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전에
산악회, 산을 찾는 이들이 길잡이 찾아 기대는 곳
친북/혐북 친미/반미 친중 친일 / 반중 반일 보수/진보 우익/좌익
특정 인물에 대한 정치적 시각에서의 옹호 찬양/비난 성토
이곳만은 각자의 정치 정파로 갈라져 부질없는 언쟁과 다툼이 없었으면 합니다.
산행 중에 간식 중식으로 밥과 반찬, 라면이나 과일을 먹고
산짐승 들짐승이 먹는다, 비 오면 씻겨내려간다는 핑계를 대며
남은 음식 부스러기, 건데기, 국물을 산에다 묻거나 버리는 행위처럼,
산악회 독서일기방 같은 칼럼에다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나 소신을
피력 토로吐露하는 오염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노라 몸과 마음이 지쳐 아무런 걸림 없이 잠시 쉬었다 가려는 곳,
최후의 보루, 청정한 산악회 터전에 눈살을 찌푸리는 공해는 남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치적인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속이 터지고 할 말 많은 분들은 부디 그런 곳에서 뜻을 표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7.12.25일 성탄절 오후 영장봉 오름 릿지 ------------------ 2. 애송금 崕松唫 낭떠러지 소나무를 읇다 영장봉에서 흐르던 빗줄기가 잠시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틈에 실려오던 풀씨야 나뭇잎이야 모래 알갱이들이 별 뜻없이 모여 서글픈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삶의 끝단 음산한 서북향 절망絶望이 절정이다 서너 발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면 서쪽 하늘 열리고 푸른 별 쏟아진다 망망대해 서해 바다 멀지 않다 만고萬苦를 탓하지 않는 엄숙한 고독 삼각산 어디라도 좋지 않은 곳 없다만 너를 볼라치면 속이 울렁거리고 숨 끊어진다 산문山門에 첫발 들여놓은 20년 전에 너를 처음 보았다 그 시절 나는 알바트로스Albatross 뾰족한 부리 위에 걸터앉아 짐승의 울음으로 포효하던, 산에 미쳐 이카로스Icaros처럼 몸을 산화散華 시키고도 남을 때다 힘겨웠던 어느 해 봄 이른 시간엔 내세울만한 근거도 없이 너의 곁을 서성였고 그 때 너에게서는 안개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는데, 나는 그것이 옅은 함박꽃인가 노루귀꽃인가 했다 어느 희끄무레한 겨울에도 난 널 깊은 산 절간 찾듯이 찾아왔고 빈 하늘에 기대어 사는 너를 보며 무언가 헛소릴 해대기도 했는데, 그 때는 하얀 쌀가루 같은 눈발이 몸 여기저기 뿌려졌었다 자연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도 알아내지도 못하던, 새싹 같았던 여린 너였으되 너를 볼 때마다 절벽에 매달려 기약 없이 살아갔으나 모습은 늘 의연했다 산에만 들어서면 절제의 고삐가 풀려 날뛰던 나는 어느새 무릎과 어깨가 닳아 저만치 퇴로退路가 보인다 세월 지나고 보니 나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철없이 성급했고 나의 생애, 일회용 종이컵 같았던 몇 번의 봄날은 이미 저물어 떠날 때가 멀지 않다 너는 살아내는 방식이 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보낸 세월만큼 아무 일 없다면 무성한 가지에 낙락落落*도 하겠는데........ 영장봉 오름 릿지 2023.9.17일 한류 대장님 영장봉 - 알바트로스 릿지 산행에서 *낙락落落하다 큰 소나무의 가지 따위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다. (네이버 한자 사전 참고) (위의 애송금崕松唫은 2023.9.17일 한류 대장님 산행 신청 란 블라인드 처리된 필자의 작성 글을 옮겨왔습니다.) |
3. 서책書冊, 글과 말에 대하여
산악회 독서일기 칼럼은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남기는 터전이니
그 취지에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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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시 소설 희곡 논문 등 창작물의 형태로 남겨진 글이란
한 인간의 사상idea 또는 ideology, 문체style, 플롯plot으로 망라된,
거기에다 인류와 인간에 대한 인류애가 저변에 드리워진 흔적이자
고뇌의 산물山物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의합니다.
저자 유협劉勰(465년~520년)은 서른살 무렵에
문심조룡 50편을 저작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대략 56세 전후까지 생존했다고 합니다.
그의 조부 유영진劉靈眞은 송宋나라 사공司空(지금의 국무장관)을 지낸
유수지劉秀之의 아들이며, 부父 유상劉尙은 외지인을 관장하는 월기교위
越驥校尉라는 관직을 지냈으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내력으로는 관리 집안이나 관직 명칭으로 미루어보건대,
부친은 지금으로 치면 하급 장교 정도에 조부 전후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부모도 일찍 사망하여 유협은
유년 시절에 고아로 전락한 듯합니다.
유협은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양나라 초대 황제 소연蕭衍,
무제武帝의 동궁 소통蕭統의 비서관인 동궁통사사인을 지낸 인물입니다.
동궁통사사인東宮通事舍人 직함은
한국 역사 고려시대의 정7품 정도,
동궁의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는 집사
유협은 당시 양나라 수도 남경의 정림사라는 절에서
불경 서적을 정리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그 경험으로 동궁의 서책 편찬을 도왔다고 전해지며,
전체 50편으로 이루어진 문심조룡은
일종의 현존하는 문학개론이자
문학작품의 각종 체제와 양식과 특징, 작품 풍격의 특징,
문체 종류에 따라 논술한 명저입니다.
50편 490쪽에 이르는 문심조룡
어느 한 편, 단 한 쪽 한 줄이라도 놓칠 수 없고
모든 쪽쪽이 주옥 명문이라 뚝 떼내어 옮길 수가 없습니다.
2000년 전 선현들은 어떤 시각으로 글을 대했으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
아무 쪽이나 펴서 읽다보면 어슴프레 뭔가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논어가 2500년간 전 인류의 최고 서책으로 현존하고 있고,
비록 사서 6경급에 들지는 못 하나 문심조룡도 장장 세월 2000년간이나
글쓰기 교본 중에서 중일한中日韓 공통 명저 중의 명저로 손꼽히고 있으니
인터넷 검색창에 "유기문고維基文庫",
중국 서적 총망라한 무료 원문 제공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책書冊에 대한 나의 견해
읽고나서 그간에 막혀있던 정착定着의 이데아,
고정된 가치관에 활화산 같은 불끈 솟음이 일어나면서
섬광閃光과도 같은 희열과 변혁을 가해줄 수 있는 것
읽어서 즐거움을 주는 단계를 월담하여 꽈당 졸도케 하는 것
일생 독서 1,000권 중에 상위 20위 내에 드는 것이 문심조룡입니다.
어떤 인물이든 정치적인 평가에는 관심 두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의 남겨진 서책과 작품,
글과 그 내용에만 몰두하고 서술하는 것이니,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승만, 이상, 류시민 관련 정치 편향의 댓글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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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송매체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던
일본사史 학자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 의 한국사史 발언 시기,
정통종합영어 시리즈, 수학의 정석(ⅰ,ⅱ) 10회는 정독해야,
10당 9락 원하는 대학에 가던 예비고사, 본고사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일본이 무단으로 점거한 식민사관이 파쇄破碎되고
한국의 독자적인 역사관 정립과 군사정권 존립의 근거를 설정하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가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한우근의 "한국통사"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역사 필수 교양서 E.H Caar의 "역사란 무엇인가"
Arnold Joseph Toynbee의 "역사의 연구" 등을 접함으로써,
비록 역사학도는 아니나 내 나름의 역사관, 사관史觀이 형성되는 시기를 거쳤습니다.
속칭 서강학파로 분류되던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은
각 페이지 본문보다도 정연한 각주脚註의 위용,
해당 본문을 근거로 다른 근거와 사례,
내용의 유사 범위까지 파고들게 만드는 파워가 만만찮았습니다.
한 5년 전인가, 류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가 출판되었다기에
이 사람의 역사관은 어떤가 싶어 출판의 열기가 뜨끈뜨끈 식기도 전에
냉큼 사서 후다닥 읽어보았더니,
개인의 역사관 형성에 도움이 되라는
심오한 취지에서 엮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전문가의 과오와 비애가 여실히 드러난,
이곳저곳 이 책 저 책 얼기설기 어설프게 꾸어다 단순 배열한 잡탕이었습니다.
글짓기 선생이 동서양의 역사 관련 책들을 뒤죽박죽 반죽한 정도
책은 한 인간의 고뇌의 산물이니
영혼 없는 인세印稅 목적의 것들은 독자들로부터 바로 외면,
사장死藏됩니다.
이러한 것을 태양態樣은 책冊이나 책이라 말하지 않고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 합니다.
같은 이치로
이곳 독서일기 칼럼에서
산행 후기든 독서일기든 무언가를 쓸 때,
자신의 사고, 논리, 경험에 근거한 혼신의 필적筆跡이 아닌
인터넷 돌아다니는 이것저것들 찍어 바르는 짜깁기 글은
단 한 줄도 신神의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 합니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루疎而不漏)
다만,
류시민은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의 방조범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옥중에서 그 자신을 변론하는 "항소이유서"를 1985.5.27일자로 직접 작성하였는데,
당시 또래의 학생들은 물론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명문으로 통했고,
그리하여 단 한 편의 글로써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출세작이 되었습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류시민의 본적은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리
나의 본적은 그와 같은 도 같은 군 같은 면 녹장리
내 마을에서 내 입으로 침을 뱉으면 바로 닿을 곳이 망성리
내 고개 숙이면 닿을 곳 배꼽, 지호지간指呼之間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위로는 같은 하늘 올려다봤고
밟고 다니는 같은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을 먹어왔고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같은 물,
틀면 왕창 쏴 쏟아지는 같은 수도 꼭지를 빨며 자라왔는데
군사독재 시절에 반 파쇼를 외쳐왔던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와 그의 자매 둘이 왜 아직도 이 세상을 뒤집으려고 하는지
그 또한 호구지책의 연장선에서인지
그 속 깊은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천 년 왕국 신라가 멸망한 이후 그 많던 영웅호걸은 어디로 갔는지,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경주, 월성 출신 인물이라곤
수필가 소설가 한 둘 정도 외엔
눈 씻고 봐도 단 한 명이 없습니다.
천 년의 번영을 누려왔으니 쇠락의 세월을 겪는 게 당연한 이치인지,
지력地力의 영고榮枯 또한 자연의 법칙인가 합니다.
변설자辯舌者의 등장 말고는......
어쨌거나
논리정연한 그의 말과 글, 내 인정한다마는,
그야말로 다만, 다만, 다만
한국에서 그의 말빨 글빨은 상업계 최상위 0.1% 반열에 올려져 있으나
말할 때 침 튀기며 입 돌아가는 모양, 눈동자에 잔뜩 들어간 힘
특히, 치켜뜨는 눈의 꼬리는 좀 하향 평준화 하시라.
이제는 좀 투쟁의 찡그리는 독설가의 인상을 풀고
푸근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할 말 다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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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승만의 한시와 서예
추 월 야
秋 月 夜
원 여 삼 천 만 구 위 유 국 민
願 與 三 千 萬 俱 爲 有 國 民
모 년 호 해 상 귀 작 일 한 인
暮 年 湖 海 上 歸 作 一 閒 人
정 해 중 추 월 어 돈 암 장
丁 亥 仲 秋 月 於 敦 巖 莊*
가을 달밤
내 바램은 삼천만과 함께
나라 있는 국민이 되는 것이네
저무는 해에 고향으로 돌아가
한낱 한가한 사람으로 살라네
정해년* 추석 달밤에
돈암장에서
허경진許敬震 역주 해제 옮김
*정해년은 1947년
*돈암장은 미국 33년 망명 생활 직후 귀국한 이승만이
1945년부터 약 2년간 거주한 현재 성북구 등소문동 소재
장진영 소유 임차 가옥의 이름
독백 형태의 평범한 오언고시
한가롭다 閑/閒, 두 글자 같은 훈음訓音이다.
한국 해방 전 나라를 찾으려는 바램과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런 욕심 없이
물가 시골로 돌아가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함
왕희지王羲之의 초서를 연상케 하는 필법으로
다소 투박하기는 하나
신라의 신품 4현 한 사람인 김생金生의
초결백운가草訣百韻歌 필체를 따른 듯하다.
(본문의 독음讀音과 *표시 및 해설은 필자가 작성함)
돈암장 근처에서
1947년 5월 LIFE 잡지에 실린
이승만과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사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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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예술의 전당 현관 벽에는
거액의 건축 비용을 기부한 수많은 기부자들 금액과 명단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예술 문화 공연 전시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설들이 각 시도에 여러 곳 설치되기를 바랍니다.
연세대 동문들은 건물 신축이든 학술행사든 연구기관 지원이든
그에 대한 기부 문화가 다른 동문들에 비해 뒤지지 않을 만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재원을 기본 토대로 연세 재단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 발굴과 연구를 위해 이승만 연구원을 별도 설치하여
그의 말과 글, 시, 시조, 관련 사진들을 한 데 모으는 과업을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9권까지 발간되어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정치권력의 연장, 탈환을 목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좌표설정을 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역사적인 인물들 갈라치기로
추종자들 외연 확장을 획책劃策하지만
어느 쪽이든 판단기준은 각자가 설정하는 것이죠.
부끄럽게도
나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막연히 한국의 초대 민선 대통령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그와 동시대에 같이 살아오지 않은 나로서는
적어도 그의 일대기 샅샅이 파악하고 나서야 내 나름대로의
사상검증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쪽이든 단지 저들의 정치행위,
한 편의 깃발이 임의로 꽂아놓은 곳에 의탁,
삼삼오오 모여 추종과 배격을 하기 전에,
정권 연장 또는 탈환이 목적인 정당의 갈라치기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각 개인의 독자적이고도 치열하고도 면밀한 인물 탐구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채 련 곡 採 蓮 曲
계 산 파 무 울 차 아
稽 山 罷 霧 鬱 嵯 峨
경 수 무 풍 야 자 파
鏡 水 無 風 也 自 波
막 언 춘 도 방 비 진
莫 言 春 度 芳 菲 盡
별 유 중 류 채 기 하
別 有 中 流 菜 芰 荷
계산에 안개 스러지니 산봉우리 아스라해
물 맑아 바람 없어도 물결이 절로 이네
봄이 지났다고 꽃 향기 다했다 말하지 마오
별다른 중류가 있어 연꽃을 딴다오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659년~744년)의 채련곡採蓮曲
칠언절구 형식으로 당음唐音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채採가 채菜로 되어 있으나 같은 뜻이다.
계산稽山 회계산會稽山의 약칭
차아嵯峨 산이 우뚝 솟은 모양
경수鏡水 경호鏡湖를 이름
방비芳菲 향기로운 꽃과 향초
기하芰荷 마른잎과 연잎
경호의 풍경과 연꽃을 따는 여인들의 삶을 표현
저 위의 추월야 글씨는 붓초가리 바깥 부분 의체衣體까지
먹물을 찍어 약간 눌러 쓴 글씨체이나
채련곡은 붓초가리의 가장 안쪽 심소芯素와 중소中素에서만
호毫로 내리는 먹물을 들여 마치 구양순체 흐름으로 가늘게 흘려 썼다.
(글자체體 평가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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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1875~1965(황해도 평산 출생)
조선시대 양녕대군 16대 손
1877년 2세에 한성으로 이주
1879 낙동서당 수학
1885년 도동서당 수학
1895년 배재학당 입학
1897.7월 배재학당 졸업
(이상 위키 백과 이승만 일생 일부 인용함)
이승만은 신학문 수학을 위해 배재학당에 입학하기까지
거의 20년 한학 수학, 과거시험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
그 후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시험 폐지되어 입신 등용의 길이 막힘
비록 과거시험에는 실패하였으나 시험 준비로 한문과 서예 실력을 갖추게 된 듯합니다.
이승만의 한시와 서예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서당 학업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승만은 한국의 정치가이면서 한시인漢詩人이자 서예가입니다.
그는 개화파 박영효朴泳孝 등 17인과 주동한 대한제국 고종 폐위 운동으로
한성감옥에서 1899.1.9일~1904.8.9일까지 5년 7개월간 옥고를 치뤘는데,
다른 주동자들은 사형에 처해졌으나 천신만고千辛萬苦
1904.2.8일 러일 전쟁 발발 직후 민영환과 한규설의 노력으로 특별사면
한성감옥 수형자 시절 지은 2021년 발간 체역집替役集에 한시 196수가 실려있고,
그 이후 저작들을 모아 2023년 발간한 한시집 9권에 76수가 담겨있습니다.
총 272수의 한시가 두 권의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독재 전횡에 부정선거로 축출된 전직 대통령으로만 기억할 게 아니라,
어느 특정 정파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편향적 입장을 떠나
한국 한문학의 시인 1인으로,
서예에 일가견 있는 예술가로 문학사에 등재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저大抵 어느 한 개인이 남긴
시, 서, 화, 소설, 그외 모든 창작물이 지닌 그 안의 깊이나
주류主流를 알려면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을 읊어보고 뜯어보고 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5. 이상李箱을 말하다
김해경金海卿이 본명이고 이상李箱은 필명
서울 종로구 사직동 출생
1910.9.23~1937.4.17, 27세로 요절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입학(현 서울대학교 공대의 전신)
입시 모집 총 60명, 경쟁율 13대1~27대1
( 건축과 졸업생 동기 13명 중 12명 일본인, 한국인 1인이 이상임)
1929년 조선총독부 건축과 근무 ~
1931년 폐결핵 진단
1933년 조선총독부 기수직 사직
1933년 기생 금홍 만나 동거 시작, 다방 '제비" 개업
1935년 다방 "제비" 폐업, 금홍과 결별
1936년 6월 화가 구본웅의 계모 변동숙의 이복 동생 변동림과 결혼
1937년 4.17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 악화로 사망
뒤에 부인 변동림卞東琳 은 개명하여 화가 김환기와 재혼
변동림이 이상의 유해를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으나 훗날 유실됨
(이상의 생애는 그의 일대기에서 필자가 필요 부분을 요약함)
------------
이하 기술하는 내용은 평어체로,
간간이 이상李箱 style "의식의 흐름"을 이미테이션 하는 표현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국문학, 국어교육학 커리큘럼에 한문시와 소설 강독, 한문 고전 강독,
한자시험 사범 수준의 자격 취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목으로 등재되어야 한다.
한국의 시, 소설 등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하기 위해서는
한문화권의 사서 3경을 비롯한 중국 고전 전부 내면에 장착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평론가는 자격미달, 함량미달, 낙서 수준이라 여기고 만다.
게다가 이상李箱의 작품 대부분이 1930년대 전후 일본어로 발표되었기에
출판사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흔적이 역력하고,
심지어 아직까지도 일부 작품들 중에 일본식 한자 독음,
조사助詞가 혼용된 것이 한둘이 아니어서 읽다가 단어와 문장에 맞는
한자 한국어 일본어를 떠올릴 수 있어야 이해가 제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유독 이상李箱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 문학 작품 전반 다 그러하다.
그러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으나 내가 적격한 자격자라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읽어보고 느껴보고 즐겨보고 평가하기만 하는 일개 독자일뿐이다.
그이는白紙우에다鉛筆로한사람의運命을흐릿하게草를잡아놓았다이렇게홀홀한가
돈과過去를거기다놓아두고雜踏속으로몸을記入하야본다그러나거기는他人과約束된
握手가있을뿐다행히空欄을입어보면長廣도맛지않고않들인다어떤븬터전을찾어가서
실컨잠잣고있어본다배가압하들어온다苦로운發音을다생켜버린까닭이다奸邪한文書를
때려주고또멱살을잡고끌고와보면그이도돈도없어지고疲困한過去가멀건이앉어있다
여기다座席을두어서는안된다고그사람은이로位置를파헤처놋는다비켜스는惡臭에虛妄과
復讐를느낀다그이는앉은자리에서그사람이平生을살아보는것을보고는살작달아나버렸다
(李箱 易斷 1936년 作品)
(백지, 연필, 운명, 초, 과거, 잡답, 기입, 타인, 약속, 악수, 공란, 장광, 발음, 간사, 문서, 피곤,
과거, 좌석, 위치, 악취, 허망, 복수, 평생, 역단, 작품)
(필자가 읽기 쉽게 독음을 표기함)
국어 맞춤법 표기로 미루어 1960년대 출판된 이상의 역단이라는 詩인데, 벌써 타이틀부터 심상찮다.
역단易斷에서 주역周易이 등장한다. 한자 단어는 당연한 것이고, 맞춤법, 띄어쓰기, 국한문 병용倂用
표기도 수 차례 변천에 변천을 거듭했을 것이다. 한자나 한문을 읽고 쓸 줄 안다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주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서 역단을 대한다면 주마간산走馬看山 해석이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면, 시상詩想의 터전이나 점쟁이가 복전을 받고 사주를 묻고 연필로 초안을 그리고 화자는 무엇을 주고
받는지 문서가 간사奸邪한지 짐작할 수 없고, 한다고 해도 제대로 와닿지 않는다. 일찌기
1974년 시인 고은高銀은 그의 "이상李箱 평전"에서 이상의 작품을 칭하여 성적인 도발挑發, 섹스 시詩,
모던 보이의 차용借用 등으로 신랄하게 비하 비난해 왔는데, 입만 벌리면 즉석 풀빵 같은 시로 둔갑하고
손가락만 긁적거리면 연작시로 부풀려졌던 그가 늦게나마 후배 여성 작가들을 어떤 시각과 자세로
대해왔는지, 식탁 밑에서 손가락을 어떻게 놀려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가당찮은 도발이었음이,
몸과 마음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자의 질투와 허영에서 비롯된 무자격자의 못된 소행所行이었음이....
내가 한 때 시인 백석白石에 천착穿鑿하여 그와 관련된 책이란 책을 다 후벼파다가 시큰둥해지던 무렵,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은태의 글꼴이 좀 궁금하기도 하여 몇 권 사다가 읽어내려가던 때에
시인 최영미 성추행 미투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카메라에 비친 영미의 눈동자를 보자마자 읽고
있던 고은태의 휴지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언문 언행이 따로 노는 자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악취惡臭에 허망虛妄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전 시집에는 오감도, 조감도, 역단, 삼차각 설계도, 위독, 무제, 미발표 유고, 대표 소설
날개, 대표 수필 권태 등 총 246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느 한 편도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다. 3세에
큰아버지 양자로 들어가 성장하면서 생부모와 이별, 경성고공 건축학 전공, 조선총독부 근무, 폐결핵,
약 3년간 "금홍"이라는 기생과의 동거, 무능한 남자, 친구 구본웅의 등장과 변동림과의 결혼, 재기를 위해
일본 도쿄 이전으로 점철되는 그의 생애 사건들이 전 시편에 대하大河처럼 흐르고 있다. 그의 년대기, 생애,
생활, 주변 인물들을 알아야 그나마 이해되는 표현들이 너무도 많다. 여자, 돈, 그림, 폐결핵, 건축, 자살,
유년 시절 양부모에게서 받은 설움 등이 구석구석에 녹아있다. 일본어, 일본식 한자, 생활상 등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와 압제가 그토록 느껴지는 것은 한민족의 비애다. "슬픈 이야기" 라는 짧은 수필에서는
몇 줄이나마 백석白石 시인의 느낌이 물씬 든다. 1930년대 그 당시 이상은 문학단체 구인회九人會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과도 교류가 있었으나 1912년생 백석과는 2살 터울이고 생활
터전이 당시 경성이고 같은 시인이었음에도 둘은 전혀 인적 연결이 있지 않았다. 백석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시풍이 주류 사조思潮로, 그야말로 한 시대의 로맨티스트였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주로 한국적 토속과 목가牧歌로 일관하였지, 이상李箱처럼 인간 심리의 흐름을 입체화 도식화
시화詩化 하지는 않았다. 기회가 되면 1930년대 한국 양대 시인의 작품을 비교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상은 1931년도 들어 그의 시를 일본어로 발표하였는데, 일각에서는 그러한 그의
족적을 두고 제국주의 추종, 친일파 논란이 일기도 하나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 문제 또한 차후에 말하고자 한다.
6.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정치학과 정의正義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학 1학년땐가
김성한金聲翰의 "이성계(Ⅰ,Ⅱ,Ⅲ)"
김동인金東仁의 "운현궁의 봄"을 읽게 되었고,
사실상 학교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 책이라는 존재의 중압감을
처음 느낀 시기였습니다.
김성한은
1919년 1월 함경남도 풍산 출생
교토대 법학, 도쿄대 영문학, 한국 국민대 경제학,
영국 맨체스터대 사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입니다.
전공의 다양함은 식견이나 시야를 보다 넓힐 수는 있겠고,
다른 한 편으로 나처럼 깊이로는 천박淺薄이고 잡학으로 흘러갈 소지가 다분합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서사해를 넘나들며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는 복덕을 타고난 분
(필자의 사족蛇足)
어느 해 한겨울 엄동설한에 나의 집 골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위화도威化島를 회군하는 번득이는 무장武將,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이성계李成桂의 기개와도 같이
1,2,3권 일도양단 전광석화처럼 읽어내려갔습니다.
너무 박진감 넘쳐서요.
고향집 호롱불 동백 기름 아주까리 기름은 밤새 타들어갔습니다.
김동인은
1900년 10월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 학원 중학부
미술학원인 도쿄 가와바타 화숙川端画学校 학력이 전부입니다.
그의 내향內向으로 미술가 기조基調가 흘러서 그런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삶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던 김동인의 생애,
흐느적거리는 대원군의 삶,
문장 전반에 비운悲運에 찬 회화적繪畫的 장면들이 곳곳에 드러나는데,
격동의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삶과 예술,
정치 역정을 그린 "운현궁의 봄"은 김성한의 "이성계"
전개 흐름과는 달리 상당히 유미주의적aesthetic 자취와 여운이 있습니다.
비록 자신은 권문세족權門勢族들 상갓집 마당에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도 마다않는,
빌어먹는 개로 살았어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하고 폐족廢族이 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그의 아들을 조선 26대 고종으로 옹립擁立하기까지
그림같은 장면들이 글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한국 국문학사에 적지않은 족적을 남긴 김동인이 작가임을 내세워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직후 자발적으로 일본군 위문사절단으로 참가하여
활동한 역사적 근거가 드러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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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법학, 정치학 교양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인문사회과학의 입문 단계에서 최상단 주제를 말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정의正義" 말고는 치고 들어올 테제these가 없습니다.
정의를 말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균적 정의, 일반적 정의, 배분적 정의로 스타트 하죠.
이극찬李克燦 교수는 박사 학위 없이 대학 강단에서 정년까지
활기 넘치는 강의에 몇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의 "정치학 개론"은
정치학 입문서임에도 내용도 서술도 문체도 깔끔 명료 다양 신선한 충격에,
이미 정해진 속박束縛같은 프레임의 법학을 놓아버리고 정치학으로
전과轉科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아냈어야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개인에게 끼치는 정신적 문화적 충격은 깊고도 넓은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정의는 늘 상황에 따라 평등과 일반과 배분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고,
권력으로부터 천부적天賦的 인권의 보장 범위와 한계 문제에 봉착逢着해 왔으며,
그 때마다 무소불위의 정치 권력이 등장하면서 그간의 치열했던 고민과 결정 장애를
한 방에 무너뜨리면서 권력이 유리한 쪽으로 깃발을 치켜들었던 사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죠.
예를 들면,
대법원 판사가 최후 판결로 형사사건의 피의자에게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복역 중인데, 형기 1년도 채우기 전에 특별사면으로 석방을 할 경우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특별사면권이 과연 정의正義로운가?
만일 그것이 진정 정의롭게 주어진 권한이자 결정이라면
"법관은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에 입각하여 양심적인 판결을 해야 한다"
라는 전제에서 내린 판결은 정의롭지 못 하며,
이를 짓밟는 것은 비정하고도 냉혹한 부정의不正義가 아닌가?
(형사소송법 제 308조 참조)
그러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388년 고려 우왕禑王 시절에 일개 부족국가의 국경지대를 수비하는
위수지역 사령관 이성계가 명나라 요동을 정벌하라는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위반하여
군사를 돌이켜 왕권을 탈취하는 것이 정의에 타당한가?
반란叛亂이라는 용어를 회군回軍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정화 미화시킬 수 있는가?
김동인이 한국 근현대 소설, 국문학사에 끼친 업적은 도외시 하고
단지 일제 황군의 위문 행적을 문제 삼아 정치권력이 사자死者의 무덤을
파묘破墓하듯이 대들고 낙인 찍는 행위가 과연 정의로운가?
또한, 방탕한 생활로 가세가 기울자 제국주의 일본을 넘나들며
경제활동을 영위한 행위는 일제의 경제 부국에 기여한 것인데,
이를 두고 진정 친일 행위로 규정해야 하는가?
규정 짓지 아니하면 부정의不正義인가?
이미 독재자의 낙인이 찍혀있으나
이승만의 무덤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의 사후 세월이 벌써 58년이나 흘러가고 있는 시점에서 문학 문화 역사적
사실史實을 발굴하고 평가하려는 예비 작업들에 어떤 정의관을 내세워
기피 차단 반대 또는 옹호 지원 찬성할 것인가?
이승만이 조선의 왕정을 타파打破하기 위하여
고종 폐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5년 7개월간 일제의 감옥에서 옥고를 치뤘는데,
역사적으로 그가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데모 주동자인데,
지금 45678 운동권 입장에서 혁혁한 공적자, 민주 투사의 선구자 되고도 남지 않는가?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
반미反美를 외치며 학교에 방화를 하고 진압 경찰 불 태워 죽이고
그러다 민주 투사 되고 국회의원 되어 기세등등 살아가는 게 정의라면
왕의 곳간, 내탕고內帑庫를 털어 왕정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면
소위 운동권 인사들은 그의 정신을 길이길이 받들어야 하나?
민중을 동원한 왕정타파 거사擧事는 개화파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군주에게는 반역 주동자였으나 왕정 몰락의 초석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인가?
그 직후 이승만은 구사일생으로 석방되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기 위하여 미국에 파견되었는데, 이는 정의에 배치背馳되는 행위인가?
그렇다면 그간에 자자손손 누리고 있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혁명 투사,
운동권 경력으로 추앙받고 있는 온갖 서훈자들은 무슨 근거로 그리 하였나?
그 모든 정의正義의 위대한 근거와 근간根幹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본웅이 그린 李箱이상, 〈친구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65×53cm, 1935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구본웅은 이상의 처 변동림의 조카, 구본웅의 계모 변동숙이 변동림의 이복 언니)
한국 최고의 쉬르리얼리즘surréalisme , 초현실주의 작가의 금자탑
이상李箱은 약 4년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기사로 근무했는데,
이를 두고 일제 앞잡이, 친일파로 낙인 찍을 것인가?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가?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포함하여 총 20편의 시를 일본어로 발표
19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일본어로 발표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李箱은 친일파 문학의 대표격 인물 아닌가요?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가서 인류의 정의관에 새로운 시각이 일어납니다.
2010년 10월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이 등장하면서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기존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를 재정립해야 했습니다.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잘못된 나의 정의관을 개편하기 위해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했습니다.
밑바닥 수준의 정치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고급 정치철학서
샌델은
공리주의적 관점--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평등적 자유주의적 관점--존 롤스 John Rawls
자유지상주의적 관점--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
공동체주의적 관점--앨러스트 매킨타이어 Alasdair Chalmers MacIntyre
각 주의主義의 반성적 평형反省的 平衡을 통해 각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은
어떤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 줄 것인가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공공선公共善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민 의식을 만들어 내며,
그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상 마이클 샌델의 주장 필자 일부 요약)
샌델이 주장하는 정의의 관점에서
필자가 영위하는 직업과 관련하여 정의正義에 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신약新藥 개발 프로세스 , 소요 년수, 성공비율을 살펴본다면
필요성 및 시장조사 - 생물학적 지표 설정
후보 물질 선정 - 치료 약효 물질 탐색
전임상 시험- 동물실험 및 독성실험
임상시험 승인 - 인체 유효성 및 독성 판단 심사 - IND 승인
임상 1상 - 안정성 집중 검사
임상 2상 - 약효및 부작용을 확인, 성공율 20% 미만
임상 3상 - 장기 투여시 안정성을 검토, 소요 년수 5~10년, 성공율 5% 내외
임상 4상 - FDA 품목허가
위의 프로세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약 한 품목이 연구 개발 승인되어 판매되려면 500억, 1천억
거액의 개발비용에 10년 동안 성공율 5% 내외로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임상 실험 대부분 3상 단계에서 90% 이상 폐기되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2020년 전세계에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게 되었고,
부랴부랴 불요불급한 신약 개발 과정이 생략된 채로 거의 착수 1년만에
미국 모더나Moderna의 백신이 긴급이라는 미명 하에 승인 보급되었습니다.
모든 화학적 약품은 이팩트가 있으면서
동시에 사이드 이팩트가 있어
애니멀 테스트와 파이널 테스트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용 51%, 부작용 49%만 확인하고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는 생략하였으니
매우 위험하고 위법하지만 공공선, 다수의 행복을 위해
합법적으로 품목 승인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인류가 매우 긴급한 위험에 처했던 것이죠.
마이클 샌델의 주장을 도입하면,
위기상황을 구실로 삼아 공공선善을 향한 공동체 시민의식의 고양 및
적극적인 참여 확대가 매우 저해되고 배제되면서
비정의非正義, 부정의로운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합법성을 부여받아 전 세계에 긴급명령권을 발동,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개발한 백신을 투여하라 하였던 것입니다.
(필자의 견해, 정의의 변질, 정의의 퇴행적 퇴폐적 해석)
충분한 안전 실험을 거치지 않고 투여되어
49%의 부작용으로 고통 받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을 텐데,
그 부정의로운 행위로 인한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10년 이상 실험 기간을 거쳐 백신을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패스트 트랙으로
1년만에 상품화하여 인간의 신체에 투여할 것인가?
무엇이 보편적이고도 진정한 정의正義인가?
국가 또는 정치 권력, 정치집단이 어떤 상황에
어떤 정의관을 견지해야 하는지
그에 따른 개인의 사안별 정의관正義觀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
매우 중요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애는 길게 잡아 100년
인류 역사는 유구悠久하여 끊임 없이 흐릅니다.
한 개인이 선구자적 삶을 살아왔으되 공과功過가 있을진대,
역사나 인간사나 어느 한 부분을 뚝 잘라 단절시켜
단면만 보고 색깔을 입히고 덧칠을 하고 단정을 짓는
결단론적 정의관은 경계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위하여 어떤 정의관의 입장에 설 것인가?
깊이 자문自問할 일입니다.
첫댓글
몇 주 전 산행에서 눈솔님과 괜한 언약을 하여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들어왔습니다.
미완성이며, 틈틈이 입력하고자 합니다.
완성된 글을 올리지 않고 제목 한 줄 써놓고 중간중간 첨삭 보완 수정하면서
내용을 채워나가는 취향이라 마무리 되기까지는 다소 엉성하거나 난잡할 수 있습니다.
쓰다가 아니다 싶으면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선배님~~
뭐라 댓글을 써야 할지....
속상하고 어이없던 마음이 선배님 " 들어가전에"를 읽으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많은 사람이 읽고 제대로 공감하여 이 공간을 잘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영장봉 오름짓에
"속이 울렁이고 숨끊어진다." 는 표현에 대공감입니다.
주말에 삼각산을 오르려 가다보면 먼발치 삼각산 능선만 보여도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임은 감출 수 없답니다.
약속을 지키려 글 올려주신것도,
서두에 독서방의 방향에 대한 말씀도 그지없이 감사한 맘 가득입니다.
@눈솔
독서일기 칼럼의 바람직한 정착과 발전을 바라는 눈솔님의 바램대로
고금명저들에 대한 독서가들의 수려한 명문 독서 후기들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어서오셔요.
대단한 문장가가 들어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제가 그렇게 부탁해도
글 한 꼭지 안 올리시더니, 눈솔님이 통했군요.
산에서 만나면 말로써 장난치고 싶은 한 사람, 그 이름 빨강......
나를 근거없이 추켜세우면 낭인들로 하여금 바로 확인 사살에
칼질 난무하는 거 아는지 모르는지...
그나마 쫀득쫀득한 면빨을 자랑하던 국수가 수명을 다해서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을라나.......
이곳의 길잡이 터잡이 향도로서 아까님의 혁혁한 활약을 기대합니다.
근자에 우리 카폐 회원중에
책 읽고 글 써보는 분들이 많음에
무척 반갑습니다.
읽었던 책을 단순히 ctl+c 하는 저로서는
몹씨 부끄럽긴 하지만
모택동의 문장론에 용기를 냅니다.
"일단 써놓고, 맘에 들 까지 고치면 된다"
모택동 어록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내버려둬라.
나는 조용한 것보다 시끄러운 게 좋다.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는 시끄러운 법이다.
어린시절, 마을에서 돼지새끼가 태어날 때도
온 동네가 밤새도록 꽥꽥 소리로
시끄러웠다."
만득이님!
내가 산악회에서 적지 않은 연륜이나 벌어놓은 돈도 없을뿐만 아니라
아직 작은 아들이 공부를 마치지 못해 주중 내내 노가다를 해야 되고,
그렇다고 주말에는 산에 안 가면
숨이 막혀 뒤지는 취향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 따각거릴 수 만은 없고,
뭘 쓰기는 써야 되겠는데 그럴 틈이 없으니 틈새 몇 자씩 끼워넣고 있음을 이해바랍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우선은 신체 용모에서,
그 다음은 뱉은 말과 남긴 글로써 대충 알게 되는데,
선현들은 한 줄의 글이라도 심사숙고, 형극에 가까운
조탁雕琢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강조했으니
한 줄 댓글, 타인 글 인용 ,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한 점조차도 섣불리 남길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책과 소견, 만득이님의 많은 관심과 활약을 기대합니다.
정녕수수어선배님!
산에 컵라면 국물조차도 버리지 말도록 하자는 말씀
너무 숨이 막힙니다.
사람이다 보니 실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고상하고 엄격하게 이 방을 운영하면
저 같은 습작생 들은 엄두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백가쟁명 백화제방 난장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득이님!
주말 이틀 연속 산행을 했더니 무릎이 뻑적지근하네요.
산에 온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 서글퍼집니다.
서로 일면식 없는 분이나 별명에서 바로 친근감, 꾸밈없는 솔직담백, 직설에 감정을 숨기지 않는 분으로 여겨집니다.
온라인 창에서 벌어지는 댓글 논쟁에서는 각자 내면의 주관, 살아온 경험과 소신, 잣대로만 해석하게 되어
몇 줄 잘못 주고받다가는 감정이 상하기 쉽고 급기야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 하고,
산에서 만나면 술 한 잔 하자구요........
얼굴 맞대고야 무슨 얘긴들 못 하겠어요?
이곳에 오는 모든 분들 전부 소중한 인연입니다.
진솔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좋은 하루 되시길......
@정녕수수어 헉!
못 마땅해서 직설로 들이 대었는데
대인배(君子)의 풍모로 보듬아 주시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앞으로 선배님 말씀 좀 더 헤아리도록 하겠습니다.
@만득이
2023.9.24일 노적봉 사진입니다.
만득이님을 알게 되어 기분 좋구요,
만날 때 알아보시라고....ㅎㅎ
훨~~
한참 청춘이네 ㅎ
동상 만나게 되면 내 말 놈세 ㅋㅋㅋ
달마대사를 숭산 소림사로 떠나게 만든 불심천자 양무제의 동궁이라면 소명태자입니다.
소명태자는 금강경을 서분.정종분.유통분 등 32분으로 나누어 편찬하여
경전을 편안하게 널리 읽히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유협이 소명태자의 태부(太傅)였다면 실질적으로 금강경을 쉽게 읽히도록 만들 분입니다.
훨버트선교사가 한글 띄어쓰기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글 읽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리고, 문심조룡이 무슨 책인고 찿아보니
오늘 날 글쓰기 책의 원조격이네요.
(천지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영묘한 마음이 글로 나타날 때 훌륭한 문장이 나오는 것) 이라고 문학을 규정 했네요.
유협과 헐버트는 저렇게 훌륭한 일을 하셨는데
유협을 소개 해 주신 "정녕수수어" 님의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파자하여 별명 해석이 가능할지요?
언제 나의 소견으로 이상 님의 작풍作風에 대해 따각거릴지 알 수는 없으나
멀리 나아갈 것도 없이 바로 저 위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李箱 님 작품 전부가 띄어쓰기 개무시한 장본인이고,
책 내용 모든 거 다 품사 무시 무개념으로 다닥다닥 붙여 출판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품사를 낱낱이 긋고 띄우고 붙이고,
알맞은 곳에서 숨 좀 끊어보고 들이마시기도 하면서
리드미컬하게 잘 읽고 넘어가지는 지점,
고지식하고 미련스럽고 고리타분함이 풀풀 넘치는 글,
나는 저러한 옛날 맛 나는 세월 유수에 역행하는 글과 활자가 좋습니다.
결국 한글 띄어쓰기 안 되는 글쓴이 수준 떨어진다고 비하 하기보다는
요절남 글 천재 이상의 후예라고 오히려 칭송해야 마땅하다....... ㅎㅎ
@정녕수수어
그리하여
한 벌 와이셔츠 한 보름 내내 입고 싸돌아댕기는
구겨지고 고리타분하고
1960년대식 푹 삭은 냄새 나는 놈이라고 여자들이 날 안 좋아합니다.
지레 겁먹고 괜히 말 붙였다가는 묵사발 될 거 같아
여 산우님들은 1년 가도 내게 말 한 마디 안 건네요.
@정녕수수어 문장은 이상을 따르는 아해가 되시고
사람의 겉 무늬는 백석이나 박인환처럼 기름기 좔좔 흐르게 빼 입고 다니십시요.
포마드도 바르시고요.
가시내들이 졸졸졸졸 따라 댕길 겁니다.
정녕[丁寧]국어
뜻
거짓이 없이 진실하게
정지용 산문집에는 「수수어(愁誰語)」·「다도해기(多島海記)」·「화문행각(畫文行脚)」 등과 같은 수필류와 시론(詩論) 및 기타 역시(譯詩)와 일반 평문 등
자(子) 가 정녕이시고
인생철학이 수수어 이십니까?
노스 어틀랜틱 Sea 윗쪽 웨스트 아프리카 작은 국가
기니Guine 라는 나라에 소수 민족 수수어Sosoxui족이 살고 있습니다.
줄여서 Susu, 수수족族이 쓰는 언어가 수수어語
동명이의어로 정지용님의 음식 기행 수필 수수어愁誰語가 있습니다.
"정녕수수어丁寧愁誰語"
아프리카 토인이나 쓰는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 할래??
정녕 말 똑바로 안 할래??...... 제대로 말해.
사이비 문장 작명입니다.
별명을 있어 보이게 할라고 야리꾸리 한 것을 쓴 거 같아
꼬장꼬장한 영감 같은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고 빠르게 알려주시니
정녕 수수(秀秀)하고 수승(殊勝)한 것이 있어 보입니다.
수시로 늘여나가는 글이
점입가경 이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삼천포에 와 있는 느낌 입니다.
대중들을 우민화 시킬 때는 이상한 논리로 먼저 입을 다물게 만들죠.
80년대 초반 3저로 경제가 호황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두환이 사람은 죽였지만 경제를 윤택하게 한 경세가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종합적으로" 사람을 평가 할 때
전두환이나 이승만을 대통령인 정치가로 보지 경제인이나 예술인으로 연구하지는 않찬아요.
만득이님!
조잡하고 저급한 나의 몇 줄 글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지금 연세에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독서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너무 훌륭하십니다.
나도 그러한 정도 열정까지는 없거던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인물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전부에 접근해봐야
그나마 어렴풋이 실체 파악이 될 수 있다고 보고요.
이승만 연구원에서도 그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연구원까지 설립한 취지가
꼭 정치적인 목적이나 판단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겁니다.
역사학자가 석기시대 고인돌, 신라 백제시대 의총, 벽화, 왕릉, 문헌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이
특정 인물을 미화하거나 정치적 해석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것과 같지 않을까요??
이승만 전집이 9권까지 나와있으니 사서 읽기는 부담스러울 테고,
통째 빌려서 한 번 보신 다음 만나서 말씀이라도 나눈다면
나의 진의를 전혀 오해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저 한시와 서예, 지나간 인물의 옛글에 관심이 있을뿐........
우리 부지런하신 만득이님, 오늘도 화이팅...ㅎㅎ
@정녕수수어 우물물을 다 마셔야 우물 맞을 압니까.
한 모금 마셔보면 바닷물이 짠지를 알지요.
이승만은 민물인지 짠 물 인지 사회에 조금만 관심 있는 분들은 평가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이승만 연구원은 식민지 근대화론 낙성대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뉴라이트분들이 좌파에 맞서기 위해 "특별한 정치적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잔아요.
사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선배님의 지식에 열독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광팬이고요.
단지 저의 반론 같은 의견을 달아 본 것 입니다.
앞으로도 공감은 공감 표시 하고 부동의는 솔직하게 의견 표시해도 받아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대립과 갈등 분열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앙망 합니다.
@만득이
잠자코 계신 걸 보니 인쟈 오해가 좀 풀렸나요, 만득이님???? ㅎㅎ
봄이 지났다고 꽃 향기 다했다 말하지 마오.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을 읊어보고 뜯어 보고 씹어 봐야 한다.
한권의 책이 개인에게 끼치는 정신적 문화적 충격은 깊고도 넓은 것입니다.
선배님 ~~
꼼꼼히 채워나간다는게 무얼까 싶었는데 오늘 읽어보니 아!! 이런 뜻이구나 싶네요.
제가 활자 중독인지 글씨는 열심히 읽는데 도대체 이해력이 늘지않음이 답답하였는데 선배님 글을 읽으며 제 자신의 오류를 찾았습니다.
뜯어보고 씹어보고를 하지 않았던 때문이네요.
"이상"
그의 이야기를 또 기다려 봅니다.
"이상李箱"........
주제 넘게도 가장 난해한 인물을 괜시리 들쑤셨나요......
머리 아파요. ㅎㅎ
@정녕수수어 선배님의 글을 시원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짧고 얇은 제 지식이 안타깝네요.
이상
그의 본명이 김해경이란 것도 잊고있었는데...
그의 일대기를 요약해서 읽은 느낌입니다.
이상과 백석의 시형태를 비교해 설명해 주시니 구별이 쉬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전쳬적으로 한자를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아래쪽에 음을 표기해 주신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독서일기 방장이 되었어요.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걱려 부탁드립니다.
@눈솔
"독서 일기 방" 방장 눈솔님!
방장 선임을 축하드립니다.
방장 선임을 계기로 "독서 일기 방" 이라는 칼럼 타이틀 취지에 맞게
여러 분야에서 할약하시는 산우님들의 훌륭한 독후감에 매료되어
독서 열기가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정녕수수어 그런 바람을 가져보지만 선배님들의 도움이 없으면 공염불이 되지요.
진심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즐길 수 있는 방이 되길 소망하는 맘 간절힙니다.
정녕대감나으리께서 천리안으로
쇤네만득이 속마음을 들여다보십니다.
사람은 스스로 배우고 알고자 하지만
갈치려들면 피하는 묘한속성이 있습니다.ㅎ
오랜시간에 걸쳐 쌓여진 한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ㅋ
매일 아침 선배님 이음글 부터 확인하는
소인은 이미 스승님 문하에 들었습니다.
학이 시습지 하오니 불역열호입니다!
이승만과 이상에 대해서는 용두사미로 맺게 되었습니다.
어찌 쓰다보니 너무 길게 나갔습니다.
산악회 칼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읽어내려가다가 일부 첨삭과 오탈자 수정은 하겠으나
더 나가면 낙서로 둔갑할 수도 있겠기에
이 즈음에서 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부족하고 미흡합니다.
서툰 자의 헛발질 정도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수시로 조탁하시는 스승님 글을
위편삼절하였더니 어느새 인이 박혀
세뇌가 되었사옵니다.
뱁새와 같이 어리석은 제자는
스승님 학문의경계가 한량없이 무변광대하여
연작이 홍곡지지? 하옵니다.
다음번 글문에서는 한가지 주제로
가르쳐 주시면 뱁새걸음일 지언정
스승님 발자국을 바짝 따라붙겠습니다.
만득이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어제는 거의 10년 만에 도봉산 Y 계곡을 오르내렸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위험하고 힘들고 아찔한 곳이기도 하죠!
백합꽃 같은 할머니 한 분을 절벽 난간 외길에서 만났겠지요.
너무 놀라와서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여쭈니 곁에 있던 아들이 79세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이구, 사모님 저보다 1살이나 어리고 너무 고우십니다 라고
인삿말을 건넷더니 노란 들국화처럼 해맑게 웃으시데요.
그 순간 아들이랑 등산 한 번 못 가고 떠나가신 내 어머니 생각에 ........
나에 대해 만득이님이 남기신 호칭이나 평가가
나의 천박한 잡글 수준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학자도 아니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한 평범한 필부에게
격에 맞지 않은 호칭이나 대접은 낮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만득이님의 남다른 독서 열정과 지식 습득 욕구와 그 실천이 부럽기도 하지만,
시력 저하의 원인 되는 독서보다는 건강 관리에 더 매진하셨으면 합니다.
산에서 자주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녕수수어 여러 분야에 높은 식견과 자기만의 관점을 지니신 선배님을 알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나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비록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선배님이 있어 좋습니다.
아들과 함께 산행 하는 할머니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사무친다는 말씀 한 줄이
몇 일에 걸친 본문 글보다 더 큰 감동을 주십니다.
삐딱한 저의 댓글에 일일이 좋은 말로 가르쳐 주셔서 저는 이제서야 인터넷 예절을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
또 들어와서 읽어 봅니다.
한번에 읽고 이해하기 어려워 나누어 읽고 다시 읽고하니 처음보다는 익숙해진 느낌입니다.
깊고
울림이 있는 선배님 글.
독서방의 매력을 이곳에서 발견하네요.
또 기다려지는 편지같습니다.
선배님 글은......
눈솔님!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나는 잡학 천학 수준이라 더 이상 기대하시면 안 돼요.
대신에 이곳에 비교 문학 전공, 일 문학 전공, 독일 헤겔 철학 전공 하신 전문가 몇 분 계신데,
그 중에 한 분이라도 일생 감명 깊었던 책 있다면 독서 일기 칼럼에
한 번 소개해 주시길 간청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솔님 외에 일부 몇 분들 참여 만으로는 "독서 일기 칼럼" 의 바람직한 정화, 활성, 정착이 어려울 것이니,
많은 산우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변에 계신 분들께 책 소개, 독서 일기 글 올리기를
부탁하는 수밖에요......
@정녕수수어 그렇지요.
몇몇 사람이 이끌어 갈 수는 없으니 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쉽고 아쉽네요.
선배님 홍보도 많이 해 주시고요.
잊을 만하면 한 꼭지씩 올려주셔서 힘나는 격려도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