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국어학자들은 우리 역사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국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식민지 사관에 맞서, 박은식과 신채호는 민족주의 사학을 발전시켰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박은식(1859~1925)은 민족정신으로서 조선 국혼을 강조했으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침략과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리하였다.
신채호(1880~1936)는 일찍이 대한매일신보에“독사신론”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 후 신채호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몸바쳐 활동하면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는 고대사에 살아 숨 쉬는 자주적·주체적인 민족 고유의 사상인 ‘낭가 사상’의 존재에 주목하고, 이러한 정신을 되살려 민족 독립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뒤를 이어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이 민족주의 역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신민족주의 사관). 특히 정인보는 '5천년간 조선의 얼' 등을 통하여 주체적인 역사 의식을 강조하였고, 1934년 다산 서거 99주년을 기념하여 안재홍 등과 <여유당전서> 발간에 참여하여 조선학 운동을 주도하며 실학자들을 재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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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의 '얼' 사상
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얼’ 빠졌다고 하고, ‘멍’ 하니 앉은 사람을 보면 ‘얼’ 하나 없다고 한다. ‘얼’이란 이같이 쉬운 것이다. 그런데 ‘얼’하나의 있고 없음으로서 그 광대, 웅맹함이 혹 저렇기도 하고 그 잔루, 구차함이 이렇기도 하니, ‘얼’에 대하여 명확히 살핀다는 것은 실로 어렵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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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실증 사학의 영향을 받은 이병도, 손진태 등은 진단 학회를 조직하고 진단 학보를 발간하여 한국사 연구에 힘썼다.
또한 백남운 등 사회경제사학자들은 한국사를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연구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정체성론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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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우리 조선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은 가령 지리적 조건, 인종학적 골상, 문화 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소의 차이는 인정되더라도, 외관적인 소위 특수성은 다른 문화 민족의 역사적 발전 법칙과 구별되어야 하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며,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법칙에 의하여 다른 민족과 거의 같은 궤도로 발전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그 발전 과정의 완전한 템포, 문화재상의 특수적인 농담은 결코 본질적인 특수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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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1926년 창설된 조선어 연구회는 한글 보급에 노력하였으며, ‘한글’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한글날을 정하는 등 한글 대중화에 앞장섰다.
1931년 조선어 연구회를 계승한 조선어 학회는 1933년‘한글 맞춤법 통일안’과‘표준어 및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하여 한글 표준화에 기여했으며, 한글 강습 교재를 만들어 문맹 퇴치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우리말 큰사전’의 편찬을 시도하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어 학회 사건을 조작하여 회원들을 대거 검거하고 투옥하였다(1942). 일제는 문화 운동인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하여 방해하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히 받아갑니다.
멋집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