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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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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임진탐매 계획서
눌인 추천 0 조회 242 12.01.29 22:4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임진탐매 계획서

 

2012년 1월 20일 대구수목원에서 본 매화

 

설도 쉬었으니 곧 봄이 올 것 같다. 이맘때만 되면 마음아 애련(哀憐)해 옴을 느낀다. 단속사 정당매의 가녀린 가지 끝에 한두 송이 핀 매화꽃이 그리워서이다. 늙고 쇠해서 밑동엔 돌 옷 같은 이끼로 덮이고 그나마 한쪽은 죽었는지 새 가지가 없는 단속사 정당매. 올해는 힘찬 매화꽃이 맺힐는지 기대해 본다. 몇 해 전 주인이 세상을 버린 후 노쇠했다가, 마침내 밑동이 까맣게 죽어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원정매. 올해는 기적이라도 일어나 한두 송이라도 꽃이 피어날는지

 

지난 봄에는 국내에 알려진 고매(古梅)와 명매(名梅)들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녔다. 보통 고매(古梅)란 수령이 150년 이상된 것을, 명매(名梅)는 저명인사가 심었거나 가꾸어 왔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명매 거의 전부는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겨 파리하게 보이는 고매들에 속한다. 또 옛 문인들은 가지에 붙은 꽃이 많지 않고(稀), 나이 먹고(老), 줄기와 가지는 마른(瘦) 매화의 꽃봉오리로 등위를 매겼다고 한다. 그래서 탐매꾼들은 늙은 등걸에서 기이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가 힘차게 뻗어 나와 점점이 붉은 꽃과 흰 꽃을 피워내는 자태를 더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명매(名梅)의 경우, 늙고 병들었어도 심고 가꾼 주인이 있었기에 수형이 아름다운편이다. 그리고 보통 집 앞뜰에서 자랐기에 정매(庭梅)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정매를 보러갈 때는 그 주인이 누구신지에 대하여서도 많은 공부를 하여야만 하였다. 열심히 공부한 후 찾아다녔고 그리고 블로거에 아래와 같이 열심히 소개하였다.

 

2011년 탐매여행 14 - 장전매(長田梅) 2011.04.30

2011년 탐매여행 13 - 죽림원림매(竹林園林梅) 2011.04.29

2011년 탐매여행12 - 와송당매(臥松堂梅) 2011.04.25

2011년 탐매여행 11 - 계당매(溪堂梅) 2011.04.25

2011년 탐매여행 Ⅹ - 선암매(仙巖梅) 2011.04.21

2011년 탐매여행 Ⅸ - 송광매(松廣梅)도 만개(滿開) 중 2011.04.10

2011년 탐매여행 Ⅸ - 대명매(大明梅)는 만개(滿開) 중 2011.04.08

2011년 탐매여행 Ⅷ - 백양사‘고불매(古佛梅)’는 개화 중 2011.04.07

2011년 탐매여행 Ⅶ - 소록도‘수양매(垂楊梅)’ 2011.04.04

탐매여행 Ⅴ - 산청 3매 ① 원정매 ㉯ 새 삶을 이어가는 원정매(元正梅) 2011.04.01

탐매여행 Ⅳ - 원정매(元正梅)- ㉮ 원정공 하즙(河楫)은 누구인가 12 2011.04.01

2011년 탐매(探梅)여행Ⅲ- 통도사 백련암(白蓮庵) 2011.03.20

2011년 탐매(探梅)여행Ⅱ- 통도사 극락암 [1] 2011.03.17

2011년 탐매(探梅)여행Ⅰ- 통도사 [2] 2011.03.16

올 봄에는 매향(梅香)을 찾아 떠나자. [1] 2011.02.25

 

산청삼매-원정매(元正梅)· 정당매(政堂梅)· 남명매(南冥梅)-는 몇 번씩 찾아보고 소개한 것 같다. 호남오매(湖南五梅)-백양사의 고불매· 선암사의 선암매· 지실마을의 계당매· 전남대의 대명매· 소록도 수양매 -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담양지역을 위시한 호남의 여러 명매들을 둘러보았지만 소개하지 못한 명매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원정매(元正梅)

정당매(政堂梅)

남명매(南冥梅)-

또 경북2매-도산매(안동 도산서원), 서애매(하회마을 충효당 왼쪽 영모각 내당 쪽 담장 앞)와 병산서원 매화, 묵계서원 홍매, 퇴계종가 매화 역시 둘러보았지만 소개하지는 못하였다.

 

도산서원 매화원

서애매

병산서원 매화,

묵계서원 홍매,

퇴계종가 매화

그러나 꼭 보고 싶었던 매화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우리나라의(남한) 최북단에서 생육하고 있는 강능 오죽헌의 율곡매가 그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천연기념물 485호로 지정된 지리산 야생매, 즉 화엄사 길상전 앞 백매는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올 임진년에는 작년에 보지 못한 명매들을 집중 찾아보기로 하였다. 구례읍 봉북리의 가정집에서 자라는 백경매, 밀양 금시당(今是堂)의 금시매(今是梅), 김해 화룡매가 그들이다. 또 안형재(安亨在)의 『한국의 명매(名梅)와 고매(古梅)를 찾아서』라는 책에 소개된 나머지 아래 고매들 중 찾아보지 못한 것들에 붉은 색을 칠하였으면 한다.

 

1.학봉종택매 2.원앙매 3.도산매 4.지운매 5.무위사홍매 6.운조루 위매 7.부여 동지매 8.불영사 고매 9.고흥 원매곡리 고매 10.매화당 고매 11.조씨 백매 12.최씨고택 백매 13.무등산 행매 14.경주박물관 백매 15.송광사 백매 16.각황매 17.환벽당 백매 18.지곡리 매화 19.동계종택백매 20.자장매 21.해사홍매 22.허씨고매 23.지장암 행매 24.창덕궁 만첩홍매 25.청풍고매 26.서애매 27.취가정 행매 28.울릉야매 29.표충사 백매 30.최참판댁 백매 31.왕인매 32.쌍정매 33.연세백매 34.쌍봉 마을 야매 35.소쇄원분홍매 36.남산와룡매 37.서당야매 38.이씨 고매 39.대원사 백매 40.충민사 백매 41.백산 고매 42.병산고매 43.산동매 44.쌍봉사 야매 45.안덕고매 46.이씨고매 47.서석지고매 48.하촌야매 49.무월리 고매 50.북이 행매 51.외산매 52.창촌야매 53.팔판동 동지매 54.운문사 백매 55.박사마을 홍매 56.담양와룡매 57.원동매 58.서산서원 녹악매 59.자경전 행매 60.대천고매 61.고산서원 노사매 62.금둔사 백매 63.금강산 매화 64.길상암 고매 65.개평리고매 66.괴시마을 매화 67.곡전매 68.불국사 성림매 69.구림매 70.박실고매 71.건청궁 고매 72.덕암정사 백매 73.홍씨 행매 74.웅치 행매 75.희우루행매 76.전대 백매 77.신월행매 78.소록도 백매 79.송씨종택 고매 80.쌍벽당 고매

 

해마다 2월말경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서성이기 시작하였지만 올해는 1월말인데도 매화에 대한 그리움이 졌다. 산림청에서 2012년 1월 25일 겨울의 진객 '납매(臘梅)'가 설 연휴기간동안 경남 진주의 남부산림연구소 정원에서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그보다 이른 1월 20일 대구수목원에서 비록 온실에서 자라는 분재였지만 매화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1월 20일 대구수목원에서 본 매화

진주 남부산림연구소 정원에서 핀 납매- 낙엽활엽관목인 납매(Chimonanthus praecox)는 중국이 원산지로 2~5m까지 자라는데 추위에 잘 견뎌 전국 어디서나 생육이 가능하다. 대개 2월초에 잎보다 먼저 노란색 꽃이 핀다. 지름 2cm 정도의 작은 꽃들이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내내 핀다. 꽃잎 바깥쪽은 연한 노랑색이고 안쪽은 암갈색이고, 줄기는 지면에서 여러 개 올라가서 촘촘하게 자라고 가지는 가는 편입이다. - 사진 및 설명은 산림청에서

]

여태껏 해마다 매화와의 첫 만남은 순천시 낙압읍성 옆 금전산 금둔사의 납매(臘梅)였다. 올해도 이곳과 함께 순천시 매곡동 주택에서 자라는 홍매를 보러 갈까 하였다. 그러나 목적지를 바꾸기로 하였다. 매화를 혹애(酷愛)하여 75제 107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남겼으며 그 중 61제 91수가 그의 '매화시첩'에 수록되어 있는 퇴계 이황의 정신세계를 먼저 느껴보기로 하였다.

 

 퇴계 이황의 초상과 함께 백매화가 도안되어 있는 천원권 지폐

오만원권 뒷면 어몽룡魚夢龍(1556-?)의 「월매도月梅圖

 

퇴계는 매화를 꺾어 책상 위에 꽂아 두고 바라보기도 하고, 뜰의 매화를 바라보며 매화와 서로 묻고 화답하는 시를 여러 차례 읊었다. 달이 밝으면 매화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하고 매화가 겨울 추위에 손상되었음을 개탄하는 시를 읊어 제자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 매화분을 가져가지 못하여 그리워하다가 제자가 매화분을 보내주자 그 회상을 시로 읊기도 하였다.

 

혹자는 그의 매화시를 중국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였던 송대의 은사(隱士) 임포(林浦)가 보여주는 매화와 일체화된 삶을 본받고자 하였고, 표현에서는 소동파와 주자의 매화시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지닌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매화와 다음과 같이 화답하면서 이른 봄을 맞았던 것이다.

 

'매화가 주인에게 주다'-매화가 퇴계에게 주는 형식으로 읊은 시

 

籠榮聲利豈君宜 부귀와 명예가 어찌 그대에게 맞으리

白首趨塵隔歲思 흰머리 날리며 티끌 속에 있다가 해를 넘겨 생각했네

此日幸蒙天許退 오늘 다행이도 물러감을 허락 받았는데

況來當我發春時 하물며 이 좋은 나의 꽃피는 시절에 왔도다

 

'주인이 매화에게 답하다' - 퇴계가 매화에게 답하는 형식으로 읊은 시

 

非緣和鼎得君宜 재상과의 친함은 그대와 인연이 못되도다

酷愛淸芬自詠思 맑은 향내 사랑하며 스스로 생각하며 읊조리네

今我己能來赴約 이제 내가 다시 올 약속 지켰으니

不應嫌我負明時 밝은 세월을 져 버렸다고 허물일랑 마시오

 

도산서원에서 동북쪽으로 하계, 원촌, 천사를 지나 낙동강을 건너 산을 오르면 청량산 줄기 아래 낙동강 상류가 굽이쳐 흐르는 절경이 내려 보인다. 오른 쪽 산자락 앞에는 속칭 가사리인 가송리(佳松里)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가운데 나즈막한 고산이 서있는데, 이곳에는 퇴계의 문도였던 성재(惺齋) 금문원(琴聞遠;1530~1570)이 세운 고산정(孤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1564년 늦은 봄 64세의 퇴계는 당시 35세의 성재와 이곳에서 시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지은 퇴계의 시는 고산정에 걸려 있다.

 

次 琴聞遠 孤山韻 금문원의 시 고산에서 운을 빌리다.

 

君非出仕故無歸 자네는 벼슬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니 돌아올 필요도 없네

占斷煙霞自不違 안개와 저녁노을 산수경치를 홀로 차지한 것과 다를 바 없네

境絶更饒田墾闢 빼어난 경치에 넉넉한 밭을 개간하였고

山孤唯稱鶴栖飛 산은 높아 외로우니 학이 깃들기 알맞으리.

四時來往雙茫? 사계절 오갈 때는 짚신 한 쌍만이 족하리라

萬事榮枯一?衣 잘되고 못되는 온갖 일들은 칡 옷 하나로 남는 것이니

日月佳名吾所愛 일동과 월담 그리고 가송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니

尋君時復翫餘輝 때로는 임을 찾아 남은 빛 구경코저

聞遠有田在孤山 문원은 고산에 밭을 가지고 있는데,

日洞月潭皆勝也 일동과 월담은 모두 경승지니라.

 

시회(詩會)를 가진 가송리(佳松里)의 고산이라는 지명은 퇴계가 본받고자 하였던 은사(隱士) 임포(林浦, Lin Bu;967~1028)가 20여 년 간 은둔해 살던 중국 서호의 고산(孤山)과 지명이 우연히도 같다. 이 시에는 학이 등장한다. 또 벼슬을 버리고 돌아올 필요도 없다는 구절도 나타난다.

 

자(字)가 군복(君復)인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不娶無子) 벼슬도 하지 않았다. 시를 읊고 글을 지으며(吟詩作書),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기르며(植梅放鶴) 살았기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렸다. 사후 "화정(和靖) 선생"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임포(林浦)보다는 임화정(林和靖)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으로 『임화정집(林和靖集)』이 전해오고 있다.

 

고산은 서호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높이가 불과 해발 38미터 밖에 안되는 얕트막한 곳이다. 임포가 살던 옛 집터에 원나라 때 진자안(陳子安)이 학정(鶴亭)을 지었다가 명나라 때는 전당(錢塘) 현령 왕익(王?)이 지었다는 방학정(放鶴亭)이 현존한다고 한다. 물론 현존 건물은 1915년 중건한 것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매림귀학(梅林歸鶴)의 명소라 일컫는다. 임화정 처사의 묘는 방학정 뒷편에 있다. 원나라 때 승려 양연진(楊璉眞)이 임포의 묘를 파보니 단계석 벼루[단연(端硯)] 하나와 옥비녀(玉簪)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다. 현재 묘는 1964년 문화혁명 때 훼손된 것을 1987년 중수한 것이라 한다.

 

내일 새벽 부산에서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먼저 항주 서호의 고산으로 달려가 방학정을 찾을 까 한다. 서호는 대여섯 번 가 본 곳이며, 고산 역시 몇 번 들렸던 곳이다. 이곳에는 절강성박물관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창수홍(常書鴻)미술관에서 반나절 보낸 기억도 있다.(그 자료는 2010.01.27 나의 블로거 둔황(敦煌)의 수호신 창수홍(常書鴻) | 실크로드 연구사)에 상세히 소개하여 두었다.

절강성박물관

창수홍(常書鴻)미술관

당시 이곳이 임포가 은거하였다는 정말 몰랐다. 아니 퇴계의 매화사랑을 공부하다보이 임포를 알았고, 그를 알게 된 이상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외에도 상해에는 매화나무 약 천 그루와 분매 약 30여 종이 있는 신장공원(莘庄公園)을 비롯하여 정산호 대관원 매원이 매우 아름답고, 루쉰공원의 윤봉길의사 기념관격인 매정에서도 매화를 관상할 수 있다. 상해에서의 만개한 매화를 볼 수 있는 시기는 보통 2월 21일부터 한 달 정도인데, 이때 매화전이나 매화축제도 개최한다고 한다.

루쉰공원의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에서 조카들 2005년 촬영

 

예로부터 꽃이 얼마나 피었을 때 매화구경을 가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이름도 달랐다. 매화가 5%미만 만개하였을 때 찾는 것은 찾을 심(尋)을 써서 "심매(尋梅)" 즉 매화를 찾는다 하였다. 또 5~30% 정도 피었을 때 찾을 탐(探)을 써서 "탐매(探梅)" 즉 매화를 더듬는다 하였다. 그리고 30%이상 활짝 피었을 때는 상줄 상(賞)자를 써서 "상매(賞梅)" 즉 매화를 칭찬한다고 했다. 또 알려지지 않은 곳에 외로이 홀로 피어있는 매화를 찾아가는 것도 심매(尋梅)또는 탐매(探梅)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상매(賞梅)는 일본 사람들이나 좋아하였지 우리의 옛 문인들은 가지에 붙은 꽃이 많지 않는(稀) 모양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당(唐)대 ‘답설심매(踏雪尋梅)’로 이름났던 맹호연(孟浩然)은 이른 봄 깊은 산 속에 매화가 피면, 파교(?橋)를 건너 탐매를 떠났다. 당나귀를 타고 지필묵紙筆墨과 음식, 술을 짊어진 시동侍童과 함께 가다가, 매화를 찾으면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였다고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으로 카메라를 손질한다. 혹 거나해지면 시 한수라도 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사정 파교심매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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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30 09:36

    첫댓글 매화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글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 12.01.30 11:22

    매화 예찬 잘 보았습니다.

  • 12.01.31 17:25

    눌인님 글 잘 보았습니다
    저는 산청에서 살고있는데 이곳 산청에 원정매,정당매,남명매가 있는데 원정매는 원둥지가 고사하고 옆에서 가지가 나와 명맥을
    유지하고있고 워낙오래된 500년이상된 매화라 고사할까 두려워 제나를대로 2010년 원정매,정당매,남명매를 접수를 채취하여
    접을 하여 2세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각각 2주씩.

  • 12.01.31 22:00

    글잘읽었습니다. 저는 경북칠곡군 일송정원의 원주입니다. 제가 수년전부터 매화의 향에 자극받아 수십그루의 매화고목만 수집하여 지금은 누구보다 좋은 매화만 보유하고있읍니다 봄이면 매화의 향이 저의 정원곧곧에 취할정도입니다. 님도 그향에 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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