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역대 24,18-22; 로마 5,1-5; 마태 10,17-22
+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1814년에 순교하신 복자 김진후 비오의 손자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한 후,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1836년, 모방 신부의 권유에 따라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아들 김대건을 마카오 신학교로 유학 보냈습니다.
충청도 홍주 출신인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벼슬까지 지낸 양반 신분과 재산을 버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부모님에게서 자랐고,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마카오에 도착한 이듬해인 1837년, 위열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최방제 신학생은 병자성사를 받은 후 라틴어로 ‘신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십자고상을 입에 대고 ‘착하신 예수님! 착하신 천주님!’을 되풀이하였고, 교수 신부들과 김대건, 최양업의 임종 기도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고국에 전해졌을 때, 최방제 신학생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또,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님의 부모님은 얼마나 자식들을 걱정했을까요? 그러나 오히려 두 소년이 부모님 걱정을 더 해야 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와 최양업 신부님의 부모님,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 복녀 이성례 마리아 모두 붙잡혔고, 결국 김제준 성인과 최경환 성인은 각각 43의 나이와 34의 나이로 순교하셨고, 복녀 이성례 마리아는 이듬해인 1840년, 39의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김제준 성인과 이성례 복녀는 배교를 하신 후 철회하신 적이 있습니다. 김제준 성인은 포도청에서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를 하였지만, 3년 전 아들을 신학생으로 유학 보냈다는 죄명으로 석방되지 못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교우들이 김제준 성인을 다독이며 “순교자로 세상을 마치라”고 조언하자 성인은 배교를 철회했고, 이후 형조로 옮겨져 잔인한 고문을 세 차례 더 받았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유학 중인 아들이 사제 수업을 마치고 조선의 첫 사제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배교자라고 하면 사목 활동에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셨던 것일까요? ‘신부 아버지가 배교했다고 하면, 누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겠느냐’는 마음이 들어서였을까요? 아들이 사제가 되려면 6년이 더 남았지만,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순교의 길을 갑니다.
김제준 성인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고, 최경환 성인이 감옥에서 매질을 당하다가 돌아가셨을 때, 김대건과 최양업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이듬해 복녀 이성례도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됩니다.
사제 수업을 받고 있던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이 소식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김대건 신부님은 동료 최방제의 죽음에 이어 2년 뒤에 아버지의 순교 소식을 접합니다. 그런 김대건 신부님이 고국에 돌아와서 붙잡혀 고문을 당할 때, 배교를 할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의 노고를 헛되게 하지 않고자 죽음을 택하였고, 아들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자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1846년, 김대건 신부님은 체포된 후 40여 차례에 걸친 심문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교님께 드린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감히 주교 각하께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보았을 뿐 또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각하께 간절히 바라건데,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이제 저는 진심으로 각하의 발아래 엎디어, 저희 사랑하올 부친이요 공경하올 주교님께 마지막 하직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1839년, 같은 해에 자신과 최양업을 유학 보냈던 모방 신부 역시,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님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에 처해졌습니다. 7년 뒤 같은 장소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서소문과 멀지 않은 곳에서 김대건 신부님 역시 군문효수형에 처해집니다.
많은 순교자들에게 오늘 복음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생각해 봅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은, 그러한 순교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희생 제사를,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재현하고 있습니다.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님은 당신 자신과 부모님과, 많은 신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담아 미사를 봉헌하셨고 그 미사가 오늘 우리의 미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은총을 우리에게 기꺼이 주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 어떤 희생을 봉헌하고 있는지도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3g-t_erzsLQ?si=8fxZrljnVSe_LVRo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
김대건 신부님 상(솔뫼)
출처: 외부전경 | 솔뫼 성지 (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