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Vilnius)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큰 나라이며 수도 빌니우스는
동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이다. 빌니우스 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착실하게 복원해 238채를 헤아리는 건물들이 중심가를 중세의 분위기로 유지하고 있다.
빌니우스 구 시가는 1,500여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빌니우스 그랜드 리조트(Villnius Grand Resort)-
** 여행자 숙소로 현지 여행사에서 수배해준 호텔은 빌니우스 시가지에서 약 3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형 리조트 시설이다. 숙소 앞에는 별로 사용한 흔적이 없는 미니골프장(홀의 거리는 100 m 이내)이 있고
골프장 너머에 있는 커다란 호수는 케이블 수상 스키장이다.
-수상 스키장-
**앞에 보이는 호안에는 세개의 철탑이 서 있는데 사진 왼편 호수 끝까지 회전하는 케이블이 철탑에 설치되어
있어 이 케이불에 달려있는 로프를 잡고 호수 위를 달릴 수있다. 점프대도 있고 장애물도있다.
초보자에게는 보트 보다 편리할 것 같다.
-빌니우스 구 시가지-
** 빌니우스 구 시가지는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신 고전주의 등의 매우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유럽의 모든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귀중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구 시가지 외곽의 성벽과 "여명의 문(Gate of Dawn)"-
** 여명의 문은 16세기에 지어진 빌니우스 도성의 9개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다.
문의 맨 위에는 리투아니아의 전통 문양과 리투아니아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아치 위에는
예수를 그린 벽화가 있다.
-자비의 성모의 여명의 문 교회(Gate of Dawn chapel of Mary the Mother of Mercy)-
** 여명의 문 안쪽 아치 위에는 "검은 얼굴의 자비의 성모 상본이 안치되어 있다.
미사를 드리는 곳은 이곳이 아니고 아치 옆에 부속되어 있는 성당이다.
-자비의 성모상-
** 성문 아치 위의 이 기도실의 성모는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리투아니아의 성지로 꼽힌다.
검은 성모의 유래는 길드의 수호성인인 "모리시우스(St. Mauritius)"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리스도와 성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성심(聖心)-
**성모상 주변은 물론 기도실 벽이 은제 심장마크로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기적의 성모에게 기도했던 환자들이 치유의 감사 표시로 바친 은으로 된 심장마크라고 한다.
-자비의 성모교회 본당의 모습-
-러시아 정교회 성당-
** 성당 출입구 위에는 3인의 성인 상이 그려져 있다.
-정교회 내부-
** 제대 주변 장식은 진한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어 색다르고 인상적이다.
-제 대-
-세 성인의 유해-
** 제대 앞에는 유리관 속에 세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순교 성인이고 이 교회는 이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교회이다.
-성 카지미에라스 (Sv. Kazimiero)성당-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1604년에 지어진 성당으로 러시아 정교회로, 감옥으로, 프랑스군의
식품 창고로, 소련 지배 시절엔 무신론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돌아온 파란의 시련을 겪은 성당이다.
-왕관과 왕관 모양의 돔-
**1392~1430년 어간에 리투아니아를 통치했던 비타우타스(Vytautas the Great) 대공이 쓰고 있는
왕관의 모양과 같은 돔이 정교회 교회 건물에 올려져 있는 경우가 있다. 위의 카지미에라스
가톨릭 성당에도 정교회 상징의 왕관형 돔이 있는데 이것은 정교회 교회로 사용되던 시기에
추가로 올려진 것이다.
-성 카지미에라스(St. Casimir) 성당 내부-
** 여러개의 황금색 머리 기둥을 가진 제대는 웅장하고 아름답다. 리투아니아의 대공작 이었다가
폴란드에서 왕이 되었던 요가일라(Jogaila)의 아들이자 성인이 된 카지미에라스 기념성당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성악가(동영상)-
** 때마침 작은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구 시청과 광장-
** 구시청 건물은 16세기 초반에 지어졌으나 신 고전주의(Neo Classic)양식의 외관은 1785~1799년에
완성되었다. 현재는 갤러리와 관광사무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광장은 빌니우스의 상업 중심지이며
박람회와 콘서트를 비롯한 주요한 행사의 중심지이다.
-유태인의 거리(Vilnius Ghetto)-
** 1941~1943년 어간에 빌니우스에는 구시가지 내에 두 군데의 유태인 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빌니우스 대학교(Vilnius University)
빌니우스 대학은 1569년 리투아니아 최초의 대학교로 승격된 이래 주변 국가들의 철학가, 문학가,
사상가들을 길러냈고, 건물 전체가 유물이자 박물관이 되었다.
** 1570년 빌니우스 예수회 대학 및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 1579년 폴란드 왕이며 리투아니아 대공 스테판 바토리
(Stepen Bathory)는 대학교에 예수회 대학 편입 칙령을
발표하였다. 교황 그레고리 8세는 이 칙령을 승인하였다.
** 1803년 빌니우스 제국대학교(Imperial University)로 개명
** 1832 년 러시아 짜르가 대학교 폐쇄하였다가 1939년 개교
** 1943년 나치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1944년 소련이 재 개교
** 1990년 리투아니아의 독립과 더불어 자율 운영권 회복
- 성 요한 성당 과 종탑(Church of the Sts. John & Bell Tower)-
** 빌니우스 교구 교회인 성 요한(세례 요한 과 사도 요한)교회는 1386년 빌니우스 시민들에 의해
시공되었다. 최초에는 고딕 양식이었으나 1737년 과 1749년의 대 화재 이후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교회 옆에는 5층에 68 m 높이의 종탑이 서 있다. 르네상스 스타일이었으나 1737년 화재
당시 손상되어 상부 구조는 바로크 스타일로 재건되었다. 2011년에 복원되어 관광객에게 개방하였다.
-성 요한 성당 종탑의 진폭을 측정하는 추-
** 종탑의 꼭대기에서 내려진 줄에 달린 추는 종탑의 진폭에 따라 움직인다.
-학위 수여식의 축하객-
** 성요한 성당에서 학위 수여식을 끝낸 졸업생과 친지들이 대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성 요한 성당을 중심으로 빌니우스 대학교 건물들이 컴프렉스를 이루고 있다.
-학위 증서 들고 기념 사진 한장-
-게디미나스 성(Gediminas Castle = Upper Castle)-
** 성 요한 성당 종탑에 올라 바라본 게디미나스 성이다. 1420년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감시탑과
건물 2층만 남아 있다. 건물들은 중세의 생활상을 볼 수있는 소규모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게디미나스 성의 남쪽 건물-
-게디미나스 타워-
** 타워의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디미나스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빌니아(Vilnia)강-
-게디미나스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 시가지-
-게디미나스 성 동남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세개의 십자가-
** 3명의 순교 사제를 기념하는 구조물이다.
-시가지에서 만난 특색있는 구조물-
**이슬람 복장의 세 여인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수녀들의 복장으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건물에는 드라마 극장이란 표지가 있다. 제법 오래된 이 구조물은 어떤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것 같다. 1995년에도 이 구조물이 있었다.
카우나스(Kaunas)
카우나스(Kaunas)는 빌니우스에서 128 km 서쪽에 있는 문화적인 중심지로 1차대전 후 리투아니아가
잠시 독립했을 때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다. 카우나스라는 이름은 네로의 폭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피한
팔레온의 아들 쿠나스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카우나스 성(Kaunas castle)-
**카우나스 성은 14세기에 네무나스(Nemunas)강 과 네리스(Neris)강 합류지점에 튜톤 기사단(Teutonic
Order)의 침략을 방어할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카우나스 성은 리투아니아에 건설된 2중의 성벽을 가진
최초의 석성이었다. 이 고딕 양식의 방어시설 주변으로 마을은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카우나스 성은
1361년 튜톤 기사단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는 내용이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원추형 탑과 성벽-
**강변에 세워졌던 거대한 성채는 현재 복원된 원추형 탑과 성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습된 유물의 일부-
-타워의 지하실-
** 오른편 철창문을 들여다 보면 무시무시한 귀신 홀로그램이 음향과 함께 연출된다.
-성 조지 교회(Church of G. George the Martyr and the Bernardine Monastery)-
** 순교자 성 조지 교회는 15세기에 건설된 카우나스에서 오래된 교회 중에 하나이다.
카우나스 성 첫번째 사진 뒷편, 오른쪽에 보이는 교회이다. 교회 옆에 베르나딘 수도원 건물이 있다.
-성 조지 교회 내부-
** 교회 내부는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에서 패퇴하면서 목재 부분은 땔감으로 뜯어내어
훼손된 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카우나스 구 시가지-
** 네무나스(Nemunas)강 건너 언덕에서 비타우타스 대교 건너에 펼쳐진 구시가지의 파노라마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건물의 위치는 위의 사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옛 수도인 카우나스는
인구 40만의 제2의 도시이지만 3개교의 대학교를 가진 학생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비타우타스 대공 성당(Vytautas tne great church)-
**15 세기에 건축된 카우나스 최초의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교회는 최초 프란시스코 수도회 소유였으나
나폴레옹 전쟁시에는 탄약고로 사용되었고 1845~1953년 어간에는 정교회로 이관되었다.
-빌니우스 대학교 카우나스 캠퍼스-
** 하얀 벽에 그려진 사람 얼굴 비슷한 그림은 해시계이다. 맞은편 언덕에서 육안으로도 인식이 된다.
- 구시청 청사-
** 흰색의 도도한 모습으로 인해 백조에 비유되기도 하는 구시청은 1541년에 시공되었으며
고딕, 르네상스, 후기 바로크 그리고 초기 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다.
중세에는 시청 광장은 도시의 중심이고 시장이었다. 시청은 웨딩 홀이 되었고
지하에는 세라믹 박물관과 관광 안내소가 들어있다.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Basilica of Apostles St. Peter & St. Paul)-
**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고딕양식의 바실리카 대성당(building of sacral nature)이다.
15세기에 지어졌으나 수차레의 재건축으로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신고딕 그리고 신 바로크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다. 대성당에는 9개소의 제대가 있고 성소는 크리스탈 돔으로 덮여있다.
-대성당 내부-
-제대-
** 여러 인물상들이 배치된 제대는 엄숙하고 신비스런 분위기도 감돈다.
특히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를 부등켜안은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은 숙연한 감정이 들게한다.
여인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아닌듯하다.
-페르쿠나스의 집(House of Percunas) 과 천둥의 신-
** 15세기 후반에 지어진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페르쿠나스의 집은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주거용 건물이다. 이 건물에 대해서는 한자 동맹의 상인들과 19세기에 건물 수리 중
벽 속에서 출토된 가톨릭 이전 전통 신앙시대의 번개신(페르쿠나스= God of Thunder)에
대한 전설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1843년에는 이 건물에 드라마 극장이 개장되기도 했고
현재는 예수회 학교에 소속되어 전시회, 전통공예 워크 삽, 등을 열기도 한다.
천둥의 신상은 강 건너 언덕 위 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악마 박물관
카우나스에서 잘 알려진 특색있는 박물관의 하나는 3,000여 점에 달하는 악마상을 소장 전시하는
악마 박물관이다. 박물관 소유주가 우연히 해외 여행에서 수집한 악마 인형을 본 그의 친구들이
기회 있을 때 수집해다 기증한 것이 어느덧 3000 여점이 된것이다.
-# 1-
-# 2-
-# 3-
-# 4-
-# 5 : "나의 리투아니아(My Lithuania. 1975)"-
** 전시품 중에 유일하게 설명이 붙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의미는 1939~1941년 리투아니아와
기타 유럽 여러나라들이 스타린과 히틀러로 부터 당한 혹독한 역사적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자연목의 뿌리를 조각한 것으로 자세히 보면 많은 해골이 흩어져 있다. 두 인물은 히틀러와 스타린이다.
-# 6, 7 -
-# 8-
** 오른편에 보이는 시계는 한국에서 건너간 작품임이 분명하다. "붉은 악마"의 로고인 치우천왕이라든지
매듭의 색갈과 모양으로 보아 한국 제품으로 추정된다.
샤울래이(Siauliai)
샤울레이는 카우나스 북쪽,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에, 빌니우스에서는 북서쪽으로 230 km 떨어진 곳에 있다.
리투아니아 제4의 도시이고. 인구 약 13만 4천 명으로 샤울래이 주의 주도이다.
십자가의 언덕(Hill of Crosses)
십자가의 언덕은 샤울레이 북쪽 12 km 에 위치한 순례 장소이다. 넓은 평원과 숲 사이에 두개의 조그만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에는 야생의 숲 대신 크고 작은 십자가가 빽빽하게 꽂혀 있다. 십자가를 세우게 된
동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1831년 봉기후 도만타이 언덕(Domantai Hill)에 최초로 십자가를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1831년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처형하였으나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할 수도
없어 상징적으로 이곳에 십자가를 세워 그들을 추모했던 것이다. 세워지는 십자가의 수가 늘어나자
러시아는 불도저로 세차례나 반복하여 밀어버리기도 했다.
- 십자가와 기념품을 팔고 있는 편의점-
**십자가의 언덕 300 여 m 못미처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그리고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에서는 순례자들이 원하는 십자가를 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십자가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십자가의 언덕을 주제로 만든 마그네틱, 엽서 등 기념이 될만한 상품이 있다.
-십자가의 언덕을 향하는 순례자들과 관광객들-
-십자가의 언덕 초입-
** 십자가의 언덕 초입의 거대한 십자가는 유관기관에서 세운것이고 나머지는 크기와 모양에 관계없이
모두가 순례자들이 세운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십자가 와 십자가상(像) 뿐만이 아니라
성모상, 성인들의 조각상, 수천개의 작은 조각상 과 묵주가 가톨릭 순례자들에 의해 놓여졌다.
정확한 십자가의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0,000 점(2006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계단
- 새로운 십자가 그리고 세월의 뒷길로 멀어져 가는 십자가들-
- 한글이 적힌 십자가들-
** 군데군데 한글이 보인다. 한 장소에 전세계의 글자가 모여 있고 전 세계에서 오직 하나의 테마
"십자가"를 주제로 만들어진 수 십만개의 물품이 한곳에 모였다는것은 분명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십자가 언덕의 여인-
** 준비한 십자가를 소중하게 들고 십자가 언덕 정상에 서 있는 여인의 간절한 표정을 보아
그녀의 기도가 방해되지 않도록 여행객은 가는 길을 멈추고 기다려야 했다.
-"생각하는 그리스도"-
** 사진의 맨 왼편에는 "봉평성당"이라는 한글이 보인다.
-프란시스 수도회 수도원 성당-
** 십자가의 언덕 동쪽 약 300 m 지점 언덕에 프란시스 수도회 수도원 성당이 서 있다
이 성당은 1993년 9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십자가의 언덕을 방문하고 돌아가
이곳에 수도원과 성당을 짓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도록 아시시의 프란시스 수도회에 지시한 후
1998년 5월 9일 정초가 놓이고 2000년에 성당은 완공을 보게된다. 성당의 모서리는 잘라버리고
썬튼 유리창을 설치하여 외부에서는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수도원은 성당 뒷편에 붙어있다.
-성당내에서 제대 뒤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본 십자가의 언덕-
** 성당에서는 십자가의 언덕을 바라보며 미사들 드릴 수 있다. 제대는 전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성당과 수도원이 세워져 있는 언덕이 러시아가 불도저로 세번씩이나 밀어버렸던 원래의 십자가의
언덕이었으나 현재의 십자가의 언덕에 다시금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는 타당성있는 설이 있다.
-십자가 언덕 북쪽 아래에 있는 제대(Chapel)-
** 1993 년 9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였으며
"이곳은 희망, 평화, 사랑, 희생의 장소"라고 선언하였다.
이 후 전세계 가톨릭 교도들에게는 이곳이 성지로 인식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사 집전 모습-
-십자가의 행렬-
** 십자가의 언덕으로 부터 양쪽으로 이어져 내려온 십자가의 행렬은 계속 뻗어가고 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