 들어서 3호선 전철로 갈아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했다. 사람들이 완전 짐짝처럼 포개져 있는 것 같았다.
"에이 썅."
또다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내가 자꾸 왜 이러지? 다음 전동차도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발을 디밀어 올라탔다. 그저 목적지까지만 눈 딱 감고 가자. 다짐한 후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뒤통수가 가려왔다.
누군가 꼭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안경 쓴 남자가 내 뒷모습을 쳐다보다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누구?"
동시에 좀 전에 핸드폰으로 어디 가느냐고 묻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러나 생각을 정리할 사이도 없이 밀려드는 승객들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전철이 압구정역에 닿았다. 짐을 떨구듯 전철을 빠져나와 출구를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데사람들이 내 옆을 수없이 부딪치며 지나갔다. 느닷없이 내부에서 음성이 들렸다.
아! 나는 그동안 너무도 편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남들은 저렇게 피 튀기는 경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동안, 나는 너무도 안일한 인생을 살았구나. 감사도 모르고 영혼사랑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살았구나.
밖으로 나오니 세상 물결이 한꺼번에 내 가슴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압구정동의 그 현란한 불빛이 강부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동리답게 부와 명예로 물결치고 있었다.
도로마다 에쿠우스 도요타, 리무진을 연상케 하는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보였다. 대부분의 성형미인이 이 압구정동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대형 백화점을 마주보고 있는 인도에서 요란한 음악이 뻥튀기 하듯 터져 나왔다. 젊은 대학생들이 브레이크 댄스 추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을 두고 비보이라고 한 딸아이가 생각났다. 나를 닮아 나약해 빠진 딸아이는 오늘 저녁도 컴퓨터 게임 하느라 정신이 없으리라.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은 여간 표정이 심각한 게 아니었다. 입만 열면 군대를 외치더니 막상 가려고 하니까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발길을 골목길로 옮겨 정신 없이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을 꽉
잡는 느낌이 들었다.
"놀랐지?"
배가 나오고 머리가 약간 벗어진 안경 쓴 남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같이 가자, 오느라 힘들었지."
그는 다정하게 팔짱까지 꼈다. 25년 만에 껴보는 팔짱이었다. 시쳇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누가 볼세라 자꾸만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그래도 끝까지 팔짱은 풀지 않았다.
"그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니?'
자세히 보니 그는 나이가 오십도 훨씬 더 들어 보였다. 옛날에는 날렵했던 몸매가 배불뚝이 중년으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이상하게 안돼 보였다.
"왜 그렇게 뚱뚱해진 건데?"
"그러는 너는? 하긴 옛날에도 넌 날씬한 편은 아니었지."
"뭐라구? 내 남편은 나보고 날씬하다고 했단 말야."
"그야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런 거지. 넌 그걸 사실로 알아 듣냐."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배를 찌르며 말했다.
"니 뱃살이나 빼구 나서 그런 말해라."
눈앞에 경복궁이 나타났다. 압구정동에서 유명한 뷔페 음식점이었다. 상호대로 궁중음식점답게 규모가 컸다. 그야말로 으리으리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직원이 미리 알아보고는 자리를 안내했다. 널찍한 홀은 미리 와 있는 중년남녀들로 꽉 차 있었다. 일부러 신경 쓰느라 그랬는지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야! 이 강철 같은 인간아, 넌 니 마누라 어디다 내팽개치고 옛날 애인 꿰어차고 나타났냐, 저건 제 버릇 남 못 준다니까."
"야! 이현경 공주병, 아 아니지 지금은 왕비병이지, 넌 어째 좀 많이 삭은 것 같
다. 남편이 속 썩이냐?"
여기저기서 말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남자 동창보다 여자 동창이 훨씬 많았다. 이강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악수하느라 바빴다. 여자 동창들도 그를 보기만 하면 서로 달려와 악수하며 심지어 포옹까지 했다. 동창들 중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날아온 경우도 있었고 꼭 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고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 치들도 있었다.
25년이란 세월의 흐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사는지 여전히 동안(童顔)에 여유가 넘쳤다. 그 중에서도 연규철은 선한 미소가 마치 수도승 같아 보였다. 그가 사람들 사이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더니 내게 다가왔다.
"현경아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지?"
"으 응."
"넌 여전하구나, 집에서 살림하느라 바쁘지? 남편하고 애들은 다 건강하고."
"으 응, 그런데 너."
난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와는 거리가 있었다.
"요즘 어떡케 지내?"
"나 사실은 목회자 됐어."
"목회자?"
"응, 신림동에서 교회 운영하고 있어."
"목회자? 교회?"
그때였다. 이강철이 갑자기 내 등뒤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현경아 아까 말야, 민옥이한테 오늘 동창회에 못 온다고 연락 왔었어."
"민옥이한테?"
"응. 무슨 수술날짜가 잡혔다나."
"수술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무 말도 없더니 갑자기 수술이라니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소
린가. 핸드폰을 꺼내 민옥이 번호를 눌렀다. 받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다시 걸었는데 역시나 받지 않았다. 그제서야 서서히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강철."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동창회에 와 있던 수많은 눈길들이 나와 이강철을 향했다. 모두 놀란 토끼눈에다 호기심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나 역시 얼마나 놀랐는지 남사스러워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중에서도 연규철의 당황하는 모습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런데 더 눈에 띄이는 광경이 벌어졌다. 출입구에 가슴이 푹 파인 원피스를 입은 성숙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제비족으로 보이는 아니 카바레 웨이터쯤으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였다.
세상에…….
"쟤 어떡케 된 거 아냐? 아니 여기가 어떤 자리라고 놈팽이를 끌고 나타나. 아구 남사스러워라."
언제 왔는지 민둥산 같은 머리칼을 하고서 수연이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수연이에게 말했다. 그래 넌 재혼한 남편과는 잘 지내니? 그보다도 수술 후유증으로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할머니가 다 됐네. 동창회장은 마치 그 간의 소문을 확인이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 말들이 많았다. 나는 또다시 민옥이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번에는 신호가 가자마자 받았다.
"어떡케 된 거니? 왜 여태껏 안 오는 건데?"
"현경아 나 수술 날짜 잡혔어, 다음주 월요일이야."
"수술? 갑자기 무슨 수술?"
"신장암이래."
"뭐어? 무슨 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덜덜 떨렸다.
"사 사실이니?'
"응."
"아니 언제부터 그런 건데?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무 말 없었잖아."
"응 그랬지, 그런데 아무래도 옆구리가 아픈 거야, 그래 대학병원 가 특진 받았는
데 암이래."
"세상에…… 나 그런 줄도 모르고, 민옥아 실망할 것 없어, 요즘은 기술이 좋아 수술로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대, 너무 걱정하지마,"
핸드폰을 끊고 돌아서는데 등뒤에서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주에 정식이 장례 치렀단다. 미국에 가서도 수술이 실패해 결국 땅에 파묻
었대."
"형철이는 상처한 지 이태만에 저도 암에 걸려 지금 아산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단다, 그 놈의 암이 뭔지 여러 사람 잡는구나."
"그런데 민옥이는 어느 정도래?"
"몰라, 수술이란 게 뚜껑 열어봐야 알지, 암튼 늦게 발견해 위험한가봐."
"아휴, 여기저기서 온통 떠나는 소리만 가득하구나."
"그렇게 저렇게 다 가는 거야, 그게 인생 아니겠어, 천년만년 살겠다고 악다구니 써봐야 눈 한번 질끈 감고 나면 떠나는 게 인생이라구."
"예경이는 좀 어떻대."
"여태 안 나타난 걸 보면 오늘 내일 한다는 게 사실인가 보다."
"암 초기라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다시 재발해 완전히 퍼져버렸대."
"남편도 와병 중이라는 데 참 안 됐다."
"나이는 못 속여, 여기저기 환자 소식만 들려오는구나."
"그런데 오늘의 히어로 현자는 끝내 안 타나는구나, 수녀 될 여자를 꼬신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궁금하지 않니? 그것도 나이 사십 넘어서 말야."
"나타나겠지, 그런데 강철이 말야, 저 녀석은 아직까지 멀쩡하네."
"저 녀석이 겉은 저렇게 웃어도 속은 오죽하겠냐, 마누라 바람 나 이혼해, 사업
말아먹어, 자식들 엇나가, 쟤 그동안 속 엄청 썩었다. 멀쩡한 게 기적이지."
"멀쩡하긴 내 눈엔 꺼져 가는 촛불 같다."
"암튼 저 녀석도 안 됐어, 지 좋아하는 그림도 포기하고 마누라 하나만 바라보고
살더니 뒤통수 맞고, 이젠 자식들 두고 먼저 떠나게 되었으니."
"그게 다 사랑 외면하고 현실을 선택한 결과가 아니겠냐, 언제는 현경이 아님 안
된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대더니만."
"지난 일 꺼내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 야 말조심해라, 저기 저기."
남자는 나를 가리키며 손으로 입막음 표시를 했다. 그러나 이미 다 듣고 난 뒤였다. 가슴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나면서 땅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나이 오십 아니냐, 지천명의 나이란다. 몸도 마음도 우리의 것이 아니여,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며 사는 거라구."
꺼져가는 촛불이라니, 이혼이라니, 사업을 말아먹다니, 그림을 포기하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린가. 한꺼번에 여러 소리를 듣고 나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그림을 포기했다는 말이 가장 이해가 안 갔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등뒤에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왁자한 음성이 들려왔다.
"자 한잔씩 하라구, 어차피 한번 살다 갈 인생, 근심 걱정 다 털어 버리고 한잔씩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성숙이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서 술을 마시며 연신 떠들고 있었다. 함께 온 남자는 어느새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 청량리에 있는 콜라택 단골이라며? 아까 그 남자는 어디 출신이야?"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너 창피한 줄은 아니? 너 왜 콜라택에 가서 우리 대학 출신이라구 공공연히 떠
들고 다니는 건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수연이었다.
"그게 어때서? 내가 없는 말 지어서 했나?"
"대학 자랑하는 건 좋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할 것 아냐?"
"그러는 너는 재혼한 남자와는 잘 지내니? 소문으로는 암 수술 받고 나서 상태가 안 좋다던데 살만한가 보지?"
그 말에 약오른 수연은 손톱을 성숙이를 향해 그대로 내리 그었다.
"이년아 그래도 난 너보단 나아, 너처럼 동창들 망신시키고 다니고 그러진 않아."
"이년이 어디서, 야! 이년아 니가 내 속을 알아? 내 속을 아느냐구."
드디어 년자가 나오더니 두 여자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는지 남자들이 한꺼번에 뜯어 말려도 소용없었다.
"야! 쟤들 말려, 저러다가 뭔 일 나겠다. 그런데 웬 여자들이 이렇게 힘이 세."
그런데 여자들은 왜 싸웠다 하면 머리채부터 잡는 걸까. 성숙이와 수연이는 남자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더 악착같이 싸웠다. 그렇게 싸움판이 벌어지는 데도 한쪽에선 태연하게 식사하고 이야기를 했다. 동창회장을 사업장으로 아는지 영업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숙아 수연아 이젠 그만 해, 오랜만에 만나서 이게 무슨 짓이야?'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어? 너 현경이 아냐?"
둘은 싸우다 말고 똑같이 말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까지 싸악 바뀌었다.
"그만들 해라, 창피하지도 않니."
얼굴을 들여다보니 가관이었다. 얼마나 쥐어뜯고 싸웠는지 립스틱이 얼굴 전체에 번져 있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수연아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나더니 말했다.
"이강철이 말야, 쟤 이혼하고 나서 암 걸려서."
"뭐어? 이강철이 암이라구?"
이번에는 성숙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원피스가 얼마나 많이 패였는지 가슴이 아예 훤히 드러나 보였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얼굴에 '천박'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는 것 같았다.
"알아, 방금 전에 들었어."
"괜찮니?"
"내가 무슨 상관이라구."
"그래도 그게 아니지."
풀어헤친 머리칼을 손으로 만지다 말고 또다시 성숙이가 말했다.
"옛정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소중은 무슨, 다 저 같은 줄 아나."
수연은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눈빛을 째리며 말했다.
"야! 니들이나 우리나 다 나이 오십이다. 이젠 중년을 넘어 노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구,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좋게 좋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자고, 무슨 소린지 알지? 언더스텐."
언제 다가왔는지 이강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바람에 성숙이와 수연이는 미안한 웃음을 짓고 물러났다. 이강철은 내게도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인생은 추억을 먹고사는 것인가 보다. 현경아 생각나니? 우리 대학 다닐 때 말야, 청량리에서 기차 차고 강릉 갔었잖아, 그때 바다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그랬잖아."
"뭐라구 했는데?"
"너 생각 안 나니?"
"응."
"섭섭한데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때 내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 나왔다.
"난 니가 나 버리고 부잣집 딸 선택해서 떠난 것만 생각나는데."
순간 이강철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배는 왜 그렇게 나온 건데? 얼굴은 바싹 마르고."
"복 복수가 찼대."
"뭐라구?"
그제서야 아차! 하고 방금 전에 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게 몸 관리를 잘 하고 살아야지."
"그러게나 말야."
그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갑자기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걸음이 휘청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욕을 했다.
"망할 자식, 그때 나 버리고 갔을 때 알아봤어야 했어. 하필이면 암일 게 뭐야."
눈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이 오십에 웬 눈물 바람이람. 동창회가 거의 파해 갈 무렵이었다. 한쪽에서 또 싸움이 벌어졌다. 성숙이와 수연이가 이강철을 사이에 두고 우격다짐을 하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강철이 둘 사이에 끼어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어이구 저것들 저것들."
중년남녀들은 모두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악수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척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을바람이 동호대교 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건물에서 뿜어내는 불빛과 함께 압구정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면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전철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데 낯익은 여자가 커브 길을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나는 온 거리가 떠나가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현자야! 현자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자의 모습은 곧 길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님 환상을 본 것일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강철의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넌 무슨 매너가 그 모양이냐?"
그는 숨이 찬지 색색거리며 말했다.
"간다는 말은 하고 가야지, 모두 너 어디 갔느냐고 찾고 난리 났었다."
"나 좀 전에 여기서 현자를 본 거 같아."
"뭐 현자를 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걔 오늘 안 왔잖아."
"그렇긴 한데 꼭 모습이 현자 같았어."
"잘못 본 거겠지, 그나저나 야, 우리 다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앞으로 연락 좀 하고 살자, 전화해도 괜찮지?"
"오야 마음대로."
좀 전에 들은 말이 생각나 아무렇게나 말해 버렸다. 그러자 이강철은 제 처지도 잊은 채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가슴이 찡했다. 그나 저나 아까 그 여자 분명 현자였는데.
그 사건이 있고 나서 6개월이 지났다. 이제나 저제나 이강철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일 "아직도 이강철 안 죽었니?" 하고 물어보면 남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파렴치범이 될 것이고 그냥 참고 있자니 그의 처지가 너무 불쌍했다. 다시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에도 이강철의 죽음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떡케 된 거지? 그때 분명 복수가 찬 걸로 봐서 길어야 6개월을 못 넘길 거 같던데. 살아 있다면 그동안 분명 연락이 왔을 텐데. 나는 궁금증을 참다못해 드디어 민옥이에게 전화를 했다.
민옥이는 항암 치료를 여러번 하고 나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다.
"누구? 이강철이 어떡케 되었냐구? 그야 성성하게 잘 살아 있지."
"어떡케? 암수술에다 복수까지 차서 위험했다며."
"세상엔 기적이란 게 있다지 아마,"
"뭐? 기적?"
"그래 기적 말야.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연규철이 그러던 걸."
"연규철? 그 신림동에서 교회 목회 한다던."
"응 그렇다나 봐. 아마 이강철이 그 교회에 나간다지."
"뭐어?"
"그보다도 이강철이 전처와 다시 합쳤다는 거 같던데, 아무래도 아이들 때문에 그랬겠지. 암튼 이강철 속도 넓어."
그래서 그래서…… 나는 속으로 가슴을 쳤다. 그러다 생각난 듯이 물었다,
"너 현자 소식 아니?"
"현자, 걔 소식 끊긴 지 오래 됐어, 핸드폰도 꺼지고 남편 사업이 잘 안 된다고 하더니 소식 두절이네, 무슨 일이 있나."
순간 압구정 거리에서 본 여자 모습이 생각났다. 혹시?
"혹시 말야, 아니 너 넌 괜찮니."
"괜찮긴, 거의 죽다 살아났지. 인명은 제천이라구 모든 걸 하나님 뜻에 맡기고 산
다. 이 참에 나도 연규철이 하는 교회에 나가볼까 생각 중이야."
"뭐라구?"
"놀라긴 농담 한번 한 걸 가지고."
전화를 끊자마자 이상하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환생(幻生)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이강철이란 이름이 내 생각 속에서 환생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환생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연규철이 하는 교회에 꼭 가 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연규철의 아내와 이강철과 재결합한 그의 아내의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갈 때는 꼭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 자랑할 작정이었다. 남편의 외모가 이강철과 연규철에 비해 훨 뛰어난 걸 꼭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악마적인 심리가 내부에서 치솟는 동안 나는 내내 웃었다.
그후, 가을이 두 번 지나가고 나서 아들이 제대하던 날이었다.
남편과 함께 청량리역으로 아들을 마중 나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수연이를 만났다. 수연이는 재혼한 남편과 함께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서 막 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배가 남산만큼 나와 뚱뚱한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응 대학교 동창."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그는 남편과 나를 바라보더니 묘한 웃음을 지었다.
"두분 다 인물이 훤하십니다."
당연하지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무려면 너희 부부만 하랴.
수연이가 표정이 쌜쭉해지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너 이강철 소식 아니? 이혼한 전처와 재결합했단다."
"알고 있어."
"뭐 벌써 알고 있다고."
내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수연이는 코웃음 쳤다. 그때 옆에 있던 남편이 물었다.
"이강철이 누구야?"
"응 있어, 당신보다 훨씬 못생긴 남자."
가을 바람이 역 광장을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수연이 부부와 함께 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데 못생긴 여자애가 우리 곁을 휙 지나갔다. 그때였다. 아들이 막 플랫포옴을 빠져 나와 이쪽으로 뛰어 오고 있었다.
"어 엄마."
아들은 모자를 벗어 흔들며 웃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보다 더 건강하고 듬직해 보였다. 짜식, 제 아빠와 외할아버지를 닮아서 얼짱 몸짱이잖아 어느 집 아들인지 차암 잘 생겼다. 나는 개찰구로 가고 있는 수연이 부부를 향해 소리쳤다.
"수연아 우리 아들 좀 보고 가."
"응?"
수연이 부부는 못 이기는 체하고 돌아서 왔다.
"우리 아들이야."
"정말 잘 생겼구나, 아빠 닮았나?"
수연이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아빠도 닮고 외할아버지도 닮고."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다 말고 출입구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세상에, 좀 전에 보았던 못생긴 여자애가 이쪽으로 팔랑 팔랑 뛰어 오고 있었다.
당장에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머! 아들은 얼짱 몸짱인데 여자 친구는 영 아니네."
수연이는 입가에 비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치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토록 인물타령을 외워 댔건만. 아들이 짧은 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내 여자친구. 자기야 인사드려."
"뭐? 자기?"
아니 이것들이 벌써?
"세상에 우리 아들이 벌써 커서 여자친구를 사귀었구나, 기특도 하지."
남편은 아들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기특은 무슨 기특."
나는 남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래 우리 아들 피곤하지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자."
내 말에 아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 여자친구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눈치 빠른 남편이 말했다.
"그래 여자 친구랑 놀다가 집엔 천천히 들어와라."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들과 여자애는 휙 뒤돌아서니 뛰기 시작했다,
"어이구 저런 저런. 저래서 아들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니까."
내 말에 수연이가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냐. 난 벌써 알았다."
수연이가 남편과 함께 개찰구를 빠져나가면서 우리 부부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러다 우리도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 되는 것 아냐?"
남편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그런데 당신 이강철이란 남자완 어떤 사이였길래 수연씨가 그런 말 하는 거야?"
"뭘 자꾸 묻고 그래? 당신보다 훨 못난 남자라니까, 그러니까 마누라한테 이혼당했지."
"다시 재결합했다며."
"자꾸 묻지 마, 짜증나게. 암튼 난 저 여자애 마음에 안 들어 알았지?"
"그래도 본인들 마음에 들면."
"들면 뭐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어."
"장모님 꼭 빼닮았군."
"뭐? 당신이 그걸 어떡케 알아?"
"어떡케 알긴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셔서 알지, 암튼 피는 못 속여요."
전철 지하 계단으로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우리도 다시 기차 여행 시작하자구, 아까 그 부부처럼."
"좋아."
나는 남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이라구, 이젠 하늘의 뜻을 알 때가 되었지. 안 그래?"
"하긴 그래."
계단을 내려서는데 갑자기 무릎이 삐걱거렸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설 때마다 지천명이란 단어가 새롭게 떠올랐다. 그래 이젠 하늘의 뜻에 순종할 때가 되었지. 남편과 나는 달려오는 전철에 몸을 실으면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흔들림 없는 그의 의지가 태산처럼 굳건하게 느껴졌다. 굉음이 전철을 빠른 속도로 몰아갔다.
첫댓글 세옹지마........새옹지마. / 배경이 양수리 양평 강원도 / 등장인물은 어느 작품이건 환자가 나오는 경향이 많고/ 이런 것들을 벗어나 바다나 높은 산이나 산속의 정경에서 즐겨 보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아요. 가을걷이 끝난 들판 집단 쌓놓은 북덕이 속에서 만나 사랑도 좋고 말입니다.
첫댓글 세옹지마........새옹지마. / 배경이 양수리 양평 강원도 / 등장인물은 어느 작품이건 환자가 나오는 경향이 많고/ 이런 것들을 벗어나 바다나 높은 산이나 산속의 정경에서 즐겨 보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아요. 가을걷이 끝난 들판 집단 쌓놓은 북덕이 속에서 만나 사랑도 좋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