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48] "바람의 검`으로 파티오(patio·공간)를 만든다" 건축가 오신욱(上)
매일경제 2022.10.29
[효효 아키텍트-148] 경남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마을 북쪽,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해안은 학동마을의 전경과 어우러진다. 언덕 위 자락에는 동백나무 군락이 위요(圍繞)하고 있다. 카페 신기해로(2022) 디자인의 핵심은 건축을 둘러싼 자연을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었다.
카페 신기해로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카페 신기해로는 '길 위에 집이 있다'는 개념을 적용했다. 그 길은 바닷길이다. '신기해로'는 부산 영도에 카페 문화를 확산시킨 모기업 '신기산업'이 영도에서 거제도로 매장을 열며 바닷길(해로)을 통해 세상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그 정체성이 건축언어로 표출돼야 했다.
오신욱 라움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영도에서 이곳으로 올 때의 바닷길을 상상하며 카페 위치와 진입 방향을 설정했다. 부산 영도 신기카페의 쌓인 컨테이너, 바다로 열린 개방의 이미지를 차용해 컨테이너 형상과 유사한 입방체를 쌓고 비틀고, 1층에 필로티를 만들어 매스를 들띄우기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카페 신기해로 내부에서 본 바다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스스로에게 '(바닷가) 대형 카페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해답은 다양한 내부 공간에 있었다. 영역별로 바닥 높낮이를 달리하고, 각 레벨은 시각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다른 느낌을 준다. 한 지점에 서 있을 때 실내 전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카페 건축은 사용자에게 공간 체험이 돼야 한다. 앉았을 때 펼쳐지는 시선 안에 사람이 20명 이상 들어오지 않도록 공간 크기를 조절했다. 담장이 없거나 높이가 낮아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건축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 가운데 공간 공유의 즐거움을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다.
오신욱은 이미 대형 카페 건축의 역량을 인정받은 바가 있다. 흔히 '갈맷길 1코스'로 불리는 임랑해수욕장에서 동부산 해변까지 펼쳐지는 20㎞ 안팎의 해안길은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대형 카페 건축물의 각축장이 됐다. 그 중심 부산시 기장군 삼성리의 '투썸플레이스'(2018년)는 새 날개 모양의 두 개 덩어리가 살짝 엇갈리게 얹힌 구조다.
일광해수욕장 모래사장 곡선을 건물이 자연스럽게 휘감아 도는 형상을 갖췄다. 2층 외부 테라스와 건물 루프톱은 바람과 파도를 시각·청각·촉각으로 느끼는 최적의 공간을 연출한다. 대도시의 전형적인 체인 카페에서 벗어나면서도 브랜드 디자인 정체성은 잃지 않았다.
일광 투썸플레이스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한국인의 평균 거주 유형이 되어버린 도시 아파트 생활은 그 탈출구의 대상으로 대형 카페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을 필요로 한다. 서울 강남 원룸에 살더라도 고급 승용차는 필수인 젊은 세대에게 1~2시간 자동차로 이동하는 과정은 즐거움이다. 대도시 외곽에 들어서고 있는 대형 카페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 되고 있다. 현대 한국인에게 오래전에 문화로 자리 잡은 노래방, 찜질방처럼.
충남 아산의 지자체가 신정호 주변으로 군락을 형성한 기존 (아직은 중소형) 카페들을 활용한 국제적인 미술 행사를 추진할 움직임도 있다. 먹고 마시고 공간을 즐기는 문화에 아방가르드 미술이 적절하게 접맥될지 관심이 높다.
8가족, 30명이 거주할 공간은 집이고 동시에 마을이다. 집 짓기에 참여하는 구성원 의견을 모두 수용하면서 각자의 형편을 맞추는 건 어렵다. '빌라'라고 호칭하는 다세대주택의 유형이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부산 남구 대연동 '모여가'는 적은 예산으로 가구별 가족 구성, 라이프스타일, 집에 대한 로망을 찾아준 집이다.
부산 대연동 모여가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모여가' 집 짓기는 아이들을 좀 더 아이답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의기투합했다. 건축가는 정감 있는 골목과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형제와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집집마다 그들의 예산에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각 집의 시각적·공간적 소통이 가능한 테라스, 마당, 발코니, 데크, 공부방 등을 핵심적 장치로 설정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바라보고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건물에서 어느 층, 어느 위치, 어떤 방식의 집을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각 집에 장점과 매력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했다.
모여가는 빌라가 아니며 단독주택도 아파트도 타운하우스도 공유주거도 아니다. 아이들의 친구가 가까이에 있는 공간심리적 도시주거다. 협동주택조합은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같은 공간에 살면서 공동체 또는 지역사회와 어우러지는 공동 주거 방식이다. 협동주택조합은 공통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며 법적인 소유는 법인의 지분을 갖는 방식이나 모여가는 개인 소유 방식이다.
오신욱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이행하는 일반적인 설계 방식을 지양한다. 3차원을 먼저 고민한 후에 2차원으로 가는 방법을 택한다. 땅의 생긴 형태 그대로를 마치 주물을 불어넣듯 공간 뼈대를 구성하고 난 다음에 빈 공간들을 세밀하게 배치한다. 마당과 옥상을 우선 마련하고 빈자리에 거주 공간을 배치하는 식이다. 오신욱이 경사지가 대부분인 부산의 지형적 특성에서 터득한 방식이다.
부산의 기후는 따뜻하고 햇살이 강하다. 바다에 비치는 햇살은 눈부시다. 오신욱은 '강한 햇살은 또렷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음영을 명확하게 하며, 직선적이고, 각진 형태의 건축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고 말한다.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도 부산의 햇살만큼은 어쩔 수 없다. 강한 햇살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서 시작한 게 '오신욱의 흰색 건축'이다.
부산 초량동 모닝듀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부산 동구 초량동 '모닝듀'와 '비꼴로' 프로젝트는 오신욱 특유의 흰색을 사용하고 (70여 년 전 한국전쟁) 피란 시절 산복도로의 판잣집 이미지를 가진 송판 무늬의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해 초량 지역의 레트로 이미지를 대입했다. 모닝듀는 집과 게스트하우스를 결합한 방식이다. '도시민박' 관광 활성화 및 원도심 재생을 위한 시범적인 시기에 지어졌다.
부산 초량동 모닝듀 내부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도시 민박은 단독주택(230㎡ 이하)에 집주인이 거주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숙박업(게스트하우스)을 운영하는 시설이다. 우리의 삶과 타 문물이 묘한 규칙과 질서로 직조된 전통적 장소인 초량에 들어선 모닝듀는 클라이언트(운영자)도 외국인(타자)이고, 이용자도 외지인(타자)인 특수성을 지닌다. '역사와 경사 지형을 장점으로 만드는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17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비꼴로는 초량동 차이나타운 위쪽에 위치한다. 대지 16평에 건평 10평, 4층 규모다. 콘크리트 구조체를 위한 거푸집 공법을 그대로 노출시켜 원도심 골목에 적합한 이미지, 적절한 크기, 일체화된 연속성과 스케일을 찾아내면서 완성됐다.
부산 초량동 비꼴로 [사진 제공 = 윤준환 작가]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다가가면 소박한 재료와 이미지가 표현되도록 했다. 당초 갤러리 등 문화 공간으로 설계됐으나 지금은 공방으로 쓰인다.
[프리랜서 효효]