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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님의 문화재탐사 스크랩 충북 영동 반야사 - 호랑이가 지키는....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34 14.08.02 12: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랑이 품에 안겨있는 충북 영동 반야사

 

 

 

요사체 뒤 백화산의 호랑이상

 

영동군 황간면에는 금강 상류 계곡이 굽이쳐 흐르면서 멋들어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석천 강변 자락에 720년(선덕여왕 17년)에 창건된 반야사가 있다.

 

계곡이 아름다운 석천(石川)이 절집 마당 옆을 흐르고, 건너편 깊은 산중은 고산준봉을 거느리고 있는 영동의 명산 백화산이 자락을 내리고 있는 곳이다.

산자수려(山紫水麗)란 말은 이 아름다운 절집 반야사의 풍치를 일컬음에 부족함이 없으나 절집의 분위기는 고적하기 짝이 없다

 

 

 

일주문 기둥에 그려진 용그림

 

반야사(般若寺)는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1번지 백화산(白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며  절 이름이 반야사인 것은 문수보살의 반야, 곧 지혜를 상징한 것으로서 반야사가 문수보살 신앙과 관계 있음을 뜻한다.

720년(성덕왕 19) 의상(義湘)대사의 제자인 상원(相願)이 창건하였고 1325년(충숙왕 12)에 중건하였다.

 

 

 

 

 

 

1464년(세조 10년)에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의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바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복천사(법주사 복천암)에서 법회를 마치고 이곳에 들렀다가 이 절을 중창하라 명하고 회향법회를 열어 여러 보살님께 공양드렸다고 한다.  

이 때 문수보살이 나무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더니  세조를  반야사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해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문수보살은 '왕이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를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뒤 나무사자를 타고 명경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세조는 문수보살이 시키는데로 영천(靈泉)에 목욕을 하였더니 지금까지 세조를 괴롭히던 피부병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어필(御筆)을 하사하여 지금까지 이 절에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바는 없다.

세조가 피부병으로 말년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바, 전국의 수많은 온천을 찾아다니고 절집들 또한 두루 찾아다니며 치성공양을 드린 불심 깊은 왕이었다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 반야사에 전해오는 세조의 병치료 이야기는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 전해오는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따라서 절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하여 상원사의 이야기를 가져와 이 절에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웅전

 

 

 대웅전의 불상

금박 선으로 그린 탱화가 매우 아름답다

 

1993년에 건립한 대웅전 안에는 경주의 옥석으로 제작되어 개금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정하고 있다.

 

대웅전 내의 닫집

 

 

지장전

 

극락전

1993년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기전까지 대웅전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1975년도에 중수를 하였다

 

 

산신각

 

 

범종각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울려 중생을 구원한다는 범종이 달려있다

 

 

현재 남아있는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 지장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와 문수, 보현 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탱화(幀畵) 6점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 3층석탑·부도·목사자·청기와·법고·범종 등이 남아 있다. 

 

반야사에는  옛부터 삼경(三景)이 있는데 3층 석탑과 오백 살 먹은 배롱나무와 긴 꼬리를 세운 호랑이라고 한다

 

 

 

삼층석탑과 요사채 뒤의 백화산에 앉은 호랑이 형상의 돌더미

 

반야사는 호랑이가 품고 있는 절이다. 반야사 계곡 건너편에 있는 백화산을 바라보면 수천년 동안 흘러내린 파쇄석이 산허리에 쌓여있는데, 그 곳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호랑이 형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꼬리를 치켜 세운 호랑이는 80m 높이에 몸통 길이 300m에 달하는 의 웅장한 형상이다.

 

원래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있는데 백화산은 사자보다는 호랑이를 그리기가 더 쉬웠는지 아니면 이 땅에는 사자가 없으니 대신 호랑이를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돌로 그린 호랑이의 곧은 기개가 크게 느껴진다.

 

 

삼층석탑 - 보물 제1371호

 

 

 

 

 

이 탑은 반야사의 극락전 앞에 500년 된 배롱나무를 배경으로 깔고 우뚝 서 있다.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반야사의 주지였던 성학(性學)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특이하게 토단 위에 서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약하지만 배흘림 수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3층 탑신은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탑은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학계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데 이는 반야사가 자리한 영동지역이 신라와 백제와의 교통로 상에서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리적 여건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배롱나무

 

 

 

삼층석탑과 극락전 사이에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심겨져 있는데 수령이 자그마치 오백년이라 한다.

조선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이곳을 지나다 주장자(柱杖子-스님들이 좌선할 때에나 설법할 때에 가지는 지팡이)를 꼽아둔 것이 갈라지면서 쌍으로 자라난 것이라 전해지는 이 나무는 오래된 연륜만큼 껍질이 다 벗겨져 나가 속살 드러낸 맨 가지에 녹음 짙은 잎사귀 위로 붉은 꽃을 피울 때면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백일홍의 꽃색깔은 은 붉은색, 흰색, 보라색, 자주색 등 다양한데 반야사 대웅전 앞의 배롱나무는 붉은 색이다. 열흘 붉다 마는 불심이 아니라 백일기도를 올리는 정성으로 성불하라는 마음으로 심었을 것이라는 어느 이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가지가 풍성하고 넓어서 석탑 뒤로 있는 극락전이 가려 안 보일정도이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 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도종환의 목백일홍 중에서>

 

 

문수전

 

 문수암 가는 길-석천을 떠라 약 200m

 

이 지점에서 오른쪽 산 위로 돌계단을 10분쯤 쉬어가며 오른다

 

 

 

세조가 문수보살의 안내를 받아 목욕후 병이 나았다는 영천. 옆에 높게 솟은 바위가 망경대 이다

 

 

 

 

요사채 왼쪽 냇가에 난 길을 따라 약 5분(200m) 석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물소리 끊이지 않고, 숲이 무성한 상쾌한 길이 펼쳐진다. 무슨 염원이 그리 많은지 돌 하나하나에 소망을 담아 정성껏 쌓아올린 돌탑도 만난다. 평탄한 개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석천이 휘돌아쳐 곡선을 이루는 강가에 높이 솟은 기암절벽이 까마득하며 우뚝 솟은 암봉의 웅장함도 그렇거니와, 그 위에 지어진 암자 또한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기암절벽의 암봉은 망경대(望景臺)요,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은 문수전(文殊殿)이다.

 

망경대라고 하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문수동자가 망경대 아래에 있는 용소(龍沼)라고 하는 곳에서 목욕을 하고 이 절벽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아침 해돋이를 배례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다.

 

 

 

문수암을 오르다다가 내려다 본 모습

 

 

문수암으로 오르는 돌계단길 -강바닥에서 문수암까지 계속 이런 돌계단이다

 

 

 

 

 

 

 

 

 

 

 

망경대 위에서면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석천이 눈아래 보인다

금강의 지류인 석천은 경북 상주쪽에서 충북 영동으로 흐르는 강으로 황간에서 황간천과 만나고 다시 물한계곡에서 흘러온 추풍령천과 합류하여 금강본류로 흘러들어간다.

 

 

 

 

뒷쪽 문수암 입구애서 본 모습

 

 

 

 

 

 

문수암 벽화-사자를 탄 문수보살

 

문수동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이 망경대 기암 위에는 문수전이 있다. 근간에 지어진 암자로서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호랑이를 타고 다니던 전설 속의 문수동자를 문수전에 모셔놓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수전의 문수보살 좌대인데 바닥에 엎드린 호랑이의 등에 문수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진 문에는 훔쳐볼 수 있는 조그만 틈도 주지 않는다.

이곳에는 호랑이 등에 앉아있는 문수보살과 문수동자가 좌우협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 지혜동자, 무구동자, 선정동자, 소청동자 등 100여점의 조그마한 문수동자좌상(-坐像)이 있다고 한다.

 


 반야사 부도

  

부도가 있는 곳으로 오르는 계단

 

 

 

 

 

 

 

반야사의 주차장 바로 직전 오른쪽 언덕 위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2기의 부도가 이끼에 덮힌 채 서 있다

석종형의 부도로서  기와 지붕을 형태를 한 옥개석의 조각이 특이하다.

 

 

 

 

다리를 건너면 관음전으로 가는 길이다

 

주차장 앞에는 석천을 가로지르는 잠수교가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콘크리트 구조물 그 위에 어른 한 아름 됨직한 바위를 점점이 박아 놓아 돌다리를 하나 더 설치하여 놓았다.

 

돌다리를 건너  수림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관음전이 있다고 하는데 여행의 일정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묘길상 전탑조성 계획도

 

반야사애서는 문수암 뒷편 등성이 높은 곳에 '묘길상 오층전탑' 조성을 위하여 시주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언제 조성될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화강암 석탑을 건립하는 이 때에 석탑이 아닌 전탑을 세운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반야사 가는 길-석천을 따라 가는 길은 풍광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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